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모두가 우리 것인데 누가 주인행세를 함부로 하는가?

김광수200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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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방조국 민중의 염원, 사회주의 최근 신문보도에도 등장했지만 1946년 8월 미군정이 조선인 8,000여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정치형태에 대해서는 대중정치(대의정치) 85%, 계급독재 3%, 체제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70%, 자본주의 14%, 공산주의 7% 등의 응답을 보였다고 한다. 해방된 조국의 미래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평등한 세상, 사회구성원의 품위를 존중하고 자아실현을 보장하는 사회주의 사회를 그렸던 것이다. 이것은 제국주의 일본의 착취를 몸소 겪어야 했고 해방이 될 때까지 우리 사회주의자들이 보여준 헌신과 투쟁을 목격했던 대중의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실제 1944년부터 조선땅에서는 무장봉기를 위해 수많은 활동가들이 산에 들어가 군사훈련을 받고 있었고, 이들의 정신적 무장과 투쟁의 전망을 밝혀준 사람들이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실제 국내외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해방을 전후해 국내의 봉기와 국외에서의 진격을 통해 일거에 일제를 몰아내고 친일반동들을 끝장내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1944년말 전남지역의 이정윤이 주도한 공산주의자협의회는 국외 무장세력과 협력하여 남만주와 서북산악지대에서 유격전을 벌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화북의 연안과 소련 등지에 조직원을 파견하여 국외무장세력과 군사문제를 논의하기도 하였다. 또 여운형 등의 건국동맹은 전국적 범위의 영농군을 편성한다는 계획아래 1945년 봄 공산주의자협의회와 함께 군사위원회를 조직한 후, 전국을 8개지구로 나누어 책임자를 파견하였다. 또한 국경지대에 유격대를 조직하고 백두산을 넘어 국내로 진공한다는 계획도 수립하고 화북조선독립동맹과 중경의 임시정부에 여러 차례 연락원을 파견하였다. 이처럼 일제를 몰아내고 자주적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진지하게 임한 사람들은 사회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국외의 무장부대도 1945년에 들어서면서 국내진공을 준비하였다. 임시정부의 광복군(김구 부대)은 국내에 침투하기 위해 미군 OSS 특수부대와 함께 훈련을 받았다. 또 소련에서 군정훈련과 소부대 파견활동을 벌이고 있던 동북항일연군 교도려의 조선인 유격대원(김일성 부대)들은 1945년 7월 조선공작단을 조직하였다. 조선공작단은 국내에 유격대원을 파견할 계획을 세웠으며 소련군에 파견된 일부 대원은 8월 9일 이래 소련군과 더불어 국경과 조선 동북부 해안지방으로 진격해 들어왔다. 위의 두부대가 소규모이고 외국군대의 작전범위안에 머물렀다면 그 대오가 연대규모에 이르러 독자적인 작전능력을 갖고 있고 수많은 전투경험으로 정규, 정예화 되어있던 조선의용군(무정 부대)은 1944년 1월이래 주력부대를 연안으로 이동시켜 정치군사교육과 훈련에 주력하였고, 1945년 8월 11일 국내로 진공하기로 결정하고 출동준비에 착수하였다. 이 부대가 후에 중국내전과정에서 4만 명의 대부대로 성장한 것을 보면, 만약 국내외 혁명세력이 국내진공을 시작하였다면 200만에 이르는 만주일대의 조선민족이 호응하고 국내 봉기세력과 결합하여 삽시간에 수십만 대군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의 해방군은 국내에 머물던 제국주의 군대를 도륙하고 여세를 몰아 일본열도까지 쳐들어갔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들과 달리 국제연대를 통해 동북아시아 일대의 혁명역량을 동원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이러한 예측이 절대 공상만은 아닌 것이다. 비록 소련군대의 번개같은 진격속도에 겁을 집어먹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비겁하게 너무 일찍 항복함으로써 국내진격투쟁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일제패망을 앞두고 눈을 빛냈던 젊은이의 압도적 다수가 사회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조선민중은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저러한 대중의 역사적 경험과 심리도 영향을 주었지만 대중의 상식에서 출발한다 하더라도 해방된 조국의 사회체제는 사회주의여야 한다는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당시 조선의 대부분의 산업시설 중 일부 가내공업을 제외한 모든 산업이 왜놈들 소유였고, 옥토는 대개가 왜놈들 아니면 친일파의 소유였던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물러간 후 이러한 산업시설을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적 소유로 하는 것에 어느 누구도 이의가 있을 수 없었다. 2. 사회주의에는 이 땅 순국선열들의 체취가 난다. 그리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무릅쓰고 투쟁했던 독립지사들 대다수가 노동자·농민의 나라를 꿈꾸었던 것이다. 이중 잘 알려진 것이 1939년에 결성된 전국연합진선협회(진선협회)다. 김구선생과 김원봉 같은 좌·우의 대표적 인사들과 의열단과 같은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등이 힘을 합쳐 만든 이 단체는 정강정책에 합의하고, 일제에 맞서 강고한 투쟁을 결의하였다. 합의한 정강·정책 중 중요한 몇 가지를 보면, "대한민국은 노동자·농민의 나라이다." "봉건세력 및 일체의 반혁명세력을 숙청하고 민주공화제를 건설한다" "국내외에 있는 일본제국주의의 공사재산 및 매국적 친일파의 일체 재산을 몰수한다" "토지는 농민에 분배하고 토지의 일체 매매를 금지한다"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정신은 이후 임시정부에서 1941년도에 작성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경제강령에 해당되는 부분을 보자! ① 대산업기관의 공구(工具)와 시설을 국유로 하고, 토지, 광산, 어업, 수리, 임업, 소택과 수상, 공중의 운수사업과 은행, 전신, 교통 등과 대규모의 농·공·상·기업과 성시(城市)·공업구역의 공용적 주요산업은 국유로 하고, 소규모 혹 중소기업을 사영으로 함. ② 적의 침략·침점 혹은 시설한 관공·사유 토지와 어업, 광산, 농림, 은행, 회사, 공장, 철도, 학교, 교회, 사찰, 병원, 공원 등의 산업과 기타 토지 및 경제, 정치, 군사, 문화, 교육, 종교, 위생에 관한 일체 사유자본과 부적자(附敵者)의 일체 소유자본과 부동산을 몰수하여 국유로 함. ③몰수한 재산은 빈공(貧工)·빈농 및 무산자의 이익을 위하여 국영 혹 공영의 집단 생산기관에 충당함을 원칙으로 함 ④토지의 상속, 매매, 저압(抵押), 전양(典讓), 유증(遺贈), 전조차(轉租借)의 금지와 고리대금업과 사인의 고용농업의 금지를 원칙으로 하고 농장생산 소비와 무역의 기구를 조직 확대하여 농·공대중의 물질과 정신상 생활정도와 문화수준을 높임. ⑤국제무역, , 전기, 수도, 대규모의 인쇄소, 출판, 영화, 극장 등을 국유·국영으로 함. ⑥노공(老工), 유공(아동노동), 여인의 야간노동과 연령, 지대(地帶), 시간의 불합리한 노동을 금지함. ⑦농공인의 면비의료(무상의료)를 보급, 실시하여 질병소멸과 건강을 보장함. ⑧토지는 자력자경인에게 나누어줌을 원칙으로 하되, 원래의 고용농·자작농·소지주농·중지주농 등 농인지위를 보아 저급으로부터 우선권을 줌. 김구선생님 등 임시정부는 해방된 조국에 사는 민족들이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누리고, 기간산업은 국유화 등을 통해 사회적 소유방식으로 사회재부의 평등한 분배 속에 기본생활을 누리게 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삼균주의로 유명한 조소앙 등 사회주의자들의 영향이 압도적이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해방을 전후해 우리 민족의 사상적 평균은 사회주의에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경도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할 것이다. 이렇듯 조선인의 70%와 온갖 풍상을 겪고도 신념을 잃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이 꿈꿔온 완전한 자주독립국가 건설은 꿈은 남한을 점령한 미제국주의자들의 압도적 무력과 이에 결탁한 모리배들에 의해 좌절되었다. 순사가 경찰서장이 되고, 면서기가 군수가 되고, 검사시보가 검사가 되어 죄인이 순식간에 주인행세를 하며 이 땅은 정의도, 민족정기도 모조리 무너진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도 이승만이가 대통령이 되려고 만든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었다고 하니, 효창공원에 누워 계시는 김구선생과 윤봉길, 이봉창 의사가 무덤에서 돌아누울 지경이다. 3. 쇠무지벌 이야기 그러한 기가 막힌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쇠무지벌 이야기처럼 절실한 곳이 또 있을까? 신경림 시인의 담시(이야기 시)의 제목이기도 한 쇠무지벌은 지금의 충주부근의 땅이다. 그 역사는 고구려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의 국원성을 빼앗은 신라는 그곳 쇠가 많이 나는 남한강변에 '다인철소(多人鐵所)'라는 특별구역을 두어, 포로로 잡힌 고구려 병사와 유민들로 하여금 대대로 쇠를 캐고 연장을 만들며 천민으로 살게 했다. 이 '다인철소'는 고려때까지도 존속, 1255년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도망친 벼슬아치와 관군을 대신해서 주민들이 관노와 함께 용감히 싸워 몽고군을 물리친 공로로 익안현으로 승격되고, 그 주민들은 천민에서 풀려 비로소 평민으로 살게 되었다. 한편 나라에서는 그들에게 넓은 황밭들을 주어 농사짓게 했는데 사람들은 나라에서 준 땅이라 해서 이 땅을 사유화하지 않고 익안현이 폐현되어 충주목에 속하게 된 조선왕조 이후까지도 공동 경작, 공동분배의 전통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 땅은 1910년에 시작된 토지조사사업 때 간교한 친일 신흥양반에 의해 궁장토로 신고되었다가 그들의 소유가 되었다. 해방이 되자 이 땅을 두고 지주, 순사출신 경찰, 그리고 왜놈의 주구였다가 이제는 미국놈들의 주구가 된 자들이 한패가 되고 쇠무지벌의 민중이 한편을 이루는 양측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속일줄을 몰라서 대들줄을 몰라서 갓 쓴 안도둑한테 뺏기고 밟히고 총칼 든 밖도둑한테 찔리고 쫓겼으니 원수로다 원수로다 갓 쓴 놈이 원수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총칼 든 놈 원수로다 보아라 이제는 저 강, 저 나루가 모두 우리 것이다. 너설에 서 있는 붉나무 개웇나무 물푸레나무 쥐똥나무가 다 우리 것이다 논과 밭과 아그배나무 저 팥배나무가 다 우리 것이다. 그러나 민중의 이러한 바람과 젊은이들의 울끈불끈 패기는 나라가 이미 친일파의 손을 거쳐 미제와 손잡은 주구손에 들어감으로써 좌절하게 된다. 동네에 온통 줄초상이 났다. 이런 일 있을 줄 알았다는 어른들 탄식 속에서 굴비 두름 엮듯 묶여 나가는 젊은이들. 내나라 되찾았다 하나 좋아진 게 없고 내 세상 되었다 하나 달라진 게 없으니 왜말 하던 바로 그 입에서 조선말이 나오고 긴 칼 대신 양총을 매었구나. 남의 땅 거저 가지려 했으니 빨갱이 남의 못자리판 짓밟았으니 또한 빨갱이 가진 이에게 대들었으니, 또한 빨갱이, 이승만이나 박정희 때부터 나온 이야기로 추정되지만 소가 자다가도 웃을 이야기가 '대한민국은 반공국가'라는 말이다. 국가의 성립이 특정한 사상을 반대하기 위해서란다. 내 기독교국가, 불교국가, 이슬람국가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반기독교 국가라는 말은 못 들어봤고 자유민주주의국가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반민주국가라는 말 또한 들어본 적이 없다. 하기야 미국에서 만든 세계최초의 장편영화라는 "B.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흰 가면을 쓴 KKK단이다. 흑인이 폭동을 일으킨 마을에 허연 귀신같은 자들이 떼로 말을 타고 달려와 흑인을 학살하는 이 영화의 제목이 "국가의 탄생"이니 이 감독은 지독한 바보이거나 아니면 엄청난 풍자가일 것이다. 흑인을 학살하는 KKK단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영화는 "미합중국"이 백인의 인종지배 도구임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똑같이 반공국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대한민국은 빨갱이에 대한 백색테러(우익의 좌익에 대한 테러)를 통해 탄생한 국가"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반공국가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자들은 이처럼 대한민국이 백색테러로 탄생한 국가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으며, 스스로가 그러한 백색테러의 주범이었음을 자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반공국가라는 말은 주술처럼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사회주의를 금기해야 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한편 이 땅에서 사회주의는 적색테러의 주범이거나, 아니면 백색테러, 그 중에서도 국가기관의 탈을 백색테러의 희생자들과 동일한 의미로 쓰인다. 시골 어르신들이 가끔 하는 옛날 말씀 중엔 동네 어귀에서 대나무로 사람을 어육을 냈던 이야기가 빨갱이란 말과 함께 등장한다. 빨갱이들은 가끔 가해자도 되지만 대부분은 피해자로 등장하여 공포의 대상이자 행여 자식들이 물들어서는 안될 불온사상으로 취급된 지가 어언 반세기가 넘어섰다. (주: 물론 6.25전쟁이 이 공포의 근원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6.25가 보기에 따라서는 내전일 수도 있겠지만 남한 민중에게는 내전은커녕 미처 준비되지 않은 날벼락이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에게는 전쟁을 초래한 "사상"의 힘이나 아름다움보다는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이 초래하는 폭력과 어설픔이 야기하는 야만이 훨씬 눈에 잘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빨갱이들이 누구였던가? 정의의 수호자들, 상식의 대변자들, 민중의 호민관들이 아니었던가? 토지를 농민에게 돌리자는 농꾼이요, 왜놈 사장이 떠난 공장을 노동자들이 자주관리해야 한다는 노동자가 아니었던가? 쇠무지벌은 바로 그 상징이 아닌가? 공동경작, 공동분배의 아름다운 사회주의 원칙에 의해 경작되던 그 땅을 되돌리기는커녕 그러자는 말조차 틀어막고, 고개라도 빳빳이 들면 나오는 것이 몽둥이 찜질이었다. 그리고는 빨갱이 새끼들이라는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말이 욕이 되어 날아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50년 동안 숨죽이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만만치만은 아닌 것이니, 세상이 그렇게 도둑놈에게 이롭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니, 슬금슬금 좌경이 나오고 불온이 여기저기서 불끈거리고 있다. 50년동안 짓밟고 생목숨까지 앗아가고, 전쟁으로 아주 도륙을 내었다고 안심하지 마라! 이 땅의 상속재벌들아, 맘을 놓지 마라! 꺼진 불도 다시 보라고, 그 불이 쉬이 꺼질 것인가? 그 불이 영영 안 피어날 줄 알았던가? 양놈 콧김이 훈훈해 이불도 안 덥고 자는 놈들아, 안방 아랫목이 서늘해지고 있다! 모여들 드는구나 모두들 모여드는 구나 삽자루 괭이자루 들고 곡괭이에 쇠스랑 들고, 이대로는 살 수 없다. 짓밟히고 뭉개지면서는 살 수 없다, 다섯이 열이 되고 열이 스물이 되는구나. 빨갱이 한통속 되면 땅 떼겠다 으름장 놓는 마름놈 비뜰어진 입을 찟어라 주인 따라 설치는 종놈 머슴놈에 대궁밥 얻어 걸치겠다고 내시걸음 치는 길카리들 배배 꼬인 팔다리를 꺾어라 ....... 내 나라 되었으니 빼앗겼던 내 땅 내 힘으로 되찾고 새세상 되었으니 되찾은 내 땅 내 힘으로 지킬 뿐. 우린들 왜 모르랴 그들 떼지어 몰려오리라는 걸, 총질에 불질에 대포질로 대드리라는 걸. 왜놈 대신 양놈에 되놈 업고 대드리라는 걸. 마른 장작 내어라 짚단에 솔가지 내어라 넓은 학교 마당에다 햇불을 올려라 강가에 흩어져 사는 천한 형제들에게 알려라 물러서면 밟히고 숙이며는 죽느니 천 날이라도 버티고 만 날이라도 싸우리라, 생쥐떼 둘러싸고 그물조임으로 몰아라 늦추면 도망치고 한눈 팔면 할퀴느니 보여주마 우리에게도 힘 있다는 것을 우는구나 모두들 우는구나 발 끝에 발바닥에 손 끝에 두 주먹에 솟구치고 뻗쳐오는 힘을 깨달으면서. 싸우리라 만 날이라도 싸우리라 우는구나 모두들 우는구나, 몽고 병정한테 찔려 죽은 귀신 왜놈 헌병한테 맞아 죽은 귀신 헌양반 새양반한테 채어 죽은 귀신 모두들 뛰어나와 발 구르며 우는구나. 싸우리라 만년이라도 싸우리라 싸우리라 십만년이라도 싸우리라. 쇠가락 지신밟기에 늦은 세마치로 바뀌어 울려라 울려라 천만년이나 울려라 울려라 울려라 만만년이나 울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