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진돗개 이미지 조작했다.

정덕현200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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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첫 문장은 아시는 대로,


입니다.


"도를 도라고 부르면 항상 있는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이라 부르면 항상 있는 이름이 아니다."

이름 붙여 말하기 전의 것이 참이라는 뜻입니다.  

광개토대왕비문의 조작이 일제 대본영 참모본부의 첩보작전의 하나였다는 것이 알려진 시기는  


약 80년의 세월이 흐른 후이고 다시 삼십 년이 지난 요즘에 와서야 비문의 원래 뜻이 국제학계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 동안 한. 중. 일 삼국 학자들이 비문의 진위를 따지는 논쟁은 상

당히 첨예했는데, 일제 첩보작전의 높은 수준을 말해 주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얄미운 것은 실제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곳은 중국인데

 

그 자들이 계속해서 일본의 편을 들어서 한국 역사 깍아내리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와 같은 맥락의 주장이었습니다.

진돗개는 현재 우리민족 전체가 사랑하는 대표적인 토종개인데, 이

 

개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이 일본인에 의해서였고 천연기념물로서

 

의 의미와 기준이 모두 일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아시는 대로입니다.


일제의 첩보작전은 한반도 전체에 광범위하였고 그 방법의 치밀했던 점은 광개토대왕비문 조작을 아는데 80년, 해명하는데 몇 십 년이 걸렸던 것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진돗개도 광개토대왕비문 조작수준의 작전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보려 합니다.


진돗개의 천연기념물 지정 경위와 의도를 김정호 선생님의 저서 "진도견"에서 그분의 말씀을 인용하여 옮겨 보겠습니다.



당시 일제의 조선 통치방법이 철저히 역사와 민족의 말살에  주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기본적으로 생각하고서 관찰해 보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일제가 철저하게 우리를 위해 했다고 하는 것일수록 우리를 말살시키는 정책이라는 것과 그들이 행한 식민지정책에는 반드시 대본영 참모본부의 첩보작전이 함께 작동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도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첩보 수집과 내부지침을 전달하는 분들을 전국 행정 부서에 파견하여 통치를 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이해하면, 대본영 참모본부의 파견관들이 조선총독부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을지 납득이 갈 겁니다.


더구나 38년도는 광개토대왕비문 조작 후 50여 년이 지난 후 입니다.  


천연기념물 지정 경위는 위에서 김선생님께서 밝히신 대로 모리도 밝혔으며, 모리 보고서에는 없는 내용인 "야겡가리"에 의한 진돗개 도태 작업이 위의 글에는 비교적 소상히 적혀 있습니다.


1938년에 등록 및 실사가 실시됐고 합격 견은 살려놓았지만 불합격 견은 모조리 도태시켰는데 그 형벌이 상당히 가혹합니다.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당시 중형 견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벗어나는 개들을 잡종으로 몰아 도태시키기 위한 방법이 철저하고 완벽했습니다.  


이 자들이 진돗개를 위해서 이런 일을 했을까요?  


그 방법이 철저할수록 자기들을 위해 한 겁니다.


총독부와 군부의 치밀한 합동작전이었던 것입니다.


그 기준에 의해 살려 놓은 개들이 진돗개가 되고 그 기준에 의해서 진돗개가 홍보되고 도태되기를 몇 십 년, 살아남은 개들 중에 국민의 머리 속에 깊이 인식된 진돗개에 대한 개념으로 여러분이 진돗개를 생각하고 논쟁하는 겁니다.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를 모리의 보고서를 살펴보면서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고서는 진돗개를 천연기념물로 건의하는 보고서가 아니고, 이미 천연기념물이 된 뒤에 그 과정을 보고하는 형식입니다.


모리가 37년 2월에 진도를 다녀간 뒤 38년 5월에 지정이 되기까지의 기간 동안 사쿠오중위 같은 첩보원들이 진도에 얼마나 다녀갔고 전국의 개 기르는 실태를 얼마나 조사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일제 때는 총독부 배후에서 식민지 정책의 두뇌 역할을 참모본부가 했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모리의 진돗개에 대한 보고서는 첩보원 사쿠오의 광개토대왕비문의 처음 탁본과 같은 역할을 했고 일제 군부는 그 기간동안 이를 철저히 연구한 후에 야겡가리를 시작한 것입니다.


한국 개들을 귀 세운 개로만 만들려고 한 것이고 그 이유는 한국과 일본 개들의 동일화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성씨와 언어, 한글 말살정책이 다 같은 맥락인 것입니다.
한국적인 것은 완전히 말살시키려 했던 것이고 도태된 개들은 거기에 해당된 겁니다.

다음은 모리의 사후보고서의 일부입니다.




여기까지의 문장에서 보면 모리는 동부아시아에서 기르는 개들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 그림에서 유독 귀가 선 개를 그린 그림을 예로 들어서 당위성을 부여합니다.


따라서 이 자가 비교적 순수성이 남아 있다고 한 개들의 기준은 귀가 선 개들이었음이 당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