경남 진해 성광교회 2006년 9월 27일(수) 예배 설교

이대흠200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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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해 성광교회 2006년 9월 27일(수) 예배 설교


설교자: 이대흠

장소: 진해 성광교회

시간: 오후 5시 도착 식사 후 예배드림. 감사

설교 제목: 꿈을 잃지 않는 그리스도인

설교 의의: 하나님만 찾아 떠나는 사역자로서의 길을 가기 위해 진해 성광교회를 만나

           담대히 하나님의 복음과 예수의 피, 성령의 인도를 증거 함

본문: 신약 빌립보서 1:3-11

설교 감동: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하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한다.

           미국인들은 relax라는 말이 들어간 책을 한 권 이상 꼭 들고 다닌다고 한다.

    소재: 감옥에 있는 바울을 위로하는 몇 몇 그리스도인(옥바라지를 하는 빌립보 교인들) 


대제(大題)1: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며 간구하다

(빌 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 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빌 1: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 1: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빌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대제(大題)2: 바울의 매임과 복음 전파

(빌 1: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 1: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빌 1:14) 2)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주석:


우리가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여기 한 사람! 꿈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간 사람의 이야기가 오늘 읽은 말씀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처음에는 배를 곯다 배가 불러지면 경제적인 욕망을 채웠으니 명예를 추구한다고 합니다. 명예욕이 채워지고 나면 그 다음은 이제 자신을 신(神)처럼 내세우는 종교적인 욕망으로 배불린다고 합니다.


여기 경제적인 욕망도 내어 버리고 명예욕도 버리고 더군다나 종교 욕망은 더욱 내어 버린 한 영혼의 감옥에서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의 기도는 죽음을 준비하는 기도가 아니라 소망을 가지는 기도입니다.

 그의 기도는 자신의 위안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애타는 사랑의 기도입니다. 할렐루야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해 보면, 불과 20년이라는 시간이 백 번 흐른 것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2,000년이 지난 오늘 현대인들은 너무 쉽게 절망하고 좌절해 버립니다.


 폴리캅은 순교할 때 그의 얼굴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너도 나도 서로 순교하는 결과를 낳을 만큼 그의 죽음은 슬프거나 불확신 속에 찬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쁨 속에 죽어갔다고 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인고의 훈련을 싫어하기에 일회용 신앙으로 버려지고 있습니다. 맛을 잃어버려 길거리에 버려져 밟히우는 그런 삶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름의 벼가 뜨거운 태양을 겪지 않으면 쭉정이가 되어지듯이 힘들다고 그것을 불법적으로 저항하고 비껴나간다면 우리는 아마 불량품으로서의 신앙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기쁨의 편지라고 불리웁니다. 물론 옥중 서신 중 가장 나중에 석방 직전에 씌어진 편지이지만 그래도 1차 수감 중에 씌어진 편지로 부자유한 상태에서 씌어졌습니다. 부자유하고 갇힌 상태에서 빌립보서 안에 많이 들어가 있는 말은 기뻐하라, 기쁨 이런 말씀입니다. 감옥 안에서 수인의 상태로 묶여 있는 사람이 이 말을 쓰는 것은 합당합니다.


구약의 한 이스라엘 왕은 대군으로 몰려오는 현실 속에 자기의 나라를 지키며 기도하다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실로 심판하실 이는 하나님 뿐이다.”


잠언서에는 ‘가난한 자를 멸시하는 것은 가난한 자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는 메시지가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가 볼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지만 하나님의 법을 추구하고 그의 뜻을 전파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대표로 자신을 도우러 온 에바브로디도가 자신을 위해 간병하다 죽게 되자 기도로 낫고 그를 빌립보 편지를 들고 빌립보 교회로 다시 돌아가게 합니다.


총 104절에 걸친 이 빌립보 서신에서 기쁨이라는 단어는 16번이나 나옵니다.


여러분은 힘들때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주의 일을 하다 힘들거나 고난이 와도 주님을 사랑한다 고백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한다 고백해야 합니다.


전투에서 전투를 하다 적군이 아군의 진로를 막고 북진을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제 저 산만 넘으면 꿈에도 그리던 통일을 하게 되는데 적군이 저 산을 막고 아군의 진로를 차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고지 위에서 엄청남 포탄으로 아군을 향해 쏟아붇기에 아군은 앞으로 진전하지 못하고 그토록 열망하던 조국의 회복을 맛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때 특공대가 조직됩니다. 특공대는 적진으로 들어가 적의 화약고를 폭파하는 것입니다. 몇 명의 아군 특공대가 숨어 잠에 적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먼저 적의 보초를 무성무기 말로 해치우고, 탄약이 있는 동굴 속으로 들어갑니다. 경보 장치를 제거하고 성공적으로 적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아군들은 폭약을 설치하고 이제 나오려고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그때 문 입구에서 적군의 소리가 아군에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대규모의 무리가 자신들을 향해 아군 쪽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그때 아군이 붙여놓은 폭약의 심지에서는 불이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일분만 있으면 그 폭약은 터지고 동굴 속의 화약과 함께 먼지처럼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나갈 수도 없고 가만히 있으면 폭약에 터져 죽고 마는 이 상황에서 이 군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만 이 군인들이 판단을 잘못해 자신들이 살겠다고 폭약의 불을 끈다면, 그리고 적군과 싸운다면 그들의 임무는 실패로 끝나는 것입니다. 적군과 싸우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 폭약고를 폭파하라고 보냈기 때문에 그들은 거기에서 산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 이렇게 사는 사람은 종처럼 산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 종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하도 생계가 어려운 때라서 그들은 일 년에 쌀 두 가마니만 주면, 주인을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일용할 양식만 주신다면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자세가 현대인들에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이 소아시아 선교를 위함이라면 요즘 사장되어지는 유럽교회를 보면, 빌립보 최초 유럽 교회처럼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하지 못하고, 에브브로디도나 루디아처럼 죽도록 감옥에 있는 주의 종을 돌보거나 돕는 사역을 하지 못하는 유럽교회는 뿌리가 말라 사장되어지지나 않았나 생각됩니다.


한국이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고, 중국도 1억 5천만명이라는 거대한 인구를 자랑하지만 고난으로 훈련시키지 않으면 쭉정이처럼 말라버리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범사에 그를 의지하는 잠 3:6의 참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우루는 줄 앎이라고 로마서를 쓸 때 즈음의 바울을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으면 참 힘들죠?


군 영화를 보았는데 거기서 여군 소령이 총을 맞아 피를 흘리는데 그를 걱정하는 남자 부하 군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쓸데없는 소리 마.. 내가 딸 애를 낳을 때는 이보다 훨씬 더 아팠어!”


요즘에는 고대에 그리스 귀족들이 50명의 노예를 데리고 사는 것처럼 여성들의 생활이 편리해졌다고 합니다. 밥하는 기계, 빨래하는 기계, 청소하는 기계, 음식 가는 기계 등 과거에는 그러한 것을 노예 한 명 한명이 했기 때문에 현재의 여성들은 고대 그리스 귀족 여성이 50명의 노예를 데리고 사는 것과 같을 만큼 편리한 세계라고 합니다.


주부들이 성경책을 들고 기도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크지만 하나님 사랑에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훈련되면 영혼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한 짐승이 제왕절개를 통해서 새끼를 쉽게 낳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짐승은 배가 고프니 새끼를 잡아먹었다고 합니다.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새끼도 잡아먹는 것이 생물의 사랑입니다.


하나님!


이 세대에 우리에게 고난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쭉정이가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사도 바울처럼 옥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여유를 주시옵소서!


감사하고, 매일 기도하고, 자라기를 기도하는 바울의 모습처럼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두고, 학생을 두고, 이웃을 두고 기도하며, 때가 되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에게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주님을 의지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내려놓습니다. 그것이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를 향한 기도는 불타고 있습니다.

이제 1장에서 시작된 기도는 4장을 향해 큰 불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언제나 하나님의 땅입니다. 감옥에서도 계셨고, 가난한 자들과도 계셨고, 부자들과도 계셨습니다. 심판의 주로도 그들과 함께 하셨고 가난한 자에게는 긍휼의 주님으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베드로처럼 우리 팔을 벌리우고 십자가에 달리우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고난의 현장가운데서도 바울처럼 맘을 중보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육체의 묶임이 참 묶임이 아니라 영의 묶임이 참 묶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1차 투옥되었지만 그의 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기서 꿈이 확장되었다고 12절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담대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2장에서는 예수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3장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예수께 붙잡힌 삶을 이야기하고, 빌립보 교회를 향한 뜨거운 칭찬으로 편지를 맺습니다.


복음을 향해 달려가는 바울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역시 잡힌바 된 그것은 아니지만 아직 손에는 없으나 오직 앞을 향해 나아가는 균형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진해 바다의 위치처럼 한반도를 밝히며 아래로 세계를 향해 빛을 밝히는 진해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있는 청소년들은 뿌리가 바르지 않고 양질의 인재로 커가고

어른들은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교사로 성가대로 봉사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라며 화내거나 모든 일에 참고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고 자신을 죽이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어 확대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기에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의가 있을 있을 것이며, 국내외적으로 할 일이 많은 상황가운데서 먼저 주님의 의와 평화, 뜻, 나라를 구하면 큰 축복이 평안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첨부파일 : 경남 진해 성광교회 2006년 9월 27일.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