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이야기만 나오면 과거 군부정권이 인위적으로 신격화한 인물이라며 폄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위대한 전략 전술가로 평가하기 보다는 전장의 일선 지휘관 쯤으로만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박정희 정권 이전에,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세계적인 성장으로서, 세계적인 전략 전술가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지금부터 그 역사적 평가들을 되짚어보고자 합니다(나름대로 이곳저곳을 뒤져서 정리한 것입니다. 또 다른 자료가 있다면 덧붙여 주십시오).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의 평가 진린은 이순신과 동고동락까지 했던 터라 이순신의 무훈과 인품, 더 나아가 이순신의 성자 같은 모습에도 큰 감동을 받았다. 이 같은 심경에서 진린은 이순신을 제갈량에 비유하기도 했다. 청산도에 있는 진린의 묘비문에는 이순신에 대한 진린의 심경이 잘 나타나 있다. “내가 밤이면 천문을 보고 낮이면 인사를 살폈는데 동방에 대장별이 희미해 가니 멀지 않아 공에게 화가 미칠 것이오. 공이 어찌 이를 모른다 하겠소. 어찌하여 무후(武侯: 제갈량)의 예방하는 법을 쓰지 않습니까?” 하였다. 그러자 이순신은 “나는 충성심이 무후만 못하고, 덕망이 무후만 못하고, 재주가 무후만 못하여 세 가지가 모두 다 무후만 못하니, 비록 무후의 법을 쓴다 한들 하늘이 어찌 들어줄 리가 있겠습니까?”고 하였는데... -<이순신과 임진왜란>- 진린은 임금에게 글을 올려 말하기를 “통제사는 경천위지지재(經天緯地之才)와 보천육일지공(補天浴日之功)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마음으로 감복한 까닭이었다. -<징비록>- ‘경천위지지재’란 하늘을 경륜할 만한 뛰어난 인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경영의 대가라는 의미로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주나라의 강태공, 한나라의 장자방, 촉의 제갈량을 일컬어 ‘경천위지지재’라고 했다는군요. 다시 말하면 이순신은 당대에 이미 제갈량에 비유될 정도의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의 평가 러일해전에서 일본의 도고 제독이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자 세계는 깜짝 놀랐고 곧바로 도고 신드롬이 일어났다. 1906년 미국 해군사관생도들이 졸업여행 차 세계일주를 하던 중 도고를 방문했다. 해사 생도들이 “각하께서 가장 존경하는 분은 누구입니까?” 하고 묻자 도고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16세기 조선왕국의 이순신 제독일세. 그 분의 무훈과 인품을 따를 만한 제독은 아직 없네.”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1905년은 일제가 ‘조선은 스스로를 다스릴 능력이 없다’면서 강압으로 을사조약을 체결한 해였고, 도고가 이 같은 발언을 한 때는 바로 그 이듬해였기에 일본의 조야가 경악했다. 1907년에는 영국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도고를 방문했다. 그리고는 “각하와 넬슨, 그리고 이순신 제독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도고는 “나와 넬슨은 비교해도 좋을지 모르나 이순신 제독과는 비교하지 말게.” 라고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영국 국민들이 놀랐다. 자신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넬슨이 조선의 이순신에게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순신과 임진왜란>- 도고의 이 발언으로 이순신은 세계에 알려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계 열강들은 본격적으로 이순신 연구에 돌입하게 되었고 1-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충무공의 후예들은 육-해-공을 막론하고 크고 작은 성과들을 거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 해군 대좌 사토 데쓰타로의 평가 옛부터 장군으로서 기정분합(奇正分合)의 묘법을 다한 자는 한둘에 그치지 않는다. 나폴레옹이 '전체로써 일부를 쳤다'고 하는 것도 이와 같다. 그런데 해군장으로서 그런 전법을 쓴 것은 동양에서는 이순신, 서양에서는 넬슨뿐이다. 이순신은 불행히도 조선에서 태어났기에 서양에 잘 전하여지지 않았지만 임진왜란에 관한 문헌을 보면 실로 위대한 성장(聖將)이다. 서양에서 그에 비할만한 장군이 있다면 겨우 네덜란드의 로이텔(Ruyter Michiel, 1607~1678) 정도 이지만 그 역시 이순신에 비할 수는 없다. 넬슨 또한 그 인격에 있어서는 도저히 견줄 수 없다. 그는 거북선의 창제자이며 300년 전에 이미 현대적 해군 전술을 구사한 명장이다. 야간경계법과 붐즈(철선에 의한 해협 봉쇄. 견내량 방어전을 말함)를 이용한 것 등등은 실로 탄복할 만한 일이다. 이 절세의 명장은 또 한산도해전에서 분명히 집중공격법의 전술을 썼다. -<제국국방사론>(일본 해군대좌 사토 데쓰타로 저. 1908년)- 영국 해군 준장 발라드의 평가 이순신은 서양 사학가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위대한 해군 사령관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위치를 차지하게 하였다.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함은 물론 비상한 해군전술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전쟁의 유일한 참 정신인 불굴의 공격 원칙에 의하여 항상 고무된 통솔 정신을 겸비하고 있었다. 어떠한 전투에서도 그가 참가하기만 하면 승리는 항상 결정된 것과 같았다. 그러나 그의 물불 가리지 않는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은 아니었다. 그는 전투가 벌어지면 강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나 승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신중을 기하는 점에서 넬슨과 공통된 점이 있었다. ...짧은 기간 동안 이순신은 일본의 함대를 파괴하여 본국과의 통신 연락망을 끊고, 호위 선단을 전멸시켜 육지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을 위험에 빠트림으로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심찬 계획을 철저한 파멸로 이끄는 세계 해전사에서 비길 데 없는 일련의 승리를 거두었다. 심지어 넬슨도, 블레이크도, 진 바트도 이 거의 알려진 바 없는 리더보다 더 뛰어난 성취를 이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기억이 그의 본국을 벗어난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편견 없고 공평한 재판관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가 타고난 지도자 가운데 한명으로 인정받아야 함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인으로서 넬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독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란 항상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대접받아야 하는 인물이 있다면, 패배를 전혀 모르고 전투중에 전사한 위대한 아시아의 해군 제독이 되어야 할 것임은 틀림이 없다. ...그의 전체 업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그에게는 그가 교범으로 삼을 이전 역사로부터의 아무런 교훈도 없었지만 명백한 결과를 만드는 것처럼 전쟁을 하였고, 그 자신을 조국의 방패로서 거대한 희생으로 하여 전쟁을 끝나게 하였다. -(영국 해군준장 G.A.Ballard 저. 1921년 발행)- (불멸의 이순신 게시판 박준규님의 글) 일본 해군 소좌 가와다 이시오의 평가 가와다 소좌는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참모로서 러일해전을 앞두고 충무공 영정 앞에 무훈을 빌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세계 제일의 해군장인 조선의 이순신... 그의 인격, 그의 전술, 그의 발명, 그의 통제력, 그의 지모와 용기... 그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상찬의 대상이 아닌 게 없다.” -<이조멸망>(기타노 쓰기오 저. 1994년)- 진린 도독은 말할 것도 없고 가와다 소좌와 도고 제독은 박정희가 태어나기도 전 시대의 인물들입니다. 이 일본인들이 뭐가 아쉬워서 망국의 길을 걷고 있던 나라의 장수를 그토록 칭송했겠습니까? 박정희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날아가서 이순신을 미화해 달라고 뇌물이라도 줬던 것일까요? 서글프게도 우리의 영웅은 우리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들에 의해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격적인 이순신 연구도 이들의 발언에 자극을 받은 일제 때의 선각자들이라고 하니 이 얼마나 가슴 시린 일입니까. 어떤 나라들은 없던 역사도 조작하고 또 어떤 나라들은 사실관계가 분명치 않은 역사를 자신들 편의에 따라 이렇다 저렇다 우기는 판국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세계가 인정하고 추앙해 마지않는 인물에 대해서 그토록 냉소적이고 편파적인지 모를 일입니다. 아직까지도 제대로 연구되거나 평가받지 못한 충무공의 업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명량대첩의 경우는 세계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최고의 해전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 승전을 규명하는 이론적 근거가 정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화로서만 회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는 10월 27일부터 남해에서는 명량대첩 기념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우리만의 축제가 아닌 전 세계인들로부터주목받고 마음 속으로 기려지는 기념일로 당당히 평가받는 날은 언제일런지...
♨세계가 평가한 이순신 장군♨
이순신 이야기만 나오면 과거 군부정권이 인위적으로 신격화한 인물이라며 폄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위대한 전략 전술가로 평가하기 보다는 전장의 일선 지휘관 쯤으로만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박정희 정권 이전에,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세계적인 성장으로서, 세계적인 전략 전술가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지금부터 그 역사적 평가들을 되짚어보고자 합니다(나름대로 이곳저곳을 뒤져서 정리한 것입니다.
또 다른 자료가 있다면 덧붙여 주십시오).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의 평가
진린은 이순신과 동고동락까지 했던 터라 이순신의 무훈과 인품, 더 나아가 이순신의 성자 같은 모습에도 큰 감동을 받았다.
이 같은 심경에서 진린은 이순신을 제갈량에 비유하기도 했다. 청산도에 있는 진린의 묘비문에는 이순신에 대한
진린의 심경이 잘 나타나 있다.
“내가 밤이면 천문을 보고 낮이면 인사를 살폈는데 동방에 대장별이 희미해 가니 멀지 않아 공에게 화가 미칠 것이오.
공이 어찌 이를 모른다 하겠소. 어찌하여 무후(武侯: 제갈량)의 예방하는 법을 쓰지 않습니까?” 하였다.
그러자 이순신은 “나는 충성심이 무후만 못하고, 덕망이 무후만 못하고, 재주가 무후만 못하여 세 가지가 모두 다 무후만 못하니,
비록 무후의 법을 쓴다 한들 하늘이 어찌 들어줄 리가 있겠습니까?”고 하였는데... -<이순신과 임진왜란>-
진린은 임금에게 글을 올려 말하기를 “통제사는 경천위지지재(經天緯地之才)와 보천육일지공(補天浴日之功)이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는 마음으로 감복한 까닭이었다. -<징비록>-
‘경천위지지재’란 하늘을 경륜할 만한 뛰어난 인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경영의 대가라는 의미로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주나라의 강태공, 한나라의 장자방, 촉의 제갈량을 일컬어 ‘경천위지지재’라고 했다는군요.
다시 말하면 이순신은 당대에 이미 제갈량에 비유될 정도의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의 평가
러일해전에서 일본의 도고 제독이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자 세계는 깜짝 놀랐고 곧바로 도고 신드롬이 일어났다.
1906년 미국 해군사관생도들이 졸업여행 차 세계일주를 하던 중 도고를 방문했다.
해사 생도들이 “각하께서 가장 존경하는 분은 누구입니까?” 하고 묻자 도고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16세기 조선왕국의 이순신 제독일세.
그 분의 무훈과 인품을 따를 만한 제독은 아직 없네.”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1905년은 일제가 ‘조선은 스스로를 다스릴 능력이 없다’면서 강압으로 을사조약을 체결한 해였고,
도고가 이 같은 발언을 한 때는 바로 그 이듬해였기에 일본의 조야가 경악했다.
1907년에는 영국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도고를 방문했다.
그리고는 “각하와 넬슨, 그리고 이순신 제독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도고는 “나와 넬슨은 비교해도 좋을지 모르나 이순신 제독과는 비교하지 말게.” 라고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영국 국민들이 놀랐다. 자신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넬슨이 조선의 이순신에게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순신과 임진왜란>-
도고의 이 발언으로 이순신은 세계에 알려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계 열강들은 본격적으로 이순신 연구에 돌입하게 되었고
1-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충무공의 후예들은 육-해-공을 막론하고 크고 작은 성과들을 거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 해군 대좌 사토 데쓰타로의 평가
옛부터 장군으로서 기정분합(奇正分合)의 묘법을 다한 자는 한둘에 그치지 않는다.
나폴레옹이 '전체로써 일부를 쳤다'고 하는 것도 이와 같다. 그런데 해군장으로서 그런 전법을 쓴 것은
동양에서는 이순신, 서양에서는 넬슨뿐이다.
이순신은 불행히도 조선에서 태어났기에 서양에 잘 전하여지지 않았지만 임진왜란에 관한 문헌을 보면
실로 위대한 성장(聖將)이다. 서양에서 그에 비할만한 장군이 있다면 겨우 네덜란드의 로이텔(Ruyter Michiel, 1607~1678)
정도 이지만 그 역시 이순신에 비할 수는 없다.
넬슨 또한 그 인격에 있어서는 도저히 견줄 수 없다.
그는 거북선의 창제자이며 300년 전에 이미 현대적 해군 전술을 구사한 명장이다.
야간경계법과 붐즈(철선에 의한 해협 봉쇄. 견내량 방어전을 말함)를 이용한 것 등등은 실로 탄복할 만한 일이다.
이 절세의 명장은 또 한산도해전에서 분명히 집중공격법의 전술을 썼다. -<제국국방사론>(일본 해군대좌 사토 데쓰타로 저. 1908년)-
영국 해군 준장 발라드의 평가
이순신은 서양 사학가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위대한 해군 사령관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위치를 차지하게 하였다.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함은 물론 비상한 해군전술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전쟁의 유일한 참 정신인 불굴의 공격 원칙에 의하여 항상 고무된 통솔 정신을 겸비하고 있었다.
어떠한 전투에서도 그가 참가하기만 하면 승리는 항상 결정된 것과 같았다. 그러나 그의 물불 가리지 않는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은 아니었다. 그는 전투가 벌어지면 강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나 승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신중을 기하는 점에서 넬슨과 공통된 점이 있었다.
...짧은 기간 동안 이순신은 일본의 함대를 파괴하여 본국과의 통신 연락망을 끊고, 호위 선단을 전멸시켜
육지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을 위험에 빠트림으로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심찬 계획을 철저한 파멸로 이끄는
세계 해전사에서 비길 데 없는 일련의 승리를 거두었다. 심지어 넬슨도, 블레이크도, 진 바트도 이 거의 알려진 바 없는
리더보다 더 뛰어난 성취를 이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기억이 그의 본국을 벗어난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편견 없고 공평한 재판관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가 타고난 지도자 가운데 한명으로 인정받아야 함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인으로서 넬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독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란 항상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대접받아야 하는 인물이 있다면, 패배를 전혀 모르고 전투중에 전사한 위대한 아시아의 해군 제독이
되어야 할 것임은 틀림이 없다.
...그의 전체 업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그에게는 그가 교범으로 삼을 이전 역사로부터의 아무런 교훈도 없었지만
명백한 결과를 만드는 것처럼 전쟁을 하였고, 그 자신을 조국의 방패로서 거대한 희생으로 하여 전쟁을 끝나게 하였다.
-(영국 해군준장 G.A.Ballard 저. 1921년 발행)- (불멸의 이순신 게시판 박준규님의 글)
일본 해군 소좌 가와다 이시오의 평가
가와다 소좌는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참모로서 러일해전을 앞두고 충무공 영정 앞에 무훈을 빌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세계 제일의 해군장인 조선의 이순신... 그의 인격, 그의 전술, 그의 발명, 그의 통제력, 그의 지모와 용기...
그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상찬의 대상이 아닌 게 없다.” -<이조멸망>(기타노 쓰기오 저. 1994년)-
진린 도독은 말할 것도 없고 가와다 소좌와 도고 제독은 박정희가 태어나기도 전 시대의 인물들입니다.
이 일본인들이 뭐가 아쉬워서 망국의 길을 걷고 있던 나라의 장수를 그토록 칭송했겠습니까?
박정희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날아가서 이순신을 미화해 달라고 뇌물이라도 줬던 것일까요?
서글프게도 우리의 영웅은 우리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들에 의해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격적인 이순신 연구도 이들의 발언에 자극을 받은 일제 때의 선각자들이라고 하니 이 얼마나 가슴 시린 일입니까.
어떤 나라들은 없던 역사도 조작하고 또 어떤 나라들은 사실관계가 분명치 않은 역사를 자신들 편의에 따라
이렇다 저렇다 우기는 판국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세계가 인정하고 추앙해 마지않는 인물에 대해서 그토록
냉소적이고 편파적인지 모를 일입니다.
아직까지도 제대로 연구되거나 평가받지 못한 충무공의 업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명량대첩의 경우는 세계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최고의 해전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 승전을 규명하는 이론적 근거가
정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화로서만 회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는 10월 27일부터 남해에서는 명량대첩 기념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우리만의 축제가 아닌 전 세계인들로부터
주목받고 마음 속으로 기려지는 기념일로 당당히 평가받는 날은 언제일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