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걱정에 극락에도 못 가시고, 노심초사 하시는 모습으로 자주 내 꿈에 나타나시는 박정희 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 회장이 백년가약 을 맺고 가정을 꾸린 것이다. 신부는 서향희 변호사. 신랑의 마흔 여섯 신부는 서른살로 열여섯 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천생연분이다 싶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멋진 커플이었다.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결혼식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 박 대통령의 조카 사위인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박태준 전 총리, 이만섭 전 국회의장 등 2 천여 명이 넘는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시종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하객 중 신랑의 학창 시절 은사 여덟 분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신랑의 서울사대 부속초등하교 교장이었던 이지호 (91)옹은 박 회장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직 후 청와대로 찾아가 만나곤 이번에 처음 본다면서 결혼한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이제야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겠구나 싶어 눈물이 앞을 가렸다, 고 말했다.
영화 배우 박신양의 노래가 울려 퍼지면서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소망 교회 곽선희 목사가 주례석에 서고 신랑 신부가 손을 잡고 입장했다. 곽 목사는 " 서로 완전한 신뢰를 가진 가정을 이뤄야 한다"며 사랑과 믿음 , 소마의 주제로 20 여분간 주례사를 했다.
이어 신랑이 어린 시절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 내외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함께 했던 모습과 육군 사관학교 생도 시절의 모습등을 담은 추억의 흑백 사진들이 상영돼 식장을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결혼식에 참여했던 나는 그 사진들을 보면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한때는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천하에 부러울 게 없는 귀한 자식이었지만, 또 한때는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설움과 조롱을 당했을까 ,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것이 그에게는 벗어 던질수 없는 굴레였고 거역할 수 없는 숙명이었을 것이다.
어린 티를 벗지도 못했을 열여섯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어린 지만은 팔월의 땡볕을 맞으며 검은 상복을 입고, 청와대 입구에서 문상객을 맞았다.
당시 그 모습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머니의 부재로 방황을 거듭했던, 어린 청춘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 박근영 육영 재단 어린이 회관 이사장은 이렇게 회고 했다.
어머니를 일찍 잃은 저의 남매동생이 혹여 나약한 의지의 소유자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아버지께서는 평소 남자는 군대에 갔다와야 하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고 하시며, 이왕이면 육군 사관학교에 가서 군 생활을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 하셨습니다.
첫 면회 때 제 동생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절도있는 태도와 우렁찬 목소리에서 그야말로 아버지께서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시던 아들의 대한민국 군인으로서의 기백과 기상을 보셨던 것입니다.
누나들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우렁찬 목소리와 소위 직각 언어로 " 예 !! 괜찮습니다 . 이상 없습니다" 라고만 연발하는 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고 감격해 하시는 아버지 옆에서 우리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정말 통곡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 오시는 차 속에서 너의 어머니가 이런 모습을 보셨더라면 얼마나 좋아 하셨을까 하시며 눈시울이 뜨거워지시는 모습을 보고 언니와 저는 또 한번 울었습니다.
육사 생도 시절, 어머니처럼 그렇게 또 아버지를 총탄에 잃고 졸지에 천애 고아가 돼 버린 그 청춘의 가슴을 짓눌렀을 삶의 무게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
거듭되는 마약 복용 혐의로 법정과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모습을 지켜 본 사람들은 그러나 그의 마음속 깊은 분노와 상처, 외로움 같은 것들은 헤아리지 못 한채 "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하며 조롱하고 손가락질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계시지 않게 되면서 세 남매의 맏이로 부모 역활을 해야 했던 박근혜 의원은 그런 동생을 바라보며 또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을까 .
이 날 결혼식장에서 박 의원은 환하게 웃으며 동생의 새 인생을 출발 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박지만 회장의 결혼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박근혜 의원이었다. 2003 년 11 월 자신의 홈 페이지를 통해 박 의원은 동생의 결혼 소식을 전하면서 감회를 밝혔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때를 지나면 행복과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날이 오는 것 같다" 며 " 동생이 부모님이 안 계신 지금 큰누나인 저는 동생의 결혼이 너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온 날들에 대한 생각 때문에 눈물이 나려고 한다" 고 밝혔다.
박 의원은 또 " 동생이 결혼하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다"면서 신부에 대해서도 " 동생과 아주 잘 어울리는 아름답고 좋은 사람인 것 같다" 고 흐믓해 했다.
박지만 회장은 결혼식이 끝난 뒤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잠들어 있는 국립 현충원을 찾았다. 미리 준비한 폐백 음식을 차리고 폐백 옷을 올려놓고 폐백의 예를 올리며 축문을 읽었다.
아버님, 어머님 !
오늘의 불효자 지만이가 한 가정의 지아비가 되어 이렇게 찾아 뵙습니다. 이 길에 제게는 왜 이렇게 길고도 힘이 들었는지요,
하지만 이제 늦게나마 아버님 어머님께 자식된 도리를 한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신부는 달성 서씨 가문의 규수로서 이름은 향희입니다.
혼인의 식은 오늘 낮 거행하엿으며 이제 아버님 어머님께 폐백의 예를 올리고자 합니다.
식장의 혼주석에서 두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영혼이 임하셔서 눈물과 미소를 같이 보내 주셨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혼인의 날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즐겁고 기쁜 날이 되겠사오나 아버님 어머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저에게는 아픔을 더욱 절감하는 그런 날이 되었습니다.
자신은 부모를 봉양하고 ㅅ깊으나 부모님께서 기다려 주지 않으신다는 옛말이 오늘 저의 마음에 너무나 뜨겁게 다가옵니다. 은자동아 금자동아 하시며 애지중지 길러주신 하해와 같은 은혜인데 왜 저에게는 그 은혜의 만분의 1 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인지요 .
저에게 남은 보은의 길은 저도 자식을 낳아서 아버님 어머님께서 제게 주신 사랑을 그대로 전하는 것임을 깊이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
오늘은 참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이 아들과 며느리의 큰 절을 받아 주십시요.
2004 년 12 월 14 일 불초 지만 올림.
결혼식을 지켜 보면서 나는 , 박지만 회장에게 서럽고 혹독했던 인생의 겨울이 지나고 새순 돋는 따뜻한 봄이 왔다고 생각했다. 북풍한설이 몰아칠 때는 언제 봄이 오려나 하지만, 봄은 어느 순간 기별도 없이 불현듯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나 화사한 햇볕은 쏟아내는 것이다. 박 대통령 내외도 이제 한시름 놓았겠가 싶었다.
내 꿈속에서 슬픈 표정으로 나타나 가족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시곤 하셨는데, 이제는 온전히 나라 걱정만 하시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내 꿈속에서도 그전처럼 그렇게 자주 나타나지는 않으시는 것 같다.
그래도 필자는 간정하게 기도를 올리며, 하루빨리 나라가 부강해지고 국민들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는 날이 와 , 박 대통령 내외분이 마음놓고 좋은 세상으로 가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책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중에서 옮김.
원문내용(작성자:이성도)-----------------------------------
하얀 연꽃이 핀 줄 알았다...
그 날 설핏 눈발이 날렸던가
마음은 벌써 봄을 향해 내쳐 달렸으나, 동장군은 쉬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듯 했다.
매화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고, 남쪽에선 곧 동백꽃을 보게 될 것이란 소리가 있었으니 ....
아마 3 월이 다 되어 갈 때 쯤이었나 보다.
그 날 박근혜 의원을 처음 만났다. 봄 날 설핏 스쳐간 상서로운 눈발 탓인지 아침부터 가슴이 설레였다.
하얀 연꽃이 핀 줄 알았다.
어쩌면 하얀 목련 같기도 하고, 그러나 여자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성의 구별을 초월한 관세음 보살 기운이 강하게 풍겼다.
처음 보는 박근혜 의원은 관세음 보살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보통 사람에게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그런 편안함이었다.
신기하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손을 내밀어 잡아보니 도무지 형언하기 어려운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얼굴의 육상은 한없이 부드러운 기운이 베어 나오는 상이었고,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께서 생전에 우리에게 보이신 그런 느낌이었다.
골상은 강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했다.
사주에 금이 많아 강한 리더십을 가졌던 박정희 대통령의 기운을 타고 난 것 같았다. 박 의원은 아버지의 강한 지도력과 어머니의 자상함과 너그러움을 함께 물려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 의원을 보는 순간 부처님과 함께 내 마음의 군주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나는 박 의원을 바라 보면서, 두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박 의원은 이 순간 합장을 하는 나의 모습이 부담스러웠던지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살며시 머리 숙여 답례 했다.
이제 우리 7 천만 동포를 위해 일해 주십시요. 지금 이 나라가 정말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우리 민족 모두가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도록 큰 일을 해 주십시요 !!
나는 진실된 마음으로 박 의원에게 간청했다.
그리고 또 박 의원에게 약속했다.
박 의원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던 나는 박 의원이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 것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이겨 나갈 것 같은 강한 카리스마를 보았다.
이미 혹독한 자기 수련으로 내공을 쌓아 높은 경지에 오른만큼 어떤 난관도 뚫고 나가 뜻하는 바를 이루어 내고야 말 것이라 믿는다.
나는 오늘 부처님 앞에서 기도한다.
"부처님 이 나라 이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요.
나라가 어리석은 자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미륵 보살을 보내 주셨으니
이제 그 미륵 보살이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정말 행복하게 잘 사는 길로 이끌어 나갈 수 있게 해 주십시요 "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21)
이제야 지만이가 며느리와 큰 절 올립니다.
박지만 회장 결혼식 올리다.
2004 년 12 월 14 일 참으로 장하고 경사스러운 날이었다.
나라 걱정에 극락에도 못 가시고, 노심초사 하시는 모습으로 자주 내 꿈에 나타나시는 박정희 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 회장이 백년가약 을 맺고 가정을 꾸린 것이다. 신부는 서향희 변호사. 신랑의 마흔 여섯 신부는 서른살로 열여섯 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천생연분이다 싶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멋진 커플이었다.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결혼식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 박 대통령의 조카 사위인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박태준 전 총리, 이만섭 전 국회의장 등 2 천여 명이 넘는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시종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하객 중 신랑의 학창 시절 은사 여덟 분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신랑의 서울사대 부속초등하교 교장이었던 이지호 (91)옹은 박 회장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직 후 청와대로 찾아가 만나곤 이번에 처음 본다면서 결혼한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이제야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겠구나 싶어 눈물이 앞을 가렸다, 고 말했다.
영화 배우 박신양의 노래가 울려 퍼지면서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소망 교회 곽선희 목사가 주례석에 서고 신랑 신부가 손을 잡고 입장했다. 곽 목사는 " 서로 완전한 신뢰를 가진 가정을 이뤄야 한다"며 사랑과 믿음 , 소마의 주제로 20 여분간 주례사를 했다.
이어 신랑이 어린 시절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 내외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함께 했던 모습과 육군 사관학교 생도 시절의 모습등을 담은 추억의 흑백 사진들이 상영돼 식장을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결혼식에 참여했던 나는 그 사진들을 보면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한때는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천하에 부러울 게 없는 귀한 자식이었지만, 또 한때는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설움과 조롱을 당했을까 ,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것이 그에게는 벗어 던질수 없는 굴레였고 거역할 수 없는 숙명이었을 것이다.
어린 티를 벗지도 못했을 열여섯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어린 지만은 팔월의 땡볕을 맞으며 검은 상복을 입고, 청와대 입구에서 문상객을 맞았다.
당시 그 모습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머니의 부재로 방황을 거듭했던, 어린 청춘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 박근영 육영 재단 어린이 회관 이사장은 이렇게 회고 했다.
어머니를 일찍 잃은 저의 남매동생이 혹여 나약한 의지의 소유자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아버지께서는 평소 남자는 군대에 갔다와야 하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고 하시며, 이왕이면 육군 사관학교에 가서 군 생활을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 하셨습니다.
첫 면회 때 제 동생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절도있는 태도와 우렁찬 목소리에서 그야말로 아버지께서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시던 아들의 대한민국 군인으로서의 기백과 기상을 보셨던 것입니다.
누나들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우렁찬 목소리와 소위 직각 언어로 " 예 !! 괜찮습니다 . 이상 없습니다" 라고만 연발하는 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고 감격해 하시는 아버지 옆에서 우리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정말 통곡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 오시는 차 속에서 너의 어머니가 이런 모습을 보셨더라면 얼마나 좋아 하셨을까 하시며 눈시울이 뜨거워지시는 모습을 보고 언니와 저는 또 한번 울었습니다.
육사 생도 시절, 어머니처럼 그렇게 또 아버지를 총탄에 잃고 졸지에 천애 고아가 돼 버린 그 청춘의 가슴을 짓눌렀을 삶의 무게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
거듭되는 마약 복용 혐의로 법정과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모습을 지켜 본 사람들은 그러나 그의 마음속 깊은 분노와 상처, 외로움 같은 것들은 헤아리지 못 한채 "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하며 조롱하고 손가락질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계시지 않게 되면서 세 남매의 맏이로 부모 역활을 해야 했던 박근혜 의원은 그런 동생을 바라보며 또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을까 .
이 날 결혼식장에서 박 의원은 환하게 웃으며 동생의 새 인생을 출발 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박지만 회장의 결혼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박근혜 의원이었다. 2003 년 11 월 자신의 홈 페이지를 통해 박 의원은 동생의 결혼 소식을 전하면서 감회를 밝혔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때를 지나면 행복과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날이 오는 것 같다" 며 " 동생이 부모님이 안 계신 지금 큰누나인 저는 동생의 결혼이 너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온 날들에 대한 생각 때문에 눈물이 나려고 한다" 고 밝혔다.
박 의원은 또 " 동생이 결혼하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다"면서 신부에 대해서도 " 동생과 아주 잘 어울리는 아름답고 좋은 사람인 것 같다" 고 흐믓해 했다.
박지만 회장은 결혼식이 끝난 뒤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잠들어 있는 국립 현충원을 찾았다. 미리 준비한 폐백 음식을 차리고 폐백 옷을 올려놓고 폐백의 예를 올리며 축문을 읽었다.
아버님, 어머님 !
오늘의 불효자 지만이가 한 가정의 지아비가 되어 이렇게 찾아 뵙습니다. 이 길에 제게는 왜 이렇게 길고도 힘이 들었는지요,
하지만 이제 늦게나마 아버님 어머님께 자식된 도리를 한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신부는 달성 서씨 가문의 규수로서 이름은 향희입니다.
혼인의 식은 오늘 낮 거행하엿으며 이제 아버님 어머님께 폐백의 예를 올리고자 합니다.
식장의 혼주석에서 두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영혼이 임하셔서 눈물과 미소를 같이 보내 주셨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혼인의 날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즐겁고 기쁜 날이 되겠사오나 아버님 어머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저에게는 아픔을 더욱 절감하는 그런 날이 되었습니다.
자신은 부모를 봉양하고 ㅅ깊으나 부모님께서 기다려 주지 않으신다는 옛말이 오늘 저의 마음에 너무나 뜨겁게 다가옵니다. 은자동아 금자동아 하시며 애지중지 길러주신 하해와 같은 은혜인데 왜 저에게는 그 은혜의 만분의 1 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인지요 .
저에게 남은 보은의 길은 저도 자식을 낳아서 아버님 어머님께서 제게 주신 사랑을 그대로 전하는 것임을 깊이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
오늘은 참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이 아들과 며느리의 큰 절을 받아 주십시요.
2004 년 12 월 14 일 불초 지만 올림.
결혼식을 지켜 보면서 나는 , 박지만 회장에게 서럽고 혹독했던 인생의 겨울이 지나고 새순 돋는 따뜻한 봄이 왔다고 생각했다. 북풍한설이 몰아칠 때는 언제 봄이 오려나 하지만, 봄은 어느 순간 기별도 없이 불현듯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나 화사한 햇볕은 쏟아내는 것이다. 박 대통령 내외도 이제 한시름 놓았겠가 싶었다.
내 꿈속에서 슬픈 표정으로 나타나 가족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시곤 하셨는데, 이제는 온전히 나라 걱정만 하시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내 꿈속에서도 그전처럼 그렇게 자주 나타나지는 않으시는 것 같다.
그래도 필자는 간정하게 기도를 올리며, 하루빨리 나라가 부강해지고 국민들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는 날이 와 , 박 대통령 내외분이 마음놓고 좋은 세상으로 가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책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중에서 옮김.
원문내용(작성자:이성도)-----------------------------------
하얀 연꽃이 핀 줄 알았다...
그 날 설핏 눈발이 날렸던가
마음은 벌써 봄을 향해 내쳐 달렸으나, 동장군은 쉬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듯 했다.
매화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고, 남쪽에선 곧 동백꽃을 보게 될 것이란 소리가 있었으니 ....
아마 3 월이 다 되어 갈 때 쯤이었나 보다.
그 날 박근혜 의원을 처음 만났다. 봄 날 설핏 스쳐간 상서로운 눈발 탓인지 아침부터 가슴이 설레였다.
하얀 연꽃이 핀 줄 알았다.
어쩌면 하얀 목련 같기도 하고, 그러나 여자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성의 구별을 초월한 관세음 보살 기운이 강하게 풍겼다.
처음 보는 박근혜 의원은 관세음 보살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보통 사람에게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그런 편안함이었다.
신기하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손을 내밀어 잡아보니 도무지 형언하기 어려운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얼굴의 육상은 한없이 부드러운 기운이 베어 나오는 상이었고,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께서 생전에 우리에게 보이신 그런 느낌이었다.
골상은 강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했다.
사주에 금이 많아 강한 리더십을 가졌던 박정희 대통령의 기운을 타고 난 것 같았다. 박 의원은 아버지의 강한 지도력과 어머니의 자상함과 너그러움을 함께 물려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 의원을 보는 순간 부처님과 함께 내 마음의 군주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나는 박 의원을 바라 보면서, 두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박 의원은 이 순간 합장을 하는 나의 모습이 부담스러웠던지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살며시 머리 숙여 답례 했다.
이제 우리 7 천만 동포를 위해 일해 주십시요. 지금 이 나라가 정말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우리 민족 모두가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도록 큰 일을 해 주십시요 !!
나는 진실된 마음으로 박 의원에게 간청했다.
그리고 또 박 의원에게 약속했다.
박 의원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던 나는 박 의원이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 것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이겨 나갈 것 같은 강한 카리스마를 보았다.
이미 혹독한 자기 수련으로 내공을 쌓아 높은 경지에 오른만큼 어떤 난관도 뚫고 나가 뜻하는 바를 이루어 내고야 말 것이라 믿는다.
나는 오늘 부처님 앞에서 기도한다.
"부처님 이 나라 이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요.
나라가 어리석은 자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미륵 보살을 보내 주셨으니
이제 그 미륵 보살이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정말 행복하게 잘 사는 길로 이끌어 나갈 수 있게 해 주십시요 "
책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중에서..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