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래와 등영초

이양자2006.10.11
조회96

 

주은래와 등영초


 

 

[ 주은래와 등영초 ] 

 

 

지금 현재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고 있는 사람인 주은래 총리. 그리고 그의 이상을 공유하고 활동을 함께 하여 동지적 결합으로 유명한 그의 아내 등영초 여사. 이 두 사람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평소 편역자는 주은래 총리에 대해서 중국사의 인물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으로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번역하면서 너무나 감동하여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동지적 결합에 대해 그저 부러운 마음으로 지지를 보내고 있었는데, 실제 얼마나 두 사람이 아끼고 배려하고 사랑하였는가를 보면서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주은래와 등영초


 

다 아는 바와 같이 중국인 인기투표에서 단골 1위인 주은래 총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모택동은 주은래 총리에 대해 “사리사욕이 전혀없는, 고상하고 순수하며 도덕적인 사람이고 또 인민해방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헌신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미국의 역사학자 페어뱅크(John King Fairbank)는 “위대한 재능을 가진 매력적인 인물로, 본능적으로 항상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했으며, 언제나 조직의 단합을 추구했다. 동시에 결코 최고의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 분별력을 지니고 있었다.”라고 예리하게 관찰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전쟁전문기자인 마사 겔흔은, “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은 바로 주은래다. 중국공산당원들이 모두 그와 같다면 중국의 미래는 분명히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라고 평했다.

 

주은래와 등영초


 

 

이러한 평가는 주은래 총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는 국내정치에서는 유연한 적응력과 탁월한 처세술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고립시키지 않고 자신과 상대를 날카롭게 대립시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자신이 투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을 때는 미련없이 제2선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충성을 바칠 때는 항상 제1선에서 솔선수범을 보임으로써 언제나 실권자로부터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인정받았다.

문혁의 와중에 4인방의 왕홍문이 주은래가 비밀음모를 획책하고 있다고 고자질하자 모택동은 짧고 냉소적인 말투로 “주총리는 음모를 꾸미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외교적인 면에서는 살용주의적인 실사구시의 입장을 취하면서 갈등과 대결보다는 화해와 타협을 모색하였다. 당시의 중국이 국제적인 갈등과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 복귀함과 동시에 그 지위를 보장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주은래 총리의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의 온건하고 성실한 자세는 냉전시대의 서구 지도자들로 부터도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주은래와 등영초


 

주은래 총리는 무엇보다 먼저 항상 그가 속한 조직속의 단결과 화해를 중시했으며 중재의 달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최고의 재능이란, 최고의 인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는 인물들끼리 서로 협력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그의 역할은 지배가 아니라 설득으로 지도층을 단합시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당내의 파벌싸움이나 분쟁을 해결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과시했다.

다음으로 결코 제1인자가 되려고 경쟁하지 않는 그의 분별력은 가난한 중국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꾸려나간 헌신적인 주부의 역할을 다하게 했다. 그는 마치 어머니와도 같은 자상한 보살핌과 강인한 인내심으로 수십년간에 걸친 국내외의 논란을 수습하고 중국으로 하여금 21세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모택동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위대한 파괴자”였다면 주은래는 그 터전위에 건설의 세부계획을 수립한 “유능한 설계자”였다고 할 수 있다.

 

 

주은래와 등영초


 

1972년 중국을 방문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모택동이 없었다면 중국의 혁명은 결코 불붙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은래가 없었다면 그 불길은 다 타서 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한 바 있는데, 이는 서로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주은래 총리의 가장 큰 장점은 청빈함과 애국심에 있었다 할 것이다. 그는 일생동안 다른 사람이 믿기 어려울 정도의 검소한 생활과 청빈한 생활을 했다. 세계에서 보기 힘든 청렴과 총리였다.

그가 수십년을 하루같이 엄격히 실천하고 지켜온 10개조항의 가규(家規)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거나 특수화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그 골자다. 이와 같이 주총리는 멸사봉공(滅私奉公), 국궁진췌(鞠躬盡瘁)의 정신으로 사심없이 국가를 위해 온힘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천안문 광장에 있는 그의 추도시비에 새겨진 인민의 충심어린 사랑의 글귀는 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인민의 총리로 인민이 사랑하고

 인민의 총리로 인민을 사랑하고

 총리와 인민이 동고동락 하여

 인민과 총리의 마음이 이어졌다.”


이러한 남편과 50여년을 함께 산 부인 등영초 여사는 1949년, 부녀연합회 부주석을 지냈고, 1956년에는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위원의 요직을 맡았으며, 만년에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으로 선출되었다. 이러한 요직은 주은래 총리의 후광도 아니었으며, 끈질긴 그녀의 혁명 열정과 그리고 애국심, 성실함과 순박함, 겸허함과 대범한 태도의 결과였다. 그녀는 중국여성혁명가의 한 초상이라 일컬어진다.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에드가 스노우는 “내가 만났던 중국의 여성 중에서 가장 예리한 정치적 두뇌를 소유한 사람이었다.”고 그녀를 평가하고 있다.

주은래 총리가 배우 뺨치는 미남자였다면 등영초 여사는 전혀 그 반대의 외모를 가졌다는 점에서도 이 부부의 모습은 관심을 유발시키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지적 결합의 전형이라는 점이다.

 

 

주은래와 등영초


 

주은래 총리는 그의 아내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소초(小超 :등영초의 애칭)는 그야말로 정열적이고 이지적이다. 이 두 가지 성품이 이처럼 철저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은 정말 기적이다.”

이들 두 사람은 5ㆍ4운동의 홍류(洪流)속에서 만나 이상을 실천하는 과정속에서 사랑을 키워나갔다. 일찍이 헤겔은 “사랑은 청춘남녀가 함께 키워나가는 꽃이다. 그 꽃을 개인 사생활의 좁은 상황 속에 가두어두면 곧 시들어 버리고 말지만, 그 꽃의 뿌리를 ‘인류의 행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무한한 목표에 심어둔다면 시들지 않고 활짝 필 것이다.”라고 한 바 있다.

주은래, 등영초의 사랑은 민족번영이라는 공통의 이상에 뿌리를 두었기에 영원할 수 있었다. 1925년 8월 8일 주은래와 등영초는 각각 27세와 21세의 나이로 결혼하여 자녀를 두지 못한 개인적 고뇌속에서도 50여년의 결혼 생활을 훌륭하게 꽃피워나갔다. 그들이 결혼할 때 정식으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였지만 친구들 앞에서 8호(八互)정신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호경(互敬), 호애(互愛), 호신(互信), 호면(互勉), 호조(互助), 호양(互讓), 호량(互諒), 호위(互慰), 즉 서로 존경하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 신뢰하고 서로 근면하며 서로 도우고 서로 양보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격려하자는 내용이었다. 이 8호 정신은 두 사람 사이에 죽을 때까지 지켜졌다.

주은래, 등영초 부부의 동지적 결합은 그들의 사후에도 많은 일화를 남겨 듣는 이들을 감동케 한다. 이들 부부는 단 한 명의 자식도 갖지 못하였지만 순국한 혁명동지들의 자식을 7명이나 양자로 키웠으며 둘 다 특이한 유언을 남겼다.

1976년 78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친 주은래는 그의 유언장에서 추도식을 크게 벌이지 말 것과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여 하늘에 뿌려줄 것과 아내인 등영초는 아내로서 보다 전우로서 추도식에 참석해 줄 것을 당부했고, 책, 문서를 포함한 모든 재산을 당에 기증한다고 했다.

      주은래와 등영초


 

등영초 또한 1992년 89세를 일기로 타계하면서 남긴 유서에서 유해는 의학용으로 해부한 뒤 화장하고, 뼈는 보관하지 말고 뿌려 없앨 것이며, 자신의 저택은 기념관으로 사용하지 말고, 친인척에게는 어떠한 혜택도 주지 말도록 하며, 수의도 새로 만들지 말고 30여 년간 입던 낡은 옷을 그냥 사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다.

특히 “추도식 같은 것은 삼가해 주십시오. 이것은 먼저 간 은래 동지와의 약속입니다.” 라고 썼다. 물론 모든 것은 그들의 유언대로 시행되었다.

주은래와 등영초 동지는 그들의 깨끗한 사생활 때문에 중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주은래와 등영초


 

근래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역사를 왜곡하며 고구려사를 자국사라고 밀어붙이고 있다. 그런데 1963년 주은래는 “역사는 왜곡할 수 없다. 도문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땅이었다 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바로 시정해야한다.”고 갈파한 바 있다. 주은래의 대인다운 풍모는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올바른 정치가 한 두 사람이 나라를 구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갈등과 대립과 부패로 얼룩진 오늘날 우리의 정치사회를 보면서 주은래, 등영초 같은 정치가가 나타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주은래와 등영초]라는 책을 번역하여, 내용을 조금 더 보충하여 출판사 지식산업사로 보냈습니다.  2006년 5월에  이 책이 나왔는데, 이 책에 쓴 편역자의 말을 여기에 먼저 실은 것입니다.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은래와 등영초


 

주은래와 등영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