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천기(天氣)(1)

최주희2006.10.12
조회42

 

 

 

 

 

 

 

푸드득!

누군가의 등장에 몹시 놀란 새들이 허우적거리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부들부들

이놈은 지금 눈앞의 대상을 차마 쳐다보지도 못한다.

온몸이 경직되어 웅크린 채로, 사지를 떨고 있는 불쌍한 녀석. 늘 의기양양하게 장백산을 호령하던 이 네발 달린 짐승도, 지금은 저 새들처럼 자신의 어깻죽지에 날개가 없는 것을 한탄하는 중이었다.


“ 멍!!... 멍!멍!!”

(네 운명을 탓해라.. 쯧쯧..이 몸께서 친히 네 생명을 거두니..이를 위안으로 삼거라!)


라는 표정으로 한쪽 입술을 말아 올린 야비한 표정의 작은 흰털 뭉치!

제 딴에는 다리를 꼬는 듯한 자세로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옆으로 누워 왼쪽 뒷다리를 오른쪽 뒷다리 위로 꼬아 올렸다. 오른쪽 앞다리로는 머리통을 받치고 있었고, 나머지 앞다리로는 웅크리고 있는 녀석을 향해 이리오라는 듯이 발가락을 까닥까닥 거리고 있는 중이다.

누워있는 꼴이 장백산 운해꼭대기에 사는 어느 늙은이를 곧바로 연상시킬 수 있을 만큼 딱 닮은 모양새였다.


굵은 앞발사이에 파묻은 머리를 슬며시 들어 올리며 대상을 올려다보는 불곰!

팔뚝두께나 웅크리고 있는 널따란 등판만 봐도 그 몸집이 두 장은 족히 넘을 듯 보였다.

분명히 불곰의 눈앞에는, 자신의 절반크기도 안 되는 아주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옆으로 벌러덩 드러누워 발가락을 까닥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본능에 충실한 야생짐승에게 있어서, 눈앞의 대상이 내뿜는 기운은 지옥의 아수라보다도 더 음흉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허나 자신이 누구였던가! 장백산 웅(熊)계곡을 주름잡으며, 두려울 것이 없다고 자부하던 열혈(熱血)불곰이 아니었던가!! 이대로 가만히 앉아 개밥이 될 수는 없었다.


“크..크르르릉...”

(살..살려주시오. 겨울직전의 곰고기는 누..누린내가나서 아무도 먹지 않소! )


라는 듯 제법 떨리는 눈동자로, 불곰은 비교적 정확히 의사표현을 했다.

화악!

순간 야호의 눈동자가 크게 떠지며 붉게 물들었다. 핏빛의 안구 속 더 붉은 빛의 동공!

그와 동시에 야호는 자신의 왼쪽 앞발을 횡으로 한번 휘저었다.

스윽!

휘날리는 몇 가닥의 곰 눈썹이 불곰의 눈앞에서 스산하게 흩어진다.

코앞까지 닥친 기운이 자신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때.. 녀석은 이미 지옥을 보았다.

벌꿀 따위를 따려고 친구들을 따돌리고 이 깊은 숲속으로 걸어 들어왔던 제 자신의 운명을 저주했다. 그리고 약 4개월 전부터 이 곳 장백산 짐승들 사이에  죽음의 저승사자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눈앞의 흰 괴물을 만난, 재수 없는 오늘의 운세를 원망했다.

소문에 의하면 저 저승사자한테 걸린 놈치고 곱게 죽은 놈이 하나 없다고 한다.

항문으로 내장을 길게 뽑아내 둘둘 말아 저 높이 천외봉까지 끌고 간다는 말도 있었다.

혹은 죽지 않을 만큼 매질하고 쉬었다 매질하고를 반복해서, 말 그대로 맞아죽은 놈도 한두 놈이 아니라고 한다.

불곰의 두 눈이 커다란 공포로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저 저승사자 놈이 일어서서는 서서히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두려웠다. 찰나의 순간 불곰은 그 끝을 보았다.

차라리 빨리 죽는 것이 복될 것 이라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부룩! 


“끄릉...!”

(허걱.. 그 노인네는 식성도 요상해서 곰 혓바닥을 좋아라하던데.... 제길! 저 곰 새끼가!)


한동안 야호는 인상이 구겨진 채로, 독하게도 제 혓바닥을 끊어버린 지독스런 곰을 내려다 봤다. 아까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어졌다. 대신 얼굴가득 근심과 걱정이 가득 피어올랐다.


“…끼잉”

(오늘도 집에 들어가면 매타작이 기다리고 있겠구나!)


흰둥이는 처량하게 꼬리를 뒤로 말고 터벅터벅 불곰의 시체 쪽으로 걸어갔다.

영물이 인간의 매를 두려워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야호는 도저히 그 늙은이가 인간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이 살던 곳의 신선이 사람의 탈을 쓰고, 잠시 인간의 여생을 몰래 즐기고 있는 것이 라고 확신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우습지만 그것이 영물인 그가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아침에 노인이 던져준 새끼줄을 목에서 끌러 내렸다.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과 앞발로 불곰을 칭칭 감기 시작했다. 혀를 담아 넣은 주둥이도 새끼로 꼭 묶어 일단 집으로 가져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꽤 묵직한 무게였지만 야호에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매듭 묶은 손잡이 모양의 고리를 앞발로 잡고 천외봉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문득 영물은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                    *                   *






4개월 전쯤의 일이다. 천외봉으로 한 낯선 여자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들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야호가 보기에 그 집의 서열은, 우두머리가 뚱뚱한 늙은 여자였고, 그 다음이 자신의 사랑스러운 주인, 그리고 3위가 여기저기 활을 쏘아대는 젊은 여자, 그리고 마지막이 그 성질이 더러운 노인이었다.

여기서 항상 그 노인이 문제였다.

서열3위가 이곳 천외봉에 나타난 후 늙은 영감이 서열4위 밀려났다.

서열1위와 2위의 관심은 온통3위에게로 쏠려있는 듯 보였다. 영물인 그의 눈으로 보기에도 노인은 어디가도 하나쯤은 꼭 있는 왕따처럼 보였다.

그전에는 간간히 노인에게도 무언가를 배우던 자신의 귀여운 주인조차도, 어느 날부터는 노인근처로는 오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우두머리와 함께 방안에 틀어박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것 같았다. 공간의 흐름이 요동치고 간간히 예사롭지 않은 색채의 기가 새어나오는 것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주인이 점차 성장해 가는구나 싶어 영물의 마음도 흐뭇해졌다.

간혹 짬이 날 때마다 주인은 젊은 여자와 함께 산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녔다. 여인의 활솜씨에 감탄하기도 했고, 그녀가 들려주는 여러 가지 바깥세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호기심 많은 눈동자를 반짝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다 저 늙은이의 심사를 뒤틀리게 했나보다. 그날 이후로 늙은이는 애꿎은 야호 자신에게 화풀이를 해대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신선의 관심이 온통 야호 자신에게 집중된 것이다.


처음 그가 시킨 짓은 영물인 자신에게 두발로 걸으라는 것이었다.

선계에서야 제 의지에 따라 가능한 일이지만, 여기는 인간계다. 어찌 네발달린 개의 육신이 뒷다리만으로 걷는다는 말인가! 무게중심도 잡기 힘들뿐더러 몸의 비례 상으로도 어불성설인 이야기였다. 처음엔 반항도 많이 했다. 하지만 매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그날을 시작으로 야호는 죽도록 얻어맞았다. 악독한 노인네는 관절과 속살만 골라서 때리고, 귀신같이 때린 곳만 또 때렸다. 일주일쯤 맞았을까? 영물은 자존심을 버렸다. 그리고 무작정 시키는 대로 되지도 않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어김없이 악선은 나무 꼬챙이를 가지고 자신을 또 막무가내로 복날 개잡듯이 패고 있었다. 이제 얻어맞는 것도 요령이 생겨, 이리저리 장단에 맞춰 몸을 꼬아주고 비틀어주며 신음소리로 박자를 맞추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영감이 한동안 야리하게 꼬나보며 매질을 멈추었다. 자신의 꾀부림을 알아차린 것일까? 그리곤 두어 걸음 멀지 감치 떨어져서는 한 팔은 뒷짐 지고, 나머지 한 팔로 나무 꼬챙이를 자신에게 향하는 듯이 보였다.


서걱-


순간 벼락이 내려치는 느낌에 야호는 영물의 본성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자신의 앞발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분노! 

감히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히다니! 만약 조금이라도 피하기를 지체했다면 그의 오른쪽 앞다리는, ‘안녕~!’ 하고 영원히 몸통과 이별을 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야호는 억울해만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분명히 저 악선이 쥐고 있는 건, 자신을 때리던 평범한 나무꼬챙이였다.

허나 노인의 팔이 푸르스름한 기운에 휩싸임과 동시에, 그 꼬챙이에서 검강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세상의 무엇도 베어 버릴듯한 서슬 퍼런 기운!

첫 공격을 가까스로 피한 야호가 원망의 눈초리로 악선을 째려봤다.

움찔-

노인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오히려 영물은 두려움에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공격을 그런 데로 피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노인은 만족스러운 듯 사악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캬캬캬~ 옳거니~ 좋다 좋아!”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음흉하게 대소하던 노인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검강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망설임의 그림자는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컹!!”

(허, 허헉! 저, 저저 늙은이가 정말로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본능적으로 죽음을 떠올린 야호는 그때부터 죽기 살기로 피했다.

이미 앞마당은 여기저기 움푹움푹 패여 원격투하라도 받은 듯이, 쑥대밭이 된지 옛날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야호의 전신도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딱히 죽을 만큼 이렇다 할 큰 상처는 없었지만, 온 몸 여기저기가 자잘하게 긁히고 베인 상처투성이다.

저기 저 악선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즐기는 듯했다.

나뭇가지로 만들어낸 검강을 크기별로 부위별로 자유자재로 다루는 인간이라니! 저자는 틀림없이 인간의 탈을 쓴 악선이라고 다시 한 번 마음을 굳히는 야호였다.


마지막 순간이다.

도저히 저기 저 어깨 쪽을 노리는 검강 한 줄기는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머리 쪽으로도 일경 차이로 검강이 찔러오고 있었다. 죽음이 풍기는 음습한 냄새를 느낀 순간, 야호는 눈을 찔끔 감았다. 너무나도 억울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자신은 아직 인간계에 내려온 후 주어진 사명을, 그 뚜껑도 열어보지 못했다!! 


“으허헝~!”

(살아야해!)


순간 백지장처럼 머리가 하얘진 야호는 몸을 꺾어 뒤로 달렸다. 두 앞다리로 머리를 감싸 쥐고 죽도록 달렸다. 허억!!


쿨럭……. 쿠, 쿨럭.

영물은 멈춰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주위 풍경이 왠지 평소보다 낮아진 것 같았다.

자신의 두 뒷다리가 굳건하게 땅을 딛고 중력에 대항하고 있었다.

야호의 눈에서 뜨거운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해냈구나!


“거봐라~! 캬캬캬!! 내 된다하지 않았느냐~!! 클클클클..”


악선의 오만한 웃음소리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렇게 불쌍한 이 영물은, 선계에서도 인간계에서도 두발로 땅을 디딘 최조의 네발짐승으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영광(?)을 누렸다.


더욱이 사악한 악선의 횡포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영물이 두발로 걷기가 익숙해질 무렵 야호에게 검술을 하나하나 가르치기 시작했다.

개 발가락으로 어떻게 검을 쥔다는 말인가?

도저히 그것은 극복할 수 없는 신체 조건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악선은, 그냥 영물이 바로 자신의 앞발을 휘두르며 기 공격을 감행할 수 있도록 방향을 바꾸었다.

마음먹기가 무섭게, 날마다 야호 옆에 달라붙어 더욱 열성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서 가르치는 것이지,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딱 죽지 않을 만큼만 패고 목숨을 담보삼아 협박하는 행위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영물이 괜히 영물이었던가!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든지 두 달 만에 야호는 앞발로 기를 실어, 검강 비슷한 흉내를 내며 나뭇가지를 자르는데 성공했다.

딱 그만큼 이었다.

그 이후로 사악한 노친네는 흥미가 다했는지 아니면 거기까지가 목표였는지, 더 이상 야호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친다고 그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그동안 야호가 받은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선계로 돌아간다 해도 마음을 다잡고 수련을 다시 시작하려면, 분노와 설움을 진정하는 데만 일만 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야호가 이제 막 숨을 고르려던 찰나였다.


툭!

노인은 새끼줄 하나를 덩그러니 마당에 던져 놓았다.


“내 그동안 미물인 너를 가르치느라 뼈와 살을 깎는 노력과 수고를 들였다.

 너도 스승에게 보답의 공양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요사이 너로 인해 내 몸이 허해졌으니, 몸에 좋은 놈으로 보양식 하나 잡아 오너라!!”


이렇게 염치없는 말을 내뱉은 악선은 대청마루 위로 다리를 꼬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순간 어안이 벙벙한 야호가 멍한 표정으로 짐짓 멈칫거리고 있자, 노인네는 안 그래도 작은 눈을 더 뱀같이 뜨며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이 노-옴!!! 은혜를 정녕 모르는 놈은, 아직 멀었다!! 매로 다스려 널 깨우쳐야겠다!! 클클”


순간 야호의 눈이 놀라 둥그렇게 치켜떠졌다. 귀신같이 어느새 자신의 뒤에 서있는 악선!

그리고 반나절을 또 다시 두들겨 맞았다. 비 오는 날 먼지 날리듯 얻어맞은 후, 야호는 터벅터벅 새끼줄을 목에 걸고 사냥하러 나섰다.

저 악독한 악선을 위해 아니, 정확히 4명의 인간을 먹여 살리기 위해,

흰둥이의 뒷모습은 장백산의 운해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 갔다.

그렇게 직접 생업전선에 뛰어든 것이 벌써 4개월 전의 일이다.





                                               *                    *                   *





야호가 제 몸짓의 세배나 되는 불곰을 들쳐 메고 한참 구릉을 넘어설 때였다.

잔뜩 재주를 부리고도 매를 벌 것 같은 불안한 예감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무거운 걸음을 푸덕푸덕 옮기고 있었다.


“허허! 끌끌. 고얀 지고……. 네 이놈! 이 어찌 천륜을 어기는 해기 망측한 짓이냐!”


우레와 같은 컬컬한 목소리가 야호의 귓가를 후벼 팠다.

낯선 목소리에 깜짝 놀란 야호는 후딱 고개를 뒤로 돌렸다. 거기에는 처음 보는 두 사람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서있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주인과도 키가 얼추 비슷할 만큼 작다마한 쭈그렁 노파였고, 또 하나는 영물인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도 환해 보이는 젊은 처자였다. 야호는 털을 쭈뼛 세우며 긴장했다.


“이놈아! 하늘이 네 개의 발을 내렸을 때는 그만한 이치가 있거늘, 쯧쯧!

 어찌 네 놈이 그 가당치않은 두 발로, 질서를 어지럽히는 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