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둘다 모르고 계셨다면 두 글의 출처 까페로 가셔서 과연 길이 보이는지 찾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리, 욥기와 잠언 >
성경위에서 만들어진 교파는 맨 먼저 유태교가 있고 그 다음이 구교이며 개신교가 그 뒤를 잇습니다.
유태교는 자신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으로 유태교를 유지하고 있고 기독교는 그리스도와 신약성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종교는 각각 다른 두개의 구원론을 뼈대로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두 종교 모두에 이 뼈대가 없습니다. 결국 성경위에 형성되어 있는 모든 종교에 이 뼈대가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유태교에는 그들의 성서에 예고된 '메시아'가 없고 그리스도교에는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성경적 논증이 없습니다.
그나마 유태교는 모세율법이라는 구원의 법, 즉 '구원론의 기초'인 구원의 '방법론'은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는 '구원' 에 대한 '주장'은 있을지언정 그 방법론도 없고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성경적 논증도 없습니다.
기독교에 종교성립의 기본조건인 '구원론'이 없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만 사실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려 어떤 철학자가 "신학대학엘 가서 공부를 해봤는데 거기에는 구원의 길이 없더라." 라고 주장한 것이 '학문적 논리'의 견지에서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철학자는 구체적으로 기독교에 구원론이 없음을 논증하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논증을 했다면 지금쯤 기독교는 사멸되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미 학문적 논리에 기초를 두고 있는 상태이며 '성경논리'에 입각한 '메시아 구원론' 을 그리스도교의 핵심인 '복음서' 에 제시하면서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기독교'상태는 마치 어떤 가설로서의 학설이 존재하다가 정설이 나타나면 자연히 가설들이 사멸되는 것과 같이 논증만으로도 무너질 수 있는 위태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무속종교로 남을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무속적인 부분은 이미 유태교가 점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라는 66권의 책은 다섯 가지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1, 창세기부터 에스더까지는 역사적의 기록입니다.
2, 다음 욥기부터 아가 까지는 유태와 신, 구교가 공히 '성문서' 로 분류합니다.
3, 이어서 선지 서라는 예언서가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 이어져 있고
4. 그 다음이 '4복음서' 이며
5, 나머지는 사도들의 편지글이며 마지막에 계시록이 있습니다.
유태인들은 3번 까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나름의 교리를 말하며 기독교는 복음서와 서신을 추가하여 교리를 만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꼬리에 해당하는 계시록으로 무수한 사이비 종교도 낳아져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현재 유태교는 '예수'를 일개 사이비랍비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 근거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탈무드는 이것을 문제 삼아 그리스도교를 '구멍 난 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신학의 구멍 1,
복음서의 차이와 상반에 대한 필연성 증명의 부재.
복음서는 4권의 책으로 구성이 되어 있고 그중에 3권을 일컬어 '공관복음' 이라고 합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공관복음' 이라는 세책에 '비유'로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세 사람이 자기의 시각에서 각각 기록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 세책들이 사소한 기록뿐만 아니라 핵심이 되는 '가르침'의 내용에 있어서까지도 각각 상반되거나 큰 차이를 안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을 '완전한 계시' 라고 말하는 정통기독교는 이 차이와 상반의 '필연성'을 지금까지 증명하지 못했고 유태교는 이점을 문제 삼아 그리스도가 '메시아' 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이비종파들은 이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서 "성경은 완전한 계시가 아니다." 라고 말하며 몰몬교나 통일교 같이 또 다른 경전을 가져다 붙이고 자신들만의 구원논리를 만들어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실, 다원주의나 초교파주의 같은 이념은 이러한 논리적 문제가 양산한 변종들인 것입니다.
구멍 2, 유태교제사장인 '레위' 에 대하여 기독교의 '만인제사장제' 성립의 논증 부재.
유태교도 기독교도 모두 변경할 수 없는 성경의 논리가 있는데 그것이 이 '제사장 제도' 입니다.
제사장직의 이월문제를 기독교는 성경적으로 논증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성경적 논리로는 하나님이 세운 '종교의 지도자'가 성경을 바탕으로 한 종교집단의 리더가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성경적으로 합당한 논증이 없는 상태에서 '지도자' 라는 직위를 가지는 것은 '성경적' 으로 '불법'입니다. 유태인에게는 모세의 율법이 있고 '레위' 라는 제사직분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가 성경내용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반해 '기독교'는 '만인제사장제' 라는 이론을 주장하지만 이것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모세율법에 보면 이 제사장 직의 '이월' 에는 '규례'가 있습니다.
'선민'이라는 기득권을 가진 유태인의 관점에서 예수가 정말 메시아라면 기독교는 모세율법의 '이월규례'에 따른 '만인 제사장제'를 주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구약에 이은 신약 적 구원론이 논리적 타당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타당성이 확보되어 있으면 유태교가 인정을 하든 말든 일단 '종교'로서의 기본요건은 갖추고 있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신약이라는 성경 안에는 그리스도가 모세율법의 뒤를 이어 제사장으로 삼아졌다는 것을 논증할 자료가 없습니다.
구멍3. 신약이 주장하는 마음의 법으로서의 온전한 율법의 부재.
만인 제사장 제를 주창하려면 마땅히 제사장이 관할하는 '법' 이 있어야 합니다. 제사장이란 하나님의 율법을 관장하는 직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그들이 만든 '교리'는 있을지언정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란 법을 주관하는 사람인데 법이 없으니 제사장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인 제사장제' 는 신약의 서신내용을 인용하여 만들어낸 것이지만 논리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학문적으로는 '가설'도 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현재 신학의 범위 안에서 만인 제사장제의 성경적 논증은 불가능합니다. 이 사실을 신약성경의 내용으로 간단히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성경배열 순서대로입니다.
요한복음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 복음서의 가르침은 모두 비사, 즉 비유로 되어 있습니다. 복음서 내용은 밝히 이르고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요한복음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 요한복음은 복음서의 마지막 책인데 감당치 못하므로 다 이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 사도행전 초반의 부활이후 첫 전도 때 베드로가 한말입니다. '보고 듣는 이것'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것'의 실체가 요한 계시록 이전의 서신에 있느냐하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 온전한 것이 아직 안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 에베소서의 기록은 '비밀'을 '대강'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야고보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 야고보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이렇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온전한 율법, 즉 불완전한 모세율법이 아닌 또 다른 '들여다보는' 율법이 있다고 말하고 있고 그것을 보는 것이 곧 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이 들여다볼 수 있는 온전한 율법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서신에는 온전한 것의 '예고'나 혹은 '이미 있는 것'에 대한 '간접적' 서술만 있을 뿐이며 이외에도 그 실체가 '없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문구는 매우 많습니다. 그러면 결국 이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완전하게 한 것의 실체인 완성된'들여다보는 율법'이 있기는 있는데 신약성경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신학 안에는 이'들여다보는 율법'이 분명히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신학은 그리스도의'공의 실현'이라는 논리를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학에는 '공의실현논리'는 있는데 그 실현의'과정'에 관한 논리만 있고'결과'에 대한 논증은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대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들이 무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무속적인 주장들입니다.
"십자가로 다 이루어 졌으니 그것을 믿으면 구원 받는다",
"하나님은 사랑이니 사랑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등등의 무 논리적 주장들이 공의 실현의'결과'인'온전한 율법'이 없다는 사실을 가리는 수단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결과'없는 과정논리는 종국에 '그냥 믿어'라는 결론을 도출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신경정신과 적으로 문제 있는 환상, 환청과 같은 무속적 신비주의에 힘을 실어 주게 되었고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에 끌리는 인생들의 마음은 그리로 향해 갔던 것입니다.
세계제일의 단독교단은 '방언'으로 형성된 교회이며 두 번째로 큰 교단은 '신유'라는 귀신을 쫓는 것으로 형성된 교단입니다. 지금은 이 교단들이 힘의 논리에 의하여 정통이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결과 없는 공의 실현논리는 비이성적 신비에만 힘을 실어준 셈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의 실현논리란 무엇일까요?
# 구약에 이은 신약이라고 주장하는 연결논리로서의 "공의 실현"
공의 실현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닫힌 구원의 길을 열었다는 주장으로, 그리스도가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핵심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만물과 사람을 창조한 것은 '자기가 좋기 위해서'가 먼저입니다. 그 일환으로 '자식을 얻기 위해서'만물과 사람을 창조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만들었고 또 하나님과 같은 '심성'의 상태로 만들었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사람이 본능적으로'자식을 원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신'으로 '완전체'인데 사람은 흙으로 만든 피조물로'불 완전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식'을 얻기 위해서는 피조물인'사람'이 '신'이 되는 결과를 도출해야합니다.
4, '천사'는 선의 코드만 가지고 있고 사탄은 악의 코드만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과 사람은 선과 악의 코드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사람'이라는 피조물이 '자유의지'가 없으면 '인형'에 불과 하므로 '자유의지'를 발현시킬 수 있도록 마음에 '선과 악'을 분별하도록 하였고 그 선과 악에 대한 분별기능을 발현시키기 위하여 '선악과' 라는 금기사항을 부여했습니다. (공의실천의 일환입니다)
선이나 악은 '상대성'을 가진 구분이므로 선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적으로 악이 존재해야합니다.
'신'이라는 조건은 하나님처럼 선악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 악을 행하지 않고 선만 행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5, 그래서 선악을 모두 부여하고 부여한 것을 가동시키기 위해서 선악과라는 상대적 악을 부여한 것입니다.
6, 그런데 사람이'불 완전체'이므로 '필연적'으로 선악과를 따 먹었고 역시 당연한 귀결에 따라 신이 아니면 거할 수 없는 에덴에서 쫓겨나면서 신이 되는 훈련장으로 '입소'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7, 세상에는 선의 코드를 가진 천사와 악의 코드를 가진 사탄이 활동하게 하고 뱀은 사람을 그 근원인 흙으로 돌아가게 하는 '임무'를 띠게 되었고 천사는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신으로 복귀하는 것을 돕는 임무를 띠고 파견이 된 것입니다.
8, 그래서 이제 선악을 모두 마음에 가진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고 말 것인가', 아니면 '마음에서 악을 온전히 이기고 신의 상태가 될 것인가'를 선택하는 '한판의 권투경기'를 하기위해 '링 위에'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9, 그런데 '사람이 나면서부터 악한 것만 계획한다.'는 성경의 기록처럼 악에게 패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노아홍수로 일단 노아만 남겨 놓고 인류를 흙으로 '원위치' 시킵니다.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입니다.
10, 그 후에 하나님이'이김'의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하기위하여 악을 이기는 방법인'낮아짐과 비움'을 행하는 방법을 부여합니다. 그것이 모세율법입니다.
11, 하지만 사람들은 그 율법을 오히려 자기 배를 채우는 악의 수단으로 사용을 하면서 악에게 이길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한 '행위의 율법'인 모세율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습니다.
12, 이제 다시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복음서에서 하나님의 율법의 관장 자들을 힐책한 것입니다.
13,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준비한 '히든카드', 곧 '예비 된 작은 광명'으로 성경이 표현하고 있는 '마음의 율법'을 부여합니다.
이것이 사람이 신이 되게 하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의 율법을 부여하는 것에는 맹점이 있습니다. 이것을 따라서 살면 사람이 신이 될 수 있기는 한데 이것을 사람에게 부여하는 것은 '공의'라는 규칙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라는 규칙으로서의 대전제를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자기 맘대로 이랬다, 저랬다'하는 하나님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14,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이 낸'공의'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이 먼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와서 이제 부여할 '마음의 법'을 따라서'선으로 악을 이기는 본'을 보이고 공의를 하나님자신이 먼저 지키는 순서를 따릅니다.
그것이 육신으로 와서 '마음의 법'을 따라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악을 이기고 영이 사는'시범'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그 법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로 따라가면 영이 살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사건이'공의 실현'이 되는 이유는 죽음에 대한 '철회'와 살수 있는 길의 '부여'라는 두 가지를 충족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결자해지'는 공의라는 하나님의 뜻을 수호하고 '정녕 죽으리라'한 법을 철회하고 살수 있는 방법인 '마음의 법'을 부여하는 근거를 마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다 이루었다.' 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결국 그 말은 "하나님의 공의도 지키면서 사람에게 신이 되는 방법도 부여하게 되었다"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공의 실현의 결과인 '부여'된 마음의 법의 실체가 있으면 되는데 문제는 기독교 안에 그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 신학 안에는 구원론이 없는 상태입니다.
# 공의 실현의 결과'로서의 구원론의 실체, 솔로몬의 잠언.
복음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 신약성경이 생기기 이전에 이미 부여될 완전한 법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증거기록입니다.)
이 새로 부여된 '마음의 법'이 바로 솔로몬의 잠언입니다.
마음의 법인 솔로몬의 잠언은 유태인들의 손을 통하여 미리 준비된 것이었으나 그 안에 있는 가르침의 논리가 하나님의 결자해지라는 공의 실현이 빠진 상태에서는 '마음의 법' 이 될 수 없는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전체를 알 수 없으므로 낱개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잠언은 총 3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9장까지는 서론이고 10장부터가 본론입니다. 그런데 이 본론이 '한 구절'이 '한 법'으로 되어있고 전체를 알아야만 한 구절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내용이 마치 형이하학적 처세술을 논하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형이상학적'마음의 법'을 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정작 지혜서라고 말은 하지만 그리스도의 공의 실현엔 관심 없는 유태인도 그 내용을 모르고, 공의 실현을 아는 기독교지도자들은 마음이 젯밥에만 향해 있으니 그것을 읽는 것조차 불가능 했던 것입니다.
솔로몬을 지혜의 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지혜의 왕인지에 관하여는 오늘날 아무도 아는 바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또한 역으로 잠언의 구원논리는 신약의 십자가 사건의 기록만으로는'결자해지'를 논증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사건은 구약 안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신약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 한 것이어서 객관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혜문학의 꽃이라고 불리는 '욥기'에는 바로 그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증거기록이 있습니다. 이전 제사장인'레위'에서 그리스도로 제사장 직이 이월되었다는 증거기록이 '하나님의 판결'로 명시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 역시 복음서의 비유와 같은 방식으로 '비유'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사용된 용어의 본래 의미를 모르면 읽는 것조차 불가능하여 등장인물인 욥과 세 친구와 엘리후와 하나님이 각각 하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왜 이 같은 말을 각 사람이 하는 것이고 또 왜 하나님은 그 같은 판결을 하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도록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역시 유태교도 모르고 기독교도 이 내용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실현과 그리스도의 메시아 증명에 있어서 '욥기와 잠언'은 신약의 구원론의 타당성을 논증하는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법에 대한 고찰 1
사람에게 열린 구원의 길은 예수님께서 여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지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에 하신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가면 분명히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는 것도 혹시 알고 계시는 지요.
*요한복음16장25절: 때가 이르면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요한복음16장12절: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모든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의 제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감당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를 것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하십니다.
*요한복음14장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하신 말씀은 다 이르신 것이 아니고 나머지는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성령께서 가르치신 말씀은 복음서 이후에 나오는 신약의 말씀들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 이전에 있는 글들은 모두 서신입니다. 그것들에 성령의 가르치심이 첨가되어 있는 것은 맞으나 부분적으로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9절-10절: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린도전서 3장2절: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느냐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 지금도 감당 못한다고 했고 이른 말이 밥도 아니고 젖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고린도서에는 젖만 있고 밥은 없는 것이 됩니다.
*에베소서. 3장3-4절 :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에베소서. 3장13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 바울은 계시를 받아 비밀을 알고 있고 또 깨달았지만 그의 편지 내용을 읽고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대강 기록”한 것을 보고 그가 비밀을 “깨달았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과연 바울의 서신을 받은 그들은 신약 성경을 아는 사람들일까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단지 사도들을 통해서 전해들은 것이 전부입니다.
복음서에도 다 이르신 것이 아니고 그들이 편지를 받을 때는 복음서 이후의 서신이 모두 있었던 것도 아니고 또 서신의 내용에도 일부만 있는데 그러면 그들이 들어 이미 알고 있는 사도들이 전한 성령이 가르치시는 진리의 말씀은 도대체 성경의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사도들이 성령을 받아 말씀을 전하기 이전에, 복음서가 다 만들어지기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5장39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알고 상고 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얻기를 위하여 내게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누가복음 ( 부활후)
*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경은 무엇입니까? 신약일 수 있을까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구약에 모세율법빼고, 시편빼고, 선지자의 글인 선지서 빼면 남는 "이것이라"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욥기, 잠언, 전도서, 아가 입니다.
신약성경은 이미 존재하는 구약의 하나님의 법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며 하나님의 법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책입니다.
로마서 8장 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죄와 사망의 법이란 모세의 율법을 말합니다. 그러면 구약 성경에서 모세의 율법 말고 또 다른 율법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성령의 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못 다한 말을 성령이 가르치실 것이라고 하셨고 바울은 “성령의 법”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구약의 성경 어디에 성령의 법이 있다는 것이 됩니다.
구약 성경에서 모세 오경은 사망의 법이고 오경 뒤부터 에스더 까지는 다른 법이 기록된 부분이 없고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의 예언서는 당연히 법이 아니고 그 다음은 복음서고 서신입니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에스더 뒤의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와 신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 이렇게 여섯 권 남습니다. 그러면 욥기에 성령이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까? 아가 서에도 없고, 계시록에도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있지만 하나님의 법은 없습니다. 그러면 시편에 있을까요?
시편1장2절: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12절: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시편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법을 예고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솔로몬이 쓴 잠언과 전도서뿐입니다.
다음은 잠언의 처음과 전도서의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 잠언1장8절: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 전도서12장10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라
11절: 한 목자의 주신바니
시편2장12절엔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라고 하시고 잠언과 전도서엔 위와 같은 기록이 있고 이어지는 솔로몬의 아가1장2절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가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다음은 사도행전의 증거입니다.
*사도행전7장46-48절: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 이미 지었는데 그것이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처소란 곧 성전입니다. 성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법이 없는 곳은 성전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8장10절: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내 법이란 성령의 법이며 그것을 바탕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신다는 것은 마음 판에 새긴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와 달리 성령이 깨닫게 하시는 것은 잊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성령이 새기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언과 전도서가 바로 솔로몬이 야곱의 집을 위하여 지은 말씀의 성전입니다. 이것 말고 또 다른 곳에 솔로몬이 지은 말씀의 성전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야곱에게 하나님이 붙여주신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 집은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이것을 사람들은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가려 놓고 감춰 놓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하고 돌이키면 보여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그저 사람이 눈으로 읽어 볼 수 있다면 그것은 감춰진 것도 아니고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신 것이 됩니다.
고린도 전서2장7절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이미 정하신 것이라
성경에 하나님의 지혜를 전하는 것이라고,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하는 책은 잠언과 전도서입니다.
또 다른 증거가 되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잠언 1장 23절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다음은 “나의 신" 이 “성령" 임을 증거 하는 부분입니다.
이사야 42장 1절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나의 신을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복음서를 보겠습니다.
마태12장17-18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바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잠언의 말씀에 아버지의 말을 보인다고 하고 또 초반부에는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요엘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이 나의 신이 곧 지혜입니다. 다음은 지혜가 누군가를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다음의 “나" 는 지혜입니다.
잠언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함이니라.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위 말씀은 곧 지혜가 창조자 “우리" 중 하나라는 증거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중에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성령입니다.
다음은 위 내용과 동일한 내용을 가진 욥기의 하나님의 판결 부분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위 내용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욥기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었느냐.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
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그 집의 길을 아느냐.
요한복음에도 증거가 있습니다.
1장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모든 성령으로 낳아진 자들의 어미이신 성령(지혜)께서 다음과 같이 잠언에 말씀을 하십니다.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법이란 바로 잠언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에는 선과 악을 나누는 말씀들이 가득한 것입니다. 법이란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잠언에는 인간의 윤리를 다루는 말씀이 없습니다. 인간의 윤리는 언제든지 변하는 비 진리입니다.
육의 눈으로 보지 말고 영의 눈으로 보셔야 합니다. 살리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입니다.
? 요한복음8장31-32절: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잠언 16장6절: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 요한 복음16장13절-15절: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 잠언22장21절: 너로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 잠언 8장7절: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 전도서12장10절: 기록한 것(잠언 전도서)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라
* 요한복음16장8절: 그(성령)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요한1서 2장27절: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 잠언 1장23절: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 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부어 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요한복음7장16절: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라
? 잠언: 도리어 나의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 마태복음5장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 잠언 3장 21절: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 야고보서 1장 25절: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 야고보서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의 본래 뜻입니다. 무엇이 행함이 있는 믿음인가 하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알고 계시던 것과 말씀이 다르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
* 디모데후서 3장 15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잠언2장5절: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 잠언1장3절: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 잠언1장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 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비사로 이르셨고 성령이 오시면 장래 일을 알리실 것이라고 하셨으며 진리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서신은 부분적으로 예언했다고 했으며 온전한 것이 온다고 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에는 내가 저희 마음에 내 법을 새기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성령의 법 마지막 부분인 전도서 끝 부분입니다. 천천히 자세히 읽으십시오.
12장9절-10절: 전도자가 지혜로움으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묵상하고 궁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전도자가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라
13절: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2,3번 글은 너무 길어 싣지 않습니다. "로마서 " 게시판에 있습니다. 회원가입 없이 모든 글을 읽을 수 있는 까페입니다.
성경이 진실인지 아닌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 2
두 가지글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둘 중에 하나라도 님께서 하나라도 알고 계셨는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둘다 모르고 계셨다면 두 글의 출처 까페로 가셔서 과연 길이 보이는지 찾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리, 욥기와 잠언 >
성경위에서 만들어진 교파는 맨 먼저 유태교가 있고 그 다음이 구교이며 개신교가 그 뒤를 잇습니다.
유태교는 자신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으로 유태교를 유지하고 있고 기독교는 그리스도와 신약성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종교는 각각 다른 두개의 구원론을 뼈대로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두 종교 모두에 이 뼈대가 없습니다. 결국 성경위에 형성되어 있는 모든 종교에 이 뼈대가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유태교에는 그들의 성서에 예고된 '메시아'가 없고 그리스도교에는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성경적 논증이 없습니다.
그나마 유태교는 모세율법이라는 구원의 법, 즉 '구원론의 기초'인 구원의 '방법론'은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는 '구원' 에 대한 '주장'은 있을지언정 그 방법론도 없고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성경적 논증도 없습니다.
기독교에 종교성립의 기본조건인 '구원론'이 없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만 사실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려 어떤 철학자가 "신학대학엘 가서 공부를 해봤는데 거기에는 구원의 길이 없더라." 라고 주장한 것이 '학문적 논리'의 견지에서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철학자는 구체적으로 기독교에 구원론이 없음을 논증하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논증을 했다면 지금쯤 기독교는 사멸되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미 학문적 논리에 기초를 두고 있는 상태이며 '성경논리'에 입각한 '메시아 구원론' 을 그리스도교의 핵심인 '복음서' 에 제시하면서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기독교'상태는 마치 어떤 가설로서의 학설이 존재하다가 정설이 나타나면 자연히 가설들이 사멸되는 것과 같이 논증만으로도 무너질 수 있는 위태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무속종교로 남을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무속적인 부분은 이미 유태교가 점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라는 66권의 책은 다섯 가지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1, 창세기부터 에스더까지는 역사적의 기록입니다.
2, 다음 욥기부터 아가 까지는 유태와 신, 구교가 공히 '성문서' 로 분류합니다.
3, 이어서 선지 서라는 예언서가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 이어져 있고
4. 그 다음이 '4복음서' 이며
5, 나머지는 사도들의 편지글이며 마지막에 계시록이 있습니다.
유태인들은 3번 까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나름의 교리를 말하며 기독교는 복음서와 서신을 추가하여 교리를 만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꼬리에 해당하는 계시록으로 무수한 사이비 종교도 낳아져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현재 유태교는 '예수'를 일개 사이비랍비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 근거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탈무드는 이것을 문제 삼아 그리스도교를 '구멍 난 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신학의 구멍 1,
복음서의 차이와 상반에 대한 필연성 증명의 부재.
복음서는 4권의 책으로 구성이 되어 있고 그중에 3권을 일컬어 '공관복음' 이라고 합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공관복음' 이라는 세책에 '비유'로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세 사람이 자기의 시각에서 각각 기록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 세책들이 사소한 기록뿐만 아니라 핵심이 되는 '가르침'의 내용에 있어서까지도 각각 상반되거나 큰 차이를 안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을 '완전한 계시' 라고 말하는 정통기독교는 이 차이와 상반의 '필연성'을 지금까지 증명하지 못했고 유태교는 이점을 문제 삼아 그리스도가 '메시아' 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이비종파들은 이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서 "성경은 완전한 계시가 아니다." 라고 말하며 몰몬교나 통일교 같이 또 다른 경전을 가져다 붙이고 자신들만의 구원논리를 만들어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실, 다원주의나 초교파주의 같은 이념은 이러한 논리적 문제가 양산한 변종들인 것입니다.
구멍 2, 유태교제사장인 '레위' 에 대하여 기독교의 '만인제사장제' 성립의 논증 부재.
유태교도 기독교도 모두 변경할 수 없는 성경의 논리가 있는데 그것이 이 '제사장 제도' 입니다.
제사장직의 이월문제를 기독교는 성경적으로 논증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성경적 논리로는 하나님이 세운 '종교의 지도자'가 성경을 바탕으로 한 종교집단의 리더가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성경적으로 합당한 논증이 없는 상태에서 '지도자' 라는 직위를 가지는 것은 '성경적' 으로 '불법'입니다. 유태인에게는 모세의 율법이 있고 '레위' 라는 제사직분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가 성경내용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반해 '기독교'는 '만인제사장제' 라는 이론을 주장하지만 이것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모세율법에 보면 이 제사장 직의 '이월' 에는 '규례'가 있습니다.
'선민'이라는 기득권을 가진 유태인의 관점에서 예수가 정말 메시아라면 기독교는 모세율법의 '이월규례'에 따른 '만인 제사장제'를 주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구약에 이은 신약 적 구원론이 논리적 타당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타당성이 확보되어 있으면 유태교가 인정을 하든 말든 일단 '종교'로서의 기본요건은 갖추고 있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신약이라는 성경 안에는 그리스도가 모세율법의 뒤를 이어 제사장으로 삼아졌다는 것을 논증할 자료가 없습니다.
구멍3. 신약이 주장하는 마음의 법으로서의 온전한 율법의 부재.
만인 제사장 제를 주창하려면 마땅히 제사장이 관할하는 '법' 이 있어야 합니다. 제사장이란 하나님의 율법을 관장하는 직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그들이 만든 '교리'는 있을지언정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란 법을 주관하는 사람인데 법이 없으니 제사장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인 제사장제' 는 신약의 서신내용을 인용하여 만들어낸 것이지만 논리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학문적으로는 '가설'도 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현재 신학의 범위 안에서 만인 제사장제의 성경적 논증은 불가능합니다. 이 사실을 신약성경의 내용으로 간단히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성경배열 순서대로입니다.
요한복음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 복음서의 가르침은 모두 비사, 즉 비유로 되어 있습니다. 복음서 내용은 밝히 이르고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요한복음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 요한복음은 복음서의 마지막 책인데 감당치 못하므로 다 이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 사도행전 초반의 부활이후 첫 전도 때 베드로가 한말입니다. '보고 듣는 이것'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것'의 실체가 요한 계시록 이전의 서신에 있느냐하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 온전한 것이 아직 안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 에베소서의 기록은 '비밀'을 '대강'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야고보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 야고보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이렇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온전한 율법, 즉 불완전한 모세율법이 아닌 또 다른 '들여다보는' 율법이 있다고 말하고 있고 그것을 보는 것이 곧 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이 들여다볼 수 있는 온전한 율법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서신에는 온전한 것의 '예고'나 혹은 '이미 있는 것'에 대한 '간접적' 서술만 있을 뿐이며 이외에도 그 실체가 '없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문구는 매우 많습니다. 그러면 결국 이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완전하게 한 것의 실체인 완성된'들여다보는 율법'이 있기는 있는데 신약성경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신학 안에는 이'들여다보는 율법'이 분명히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신학은 그리스도의'공의 실현'이라는 논리를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학에는 '공의실현논리'는 있는데 그 실현의'과정'에 관한 논리만 있고'결과'에 대한 논증은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대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들이 무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무속적인 주장들입니다.
"십자가로 다 이루어 졌으니 그것을 믿으면 구원 받는다",
"하나님은 사랑이니 사랑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등등의 무 논리적 주장들이 공의 실현의'결과'인'온전한 율법'이 없다는 사실을 가리는 수단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결과'없는 과정논리는 종국에 '그냥 믿어'라는 결론을 도출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신경정신과 적으로 문제 있는 환상, 환청과 같은 무속적 신비주의에 힘을 실어 주게 되었고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에 끌리는 인생들의 마음은 그리로 향해 갔던 것입니다.
세계제일의 단독교단은 '방언'으로 형성된 교회이며 두 번째로 큰 교단은 '신유'라는 귀신을 쫓는 것으로 형성된 교단입니다. 지금은 이 교단들이 힘의 논리에 의하여 정통이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결과 없는 공의 실현논리는 비이성적 신비에만 힘을 실어준 셈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의 실현논리란 무엇일까요?
# 구약에 이은 신약이라고 주장하는 연결논리로서의 "공의 실현"
공의 실현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닫힌 구원의 길을 열었다는 주장으로, 그리스도가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핵심인 것입니다.
이 설명은 성경전체구조를 설명하는 것과도 같으므로 최대한 축약하겠습니다.
1, '공의'란 창조자인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생 사이'의 '일'에 대하여'공평'하게 처리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2, 하나님이 만물과 사람을 창조한 것은 '자기가 좋기 위해서'가 먼저입니다. 그 일환으로 '자식을 얻기 위해서'만물과 사람을 창조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만들었고 또 하나님과 같은 '심성'의 상태로 만들었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사람이 본능적으로'자식을 원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신'으로 '완전체'인데 사람은 흙으로 만든 피조물로'불 완전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식'을 얻기 위해서는 피조물인'사람'이 '신'이 되는 결과를 도출해야합니다.
4, '천사'는 선의 코드만 가지고 있고 사탄은 악의 코드만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과 사람은 선과 악의 코드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사람'이라는 피조물이 '자유의지'가 없으면 '인형'에 불과 하므로 '자유의지'를 발현시킬 수 있도록 마음에 '선과 악'을 분별하도록 하였고 그 선과 악에 대한 분별기능을 발현시키기 위하여 '선악과' 라는 금기사항을 부여했습니다. (공의실천의 일환입니다)
선이나 악은 '상대성'을 가진 구분이므로 선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적으로 악이 존재해야합니다.
'신'이라는 조건은 하나님처럼 선악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 악을 행하지 않고 선만 행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5, 그래서 선악을 모두 부여하고 부여한 것을 가동시키기 위해서 선악과라는 상대적 악을 부여한 것입니다.
6, 그런데 사람이'불 완전체'이므로 '필연적'으로 선악과를 따 먹었고 역시 당연한 귀결에 따라 신이 아니면 거할 수 없는 에덴에서 쫓겨나면서 신이 되는 훈련장으로 '입소'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7, 세상에는 선의 코드를 가진 천사와 악의 코드를 가진 사탄이 활동하게 하고 뱀은 사람을 그 근원인 흙으로 돌아가게 하는 '임무'를 띠게 되었고 천사는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신으로 복귀하는 것을 돕는 임무를 띠고 파견이 된 것입니다.
8, 그래서 이제 선악을 모두 마음에 가진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고 말 것인가', 아니면 '마음에서 악을 온전히 이기고 신의 상태가 될 것인가'를 선택하는 '한판의 권투경기'를 하기위해 '링 위에'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9, 그런데 '사람이 나면서부터 악한 것만 계획한다.'는 성경의 기록처럼 악에게 패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노아홍수로 일단 노아만 남겨 놓고 인류를 흙으로 '원위치' 시킵니다.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입니다.
10, 그 후에 하나님이'이김'의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하기위하여 악을 이기는 방법인'낮아짐과 비움'을 행하는 방법을 부여합니다. 그것이 모세율법입니다.
11, 하지만 사람들은 그 율법을 오히려 자기 배를 채우는 악의 수단으로 사용을 하면서 악에게 이길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한 '행위의 율법'인 모세율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습니다.
12, 이제 다시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복음서에서 하나님의 율법의 관장 자들을 힐책한 것입니다.
13,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준비한 '히든카드', 곧 '예비 된 작은 광명'으로 성경이 표현하고 있는 '마음의 율법'을 부여합니다.
이것이 사람이 신이 되게 하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의 율법을 부여하는 것에는 맹점이 있습니다. 이것을 따라서 살면 사람이 신이 될 수 있기는 한데 이것을 사람에게 부여하는 것은 '공의'라는 규칙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라는 규칙으로서의 대전제를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자기 맘대로 이랬다, 저랬다'하는 하나님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14,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이 낸'공의'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이 먼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와서 이제 부여할 '마음의 법'을 따라서'선으로 악을 이기는 본'을 보이고 공의를 하나님자신이 먼저 지키는 순서를 따릅니다.
그것이 육신으로 와서 '마음의 법'을 따라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악을 이기고 영이 사는'시범'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그 법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로 따라가면 영이 살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사건이'공의 실현'이 되는 이유는 죽음에 대한 '철회'와 살수 있는 길의 '부여'라는 두 가지를 충족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결자해지'는 공의라는 하나님의 뜻을 수호하고 '정녕 죽으리라'한 법을 철회하고 살수 있는 방법인 '마음의 법'을 부여하는 근거를 마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다 이루었다.' 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결국 그 말은 "하나님의 공의도 지키면서 사람에게 신이 되는 방법도 부여하게 되었다"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공의 실현의 결과인 '부여'된 마음의 법의 실체가 있으면 되는데 문제는 기독교 안에 그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 신학 안에는 구원론이 없는 상태입니다.
# 공의 실현의 결과'로서의 구원론의 실체, 솔로몬의 잠언.
복음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 신약성경이 생기기 이전에 이미 부여될 완전한 법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증거기록입니다.)
이 새로 부여된 '마음의 법'이 바로 솔로몬의 잠언입니다.
마음의 법인 솔로몬의 잠언은 유태인들의 손을 통하여 미리 준비된 것이었으나 그 안에 있는 가르침의 논리가 하나님의 결자해지라는 공의 실현이 빠진 상태에서는 '마음의 법' 이 될 수 없는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전체를 알 수 없으므로 낱개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잠언은 총 3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9장까지는 서론이고 10장부터가 본론입니다. 그런데 이 본론이 '한 구절'이 '한 법'으로 되어있고 전체를 알아야만 한 구절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내용이 마치 형이하학적 처세술을 논하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형이상학적'마음의 법'을 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정작 지혜서라고 말은 하지만 그리스도의 공의 실현엔 관심 없는 유태인도 그 내용을 모르고, 공의 실현을 아는 기독교지도자들은 마음이 젯밥에만 향해 있으니 그것을 읽는 것조차 불가능 했던 것입니다.
솔로몬을 지혜의 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지혜의 왕인지에 관하여는 오늘날 아무도 아는 바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또한 역으로 잠언의 구원논리는 신약의 십자가 사건의 기록만으로는'결자해지'를 논증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사건은 구약 안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신약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 한 것이어서 객관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혜문학의 꽃이라고 불리는 '욥기'에는 바로 그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증거기록이 있습니다. 이전 제사장인'레위'에서 그리스도로 제사장 직이 이월되었다는 증거기록이 '하나님의 판결'로 명시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 역시 복음서의 비유와 같은 방식으로 '비유'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사용된 용어의 본래 의미를 모르면 읽는 것조차 불가능하여 등장인물인 욥과 세 친구와 엘리후와 하나님이 각각 하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왜 이 같은 말을 각 사람이 하는 것이고 또 왜 하나님은 그 같은 판결을 하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도록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역시 유태교도 모르고 기독교도 이 내용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실현과 그리스도의 메시아 증명에 있어서 '욥기와 잠언'은 신약의 구원론의 타당성을 논증하는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법에 대한 고찰 1
사람에게 열린 구원의 길은 예수님께서 여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지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에 하신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가면 분명히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는 것도 혹시 알고 계시는 지요.
*요한복음16장25절: 때가 이르면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요한복음16장12절: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모든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의 제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감당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를 것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하십니다.
*요한복음14장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하신 말씀은 다 이르신 것이 아니고 나머지는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성령께서 가르치신 말씀은 복음서 이후에 나오는 신약의 말씀들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 이전에 있는 글들은 모두 서신입니다. 그것들에 성령의 가르치심이 첨가되어 있는 것은 맞으나 부분적으로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9절-10절: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린도전서 3장2절: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느냐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 지금도 감당 못한다고 했고 이른 말이 밥도 아니고 젖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고린도서에는 젖만 있고 밥은 없는 것이 됩니다.
*에베소서. 3장3-4절 :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에베소서. 3장13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 바울은 계시를 받아 비밀을 알고 있고 또 깨달았지만 그의 편지 내용을 읽고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대강 기록”한 것을 보고 그가 비밀을 “깨달았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과연 바울의 서신을 받은 그들은 신약 성경을 아는 사람들일까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단지 사도들을 통해서 전해들은 것이 전부입니다.
복음서에도 다 이르신 것이 아니고 그들이 편지를 받을 때는 복음서 이후의 서신이 모두 있었던 것도 아니고 또 서신의 내용에도 일부만 있는데 그러면 그들이 들어 이미 알고 있는 사도들이 전한 성령이 가르치시는 진리의 말씀은 도대체 성경의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사도들이 성령을 받아 말씀을 전하기 이전에, 복음서가 다 만들어지기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5장39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알고 상고 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얻기를 위하여 내게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누가복음 ( 부활후)
*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경은 무엇입니까? 신약일 수 있을까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구약에 모세율법빼고, 시편빼고, 선지자의 글인 선지서 빼면 남는 "이것이라"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욥기, 잠언, 전도서, 아가 입니다.
신약성경은 이미 존재하는 구약의 하나님의 법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며 하나님의 법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책입니다.
로마서 8장 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죄와 사망의 법이란 모세의 율법을 말합니다. 그러면 구약 성경에서 모세의 율법 말고 또 다른 율법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성령의 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못 다한 말을 성령이 가르치실 것이라고 하셨고 바울은 “성령의 법”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구약의 성경 어디에 성령의 법이 있다는 것이 됩니다.
구약 성경에서 모세 오경은 사망의 법이고 오경 뒤부터 에스더 까지는 다른 법이 기록된 부분이 없고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의 예언서는 당연히 법이 아니고 그 다음은 복음서고 서신입니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에스더 뒤의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와 신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 이렇게 여섯 권 남습니다. 그러면 욥기에 성령이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까? 아가 서에도 없고, 계시록에도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있지만 하나님의 법은 없습니다. 그러면 시편에 있을까요?
시편1장2절: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12절: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시편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법을 예고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솔로몬이 쓴 잠언과 전도서뿐입니다.
다음은 잠언의 처음과 전도서의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 잠언1장8절: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 전도서12장10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라
11절: 한 목자의 주신바니
시편2장12절엔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라고 하시고 잠언과 전도서엔 위와 같은 기록이 있고 이어지는 솔로몬의 아가1장2절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가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다음은 사도행전의 증거입니다.
*사도행전7장46-48절: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 이미 지었는데 그것이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처소란 곧 성전입니다. 성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법이 없는 곳은 성전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8장10절: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내 법이란 성령의 법이며 그것을 바탕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신다는 것은 마음 판에 새긴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와 달리 성령이 깨닫게 하시는 것은 잊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성령이 새기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언과 전도서가 바로 솔로몬이 야곱의 집을 위하여 지은 말씀의 성전입니다. 이것 말고 또 다른 곳에 솔로몬이 지은 말씀의 성전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야곱에게 하나님이 붙여주신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 집은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이것을 사람들은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가려 놓고 감춰 놓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하고 돌이키면 보여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그저 사람이 눈으로 읽어 볼 수 있다면 그것은 감춰진 것도 아니고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신 것이 됩니다.
고린도 전서2장7절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이미 정하신 것이라
성경에 하나님의 지혜를 전하는 것이라고,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하는 책은 잠언과 전도서입니다.
또 다른 증거가 되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잠언 1장 23절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다음은 “나의 신" 이 “성령" 임을 증거 하는 부분입니다.
이사야 42장 1절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나의 신을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복음서를 보겠습니다.
마태12장17-18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바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잠언의 말씀에 아버지의 말을 보인다고 하고 또 초반부에는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요엘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이 나의 신이 곧 지혜입니다. 다음은 지혜가 누군가를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다음의 “나" 는 지혜입니다.
잠언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함이니라.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위 말씀은 곧 지혜가 창조자 “우리" 중 하나라는 증거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중에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성령입니다.
다음은 위 내용과 동일한 내용을 가진 욥기의 하나님의 판결 부분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위 내용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욥기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었느냐.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
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그 집의 길을 아느냐.
요한복음에도 증거가 있습니다.
1장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모든 성령으로 낳아진 자들의 어미이신 성령(지혜)께서 다음과 같이 잠언에 말씀을 하십니다.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법이란 바로 잠언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에는 선과 악을 나누는 말씀들이 가득한 것입니다. 법이란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잠언에는 인간의 윤리를 다루는 말씀이 없습니다. 인간의 윤리는 언제든지 변하는 비 진리입니다.
육의 눈으로 보지 말고 영의 눈으로 보셔야 합니다. 살리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입니다.
? 요한복음8장31-32절: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잠언 16장6절: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 요한 복음16장13절-15절: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 잠언22장21절: 너로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 잠언 8장7절: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 전도서12장10절: 기록한 것(잠언 전도서)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라
* 요한복음16장8절: 그(성령)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요한1서 2장27절: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 잠언 1장23절: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 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부어 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요한복음7장16절: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라
? 잠언: 도리어 나의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 마태복음5장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 잠언 3장 21절: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 야고보서 1장 25절: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 야고보서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의 본래 뜻입니다. 무엇이 행함이 있는 믿음인가 하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알고 계시던 것과 말씀이 다르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
* 디모데후서 3장 15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잠언2장5절: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 잠언1장3절: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 잠언1장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 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비사로 이르셨고 성령이 오시면 장래 일을 알리실 것이라고 하셨으며 진리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서신은 부분적으로 예언했다고 했으며 온전한 것이 온다고 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에는 내가 저희 마음에 내 법을 새기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성령의 법 마지막 부분인 전도서 끝 부분입니다. 천천히 자세히 읽으십시오.
12장9절-10절: 전도자가 지혜로움으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묵상하고 궁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전도자가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라
13절: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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