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말할수 있다는 것의 행복

황재연2006.10.08
조회25

20년 남짓 살아가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라고 할순 없지만 몇몇 사람들을 만나보았고, 그중엔 내가 단순한 호감으로 끌려했단 사람도 있었으며 정말 사랑했었구나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내가 과연 내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사랑한다. 좋아한다고 말했던적이 몇번이나 있나 생각해본다.

 

몇번 없는거 같다.

 

사회에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혀 가면서 느끼지만 현대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중 한가지가 대인관계라는 것을 요즘 더더욱이 느낀다.

어찌 보면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내 속내를 털어놓던 그렇지 않던간에 한번정도 경험해 보았던, 그리고 한번정도 고민했던 것이 내가 과연 이 사람에게 내 속내를 털어놓음으로써 틀어질지도 모르는, 알고 지내면서 쌓아왔던 사람대 사람으로서의 관계가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어느정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갖았던것 같다.

 

용기가 없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가짐은 언제나 한번쯤은 이 시대에 살아가는 뭇 청춘들이라면 한번정도 경험해 봤으리라.

 

그러던 내가 요즘 느끼는 바가 한가지 생겼다.

 

사랑한다 말할수 있다는 것의 행복


 

위의 여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숲의 요정 에코다.(날 오타쿠라 부르진 말아달라)

에코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도 있겠다만 얘길 하자면 다음과 같다.

  숲의 요정 에코는 수다떨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요정이었다. 하루는 헤라여신이 목욕하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고 자신이 여기서 목욕하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를 어길 경우 엄중한 저주를 내릴 것이라 하였다.

 

  이를 들은 에코는 평소와 다름 없이 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고 에코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소문은 헤라여신의 귀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에 헤라여신은 에코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혀 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이 한 말만, 자기가 들은 말만 따라서 할 수 있도록 저주를 내렸다고 한다.

 

  저주를 걸린 에코는 그 저주처럼 아무런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에코에게 어쩌면 행복일 수도 있고, 불행일수도 있을만한 일이 생긴다. 한 사내를 보고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이다.

에코는 그 사내앞에 나타나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저주때문에 그 말을 할 수 없고 그 사내의 주변을 멤돌기만 할 뿐이었다. 한편 그 사내는 이런 에코가 이상해 보였고 그녀에 대한 안좋은 인상으로 그녀를 피하기 시작했다.

 

 사랑에 대한 그러한 슬픔이 너무도 컸기 때문일까. 결국 에코는 아무도 없는 산속에 들어가 숨어버렸고 시간이 지나 메아리(Eco)로 남아 그렇게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가지의 이야기.

영화 '성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 솔직히 망한 영화이긴 하지만 느와르가 어울리는 홍콩영화 중에서 보기 드문 홍콩 멜로 영화이다.(물론 중경삼림 같은 것도 있다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눈이 멀고 말을 할 수 없는 한 장애인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양파. 요양원에 있는 그런 그를 간호해주는 한 간호사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초란.(이름이 다들 좀-_-;;)

양파는 자신을 지극히 돌보아주는 초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볼수도, 말할 수도 없는 그에게 그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런 그가 하루는 초란과 약속을 잡게 되었고 기쁜 나머지 뛰어다니다 찻길에 뛰어들어버려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런 뒤 죽음을 맞이한다.(정말 어이 없는 구성이다만;;)

 

그런 그에게 뜻밖의 행운이 뒤따른다. 하늘나라에 있는 염라대왕이 그가 6억번째로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1주일의 기간동안 다시 이승에 내려갈 수 있도록 해준다.(이것도 정말 어이가--;;)

 

하지만 그에게 하나의 핸디캡이 걸려있으니 자신이 죽기 이전에 자신에 관련된 직접적인 이야기(이름이라든지, 신상명세등,,)를 하면 간질에 걸린 사람처럼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는 것이다.

 

그런 핸디캡에 걸린 그는 1주일의 기간동안 자신이 살아오면서 볼 수 없었던 초란을 볼 수 있게 되고 그녀와 처음으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주일의 기간동안 성급한 마음에 몇번 간질에 걸리긴 했지만 결국 1주일의 기간이 다 되어 떠나가기 이전, 그녀에게 간접적으로 자신이 눈이 멀고 볼수 없는 양파이며 초란 당신을 사랑했다는 말을 하고 하늘로 사라지면서 영화가 마무리된다.(이러니 망했다.)

사랑한다 말할수 있다는 것의 행복

 

두 영화. 모두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엄청난 괴로움을 표현해준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현실과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큰 행복에 더 큰 욕심을 바라고 있는 것인줄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만나서 느끼는 그 설렘

함께 있기만 해도 좋은 그 느낌

그 사람의 연락에 나도 모르게 미소지어지는 그러한 나의 모습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그런 마음이 중요한 것일텐데 어쩌면 우리는 그것들은 잊은체 단순히 교제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만나서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행복인데 어찌 보면 우리는 그러한 감정을 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다는 아주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것 같지만 분명한 행복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행복을 우리들이 여기는 또다른 무언가로 인해 되돌려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 행복을 스스로 내차는 것은 아닐까?

 

요 근래 날 흐뭇하게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런 생각이 들때즘 날 흐뭇하게 하는 사람을 느낄 수 있다는것이 어쩌면 내게 주어진 행복이라면 행복일 것이다.

 

너무 어렵게만 생각해왔던것 같다.

 

사랑이란 우리의 가까운 곳에서 부터 아주 작은 곳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그러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우리들에게는 말할 수 있는 소박한 행복도 있는데..

 

왜 난 그것을 이제야 알았을까 싶다.

 

소중한 계절. 가을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만 당신이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이 스스로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오 행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