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큼이나 어둡고 침침한 배경이 펼쳐진다. 역사(驛舍)는 한산하지만 가끔 지나가는 열차와, 간간이 울리는 전신기만이 정적을 깨뜨린다. 독일군 전차에 맞섰다가 우스꽝스럽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여자친구에게 남자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부담감, 앞으로 해야 할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폭파에 대한 불안감. 이런 생각들은 소설 내내 교차하며 담담하고도 엉뚱한 방식으로 이야기는 종국을 향해 내달린다.
는 진지한 모습과 엉뚱한 장면이 수시로 교차하는 소설이다. 쉽게 말해서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와 느낌이 비슷하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 물론 '인생은 아름다워'가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도 고려했겠지만, 채플린을 방불케하는 주인공의 유머러스함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면, 이 소설은 유아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주인공 밀로시의 엉뚱함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이 차이일 것이다.
독일군 점령기의 체코. 그곳에서 밀로시는 역무원 수습생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역장, 매력적인 역장의 부인, 보헤미안적인 기질이 있는 후비치카, 여자친구 마샤, 내가 처음 남자 구실을 할 수 있게 해준 빅토리아까지, 이 소설에는 기차역을 중심으로 다양하고 전형적인 인물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다. 주된 이야기는 를 폭파하는 것이겠지만, 이 작품은 주인공 밀로시의 성장 소설이자 독일군에 의해 할아버지를 잃고 조국을 잃은 밀로시의 심각한 복수가 담겨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장과 후비치카와 밀로시가 형성하는 삼각형의 구도인데, 이 세 사람은 전혀 다른 성향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듯 하면서도 결국은 조국을 생각하고 독일군에 대한 강한 반감과 공격성을 표출하며 하나의 목적과 결과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신기사 아가씨의 엉덩이에 직인을 잔뜩 찍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카우치를 찢어 놓은 후비치카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약간은 덜떨어진 듯하게 행동하는 밀로시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는 역장도, 독일산 비둘기들을 죽여버리고 폴란드산 비둘기를 키우는 장면이라든가, "이놈들아! 너희들이 온 세상과 전쟁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더냐!"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독일군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음을 읽을 수가 있다. 결국 후비치카와 밀로시는 독일군의 를 폭파하게 되었고, 밀로시 역시 독일군의 총에 맞아 서서히 숨을 거두게 된다. 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했고 나약하게만 보였던 밀로시의 엄청난 결정은, 읽는 이로 하여금 유머러스함과 동시에 짙은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다만, 작가의 특성이었을까. 한 가지 이야기를 강하게 이끌어가는 힘이 약해서 중간중간 이야기가 산만하게 흩어져 버리는 느낌이 든다는 점, 그리고 주인공이 열차를 폭파하게 되기까지의 개연성이 조금 부족하다는 점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지니지 않아도 좋을 많은 상념을 지니지 않을 수 없었다"는 한 폴란드 시인의 싯구처럼, 이 한 권의 소설로 동구권의 쓰라린 역사 속에 부담스럽지 않게 젖어들 수 있을 것 같다. 역설과 반전의 묘미와 함께 말이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제목만큼이나 어둡고 침침한 배경이 펼쳐진다. 역사(驛舍)는 한산하지만 가끔 지나가는 열차와, 간간이 울리는 전신기만이 정적을 깨뜨린다. 독일군 전차에 맞섰다가 우스꽝스럽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여자친구에게 남자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부담감, 앞으로 해야 할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폭파에 대한 불안감. 이런 생각들은 소설 내내 교차하며 담담하고도 엉뚱한 방식으로 이야기는 종국을 향해 내달린다.
는 진지한 모습과 엉뚱한 장면이 수시로 교차하는 소설이다. 쉽게 말해서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와 느낌이 비슷하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 물론 '인생은 아름다워'가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도 고려했겠지만, 채플린을 방불케하는 주인공의 유머러스함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면, 이 소설은 유아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주인공 밀로시의 엉뚱함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이 차이일 것이다.
독일군 점령기의 체코. 그곳에서 밀로시는 역무원 수습생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역장, 매력적인 역장의 부인, 보헤미안적인 기질이 있는 후비치카, 여자친구 마샤, 내가 처음 남자 구실을 할 수 있게 해준 빅토리아까지, 이 소설에는 기차역을 중심으로 다양하고 전형적인 인물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다. 주된 이야기는 를 폭파하는 것이겠지만, 이 작품은 주인공 밀로시의 성장 소설이자 독일군에 의해 할아버지를 잃고 조국을 잃은 밀로시의 심각한 복수가 담겨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장과 후비치카와 밀로시가 형성하는 삼각형의 구도인데, 이 세 사람은 전혀 다른 성향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듯 하면서도 결국은 조국을 생각하고 독일군에 대한 강한 반감과 공격성을 표출하며 하나의 목적과 결과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신기사 아가씨의 엉덩이에 직인을 잔뜩 찍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카우치를 찢어 놓은 후비치카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약간은 덜떨어진 듯하게 행동하는 밀로시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는 역장도, 독일산 비둘기들을 죽여버리고 폴란드산 비둘기를 키우는 장면이라든가, "이놈들아! 너희들이 온 세상과 전쟁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더냐!"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독일군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음을 읽을 수가 있다.
결국 후비치카와 밀로시는 독일군의 를 폭파하게 되었고, 밀로시 역시 독일군의 총에 맞아 서서히 숨을 거두게 된다. 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했고 나약하게만 보였던 밀로시의 엄청난 결정은, 읽는 이로 하여금 유머러스함과 동시에 짙은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다만, 작가의 특성이었을까. 한 가지 이야기를 강하게 이끌어가는 힘이 약해서 중간중간 이야기가 산만하게 흩어져 버리는 느낌이 든다는 점, 그리고 주인공이 열차를 폭파하게 되기까지의 개연성이 조금 부족하다는 점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지니지 않아도 좋을 많은 상념을 지니지 않을 수 없었다"는 한 폴란드 시인의 싯구처럼, 이 한 권의 소설로 동구권의 쓰라린 역사 속에 부담스럽지 않게 젖어들 수 있을 것 같다. 역설과 반전의 묘미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