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전아름2006.10.13
조회31

 

그남자♥


 

니가 며칠 전
우리가 아주 오래 전에 본 영화
'화양연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가 괜히 화를 낸 거 기억하니?

 

화를 낸 게 마음에 걸렸어.
사실 니가 왜 화내냐고
묻지 않은 게
더 마음에 걸렸지.

 

나, 그 영화를
얼마 전 케이블 방송으로
다시 봤거든.
영화를 두 번 보는 편은 아닌데
니가 그 영화를 하도 좋아하니까.

 

너 요즘 들어서 부쩍
그런 이야기도 자주 했잖아.
그 영화에서처럼
앙코르와트에 가고 싶다고.

 

궁금해지더라구.
우리가 함께 본 그 영화 속에서
너는 보고 나는 못 본게 뭔지.

 

처음 봤을 땐
그 영화 참 별로였어.
기억에 남는 거라곤
양조위가 뿜어내는
아스라한 담배 연기 정도.

 

그런데 이번엔 아무래도
내가 너하고 같은 걸 본 것 같아.

 

앙코르와트에 가고 싶다던
니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려.
영화 속 양조위처럼, 너도
나와 보낸 시절을
그 곳에 묻고 싶다는 건 아닌지.

 

내 불안한 미래도
그래서 불투명한 우리 미래도
여기쯤에서
멈추고 싶다는 뜻은 아닌지.

 

 

 

 

 

그여자♥


 

하루 종일 높은 구두를 신고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고
웃음은 덤이라고 하지만
때론 내 자존심까지 끼워줘야 하고.

 

늦은 저녁 내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유니폼을 갈아입을 때면
난 어리석게도 아직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내가 부잣집 딸로 태어났더라면..'

 

백화점 앞으로 날 데리러온 너와
자가용도 택시도 아닌 지하철역까지 걸어갈 때면
난 나쁘게도, 아직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지
'니가 아주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내가 '화양연화'에서 보았던 건
어쩌면 내 모습이었어.

 

몸을 꽉 조이는 차이나 컬러의 원피스.
늘 같은 길을 따라 같은 보온병을 들고
같은 국숫집에서 저녁을 사들고
그렇게 돌아오던 여자.

 

제일 아름다운 시절에도
한번 크게 소리내 웃지도 못하던 그런 여자.

 

이다음에 지금을 돌아보면
이 시절이 행복했음을 알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지금 난 자꾸 도망가고 싶어져.
높은 구두와 나를 화나게 하는 손님들과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너로부터.

 

앙코르와트에 가면
그곳에서 깊은 숨을 내뱉으면
내가 좀 나아질까?

 

요즘, 난 많이 고단한 것 같아.


             - 그남자그여자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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