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부부가 휴가때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몇달동안 그들은 맛있는 음식과 와인과 카프리의 따뜻한 바닷가와 활기에 넘치는 로마와 시실리안들의 정열에 대해 즐거운 상상을 했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그들은 엉뚱한 곳에 도착했음을 알게 되었다. 네덜란드에 내린 것이다. 잿빛의 밋밋한 풍경들. 사람들은 멋없고 음식도 그랬다. 모래사장은 커녕 높은 제방뿐이었다. 하느님 맙소사.
부부는 경악했다. 정말 형편없군. 우리가 꿈꾸던 휴가는 이런게 아니라구. 그들은 불평했지만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 네덜란드에 꼼짝없이 묶인 것이다. 참 재수도 없지.
하지만 점차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네덜란드가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것이 느리고 부드러웠다. 사람들에게선 내면의 차분함이 느껴졌다. 그들은 렘브란트, 알크마르, 허츠팟요리, 오래된 커피숍들, 그리고 쾨켄호프의 툴립들 같은 세계를 발견했고, 결국 멋있는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이것도 훌륭했다.
"네덜란드가", 친구는 말했다. "패티와 네가 떨어진 곳이야. 장애인의 세계 말이야. 네가 원했던 건 아니지만, 그리고 네가 살아온 것처럼 빠르고 신나지는 않겠지만, 그 삶은 깊고 진한 것이야. 너는 그 삶을 사는 법을 배우게 될것이며 그것을 사랑하게 된거야."
우리는 사람과 사물과 경험들을 유형에 끼워넣고 그에 따라 생각한다. 이건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세상이 가진 느낌과 재미들을 빼앗아 버린다. 마치 모든 식사를 맥도날드에서 하거나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것과도 같다.
이런 사고방식은 그림을 그려보면 잘 나타난다. 사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 나는 그림을 못 그려."라고 말하게 되는 이유이다. 아이들은 절대로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열 두어 살이 되어 머리가 굳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알게 된것은 모든 것은 특별한 존재이고, 서로 다 다르며, 흥미롭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저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나를 그렇게도 두렵게 했던 고정관념의 함정을 쉽게 넘어설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이 내가 생각해 왔던 것과 그렇게도 다르다면, 내가 생각하던 우리 가족의 비참한 삶도 어쩌면 그저 나만의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나무에 대해 생각해왓던 것들이 실제 나무와 달랐듯이, 나는 장애인 아내와의 삶이 어떤 것인지 정말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이 놀라운 하루를 주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뛰어오를 듯 기운찬
푸르른 나무들과 꿈만 같이
파아란 하늘에 대하여,
그리고 자연스럽고
무한하고 옳기만 한
모든 것들에 대하여"
- e e. 커밍스
내 그림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언제나 내 삶을 풍요롭게 채워 주는 것들을 깊이 알고, 기록하고, 간직하기 위해서. 우선 제일 가까이 있는 것들부터. 내 노트에 떨어지는 햇살. 냉장고에 붙여 놓은 잭이 새로 그린 그림들. 식탁 아래 살며서 구르는 먼지덩이. 나는 이들의 축복을 느끼고 싶고, 또한 나 자신이 이들의 일부이자 원인이 되고 싶다. 그림 자체보다는 이러한 유대감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다.
무엇을 볼 때면 당신은 그것을 어떤 카테고리에 넣는다. "나는 공원에 있어." , "여기는 소호야.", "신호등이 파란불이네." 편리하고 빠르며, 정신없는 곳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방식이다. 그러나 당신이 자신을 그저 보도록 내버려둘 때, 그것은 화창한 첫 봄날에 창문을 여는 것과도 같다. 세계는 낯설고, 날카롭고, 낱낱이 다른 무엇이 되어 흘러들어 온다.
과거의 경험에 기대지 않을 때, 존재하는 줄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들을 보게 된다. 페인트 떨어진 조각의 모양새, 길 모퉁이에 서있는 사람들의 생김 생김, 나무 둥치에 비친 나무덤불의 그림자. 고정관념을 버리고, 판단하려 하지말고, 가능성들을 받아들여 보라. 시간의 짓누름에서 풀려 날 수 있다. 모든 것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심오하고 독특하며, 아름답다. 그림을 그려 보아야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
"우리는 소위 지루하다고 여기는 일들을 해치워 버리느라 바쁘다. 더 중요하고 재미있다고 믿고 있는 일들을 하기 위해서. 모든 순간과 모든 것이 알맹이이며, 중요한 일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을때 우리는 궁극의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 헬렌 M. 루크
나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내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헛된 생각들이다. 몽테뉴가 말한 것처럼, "나의 삶은 지독한 불행으로 가득한데, 그 대부분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다." 중요한 것은 앞날을 예측하며 상념에 잠기는 것이 아니다. 이론을 세워 미래를 내다보는 것도 아니다.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떡하지 하고 궁리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다. 내 삶의 충만함을 있는 그대로 360도 모든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 말이다. 병원 대기실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나는 보았다. 장례치르는 집에서 묘지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나는 보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일들이 내게 일어났다. 하지만 내가 두려워하던 그 흉한 일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은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것을 당신에게 하지 못한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과 척추를 다쳐 불구가 된 사람들을 놓고 그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정도를 아라본 연구가 있다. 처음에는 두 그룹간에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예상할 수 있듯이, 백만장자가 된 사람들은 미칠듯 기뻐했고 장애인이 된 사람들은 절망했다.
그러나 1년 후의 조사에서는 두 그룹간에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차이가 없었다. 불행한 백만장자와 행복한 불구자도 있는 것이고, 행복한 백만장자와 불행한 불구자도 또 그만큼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삶이 우리를 어떻게 대해줄지를 정할 수 없으며 단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대할지만 결정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편집증 환자처럼 나쁜일들에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먹다 남긴 사과와 침대보에 비추는 햇살과 갓 구운 쿠키 냄새같은 아름다움들을 놓치게 된다.
이것은 중요하고도 놓치기 쉬운 교훈이어서, 나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배우고 또 배워야 했다. 나는 지금도 슬퍼지고는 한다. 그러나 그림 그리기와 마찬가지로, 떨어진 말에 다시 오르면 그만큼 성장하기 마련이다. 그럴때마다 성숙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음주에 내가 다시 바보가 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삶은 변화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언제나 주위깊게 깨어 있어야 한다. 다행인 일은 삶이라는 마차는 당신이 거기에서 떨어져도 다시 기어오를 때까지 기다려 준다는 점이다.
[9] 모든 날이 소중하다(한뉴요커의 일기)
20060119
대니 그레고리 - 모든날이 소중하다(한뉴요커의일기)
장애인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부부가 휴가때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몇달동안 그들은 맛있는 음식과 와인과 카프리의 따뜻한 바닷가와 활기에 넘치는 로마와 시실리안들의 정열에 대해 즐거운 상상을 했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그들은 엉뚱한 곳에 도착했음을 알게 되었다. 네덜란드에 내린 것이다. 잿빛의 밋밋한 풍경들. 사람들은 멋없고 음식도 그랬다. 모래사장은 커녕 높은 제방뿐이었다. 하느님 맙소사.
부부는 경악했다. 정말 형편없군. 우리가 꿈꾸던 휴가는 이런게 아니라구. 그들은 불평했지만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 네덜란드에 꼼짝없이 묶인 것이다. 참 재수도 없지.
하지만 점차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네덜란드가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것이 느리고 부드러웠다. 사람들에게선 내면의 차분함이 느껴졌다. 그들은 렘브란트, 알크마르, 허츠팟요리, 오래된 커피숍들, 그리고 쾨켄호프의 툴립들 같은 세계를 발견했고, 결국 멋있는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이것도 훌륭했다.
"네덜란드가", 친구는 말했다. "패티와 네가 떨어진 곳이야. 장애인의 세계 말이야. 네가 원했던 건 아니지만, 그리고 네가 살아온 것처럼 빠르고 신나지는 않겠지만, 그 삶은 깊고 진한 것이야. 너는 그 삶을 사는 법을 배우게 될것이며 그것을 사랑하게 된거야."
우리는 사람과 사물과 경험들을 유형에 끼워넣고 그에 따라 생각한다. 이건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세상이 가진 느낌과 재미들을 빼앗아 버린다. 마치 모든 식사를 맥도날드에서 하거나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것과도 같다.
이런 사고방식은 그림을 그려보면 잘 나타난다. 사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 나는 그림을 못 그려."라고 말하게 되는 이유이다. 아이들은 절대로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열 두어 살이 되어 머리가 굳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알게 된것은 모든 것은 특별한 존재이고, 서로 다 다르며, 흥미롭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저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나를 그렇게도 두렵게 했던 고정관념의 함정을 쉽게 넘어설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이 내가 생각해 왔던 것과 그렇게도 다르다면, 내가 생각하던 우리 가족의 비참한 삶도 어쩌면 그저 나만의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나무에 대해 생각해왓던 것들이 실제 나무와 달랐듯이, 나는 장애인 아내와의 삶이 어떤 것인지 정말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이 놀라운 하루를 주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뛰어오를 듯 기운찬
푸르른 나무들과 꿈만 같이
파아란 하늘에 대하여,
그리고 자연스럽고
무한하고 옳기만 한
모든 것들에 대하여"
- e e. 커밍스
내 그림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언제나 내 삶을 풍요롭게 채워 주는 것들을 깊이 알고, 기록하고, 간직하기 위해서. 우선 제일 가까이 있는 것들부터. 내 노트에 떨어지는 햇살. 냉장고에 붙여 놓은 잭이 새로 그린 그림들. 식탁 아래 살며서 구르는 먼지덩이. 나는 이들의 축복을 느끼고 싶고, 또한 나 자신이 이들의 일부이자 원인이 되고 싶다. 그림 자체보다는 이러한 유대감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다.
무엇을 볼 때면 당신은 그것을 어떤 카테고리에 넣는다. "나는 공원에 있어." , "여기는 소호야.", "신호등이 파란불이네." 편리하고 빠르며, 정신없는 곳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방식이다. 그러나 당신이 자신을 그저 보도록 내버려둘 때, 그것은 화창한 첫 봄날에 창문을 여는 것과도 같다. 세계는 낯설고, 날카롭고, 낱낱이 다른 무엇이 되어 흘러들어 온다.
과거의 경험에 기대지 않을 때, 존재하는 줄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들을 보게 된다. 페인트 떨어진 조각의 모양새, 길 모퉁이에 서있는 사람들의 생김 생김, 나무 둥치에 비친 나무덤불의 그림자. 고정관념을 버리고, 판단하려 하지말고, 가능성들을 받아들여 보라. 시간의 짓누름에서 풀려 날 수 있다. 모든 것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심오하고 독특하며, 아름답다. 그림을 그려 보아야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
"우리는 소위 지루하다고 여기는 일들을 해치워 버리느라 바쁘다. 더 중요하고 재미있다고 믿고 있는 일들을 하기 위해서. 모든 순간과 모든 것이 알맹이이며, 중요한 일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을때 우리는 궁극의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 헬렌 M. 루크
나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내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헛된 생각들이다. 몽테뉴가 말한 것처럼, "나의 삶은 지독한 불행으로 가득한데, 그 대부분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다." 중요한 것은 앞날을 예측하며 상념에 잠기는 것이 아니다. 이론을 세워 미래를 내다보는 것도 아니다.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떡하지 하고 궁리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다. 내 삶의 충만함을 있는 그대로 360도 모든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 말이다. 병원 대기실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나는 보았다. 장례치르는 집에서 묘지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나는 보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일들이 내게 일어났다. 하지만 내가 두려워하던 그 흉한 일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은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것을 당신에게 하지 못한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과 척추를 다쳐 불구가 된 사람들을 놓고 그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정도를 아라본 연구가 있다. 처음에는 두 그룹간에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예상할 수 있듯이, 백만장자가 된 사람들은 미칠듯 기뻐했고 장애인이 된 사람들은 절망했다.
그러나 1년 후의 조사에서는 두 그룹간에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차이가 없었다. 불행한 백만장자와 행복한 불구자도 있는 것이고, 행복한 백만장자와 불행한 불구자도 또 그만큼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삶이 우리를 어떻게 대해줄지를 정할 수 없으며 단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대할지만 결정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편집증 환자처럼 나쁜일들에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먹다 남긴 사과와 침대보에 비추는 햇살과 갓 구운 쿠키 냄새같은 아름다움들을 놓치게 된다.
이것은 중요하고도 놓치기 쉬운 교훈이어서, 나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배우고 또 배워야 했다. 나는 지금도 슬퍼지고는 한다. 그러나 그림 그리기와 마찬가지로, 떨어진 말에 다시 오르면 그만큼 성장하기 마련이다. 그럴때마다 성숙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음주에 내가 다시 바보가 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삶은 변화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언제나 주위깊게 깨어 있어야 한다. 다행인 일은 삶이라는 마차는 당신이 거기에서 떨어져도 다시 기어오를 때까지 기다려 준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