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장 생 < Episode 3 : 다 리 > “ 어서.. 도망가! 거기 숨어있으면.. 엄마가.. 엄마가 금세 데리러 갈게.. 얼른.. 응? 자.. 어서! “ 동구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그 사람의 발자국 소리. 그 소리가 마치 어떤 신호라도 된 냥.. 엄마는.. 날 밖으로 내보낸다. 그렇게 떠밀리듯 밖으로 나온 난. 문 앞에서 그 자와 마주치는 끔찍한 일이 없기를 기도하며.. 무조건 달린다. 숨이 턱에 차도록 뛰고 또 뛴다. 그렇게 달려서.. 마을 어귀를 벗어나면, 산자락 끄트머리에 외딴 집이 하나 나온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흉가.. 그곳으로 들어가 .. 어른 주먹보다 더 큰 쥐들이 우글거리는 방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는다. 자기들의 영역을 침범한 적을 보듯.. 그 녀석들은 검은 눈을 번뜩이며.. 내 주변을 분주히 오간다. 마을사람들 모두 재수 없다며 근처에도 오지 않는 흉가도.. 발밑을 우글거리는 벌레와 쥐들도.. 천길 낭떠러지 끝에 서있는 듯..갈곳없는 내겐 죽기보다 싫어도 내 발로 들어가야 하는 유일한 피난처였다. 이 끔찍한 악몽이.. 언제까지 되풀이 될까? 모든 것이..그날 이후로.. 달라져 버렸다. 그 자.. 내 아비란 그자는.. 꽤 이름난 목수였다. 제법 이름이 나있던 터라..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근방의 유명한 절도 짓고,, 으리으리한 양반 댁 공사 때도 항상 불려 다녔기에.. 그 시절엔.. 우린형편이 꽤 넉넉한 집이였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 하지만, 그래.. 그때.. 내가 그자를 아비라 부르던 그때.. 해질녘이면 양 손에 장터에서 사온 주전부리며, 찬거리를 가득 사들고 집 마당으로 들어서며 내 이름을 불렀었다. 뛰어나가 안기는 나를 한 팔에 번쩍 들고는.. 덥수룩하게 수염 난 얼굴을 내 볼에 비비던.. 건장한 사내.. 그 자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의 든든한 아버지.. 내가 사랑했던.. 아버지 말이다. 내가 대 여섯 살 되던 무렵이였다. 근처 큰 절을 짓는 곳에 일을 하러 갔다가, 지붕을 올리던 중..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추락하는사고를 당한것이 말이다. 그날 이후, 건장하고.. 쾌활하던 사내는.. 내가 사랑하던 내 아버지는.. 죽었다.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된 그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사랑했던 아버지가 아니였다 절름발이가 되자, 아무리 이름난 목수였다 하더라도 더 이상 그를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일을 못하게 된 그는 점점 술에 취해있는 날이 많아졌다.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으로 점점 난폭해지기만 했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언제나 그득했던 우리 집 쌀독도 바닥이 드러났다. 결국 세 식구 생계를 떠맡게 된 엄마가 이집 저집 품팔이를 하며 근근히 세 식구 연명하게 되었는데..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가고 집을 비운 그 시간이.. 내겐.. 지옥 같은 시간 이였다. 처음엔.. 근처 술도가에 가서 외상술을 얻어오라며 한 두 대 쥐어박는 정도였다. 헌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손찌검하는 정도는 점점 심해졌고, 내 온몸엔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처음엔.. 이리저리 도망도 쳐보고, 울며불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려도 보았다. 하지만.. 겨우 일곱 살짜리 어린애에겐 그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산과 같은 존재였다. 내 몸에 하루만큼씩 늘어가는 상처들이.. 내 짤막한.. 행복한 유년의 기억들을.. 하나씩 지워갔다.. 하루 종일.. 이집 저집 궂은일을 다 해주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불쌍한..우리 엄마. 지친 엄마가 쉴 곳은.. 없었다. 엄마가 들어오는.. 어스름한 저녁 무렵이 되면.. 그자는.. 술기운에 곯아떨어져 있다가..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욕을 퍼붓기 시작한다. 그자의 입에서 쉴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을.. 화 한번 내지 못하고, 죄인처럼 듣고 있던 엄마.. 그럴 때면..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나를 품에 안고는 내 양쪽 귀를 막아주던.. 내.. 어머니... 그 끝날 것 같지 않던.. 지옥 같은 시간이.. 육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 시간은.. 내게서.. 그 또래 아이의 명랑한 웃음을.. 앗아갔고, 사라져버린 아이다움 대신, 사람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을 가득 채워줬다. 내 마음은.. 이미.. 열 세 살 아이의 그것이..아니였다. 매일 매일을 기도했다. 그 자가..죽게 해달라고.. 제발.. 엄마와 내 곁에서.. 사라져버리게 해달라고... 그렇게만 해준다면... 뭐든.. 다 하겠다고.. 마을 어귀의.. 당산나무 아래서.. 매일을 기도했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이뤄졌다. 아니.. 내 손으로 이뤘다. 어머니가 돌아오실 해질녘이 될 때까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나무아래서 홀로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길이였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기분이 이랬을까? 한발 한발 뗄수록.. 마치.. 내 발로..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것 마냥 집이 가까워질수록.. 내 다리는.. 천근만근이 되고.. 내 심장은.. 두려움에 방망이질 했다. 내가.. 그 지옥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를 품에 안고.. 뭇매를.. 막아내던.. 불쌍한.. 우리엄마 때문이였다. 집에 돌아온 엄마가 .. 나없는 그 지옥에 홀로 남겨지길 바라진 않았으니까.. 집 앞까지 다 가서도.. 들어가지 못하고 엄마가 오셨나..까치발로 서서.. 집안과 엄마가 걸어오실.. 동네 어귀를 번갈아 바라보며..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는 데.. 엄마가.. 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엄마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점점 불안한 마음에.. 집 앞을 서성이다가.. 혹시나 해서.. 살짝.. 방문을 열어보니.. 역한 술 냄새를 풍기며 그자가 방 한가운데 너부러져 있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방 앞 툇마루에 걸터 앉아있는데.. 싸릿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 엄마야? ” 하고는.. 얼른 일어나 쫓아나가니.. 두 집 건너 살고 있는 더벅머리 삼촌이다. 내 아비란 자와 나이 뻘이 비슷한데도.. 일도 안하고 동네 한량처럼 여기저기 사고나 치고 다녀서.. 동네에서도 소문이 좋지 않은 자였다. 나도..틈만 나면 .. 술취한 아비와 둘이 있는 게 싫어서 하루 종일 밖에 있었고 엄마는.. 품팔이하러 가느라.. 저녁 늦게야 돌아오니.. 언제 부턴가.. 눈치 볼 사람 없는.. 우리집을 무시로 드나들며,, 둘이 앉아 .. 늦도록 술판을 벌이곤 했었다. 뱀 같은 눈을 굴리며.. 마당에 쭈뼛쭈뼛 서있는 나를 슬쩍 보더니.. “ 아부지 안에 계시냐? ”하며.. 제 집인 냥.. 방안으로.. 쓱.. 들어선다. 잠시 후 , 문을 삐끔히 열어젖히고는 “ 술 있냐? 술 좀 받아와라.. ” 내가.. 대꾸도 없이.. 문 앞에 선 채로 그 뱀 같은 놈을 쏘아보고 있자 엽전 한 닢을 내 발 앞으로 휙 던지더니.. “ 하긴.. 외상술을 하도 쳐먹어서.. 줄턱이 없지.. 그거 갖고 가서.. 좀 받아와!“ 어린 나이가 원망스럽다.. 또래보다.. 머리하나는 작은 내 몸이 원망스럽다.. 어서어서 어른이 되면.. 저런 놈이 나한테 함부로 굴지 못하게 할 텐데... 가슴 한구석이..체한 것처럼..답답하다. 터덜터덜..술도가에 들어서니 .. 주인아주머니.. 내 머릴 쓰다듬으며.. “ 쯧쯧쯧.... 어미도 돈 버느라.. 얼굴 볼틈이 없고.. 주정뱅이 애비에.. 것도 모자라.. 불한당같은 놈이 무시로 드나들고.. 어린 것이.. 불쌍해 어쩐다... 쯧쯧... “ 이젠.. 동네 어른들의.. 그런..동정어린 말조차도 증오스럽다. 자기들이 뭘 안다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엄마와 내가 짐승처럼 맞으면서.. 도망나올 땐.. 길가에 모여 나와 구경거리라도 난 양.. 수근 거리던.. 동네사람들.. 전부.. 없어져버렸으면 했다. 생각해주는 척.. 나를 바라보는 그 눈길도 모두 다.. 싫다.. 도망치듯.. 술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니.. 그놈.. 소반에.. 김치까지 퍼다 놓고.. 앉았다. “ 그래그래.. 이리 가져와봐.. ” 술을 그놈 곁에 내려놓고는.. 돌아서 나가려는데.. 그놈.. 내 손을 홱 잡아채더니만.. 제 곁에 앉힌다. “ 어린 게.. 승깔은 있어가지구.. 계집애가 나긋나긋한 맛이 있어야지! 그래야 나중에.. 서방한테 사랑받는거야... 알겄냐? 쯧..쯧쯧.. 내 주제에.. 계집 끼구 먹는 술은 꿈도 못 꿔보는데.. 쥐방울만한 너라도.. 술 한잔 따라봐라.. 아~ 뭐해? 어른 말씀하시는데.. 어여! 자자.. “ 그놈의 손이.. 어깨를 스물스물 기어 다니는 것 같아서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술병을 들어.. 얼른 따라 주고는 그놈 손에서 벗어나려는데.. 한 팔로 내 몸을 감고 있는 손에 힘을 꽉 주고는.. 내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세게 움켜쥔다. “ 이거 놔요!! ” 참다 참다.. 있는 힘껏 소릴 지르며, 그 손을 훽 치자, 그놈.. 눈을 부라리며 내 뺨을 내리친다. 그 손에 힘없이.. 휙.. 쓰러진 나는.. 분해서.. 쓰러진 채로.. 그놈을 노려보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뱀 같은 눈으로 날 쏘아보던 그놈 입가에 징그러운 웃음이 흘러나온다.. 순간.. 그놈 얼굴을 보곤.. 겁이 덜컥 나서.. 얼른.. 일어나 도망치려는데..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두 다리가 말을 듣질 않는다.. “ 왜 이래요... 아.. 아부지.. 일어나봐요!! 아부지!! “ 그 뱀 같은 놈이 내 몸을 덮칠 때.. 그 곁에서 정신 놓고 자고 있던.. 내 아비란 자..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 쳐봤자.. 그 자로부터 벗어날 순 없었다. 승냥이 앞에 토끼만도 못한 나로썬.. 그.. 사람 같지 않은 애비라도.. 깨어나 그놈을 내 몸에서 떼어 내주길.. 기도하는 수밖에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뱀 같은 놈이.. 내 몸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을 때.. 울부짖으며.. 내 아비를 간절하게 불렀다... 지 자식이.. 지 옆에서 뭔 일을 당하는 지도 모르고.. 술에 취해 누워 자던.. 내 아비라는 자... 날개가 부러져 땅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새처럼.. 반항도 못하고...갈라진 목소리로.. 그 죽일 놈만 불러대고 있는데.. 그 자가.. 부스스 눈을 뜬다.. ‘ 이제.. 살았구나...’ 싶은 마음도 잠시.. 벌떡 일어나... 주먹이라도 날려주길.. 기대했던.. 그 자는.. 무표정한 눈으로 그 자리에 누운 체로.. 멍하니 제 눈앞의 광경을 쳐다보고만 있다. 마치.. 마당을 지나가는 개미떼라도 보는 양..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그 눈과 마주하는 순간. 난.. 더 이상.. 그자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꽉..깨물고 있던.. 아랫입술에서.. 붉은 피가 베어 나와 입가로 흘러내려도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귓가에서 점점.. 모든 소리들이.. 사라져간다. 그냥.. 가만히.. 눈을 감아버렸다. 다신.. 그 눈을 뜨지 않으리라.. 이대로 죽어버리기를.. 그때. 새끼 잃은 짐승의 울음마냥.. 절박한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잔치 집에서 일해주고 받아온 음식을 양손에 들고, 날 먹일 생각에.. 부지런히 걸어왔을 내 어머니.. 방문을 열고는.. 그 꼴을 보고는 정신이 나간 듯..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맞아서 부어버렸기 때문이였을까? 정말.. 눈이 떠지질 않았다. 겨우 겨우...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떠지지 않는 눈으로 엄마의 모습을 찾는다. “ 읔..... ” 뭔가..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을 짓누르고 있던.. 그놈이 .. 옆으로 고꾸라진다. 엄마... 엄마의 손에.. 피 묻은 칼이 들려있다.. 얼굴에 튄 피를 한 손으로 닦아내며.. 꼼짝도 안하고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끌어다 품에 안는 엄마.. “ 아가... 내 아가... 흑흑흑.... 우리 아가...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정말 미안해... “ 아무렇게나 손에 잡히는 데로.. 이불을 끌어다가 엉망이 되어버린 내 몸을 감싸고는.. 흥건히 젖어오는.. 놈의 더러운 피가 내 몸에 닿지 않게.. 나를 끌어안고 ..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하염없이 울던.. 불쌍한.. 우리 엄마. 그 난리 통에.. 부스스 일어나 앉은 내 아비란 자가.. 방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그놈과..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본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직도 취기가 잔뜩 어린 눈의 그 자가.. 나와 어머니에게로 다가온다.. 날 꼭 껴안고 있는 .. 어머니의 불안한 떨림이.. 내 몸으로 전해진다. 손가락하나도 움직일 수 가 없었는데.. 눈 앞의 엄마의 얼굴도.. 흐릿하게 겨우겨우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그놈을 찌르고.. 엄마 발치에 떨어져 뒹굴던.. 날이 선 부엌칼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망설일 게 없었다.. 진작에.. 했어야 하는 일이였다. 그 놈이.. 엄마에게 다가와.. 떨고 있는 엄마의 어깨를 움켜쥘 때.. 엄마의 품에서.. 빠져나온 난.. 손을 뻗어.. 그 칼을 잡았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짐승의 등 뒤로 가.. 힘껏 찔어넣었다. 손 끝으로 전해지던.. 그놈의 살을 뚫고 들어갈 때의 .. 그 느낌이 손을 펴면.. 지금도.. 남아 있는 듯 하다.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칼 끝을 잡고 서있는 내 마음은.. 그 어느 때 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한참동안.. 시간이 정지된 듯.. 피 비릿내가 진동하는 그 끔찍한 공간에서 엄마와 나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멀리서.. 새벽닭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듣자.. 엄마가.. 정신 나간 사람마냥..이불장을 뒤적이더니 그 자 몰래.. 조금씩 모아두었던.. 돈을 꺼내.. 품안에 넣는다. 내게.. 몇 벌 되지도 않는.. 옷을 몇 겹씩 껴 입히더니.. 나를 등에 업고는.. 새벽길을 뛰기 시작했다. 엄마의 등에 매달려...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아주 오래전에.. 엄마와 난.. 이렇게 떠났어야 했을지 모른다. 조금만 더... 일찍.. 떠났더라면... 그렇게 몇 일 동안을.. 엄마와 난.. 산 속에서 나무뿌리로 허기를 채우며 숨어 지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내 몸을 씻기면서.. 서럽게 울던 엄마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바로.. 어제 일처럼. 짐승 울음소리만 들려오는.. 컴컴한 숲속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잠들던.. 그때가.. 내게는..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였다. 엄마와.. 단 둘이만..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몇 일이 지났을까.. 산을 헤매다 겨우 찾아낸 동굴에서.. 며칠 만에 비바람을 피해 잠이 들 수 있었는데.. 아침이 되어도..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산길을 다닌데 다가..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니.. 겨우 열 세 살 이였던 내 몸이 벼텨주질 못했던 것이다. 열이 올라.. 부들부들 떨면서.. 헛소리까지 해대는 날 안고 어찌하질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엄마가.. 마을로 내려간 것이다. “ 다연아.. 엄마가... 마을에 가서.. 먹을 거랑..약이랑.. 구해올게.. 조금만.. 기다려..알았지? 응? “ 땀으로 흠뻑 젖은 내 머릴 쓰다듬으며 내 저고리 품으로 엽전 몇 닢을 넣어주고는 옷을 목까지 여며 주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면서..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기던 엄마.. 그게.. 내가 본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였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냥.. 잠시 동안 정신이 들때면.. 퉁퉁 부어있는 눈을 겨우 뜨고 어두컴컴한 동굴 구석구석을 살피며..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짜내어.. 엄마를 불러보지만,, 여전히.. 대답 없는.. 엄마.. 그렇게.. 어디인지 모를 꿈속을 헤매이며.. 얼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일까? 눈앞에 흐릿하게.. 사람그림자가 보이는 듯한데.. 엄마는 아니다. 겨우.. 눈을 뜨고 주변을 보니.. 컴컴한 동굴이 아닌.. 움막 같은.. 곳인데.. 세간 하나 변변치 않은 초라한 곳이였지만, 숨어 지내던.. 습기가득하고 컴컴한 동굴에 비하면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 정신이 좀.. 드냐? ” 곁에서.. 짐승 가죽을 벗기고 있던 시커먼 사내가.. 손을 계속 놀리면서 날 바라보며.. 뚝배기 같은 거친 목소리로 묻는다.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도.. 낯선 사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온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심장은 터질듯 방망이질 해댄다. 가슴께에 덮여있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며 그 자의 눈치를 살핀다. “ 살았으니.. 됐다. 송장 치우는 줄 알았어.. ” 조금씩 조금씩 몸을 회복하며... 그 사내가.. 동굴에서 정신을 잃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 자기가 묶고 있던.. 산채로 데려왔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가족도 없이, 홀로 사냥을 하거나, 약초를 캐서 가끔씩.. 장터에 내려가 먹을것과 바꿔오곤 했었다. 밥먹을 때 외에는.. 도무지 굳게 다문 입을 여는 법이 없던 그 사람. 그렇게.. 낯선.. 그곳에서.. 저승문 앞까지 갔다 왔던.. 내..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무조건 경계의 눈으로만 바라봤었지만, 말 한마디 없어도.. 산짐승을 잡아다.. 장에 팔고 올 때면 내가 먹을 과자며.. 떡을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와선.. 잠든 내 머리맡에 슬쩍 꺼내놓고는.. 돌아누워 잠을 청하는 그에게 나 또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 이름도 모르는 아저씨와의 묘한 인연도.. 조금씩 익숙해져 갈 무렵 이였다... 무료한 산속에서의 생활이다 보니.. 몸이 회복되면서 아저씨를 따라 약초캐러 나가곤했었는데.. 이마에 송글송글 땀에 맺힐때쯤 바위위에 앉아 물한모금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길 나누다 보니.. 아저씨의 사연도.. 들을 수 있었다. 아저씬.. 소금장수였다고 했다. 착하고 예쁜아내도 있고, 내 또래의 귀여운 아들도 있다고 했다. " 그런데.. 왜.. 산속에 혼자살아요? "하고 묻자 말없이.. 내 머릴 쓰다듬던.. 아저씨의 눈빛이 많이.. 외로워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조용한.. 하루가 계속되던 어느날, 마을에서 돌아온.. 아저씨가 쫓기는 사람처럼 몇 안돼는 짐을 바쁘게 꾸리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낯선 모습을 보고..불안해진 난.. “ 아저씨.. 왜..그래요? 어디 가요? ” 아마.. 그때 난.. 누군가에게 또다시.. 버려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 그래.. 짐이랄 것도 없겠지만. 너도 챙길게 있음.. 어서 챙겨.. 멀리 가야할지 모르니까.. 필요한 것만.. 넣어라.. “ 영문도 모른 채.. 그의 손을 잡고.. 산길을 도망치듯.. 내 달렸다. 자꾸만.. 엄마 등에 업혀.. 산속을 헤매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계속..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는데.. 우리 뒤쪽으로.. 요란한 말발굽소리와 웅성이는..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 저기다! 게 섯거라!!! ” 그 소리를 듣자 마자.. 자꾸만.. 넘어지는 날 한팔로 들어.. 옆구리에 끼고는.. 정신없이..산길을 달리던 그가.. 갑자기.. “ 읔.. ” 둔탁한 소릴 내뱉으며.. 앞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그의 등에.. 화살이 꽂혀있었다. “ 아저씨!! 아저씨!!. 정신 차려봐요.. ” 비틀거리는 그를.. 겨우겨우.. 부축해서.. 아름드리 나무가 빽빽히 들어선 숲속으로 들어갔다. 마침.. 해가 져.. 어둑해진 터라.. 풀숲에 납작 엎드린 채.. 숨어있던..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그들을 겨우 피할 수 있었다. 가쁜 숨을 겨우겨우 몰아쉬는 그가.. 곁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날 보며 손을 내민다.. 생전.. 처음.. 잡아보는.. 아저씨의 손.. 넓적하고.. 돌처럼.. 딱딱하다.. “ 다리... 다리야.... ” 그의 입에서.. 분명히.. 다리란.. 소리가 나왔다. 내가..그의 입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대자... “ 난... 잘못한 게..없다..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내 아들... 다리에게.. 전해줄래? 니 아버진.. 살인자가..아니라고.... 부탁한다... “ 그말을 겨우 마친.. 아저씬.. 깊은 숨을 몰아내쉰 후.. 잠이 들고는.. 깨어나지 않았다. 무슨 말 이였을까.. 마지막까지.. 내 손을 잡고는.. 울컥 울컥 피를 토하면서도 남기고 싶었던.. 그의 말은.. 무엇이였을까.. 사람들이 북적이는 .. 마을로 내려가는 건.. 정말.. 싫었지만... 내 생명을.. 다시 이어준 아저씨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어떻게든.. 들어주고 싶었다. 겨우..마을로 내려가긴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 라곤 없었다. 그냥.. 무작정.. 장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이 웅성이며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사람들이 오가는.. 성문 앞에.. 아저씨가... 매달려 있었다. 어설픈.. 내 손으로 가려놓은 아저씨의 시신을 우릴 쫓던 그 사람들이 발견했나보다.. 푸르스름하게.. 식어버린.. 아저씨의 목이.. 장대에 꽂힌 채.. 매달려있다. 순간.. 구역질이.. 뱃속부터.. 치밀어 올라. 사람들 틈에서 겨우 벗어나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토악질을 해댄다 먹은 게 없어.. 헛구역질만 몇 번 해대더니.. 노란 위액이 올라온다. “ 쯧쯧.. 저런 게 개죽음이지 뭐야.. 빌어먹을 놈의 세상.. 아~ 지놈들 같으면.. 지 마누라 건드린 놈 가만두겠어! 사또 아니라..사또 할애비라도 가만 못두지.. 에그.. 불쌍한.. 사람.. 죽이지도 못할꺼.. 미련하게.. 거기가 어디라고 혼자 들어가“ “ 에그.. 말은 바로하랬다고.. 살인미수지.. 살인잔가? 지놈들이 한 짓을 생각해야지.. 없이 사는 게 죄여..죄... “ “ 마누라랑.. 아들놈 떼어놓고.. 혼자 도망치는게.. 발걸음이 안떨어져서.. 그랬겠지 뭐.. 멀리나.. 도망가 살지. 떠나지 못하고.. 어물대다가.. 잡혔나부네.. 에그.. 좋...은데나.. 가시게... “ 웅성웅성 모여 있는 이들의 말을 듣고는.. 대충... 아저씨가.. 왜.. 그 산자락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는지.. 알듯.. 했다. 무표정한 눈으로 .. 무슨 못 볼것이나 본 듯.. 인상을 찌부리고 지나쳐가는 사람들 틈에서.. 왠 여자가.. 내 또래의 아이를 데리고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차마.. 그 흉측한 모습을 올려다보지도 못한 채 울고 있는 여자를 보며.. 그의 아내와 그가 말한.. 아들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울고 있는.. 두.. 모자의 앞으로 걸어갔다. 내 또래의 그 사내아이는..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왠지.. 그 눈빛이.. 나같아서.. 밉지 않았다. “ 니가 다리니?" 그 이름을 듣자, 눈물을 훔치며 두 모자가 나를 바라본다. " 저기 있잖아.. 아저씨가.. 너한테 꼭 전해달랬어. 아버진.. 살인자가 아니라고.. 널.. 아주 많이.. 사랑하셨고.. 보고 싶어 하셨어.“ 영문도 모른 체.. 날 바라보고 있던 두 모자. 내 앞에 선.. 그 아이 손을 잡고는.. 아저씨 품에 있던.. 나무인형을 손 안에 쥐어주었다. 말은 한적 없지만.. 밤마다.. 내가 잠들 때 까지 기다렸다가 새벽녘까지.. 서툰 솜씨로.. 인형을 만들던.. 아저씨의 모습을 보았었다. 다리란.. 이름을.. 듣고는.. 그 인형의 주인이.. 그 아이란 걸.. 알았다. 그 인형을 손에 들고.. 한참을 바라보던 아이가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난..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사람인데.. 이 아이에게.. 아버지는.. 그리워.. 눈물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아이가.. 많이.. 부러웠다. ‘아저씨.. 내가.. 다리에게 말해줬으니.. 걱정말고.. 하늘나라고 가세요. ... 이젠.. 어디로 가지?’ 사람들 북적이는.. 마을에선.. 한시도 있을 수가 없었다. 내 옆으로 스쳐지나는 어른들은.. 모두.. 그 더러운 놈같이 보여서.. 자꾸만.. 몸이 움츠러들었다. 안그래도.. 작은 몸을 더욱.. 움츠리고.. 남의 집..담장아래 쭈그리고 앉아있으려니.. 그 집.. 아주머니.. 안되보였던지.. 바가지에.. 밥이며..반찬 몇 가지를 담아나와 내 손에 쥐어준다. “ 에그.. 아직 어려 보이는데... 불쌍해 어쩌누... 몇 살이나 됐니? 사내애야.. 계집아이야?“ 아저씨가.. 어설프게 기워입힌.. 바지에.. 저고리를 입고 덥수룩한 머리에.. 산속을 헤매고 다녀.. 꼬질꼬질한 내 모습을 보고 여자아이라 생각하는 이가 있을 리 없지.. 그.. 아주머니.. 말을 듣고는.. 얼른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하곤.. “ 잘 먹겠습니다. 나이는 열 셋이구요. 사내아이예요“ 허기를 채우고 나자.. 내가 맘놓고 갈곳은 숲 밖에 없었다. 그곳으로 돌아온 난.. 그날부터.. 혼자.. 숲속에서 지냈다. 무섭고.. 외로웠지만.. 사람이 더 무서웠던 그때의 내겐.. 오히려.. 숲이 편했더랬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그들을 만났다. 며칠만에 본.. 사람들 시선에.. 꼼짝도 못하고 눈만 굴릴 때.. 공길이 형이.. 내 손을 잡아줬다.
# 50번째 이야기
Part 2. 장 생
< Episode 3 : 다 리 >
“ 어서.. 도망가!
거기 숨어있으면.. 엄마가.. 엄마가 금세 데리러 갈게..
얼른.. 응? 자.. 어서! “
동구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그 사람의 발자국 소리.
그 소리가 마치 어떤 신호라도 된 냥..
엄마는.. 날 밖으로 내보낸다.
그렇게 떠밀리듯 밖으로 나온 난.
문 앞에서 그 자와 마주치는 끔찍한 일이 없기를 기도하며..
무조건 달린다.
숨이 턱에 차도록 뛰고 또 뛴다.
그렇게 달려서.. 마을 어귀를 벗어나면,
산자락 끄트머리에 외딴 집이 하나 나온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흉가..
그곳으로 들어가 ..
어른 주먹보다 더 큰 쥐들이 우글거리는 방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는다.
자기들의 영역을 침범한 적을 보듯..
그 녀석들은 검은 눈을 번뜩이며..
내 주변을 분주히 오간다.
마을사람들 모두 재수 없다며 근처에도 오지 않는 흉가도..
발밑을 우글거리는 벌레와 쥐들도..
천길 낭떠러지 끝에 서있는 듯..갈곳없는 내겐
죽기보다 싫어도 내 발로 들어가야 하는 유일한 피난처였다.
이 끔찍한 악몽이.. 언제까지 되풀이 될까?
모든 것이..그날 이후로.. 달라져 버렸다.
그 자.. 내 아비란 그자는.. 꽤 이름난 목수였다.
제법 이름이 나있던 터라..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근방의 유명한 절도 짓고,,
으리으리한 양반 댁 공사 때도 항상 불려 다녔기에..
그 시절엔.. 우린형편이 꽤 넉넉한 집이였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 하지만,
그래..
그때.. 내가 그자를 아비라 부르던 그때..
해질녘이면 양 손에 장터에서 사온 주전부리며,
찬거리를 가득 사들고 집 마당으로 들어서며 내 이름을 불렀었다.
뛰어나가 안기는 나를 한 팔에 번쩍 들고는..
덥수룩하게 수염 난 얼굴을 내 볼에 비비던.. 건장한 사내..
그 자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의 든든한 아버지.. 내가 사랑했던.. 아버지 말이다.
내가 대 여섯 살 되던 무렵이였다.
근처 큰 절을 짓는 곳에 일을 하러 갔다가,
지붕을 올리던 중..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추락하는사고를 당한것이 말이다.
그날 이후,
건장하고.. 쾌활하던 사내는..
내가 사랑하던 내 아버지는.. 죽었다.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된 그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사랑했던 아버지가 아니였다
절름발이가 되자,
아무리 이름난 목수였다 하더라도
더 이상 그를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일을 못하게 된 그는 점점 술에 취해있는 날이 많아졌다.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으로 점점 난폭해지기만 했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언제나 그득했던 우리 집 쌀독도 바닥이 드러났다.
결국 세 식구 생계를 떠맡게 된 엄마가
이집 저집 품팔이를 하며 근근히 세 식구 연명하게 되었는데..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가고 집을 비운 그 시간이..
내겐.. 지옥 같은 시간 이였다.
처음엔.. 근처 술도가에 가서 외상술을 얻어오라며
한 두 대 쥐어박는 정도였다.
헌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손찌검하는 정도는 점점 심해졌고,
내 온몸엔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처음엔.. 이리저리 도망도 쳐보고,
울며불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려도 보았다.
하지만..
겨우 일곱 살짜리 어린애에겐
그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산과 같은 존재였다.
내 몸에 하루만큼씩 늘어가는 상처들이..
내 짤막한.. 행복한 유년의 기억들을.. 하나씩 지워갔다..
하루 종일.. 이집 저집 궂은일을 다 해주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불쌍한..우리 엄마.
지친 엄마가 쉴 곳은.. 없었다.
엄마가 들어오는.. 어스름한 저녁 무렵이 되면..
그자는.. 술기운에 곯아떨어져 있다가..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욕을 퍼붓기 시작한다.
그자의 입에서 쉴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을..
화 한번 내지 못하고, 죄인처럼 듣고 있던 엄마..
그럴 때면..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나를 품에 안고는
내 양쪽 귀를 막아주던.. 내.. 어머니...
그 끝날 것 같지 않던.. 지옥 같은 시간이..
육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 시간은..
내게서.. 그 또래 아이의 명랑한 웃음을.. 앗아갔고,
사라져버린 아이다움 대신,
사람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을 가득 채워줬다.
내 마음은..
이미.. 열 세 살 아이의 그것이..아니였다.
매일 매일을 기도했다.
그 자가..죽게 해달라고..
제발.. 엄마와 내 곁에서.. 사라져버리게 해달라고...
그렇게만 해준다면... 뭐든.. 다 하겠다고..
마을 어귀의.. 당산나무 아래서.. 매일을 기도했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이뤄졌다.
아니.. 내 손으로 이뤘다.
어머니가 돌아오실 해질녘이 될 때까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나무아래서 홀로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길이였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기분이 이랬을까?
한발 한발 뗄수록.. 마치.. 내 발로..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것 마냥
집이 가까워질수록.. 내 다리는.. 천근만근이 되고..
내 심장은.. 두려움에 방망이질 했다.
내가.. 그 지옥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를 품에 안고.. 뭇매를.. 막아내던.. 불쌍한.. 우리엄마 때문이였다.
집에 돌아온 엄마가 ..
나없는 그 지옥에 홀로 남겨지길 바라진 않았으니까..
집 앞까지 다 가서도.. 들어가지 못하고
엄마가 오셨나..까치발로 서서..
집안과 엄마가 걸어오실.. 동네 어귀를 번갈아 바라보며..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는 데..
엄마가.. 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엄마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점점 불안한 마음에.. 집 앞을 서성이다가..
혹시나 해서.. 살짝.. 방문을 열어보니..
역한 술 냄새를 풍기며 그자가 방 한가운데 너부러져 있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방 앞 툇마루에 걸터 앉아있는데..
싸릿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 엄마야? ”
하고는.. 얼른 일어나 쫓아나가니..
두 집 건너 살고 있는 더벅머리 삼촌이다.
내 아비란 자와 나이 뻘이 비슷한데도..
일도 안하고 동네 한량처럼 여기저기 사고나 치고 다녀서..
동네에서도 소문이 좋지 않은 자였다.
나도..틈만 나면 .. 술취한 아비와 둘이 있는 게 싫어서
하루 종일 밖에 있었고
엄마는.. 품팔이하러 가느라.. 저녁 늦게야 돌아오니..
언제 부턴가..
눈치 볼 사람 없는.. 우리집을 무시로 드나들며,,
둘이 앉아 .. 늦도록 술판을 벌이곤 했었다.
뱀 같은 눈을 굴리며.. 마당에 쭈뼛쭈뼛 서있는 나를 슬쩍 보더니..
“ 아부지 안에 계시냐? ”하며..
제 집인 냥.. 방안으로.. 쓱.. 들어선다.
잠시 후 , 문을 삐끔히 열어젖히고는
“ 술 있냐? 술 좀 받아와라.. ”
내가.. 대꾸도 없이.. 문 앞에 선 채로
그 뱀 같은 놈을 쏘아보고 있자
엽전 한 닢을 내 발 앞으로 휙 던지더니..
“ 하긴.. 외상술을 하도 쳐먹어서.. 줄턱이 없지..
그거 갖고 가서.. 좀 받아와!“
어린 나이가 원망스럽다..
또래보다.. 머리하나는 작은 내 몸이 원망스럽다..
어서어서 어른이 되면.. 저런 놈이 나한테 함부로 굴지 못하게 할 텐데...
가슴 한구석이..체한 것처럼..답답하다.
터덜터덜..술도가에 들어서니 ..
주인아주머니.. 내 머릴 쓰다듬으며..
“ 쯧쯧쯧....
어미도 돈 버느라.. 얼굴 볼틈이 없고..
주정뱅이 애비에.. 것도 모자라.. 불한당같은 놈이 무시로 드나들고..
어린 것이.. 불쌍해 어쩐다... 쯧쯧... “
이젠.. 동네 어른들의.. 그런..동정어린 말조차도 증오스럽다.
자기들이 뭘 안다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엄마와 내가 짐승처럼 맞으면서.. 도망나올 땐..
길가에 모여 나와 구경거리라도 난 양..
수근 거리던.. 동네사람들..
전부.. 없어져버렸으면 했다.
생각해주는 척.. 나를 바라보는 그 눈길도 모두 다.. 싫다..
도망치듯.. 술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니..
그놈.. 소반에.. 김치까지 퍼다 놓고.. 앉았다.
“ 그래그래.. 이리 가져와봐.. ”
술을 그놈 곁에 내려놓고는.. 돌아서 나가려는데..
그놈.. 내 손을 홱 잡아채더니만.. 제 곁에 앉힌다.
“ 어린 게.. 승깔은 있어가지구..
계집애가 나긋나긋한 맛이 있어야지!
그래야 나중에.. 서방한테 사랑받는거야... 알겄냐?
쯧..쯧쯧..
내 주제에.. 계집 끼구 먹는 술은 꿈도 못 꿔보는데..
쥐방울만한 너라도.. 술 한잔 따라봐라..
아~ 뭐해? 어른 말씀하시는데.. 어여! 자자.. “
그놈의 손이.. 어깨를 스물스물 기어 다니는 것 같아서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술병을 들어.. 얼른 따라 주고는
그놈 손에서 벗어나려는데..
한 팔로 내 몸을 감고 있는 손에 힘을 꽉 주고는..
내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세게 움켜쥔다.
“ 이거 놔요!! ”
참다 참다.. 있는 힘껏 소릴 지르며,
그 손을 훽 치자,
그놈.. 눈을 부라리며 내 뺨을 내리친다.
그 손에 힘없이.. 휙.. 쓰러진 나는..
분해서.. 쓰러진 채로.. 그놈을 노려보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뱀 같은 눈으로 날 쏘아보던 그놈 입가에 징그러운 웃음이 흘러나온다..
순간.. 그놈 얼굴을 보곤.. 겁이 덜컥 나서..
얼른.. 일어나 도망치려는데..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두 다리가 말을 듣질 않는다..
“ 왜 이래요...
아.. 아부지.. 일어나봐요!!
아부지!! “
그 뱀 같은 놈이 내 몸을 덮칠 때..
그 곁에서 정신 놓고 자고 있던.. 내 아비란 자..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 쳐봤자.. 그 자로부터 벗어날 순 없었다.
승냥이 앞에 토끼만도 못한 나로썬..
그.. 사람 같지 않은 애비라도.. 깨어나
그놈을 내 몸에서 떼어 내주길.. 기도하는 수밖에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뱀 같은 놈이.. 내 몸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을 때..
울부짖으며.. 내 아비를 간절하게 불렀다...
지 자식이.. 지 옆에서 뭔 일을 당하는 지도 모르고..
술에 취해 누워 자던.. 내 아비라는 자...
날개가 부러져 땅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새처럼..
반항도 못하고...갈라진 목소리로.. 그 죽일 놈만 불러대고 있는데..
그 자가.. 부스스 눈을 뜬다..
‘ 이제.. 살았구나...’
싶은 마음도 잠시..
벌떡 일어나... 주먹이라도 날려주길.. 기대했던.. 그 자는..
무표정한 눈으로 그 자리에 누운 체로..
멍하니 제 눈앞의 광경을 쳐다보고만 있다.
마치.. 마당을 지나가는 개미떼라도 보는 양..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그 눈과 마주하는 순간.
난.. 더 이상.. 그자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꽉..깨물고 있던.. 아랫입술에서..
붉은 피가 베어 나와 입가로 흘러내려도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귓가에서 점점.. 모든 소리들이.. 사라져간다.
그냥.. 가만히.. 눈을 감아버렸다.
다신.. 그 눈을 뜨지 않으리라.. 이대로 죽어버리기를..
그때.
새끼 잃은 짐승의 울음마냥..
절박한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잔치 집에서 일해주고 받아온 음식을 양손에 들고,
날 먹일 생각에.. 부지런히 걸어왔을 내 어머니..
방문을 열고는.. 그 꼴을 보고는
정신이 나간 듯..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맞아서 부어버렸기 때문이였을까?
정말.. 눈이 떠지질 않았다.
겨우 겨우...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떠지지 않는 눈으로 엄마의 모습을 찾는다.
“ 읔..... ”
뭔가..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을 짓누르고 있던.. 그놈이 ..
옆으로 고꾸라진다.
엄마... 엄마의 손에.. 피 묻은 칼이 들려있다..
얼굴에 튄 피를 한 손으로 닦아내며..
꼼짝도 안하고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끌어다 품에 안는 엄마..
“ 아가... 내 아가...
흑흑흑.... 우리 아가...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정말 미안해... “
아무렇게나 손에 잡히는 데로.. 이불을 끌어다가
엉망이 되어버린 내 몸을 감싸고는..
흥건히 젖어오는.. 놈의 더러운 피가 내 몸에 닿지 않게..
나를 끌어안고 ..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하염없이 울던..
불쌍한.. 우리 엄마.
그 난리 통에.. 부스스 일어나 앉은 내 아비란 자가..
방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그놈과..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본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직도 취기가 잔뜩 어린 눈의 그 자가..
나와 어머니에게로 다가온다..
날 꼭 껴안고 있는 .. 어머니의 불안한 떨림이.. 내 몸으로 전해진다.
손가락하나도 움직일 수 가 없었는데..
눈 앞의 엄마의 얼굴도.. 흐릿하게 겨우겨우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그놈을 찌르고.. 엄마 발치에 떨어져 뒹굴던..
날이 선 부엌칼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망설일 게 없었다..
진작에.. 했어야 하는 일이였다.
그 놈이.. 엄마에게 다가와.. 떨고 있는 엄마의 어깨를 움켜쥘 때..
엄마의 품에서.. 빠져나온 난.. 손을 뻗어.. 그 칼을 잡았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짐승의 등 뒤로 가.. 힘껏 찔어넣었다.
손 끝으로 전해지던.. 그놈의 살을 뚫고 들어갈 때의 .. 그 느낌이
손을 펴면.. 지금도.. 남아 있는 듯 하다.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칼 끝을 잡고 서있는 내 마음은..
그 어느 때 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한참동안.. 시간이 정지된 듯..
피 비릿내가 진동하는 그 끔찍한 공간에서
엄마와 나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멀리서.. 새벽닭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듣자..
엄마가.. 정신 나간 사람마냥..이불장을 뒤적이더니
그 자 몰래.. 조금씩 모아두었던.. 돈을 꺼내.. 품안에 넣는다.
내게.. 몇 벌 되지도 않는.. 옷을 몇 겹씩 껴 입히더니..
나를 등에 업고는.. 새벽길을 뛰기 시작했다.
엄마의 등에 매달려...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아주 오래전에..
엄마와 난.. 이렇게 떠났어야 했을지 모른다.
조금만 더... 일찍.. 떠났더라면...
그렇게 몇 일 동안을..
엄마와 난.. 산 속에서 나무뿌리로 허기를 채우며 숨어 지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내 몸을 씻기면서..
서럽게 울던 엄마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바로.. 어제 일처럼.
짐승 울음소리만 들려오는.. 컴컴한 숲속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잠들던.. 그때가..
내게는..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였다.
엄마와.. 단 둘이만..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몇 일이 지났을까..
산을 헤매다 겨우 찾아낸 동굴에서..
며칠 만에 비바람을 피해 잠이 들 수 있었는데..
아침이 되어도..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산길을 다닌데 다가..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니..
겨우 열 세 살 이였던 내 몸이 벼텨주질 못했던 것이다.
열이 올라.. 부들부들 떨면서.. 헛소리까지 해대는 날 안고
어찌하질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엄마가..
마을로 내려간 것이다.
“ 다연아.. 엄마가... 마을에 가서..
먹을 거랑..약이랑.. 구해올게.. 조금만.. 기다려..알았지? 응? “
땀으로 흠뻑 젖은 내 머릴 쓰다듬으며
내 저고리 품으로 엽전 몇 닢을 넣어주고는
옷을 목까지 여며 주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면서..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기던 엄마..
그게.. 내가 본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였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냥.. 잠시 동안 정신이 들때면..
퉁퉁 부어있는 눈을 겨우 뜨고
어두컴컴한 동굴 구석구석을 살피며..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짜내어.. 엄마를 불러보지만,,
여전히.. 대답 없는.. 엄마..
그렇게..
어디인지 모를 꿈속을 헤매이며..
얼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일까?
눈앞에 흐릿하게.. 사람그림자가 보이는 듯한데..
엄마는 아니다.
겨우.. 눈을 뜨고 주변을 보니..
컴컴한 동굴이 아닌.. 움막 같은.. 곳인데..
세간 하나 변변치 않은 초라한 곳이였지만,
숨어 지내던.. 습기가득하고 컴컴한 동굴에 비하면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 정신이 좀.. 드냐? ”
곁에서.. 짐승 가죽을 벗기고 있던 시커먼 사내가..
손을 계속 놀리면서 날 바라보며.. 뚝배기 같은 거친 목소리로 묻는다.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도..
낯선 사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온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심장은 터질듯 방망이질 해댄다.
가슴께에 덮여있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며 그 자의 눈치를 살핀다.
“ 살았으니.. 됐다.
송장 치우는 줄 알았어.. ”
조금씩 조금씩 몸을 회복하며...
그 사내가.. 동굴에서 정신을 잃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
자기가 묶고 있던.. 산채로 데려왔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가족도 없이, 홀로 사냥을 하거나, 약초를 캐서
가끔씩.. 장터에 내려가 먹을것과 바꿔오곤 했었다.
밥먹을 때 외에는..
도무지 굳게 다문 입을 여는 법이 없던 그 사람.
그렇게.. 낯선.. 그곳에서..
저승문 앞까지 갔다 왔던.. 내..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무조건 경계의 눈으로만 바라봤었지만,
말 한마디 없어도.. 산짐승을 잡아다.. 장에 팔고 올 때면
내가 먹을 과자며.. 떡을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와선..
잠든 내 머리맡에 슬쩍 꺼내놓고는..
돌아누워 잠을 청하는 그에게
나 또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 이름도 모르는 아저씨와의 묘한 인연도..
조금씩 익숙해져 갈 무렵 이였다...
무료한 산속에서의 생활이다 보니..
몸이 회복되면서
아저씨를 따라 약초캐러 나가곤했었는데..
이마에 송글송글 땀에 맺힐때쯤
바위위에 앉아 물한모금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길 나누다 보니..
아저씨의 사연도.. 들을 수 있었다.
아저씬.. 소금장수였다고 했다.
착하고 예쁜아내도 있고, 내 또래의 귀여운 아들도 있다고 했다.
" 그런데.. 왜.. 산속에 혼자살아요? "하고 묻자
말없이.. 내 머릴 쓰다듬던.. 아저씨의 눈빛이
많이.. 외로워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조용한.. 하루가 계속되던 어느날,
마을에서 돌아온.. 아저씨가
쫓기는 사람처럼 몇 안돼는 짐을 바쁘게 꾸리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낯선 모습을 보고..불안해진 난..
“ 아저씨.. 왜..그래요?
어디 가요? ”
아마.. 그때 난..
누군가에게 또다시.. 버려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 그래.. 짐이랄 것도 없겠지만.
너도 챙길게 있음.. 어서 챙겨..
멀리 가야할지 모르니까.. 필요한 것만.. 넣어라.. “
영문도 모른 채.. 그의 손을 잡고..
산길을 도망치듯.. 내 달렸다.
자꾸만.. 엄마 등에 업혀.. 산속을 헤매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계속..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는데..
우리 뒤쪽으로.. 요란한 말발굽소리와
웅성이는..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 저기다! 게 섯거라!!! ”
그 소리를 듣자 마자..
자꾸만.. 넘어지는 날 한팔로 들어.. 옆구리에 끼고는..
정신없이..산길을 달리던 그가..
갑자기.. “ 읔.. ” 둔탁한 소릴 내뱉으며..
앞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그의 등에.. 화살이 꽂혀있었다.
“ 아저씨!! 아저씨!!. 정신 차려봐요.. ”
비틀거리는 그를.. 겨우겨우.. 부축해서..
아름드리 나무가 빽빽히 들어선 숲속으로 들어갔다.
마침.. 해가 져.. 어둑해진 터라..
풀숲에 납작 엎드린 채.. 숨어있던..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그들을 겨우 피할 수 있었다.
가쁜 숨을 겨우겨우 몰아쉬는 그가..
곁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날 보며 손을 내민다..
생전.. 처음.. 잡아보는.. 아저씨의 손..
넓적하고.. 돌처럼.. 딱딱하다..
“ 다리... 다리야.... ”
그의 입에서.. 분명히.. 다리란.. 소리가 나왔다.
내가..그의 입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대자...
“ 난... 잘못한 게..없다..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내 아들... 다리에게.. 전해줄래?
니 아버진.. 살인자가..아니라고....
부탁한다... “
그말을 겨우 마친.. 아저씬..
깊은 숨을 몰아내쉰 후.. 잠이 들고는..
깨어나지 않았다.
무슨 말 이였을까..
마지막까지.. 내 손을 잡고는..
울컥 울컥 피를 토하면서도 남기고 싶었던.. 그의 말은.. 무엇이였을까..
사람들이 북적이는 .. 마을로 내려가는 건.. 정말.. 싫었지만...
내 생명을.. 다시 이어준 아저씨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어떻게든.. 들어주고 싶었다.
겨우..마을로 내려가긴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 라곤 없었다.
그냥.. 무작정.. 장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이 웅성이며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사람들이 오가는.. 성문 앞에.. 아저씨가... 매달려 있었다.
어설픈.. 내 손으로 가려놓은 아저씨의 시신을
우릴 쫓던 그 사람들이 발견했나보다..
푸르스름하게.. 식어버린.. 아저씨의 목이..
장대에 꽂힌 채.. 매달려있다.
순간.. 구역질이.. 뱃속부터.. 치밀어 올라.
사람들 틈에서 겨우 벗어나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토악질을 해댄다
먹은 게 없어.. 헛구역질만 몇 번 해대더니.. 노란 위액이 올라온다.
“ 쯧쯧.. 저런 게 개죽음이지 뭐야..
빌어먹을 놈의 세상..
아~ 지놈들 같으면.. 지 마누라 건드린 놈 가만두겠어!
사또 아니라..사또 할애비라도 가만 못두지..
에그.. 불쌍한.. 사람..
죽이지도 못할꺼.. 미련하게.. 거기가 어디라고 혼자 들어가“
“ 에그.. 말은 바로하랬다고..
살인미수지.. 살인잔가?
지놈들이 한 짓을 생각해야지..
없이 사는 게 죄여..죄... “
“ 마누라랑.. 아들놈 떼어놓고..
혼자 도망치는게.. 발걸음이 안떨어져서.. 그랬겠지 뭐..
멀리나.. 도망가 살지.
떠나지 못하고.. 어물대다가.. 잡혔나부네..
에그..
좋...은데나.. 가시게... “
웅성웅성 모여 있는 이들의 말을 듣고는..
대충... 아저씨가.. 왜.. 그 산자락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는지..
알듯.. 했다.
무표정한 눈으로 ..
무슨 못 볼것이나 본 듯.. 인상을 찌부리고 지나쳐가는 사람들 틈에서..
왠 여자가.. 내 또래의 아이를 데리고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차마.. 그 흉측한 모습을 올려다보지도 못한 채
울고 있는 여자를 보며..
그의 아내와 그가 말한.. 아들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울고 있는.. 두.. 모자의 앞으로 걸어갔다.
내 또래의 그 사내아이는..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왠지.. 그 눈빛이.. 나같아서.. 밉지 않았다.
“ 니가 다리니?"
그 이름을 듣자,
눈물을 훔치며 두 모자가 나를 바라본다.
" 저기 있잖아..
아저씨가.. 너한테 꼭 전해달랬어.
아버진.. 살인자가 아니라고..
널.. 아주 많이.. 사랑하셨고.. 보고 싶어 하셨어.“
영문도 모른 체.. 날 바라보고 있던 두 모자.
내 앞에 선.. 그 아이 손을 잡고는..
아저씨 품에 있던.. 나무인형을 손 안에 쥐어주었다.
말은 한적 없지만..
밤마다.. 내가 잠들 때 까지 기다렸다가
새벽녘까지.. 서툰 솜씨로.. 인형을 만들던.. 아저씨의 모습을 보았었다.
다리란.. 이름을.. 듣고는..
그 인형의 주인이.. 그 아이란 걸.. 알았다.
그 인형을 손에 들고.. 한참을 바라보던 아이가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난..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사람인데..
이 아이에게.. 아버지는..
그리워.. 눈물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아이가.. 많이.. 부러웠다.
‘아저씨..
내가.. 다리에게 말해줬으니..
걱정말고.. 하늘나라고 가세요.
...
이젠.. 어디로 가지?’
사람들 북적이는.. 마을에선.. 한시도 있을 수가 없었다.
내 옆으로 스쳐지나는 어른들은..
모두.. 그 더러운 놈같이 보여서..
자꾸만.. 몸이 움츠러들었다.
안그래도.. 작은 몸을 더욱.. 움츠리고..
남의 집..담장아래 쭈그리고 앉아있으려니..
그 집.. 아주머니.. 안되보였던지..
바가지에.. 밥이며..반찬 몇 가지를 담아나와 내 손에 쥐어준다.
“ 에그.. 아직 어려 보이는데...
불쌍해 어쩌누...
몇 살이나 됐니?
사내애야.. 계집아이야?“
아저씨가.. 어설프게 기워입힌.. 바지에.. 저고리를 입고
덥수룩한 머리에..
산속을 헤매고 다녀.. 꼬질꼬질한 내 모습을 보고
여자아이라 생각하는 이가 있을 리 없지..
그.. 아주머니.. 말을 듣고는..
얼른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하곤..
“ 잘 먹겠습니다.
나이는 열 셋이구요.
사내아이예요“
허기를 채우고 나자.. 내가 맘놓고 갈곳은 숲 밖에 없었다.
그곳으로 돌아온 난..
그날부터.. 혼자.. 숲속에서 지냈다.
무섭고.. 외로웠지만..
사람이 더 무서웠던 그때의 내겐.. 오히려.. 숲이 편했더랬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그들을 만났다.
며칠만에 본.. 사람들 시선에..
꼼짝도 못하고 눈만 굴릴 때..
공길이 형이.. 내 손을 잡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