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조국을 둔 탓에 정든 부모 형제 곁을 떠나 이역만리 낯선 나라로 떠나야만 했던 젊은이들, 그리고 그들을 격려하러 갔다가 함께 목 놓아 울어버린 대통령과 영부인, 그리고 못다 부른 애국가.......
이제는 흑백 필름에서나 남아 있을 뿐인 그 시절 그 서러운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은 정말 가난했다.
1960 년대 초 북한보다도 더 가난이 심각했었다.
지금 우리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궁핍한 필리핀 국민 소득이 170 불 , 태국 220 불일 때 우리는 76 불이었다.
해마다 보릿고개가 있었고,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캐고 벗겨 먹었다. 초근목피였다. 화장실에서는 항상 항문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했고 그래서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생겼다.
미국은 5.16 혁명 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원조도 끊었다.
박정희 소장은 절박했다. 국민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몇년 후 박정희 대통령은 서독을 방문하게 되었다. 대통령 전용기는 꿈도 못 꿀 시절이었다.
미국 노스웨스트사와 전세기 계약을 맺었지만 미국 정부의 방해로 무산됐다. 서독 정부가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 루후탄자를 보내 주었고, 박 대통령은 무사히 서독에 도착할 수 있었다.
1964 년 12 월이었다.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 그리고 우리 방문단 일행은 서독에 파견돼 왔던 우리 광부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본에서 자동차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 함보른 탄광을 찾았다. 탄광의 강당에는 막장에서 막 나와 세수할 틈도 없어 얼굴에 탄가루가 새까맣게 묻은 작업복 차림의 광부와 간호사들이 모여 들었다.
애국가가 흘러 나왔다.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애국가는 더 이상 불려지지 않았다.
목이 메었고 여기저기 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강당이 삽시간에 울음 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대통령도 울었고 육 여사도 울었다.
모두가 울어 버렸다.
박 대통령은 잠긴 목소리로 연설을 했다.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합시다. 우리 후손들을 위해 열심히 일합시다. 열심히 일하고 또 일하자는 말을 하고 또 했다.
아득한 지하 막장에서 목숨을 담보로 석탄을 캐며 향수를 달랬던 광부들과 지독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고향의 부모 형제들을 위해 밤낮없이 일했던 간호사들이 밀려오는 그리움과 복받친 설움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목을 놓아 울었다.
대통령은 이역만리에서 고생하고 있는 어린 자식같은 동포들을 보면서 아픈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 강철처럼 강할 것 같은 그였지만, 솟구치는 눈물은 어쩔수 없었다.
대통령이란 신분도 잊어 버렸다. 다만 가난한 나라의 동포로서 그저 안쓰럽고 미안하고 불쌍해서 그래서 그렇게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광부들과 간호사들은 " 어머니 ! 어머니 !" 하며 육영수 여사의 옷을 부여잡고 목 놓아 울었다. 육 여사의 단아한 한복을 보는 순간부터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나 와락 설움이 복받쳤던 젊은 광부와 간호사들은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천진한 자식들처럼 그렇게 눈물을 쏟아냈다.
여사는 " 힘 내세요, 건강 하셔야 됩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용기를 잃지 마세요 " 하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내 자식처럼 안아주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행사가 끝나고 박 대통령 일행이 돌아갈 즈음, 광부들은 독일 뤼브케 대통령에게 큰 절을 올리며 ,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을 도와 주십시요.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호소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감동을 받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연설이 끝나고 박 대통령과 일행들이 강당으로 나오자 미처 들어가지 못했던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대통령과 여사를 부여 잡았다. " 고향에 가고 싶어요.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 우릴 두고 어딜 가세요"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서럽게 이별한 대통령과 여사는 차 안에서도 거듭 눈물을 흘렸다.
박 대통령 옆에 앉아 있던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건네며 "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약속했다. 서독 의회에서도 박 대통령은 진심어린 목소리로...
" 돈 좀 빌려 주세요. 한국도 여러분의 나라처럼 공산당과 싸우고 있습니다. 공산당과 싸워 이기려면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돈은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들을 이길수 있도록 제발 돈 좀 빌려 주세요"
라고 호소했다.
몇 해 전 미국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 보지도 못한 채 눈물로 귀국 보따리를 싸야 했던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체면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진실된 마음으로 호소한 결과 1 억 4 천마르크를 빌리는데 성공했다.
광부와 간호사들의 월급을 담보로 잡힌, 정말 눈물나는 돈이었다.
당시 고졸 출신 광부 500 명을 모집하는데 무려 4 만 6 천명이 몰렸다. 정규 대학을 나온 이들도 수두룩 했는데, 손이 너무 고와 면접에서 떨어질 것을 우려해 손에 연탄을 묻히고 비벼 일부러 거칠게 만들어 오기도 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일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었고, 놀고 싶어도 배가 고파 놀 수 없었다.
그들에게 당장의 배고픔과 설움은 둘째치고 미래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도 없었다. 나 하나 희생하면 우리 가족들 배 곯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 너도나도 이역만리 낯선 땅으로 기꺼이 가려 했던 것이다
한창 멋 부리고 재미있게 청춘을 예찬해야 할 꽃다운 젊은 나이들이어서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다. 공항은 배웅나온 가족들과 이별을 하느라 눈물 바다로 변했다.
그렇게 떠나간 서독에서 광부들은 지하 몇 천미터에서 서독 광부들 보다 몇 배 더 많이 일했고, 간호사들은 알콜을 적신 솜으로 시체를 닦았다. 하도 독하고 열심히 일해 서독 사람들은 코리안 엔젤이라 불렀다. 말도 잘 통하지 않은 남의 나라에서 그렇게 열심히 일한 광부와 간호사들은 월급의 8 할을 조국으로 보냈다.
그 돈으로 남은 식구들이 굶지 않을 수 있었고, 그 돈으로 어린 동생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 돈으로 나라에 도로가 생기고, 그 돈으로 나라에 공장이 들어서고, 그 돈으로 희망을 가꿀수 있었다.
가난하고 멸시 당하고, 서러웠던 그 때 그 시절, 대통령과 국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았고, 그래서 오늘 날 우리가 마음놓고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독일 월드컵을 응원하면서도 그들의 윗 세대들이 흘린 땀과 눈물, 거룩한 희생과 헌신을 기억조차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나도 간호학을 전공했던 사람으로서 당시 서독에 가서 돈을 벌어 잘살아 보겠다고 독일어 공부도 하며 준비하였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직접 겪지도 보지도 못했던 일들은 지금 세대들에게 기억하고 감사하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가치를 매길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 실패한 역사라고 단정 지으며 과거 세대들의 눈물겨운 희생과 노력을 폄훼하는 것에 대해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젊은 세대들이 끼니 걱정없이 마음껏 공부하고 해외 여행을 하고 또 자랑스럽게 코리안임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서독 광부와 간호사, 월남전 용사들, 중동 사막의 건설 역군들, 공장의 불을 밝힌 여공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그나마 386 세대 중에도 그 윗 세대의 그러한 희생과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가치를 인정하는 이들도 있어 희망을 갖게 한다.
이번 독일 월드컵에 모 일간지 객원기자로 참여했던 J 교수는 "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50 년만에 이만큼 전진해 오기까지 열과 성을 다해 땀 흘려 일하신 모든 분들께 머리를 숙입니다.
그 분들의 희생에 다시 한번 감사하면서,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딱 세 경기만 더 대~한민국을 외칠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습니다. 라고 기사를 썼다.
" 우리 후손들을 위해 열심히 일합시다" 하며 함께 고생하고 피땀을 흘린 세대들은 다름아닌 젊은 세대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아버지 어머니들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자기 한 몸 아끼지 않는다 그게 천륜이다. 이전의 모든 것을 청산해야 할 구악으로 몰아 세우고 부정하고 폄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부모의 희생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그들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잘 가꾸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진정 가치가 있는 일이다.역사와 정의라는 허울에 가려 소중한 자산들을 잃어서는 안될 일이다.
책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중에서 옮김.
원문내용(작성자:이성도)-----------------------------------
하얀 연꽃이 핀 줄 알았다...
그 날 설핏 눈발이 날렸던가
마음은 벌써 봄을 향해 내쳐 달렸으나, 동장군은 쉬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듯 했다.
매화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고, 남쪽에선 곧 동백꽃을 보게 될 것이란 소리가 있었으니 ....
아마 3 월이 다 되어 갈 때 쯤이었나 보다.
그 날 박근혜 의원을 처음 만났다. 봄 날 설핏 스쳐간 상서로운 눈발 탓인지 아침부터 가슴이 설레였다.
하얀 연꽃이 핀 줄 알았다.
어쩌면 하얀 목련 같기도 하고, 그러나 여자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성의 구별을 초월한 관세음 보살 기운이 강하게 풍겼다.
처음 보는 박근혜 의원은 관세음 보살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보통 사람에게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그런 편안함이었다.
신기하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손을 내밀어 잡아보니 도무지 형언하기 어려운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얼굴의 육상은 한없이 부드러운 기운이 베어 나오는 상이었고,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께서 생전에 우리에게 보이신 그런 느낌이었다.
골상은 강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했다.
사주에 금이 많아 강한 리더십을 가졌던 박정희 대통령의 기운을 타고 난 것 같았다. 박 의원은 아버지의 강한 지도력과 어머니의 자상함과 너그러움을 함께 물려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 의원을 보는 순간 부처님과 함께 내 마음의 군주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나는 박 의원을 바라 보면서, 두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박 의원은 이 순간 합장을 하는 나의 모습이 부담스러웠던지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살며시 머리 숙여 답례 했다.
이제 우리 7 천만 동포를 위해 일해 주십시요. 지금 이 나라가 정말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우리 민족 모두가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도록 큰 일을 해 주십시요 !!
나는 진실된 마음으로 박 의원에게 간청했다.
그리고 또 박 의원에게 약속했다.
박 의원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던 나는 박 의원이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 것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이겨 나갈 것 같은 강한 카리스마를 보았다.
이미 혹독한 자기 수련으로 내공을 쌓아 높은 경지에 오른만큼 어떤 난관도 뚫고 나가 뜻하는 바를 이루어 내고야 말 것이라 믿는다.
나는 오늘 부처님 앞에서 기도한다.
"부처님 이 나라 이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요.
나라가 어리석은 자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미륵 보살을 보내 주셨으니
이제 그 미륵 보살이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정말 행복하게 잘 사는 길로 이끌어 나갈 수 있게 해 주십시요 "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24)
광부를 얼싸안고 울어버린 대통령
자꾸 눈물이 났다.
가난한 조국을 둔 탓에 정든 부모 형제 곁을 떠나 이역만리 낯선 나라로 떠나야만 했던 젊은이들, 그리고 그들을 격려하러 갔다가 함께 목 놓아 울어버린 대통령과 영부인, 그리고 못다 부른 애국가.......
이제는 흑백 필름에서나 남아 있을 뿐인 그 시절 그 서러운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은 정말 가난했다.
1960 년대 초 북한보다도 더 가난이 심각했었다.
지금 우리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궁핍한 필리핀 국민 소득이 170 불 , 태국 220 불일 때 우리는 76 불이었다.
해마다 보릿고개가 있었고,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캐고 벗겨 먹었다. 초근목피였다. 화장실에서는 항상 항문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했고 그래서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생겼다.
미국은 5.16 혁명 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원조도 끊었다.
박정희 소장은 절박했다. 국민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몇년 후 박정희 대통령은 서독을 방문하게 되었다. 대통령 전용기는 꿈도 못 꿀 시절이었다.
미국 노스웨스트사와 전세기 계약을 맺었지만 미국 정부의 방해로 무산됐다. 서독 정부가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 루후탄자를 보내 주었고, 박 대통령은 무사히 서독에 도착할 수 있었다.
1964 년 12 월이었다.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 그리고 우리 방문단 일행은 서독에 파견돼 왔던 우리 광부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본에서 자동차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 함보른 탄광을 찾았다. 탄광의 강당에는 막장에서 막 나와 세수할 틈도 없어 얼굴에 탄가루가 새까맣게 묻은 작업복 차림의 광부와 간호사들이 모여 들었다.
애국가가 흘러 나왔다.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애국가는 더 이상 불려지지 않았다.
목이 메었고 여기저기 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강당이 삽시간에 울음 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대통령도 울었고 육 여사도 울었다.
모두가 울어 버렸다.
박 대통령은 잠긴 목소리로 연설을 했다.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합시다. 우리 후손들을 위해 열심히 일합시다. 열심히 일하고 또 일하자는 말을 하고 또 했다.
아득한 지하 막장에서 목숨을 담보로 석탄을 캐며 향수를 달랬던 광부들과 지독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고향의 부모 형제들을 위해 밤낮없이 일했던 간호사들이 밀려오는 그리움과 복받친 설움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목을 놓아 울었다.
대통령은 이역만리에서 고생하고 있는 어린 자식같은 동포들을 보면서 아픈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 강철처럼 강할 것 같은 그였지만, 솟구치는 눈물은 어쩔수 없었다.
대통령이란 신분도 잊어 버렸다. 다만 가난한 나라의 동포로서 그저 안쓰럽고 미안하고 불쌍해서 그래서 그렇게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광부들과 간호사들은 " 어머니 ! 어머니 !" 하며 육영수 여사의 옷을 부여잡고 목 놓아 울었다. 육 여사의 단아한 한복을 보는 순간부터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나 와락 설움이 복받쳤던 젊은 광부와 간호사들은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천진한 자식들처럼 그렇게 눈물을 쏟아냈다.
여사는 " 힘 내세요, 건강 하셔야 됩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용기를 잃지 마세요 " 하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내 자식처럼 안아주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행사가 끝나고 박 대통령 일행이 돌아갈 즈음, 광부들은 독일 뤼브케 대통령에게 큰 절을 올리며 ,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을 도와 주십시요.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호소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감동을 받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연설이 끝나고 박 대통령과 일행들이 강당으로 나오자 미처 들어가지 못했던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대통령과 여사를 부여 잡았다. " 고향에 가고 싶어요.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 우릴 두고 어딜 가세요"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서럽게 이별한 대통령과 여사는 차 안에서도 거듭 눈물을 흘렸다.
박 대통령 옆에 앉아 있던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건네며 "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약속했다. 서독 의회에서도 박 대통령은 진심어린 목소리로...
" 돈 좀 빌려 주세요. 한국도 여러분의 나라처럼 공산당과 싸우고 있습니다. 공산당과 싸워 이기려면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돈은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들을 이길수 있도록 제발 돈 좀 빌려 주세요"
라고 호소했다.
몇 해 전 미국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 보지도 못한 채 눈물로 귀국 보따리를 싸야 했던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체면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진실된 마음으로 호소한 결과 1 억 4 천마르크를 빌리는데 성공했다.
광부와 간호사들의 월급을 담보로 잡힌, 정말 눈물나는 돈이었다.
당시 고졸 출신 광부 500 명을 모집하는데 무려 4 만 6 천명이 몰렸다. 정규 대학을 나온 이들도 수두룩 했는데, 손이 너무 고와 면접에서 떨어질 것을 우려해 손에 연탄을 묻히고 비벼 일부러 거칠게 만들어 오기도 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일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었고, 놀고 싶어도 배가 고파 놀 수 없었다.
그들에게 당장의 배고픔과 설움은 둘째치고 미래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도 없었다. 나 하나 희생하면 우리 가족들 배 곯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 너도나도 이역만리 낯선 땅으로 기꺼이 가려 했던 것이다
한창 멋 부리고 재미있게 청춘을 예찬해야 할 꽃다운 젊은 나이들이어서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다. 공항은 배웅나온 가족들과 이별을 하느라 눈물 바다로 변했다.
그렇게 떠나간 서독에서 광부들은 지하 몇 천미터에서 서독 광부들 보다 몇 배 더 많이 일했고, 간호사들은 알콜을 적신 솜으로 시체를 닦았다. 하도 독하고 열심히 일해 서독 사람들은 코리안 엔젤이라 불렀다. 말도 잘 통하지 않은 남의 나라에서 그렇게 열심히 일한 광부와 간호사들은 월급의 8 할을 조국으로 보냈다.
그 돈으로 남은 식구들이 굶지 않을 수 있었고, 그 돈으로 어린 동생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 돈으로 나라에 도로가 생기고, 그 돈으로 나라에 공장이 들어서고, 그 돈으로 희망을 가꿀수 있었다.
가난하고 멸시 당하고, 서러웠던 그 때 그 시절, 대통령과 국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았고, 그래서 오늘 날 우리가 마음놓고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독일 월드컵을 응원하면서도 그들의 윗 세대들이 흘린 땀과 눈물, 거룩한 희생과 헌신을 기억조차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나도 간호학을 전공했던 사람으로서 당시 서독에 가서 돈을 벌어 잘살아 보겠다고 독일어 공부도 하며 준비하였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직접 겪지도 보지도 못했던 일들은 지금 세대들에게 기억하고 감사하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가치를 매길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 실패한 역사라고 단정 지으며 과거 세대들의 눈물겨운 희생과 노력을 폄훼하는 것에 대해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젊은 세대들이 끼니 걱정없이 마음껏 공부하고 해외 여행을 하고 또 자랑스럽게 코리안임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서독 광부와 간호사, 월남전 용사들, 중동 사막의 건설 역군들, 공장의 불을 밝힌 여공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그나마 386 세대 중에도 그 윗 세대의 그러한 희생과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가치를 인정하는 이들도 있어 희망을 갖게 한다.
이번 독일 월드컵에 모 일간지 객원기자로 참여했던 J 교수는 "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50 년만에 이만큼 전진해 오기까지 열과 성을 다해 땀 흘려 일하신 모든 분들께 머리를 숙입니다.
그 분들의 희생에 다시 한번 감사하면서,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딱 세 경기만 더 대~한민국을 외칠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습니다. 라고 기사를 썼다.
" 우리 후손들을 위해 열심히 일합시다" 하며 함께 고생하고 피땀을 흘린 세대들은 다름아닌 젊은 세대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아버지 어머니들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자기 한 몸 아끼지 않는다 그게 천륜이다. 이전의 모든 것을 청산해야 할 구악으로 몰아 세우고 부정하고 폄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부모의 희생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그들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잘 가꾸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진정 가치가 있는 일이다.역사와 정의라는 허울에 가려 소중한 자산들을 잃어서는 안될 일이다.
책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중에서 옮김.
원문내용(작성자:이성도)-----------------------------------
하얀 연꽃이 핀 줄 알았다...
그 날 설핏 눈발이 날렸던가
마음은 벌써 봄을 향해 내쳐 달렸으나, 동장군은 쉬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듯 했다.
매화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고, 남쪽에선 곧 동백꽃을 보게 될 것이란 소리가 있었으니 ....
아마 3 월이 다 되어 갈 때 쯤이었나 보다.
그 날 박근혜 의원을 처음 만났다. 봄 날 설핏 스쳐간 상서로운 눈발 탓인지 아침부터 가슴이 설레였다.
하얀 연꽃이 핀 줄 알았다.
어쩌면 하얀 목련 같기도 하고, 그러나 여자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성의 구별을 초월한 관세음 보살 기운이 강하게 풍겼다.
처음 보는 박근혜 의원은 관세음 보살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보통 사람에게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그런 편안함이었다.
신기하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손을 내밀어 잡아보니 도무지 형언하기 어려운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얼굴의 육상은 한없이 부드러운 기운이 베어 나오는 상이었고,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께서 생전에 우리에게 보이신 그런 느낌이었다.
골상은 강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했다.
사주에 금이 많아 강한 리더십을 가졌던 박정희 대통령의 기운을 타고 난 것 같았다. 박 의원은 아버지의 강한 지도력과 어머니의 자상함과 너그러움을 함께 물려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 의원을 보는 순간 부처님과 함께 내 마음의 군주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나는 박 의원을 바라 보면서, 두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박 의원은 이 순간 합장을 하는 나의 모습이 부담스러웠던지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살며시 머리 숙여 답례 했다.
이제 우리 7 천만 동포를 위해 일해 주십시요. 지금 이 나라가 정말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우리 민족 모두가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도록 큰 일을 해 주십시요 !!
나는 진실된 마음으로 박 의원에게 간청했다.
그리고 또 박 의원에게 약속했다.
박 의원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던 나는 박 의원이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 것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이겨 나갈 것 같은 강한 카리스마를 보았다.
이미 혹독한 자기 수련으로 내공을 쌓아 높은 경지에 오른만큼 어떤 난관도 뚫고 나가 뜻하는 바를 이루어 내고야 말 것이라 믿는다.
나는 오늘 부처님 앞에서 기도한다.
"부처님 이 나라 이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요.
나라가 어리석은 자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미륵 보살을 보내 주셨으니
이제 그 미륵 보살이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정말 행복하게 잘 사는 길로 이끌어 나갈 수 있게 해 주십시요 "
책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중에서..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