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 - 중경의 또 다른 꿈

이수진2006.10.08
조회79
[영화] 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 - 중경의 또 다른 꿈


 

10년도 더 된 영화.

 

어느 날 문득 생각나서 다운 받았다.

받아놓은지 벌써 1달이 훨씬 지났는데 며칠 전 첼로를 보고 나서 98% 부족한 구성과 스토리에 질려 찝찝한 맘을 달랠길 없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다 보고 잤다.

 

처음 이 영화를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였나? 별 느낌없이 보았지. 여중 여고 나온 내가

그 나이에 연애를 했겠어, 사랑을 해 봤겠어.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영화든 책이든 2번 보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 나로서도 희한하게 왕가위 감독의 영화만은 예외가 된다. 정말 이상하게 가만 있으면 영상이 중독처럼 떠오르고 장면이 스쳐지나가고 음악이 환청으로 들리지. 아무래도 '장면마다 마리화나라도 발라놓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 정도야.

 

왕가위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카메라를 들고 찍어 흔들리는 화면과 어두운 색채, 스피디한 흐름으로 서두가 열린다. 하지만 중경삼림이 가장 대중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희망적인 해피엔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화양연화, 2046, 타락천사 다 좋아하지만 역시 나에게도 중경삼림이 최고인 이유는 절망이 희망으로 변화는 찰나에 영화가 막을 내리기 때문. 물론 다른 영화에서 전혀 사랑에 대한 희망을 언급않는 것은 아니나, 아시다시피 두 남녀 주인공이 철썩~ 맺어질 듯한 확신을 가지고 "얘네 둘이 결국 맺어지네~"라는 생각을 들게끔 만드는 영화는 없지 않은가.

 

워낙 오래된 영화라 요즘 나온 dvd판 영화들보다 화질이 좀 떨어지고 영상에 영어 자막이 포함되어 있더군. 영어자막 위로 한글자막을 덧씌우니 너무나 보기 불편하여 그냥 한글자막없이 봤다. 그래서 난 '만약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싶다'는 대사를 그렇게 인상깊이 느끼지 못한 걸까? 예전에 통조림이랑 유효기간에 대한 이런 대사가 무지 유행한 적이 있긴 했는데 ..

 

각설하고 ..

지금부터 무조건 스포일러지만 이 영화 안 본 사람 거의 없을테니 그냥 써야지.

 

금성무나 양조위는 모두 떠난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적응자다. 너무 극단적인 표현인가? 어쨌건 그 기간동안은 부적응자였다. 수분을 빼내어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달리기를 하고, 30개의 파인애플 통조림을 한꺼번에 먹어치우고, 인형이랑 말을 하질 않나, 비누에 하소연 하질 않나 .. 암튼 참으로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캐릭터들. 그냥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별 부적응자들.

 

모기나 파리도 에프킬라에 내성이 생기는데 왜 이별에는 내성이 생기지 않는걸까?

 

나름대로 답을 하자면,

아마 사랑에도 내성이 생기지 않아서 그런게 아닐까?

 

여기서 잠깐! 서비스로 중경삼림 엑기스 대사를 잠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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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만우절날 헤어졌고 난 농담만 했다.
헤어지더라도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그 후 유통기한이 5월 1일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았다.
파인애플은 그녀가 좋아하는 과일이고, 5월 1일은 내 생일이다.
30개의 통조림을 살 때까지 그녀가 오지 않으면 우리의 사랑도 끝날 것이다.

만약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싶다.

-영화 중경삼림 中 에서-

 

실연당한후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땀이 흐른다.
수분이 다 빠져 나가버리면
눈물이 나오지 않을거라 믿기 때문이다. 
-영화 중경삼림 中 에서-

 

우비를 입을 땐 썬그라스를 낀다.

언제 비가 올지 태양이 빛날지 알 수가 없다..........

-영화 중경삼림 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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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의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어치운 금성무는 바에 들어가 제일 먼저 들어오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로 한다. 술에 만취한 그들. 임청하는 쉬고 싶다며 쓰러지고 들어간 호텔에서 임청하는 정말 '쉬기만 한다'.

금성무가 샐러드 4접시를 먹을 동안 임청하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뻗어 잠을 자고, 날이 밝자 그녀를 깨우지 않은 채 힐을 벗겨주고 나오는 금성무.

 

매일 여자친구가 먹을 음식을 사러 오는 양조위. chef salad와 샌드위치를 놓고 고민하다 둘 다 사라는 말에 하루에 한 번씩 그 곳에 들러 음식을 사 간다. 그녀가 떠난 후, 그는 블랙커피만 마신다.

 

음식은 항상 사랑과 함께 간다. 사랑에 수반되는 성욕도 마찬가지다.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강렬한 욕구로 식욕이 생존에 필수적인 반면, 성욕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다들 이렇게 말하지.

 

"넌 밥만 먹고 사냐?"

 

금성무는 마치 채우지 못한 사랑에의 대리만족이라도 하듯 모아 둔 파인애플을 먹어 치우면서 그녀를 떠나보내고, 낯선 여인과 들어선 호텔에서 잠만 자는 그녀를 보며 4접시의 샐러드를 먹은 후 새로운 사랑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물론 상대는 임청하가 아니어도 좋다. 결국 이별의 내성을 위해서는 역시 내성없는 사랑이 특효약인 것이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듯 배를 채운 금성무의 절실함이 샐러드 4접시에 묻어난다.

 

양조위는 더 이상 음식을 먹지 않고 쓰디쓴 블랙커피를 마신다. 마치 자신의 쓰라린 가슴에 약이라도 먹이듯. 그러다 연인을 위해 항상 음식을 사러 오던 그 곳을 떠나고 훗날 새로운 희망을 안겨 준 왕정문이 있던 그 곳을 아예 인수해 버린다. 그리고 승무원 유니폼을 입고 다시 돌아온 왕정문. 영화는 이쯤에서 끝나지만 목적지를 당신이 원한 곳 어디든~이라 말하는 양조위에게서 희망을 읽었을 것이다. 새로운 사랑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

 

내가 미친듯이 돌아다니던 란콰이펑 어느 길가에 양조위와 왕정문의 까페테리아가 있었을 것이고 미들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집이 있었겠지. 난 그땐 그곳을 찾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한 번쯤 찾아보았을 텐데 .. 유난히 좁고 북적대는 차도와 높은 빌딩, 발디딜틈 없는 홍콩의 거리가 갑자기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홍콩은 한국인들에겐 참으로 낯설지 않은 곳일 것이다. 홍콩, 무지 가까운데 조만간 다시 한 번 갈날 있을까. 가고 싶다..

 

양조위, 임창정과 비슷한 삘이 나면서도 웬지 모를 신비함과 중후함,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은근한 매력이 풀풀 풍겨나는 배우. 2:8가르마가 젤 잘 어울리는 배우. 애뜻한 사랑에 가슴졸이는 과묵하고 순수한 남자 역할이 무엇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

 

왕정문. 캘리포니아 드리밍이란 주제곡의 신드롬에 큰 기여를 한 완전 귀엽고 깜찍하고 발랄한 캐릭터 그 자체. 고무장갑을 끼고 짝사랑하는 남자방에 몰래 문따고 들어가서는 물건을 사다 놓고 침대에서 구르고 청소를 하고 밥을 지어 먹는, 어찌보면 너무나 뻔뻔하고 범죄자에 스토커 같은 무시무시한 역할을 이렇게 깜찍하게 소화할 수 있는 건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 아닐까.

 

금성무와 임청하가 나온 첫번째 이야기에 공감가는 대사가 많고 전체적인 분위기에 심취할 수 있다면 두번째 이야기는 그야말로 톡톡 튀는 캐릭터들의 개성 때문에 매력적이다. 심지어 왕정문 친척인 그 까페테리어 주인 아저씨마저도 너무 연기를 잘해서 빠져서는 완될 캐릭터.

 

나는 하루키를 굉장히 싫어하는 편인데 왕가위는 좋아한다.

그러니 더 이상 하루키와 왕가위를 결부시키지 말라 -_- ;

난 기분 나쁘다. 하루키의 일본식 허무주의와 왕가위의 사랑이야기는 분명 다르니까.

 

 

중경삼림 진짜 할 말 많네 -_- ;

 

오늘 할 일 너무 많은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ㅡㅡ;

 

할 말 많지만 여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