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보고 지금 오만원짜리 사과를 갖다 팔라고? 코앞에 마트는 허구헌날 세일 때리는데 누구 쥑일라카나? 만삼천원짜리, 이거 칼질 좀 해서 줘라.”
칼질! 과일 시장에 과일 사러 와서 웬 칼질?
화곡동에서 ‘구루마’ 장사하는 이 아저씨는 구사하는 단어들도 전부 조폭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것들뿐이다. 깎아달라는 말도 꼭 칼질을 해달라는 말로 대신한다.
‘여기서 뭘 얼마나 더 칼질을 해? 시장을 다 뒤져봐라. 만삼천원짜리 사과가 있나. 다른 데 가면 이 값으로는 사지도 못한다는 거 자기가 더 잘 알면서 만날 그러더라.”
실랑이가 오가는데, 가게 구석에서 한 여자가 “저기요……” 하고 가게 주인인 언니를 불렀다.
“이런 거는 값이 얼마나 나가요?”
언제 들어왔는지 낯선 여자는 사과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아 있다. 그 사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주일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아 집에나 갖다먹어야할까 하던 것이었다. 만원만 내고 가져가라니까 여자는 벌떡 일어나 지갑을 열었다. 돈 만원을 꺼내면서 그렇게 뜸을 들일 수가 없었다. 별로 뒤질 것도 없어 보이는 지갑을 이리 뒤지고 저리 뒤지더니 여자는 십원짜리 동전까지 합쳐서 겨우 돈 만원을 만들어 내놓았다.
순간, 여자의 발밑에 쪼그려 앉아있던 아이들이 공처럼 튀어 올랐다.
“그러면 이제 이거 우리 사과야?”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둘째 아이가 여자를 올려다보는데 그 눈빛이 어찌나 간절한지 여자보다도 먼저 우리가 “그래, 그래.” 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와아!” 세 아이는 동시에 환호성을 내지르며 이제 막 저희 것이 된 사과 상자 앞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들여다 보고 만져본다. 그러고보니 아이들이 뭔가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세상에! 다 물러서 날파리들이 잔뜩 꼬인 포도알을 따 먹고 있지 뭔가!
막내가 물이 줄줄 흐르는 포도알을 말라비틀어진 줄기에서 떼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맏이가 동생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그리고는 제 입에 넣으려던 좀 나은 것을 동생 입에 넣어주는 것이었다.
언니와 나는 순간 멍해져 우두커니 서 있는데 조폭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야! 니들은 포도 맛도 모르나. 이런 거는 맛이 없어. 포도는 있지, 이런 게 진짜 맛있는 거라니까.”
별명이 조폭인 과일 장수는 자기가 팔려고 산 거봉 한 상자를 아이들 앞에 내놓고는 껍질까지 까서 아이들 입에 넣어주었다. 여자는 연신 허리를 숙여가며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덕분에 저희도 이번 추석엔 과일을 먹어 보네요. 좋기는 한데… 집이 멀어서 사과상자를 어떻게 가져가야 될지… 죄송하지만 봉투에 나눠서 담아갈 수 있을까요?”
가게 밖에서 안쪽의 일을 들여다 보던 용달차 기사가 달려 들어왔다. 집이 어디쇼?
그날, 시장 사람들은 추석을 하루 앞으로 남겨놓고 너나 없이 대목을 보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런데 이 돈독이 잔뜩 오른 상인들이 이번엔 여자에게 줄 것이 뭐가 없나 하고 눈에 불을 켜기 시작했다. 어떤 집에서는 사과를, 어떤 집에서는 배를 가지고 나왔다. 흠집이 나서 팔 수 없는 것들이 모여 빈 상자를 가득 채웠다.
여자는 용달차에 돈 만원을 주고 산 사과 상자 하나와 상인들의 마음으로 채워진 상자 하나를 더 싣고 돌아갔다.
지금도 나는 추석만 되면 “우리 사과”라는 말에 스며있던 그 아이의 간절함과 흠집 난 과일들로 꾸려졌던 상자 하나가 떠오르곤 한다.
[작가 이명랑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영등포 시장 안에서 작은 식당을 하는 친정 어머니를 비롯해 온 가족이 영등포와 가양동에서 과일 가게를 하고 있다. 장편 ‘꽃을 던지고 싶다’ ‘나의 이복형제들’과 연작소설집 ‘삼오식당’ 등이 있다.
이제 이거 우리 사과야?
영등포 시장, 언니네 과일 가게로 단골 손님이 들어왔다.
“사과가 와 이래? 깔이 안 나잖어.”
들어오기가 무섭게 사과 상자들을 죄다 까뒤집으며 트집이다.
“만 삼천 원짜리가 이 정도면 준수하지.
그림 같은 것도 있어. 오만 원이야.”
“내보고 지금 오만원짜리 사과를 갖다 팔라고?
코앞에 마트는 허구헌날 세일 때리는데 누구 쥑일라카나?
만삼천원짜리, 이거 칼질 좀 해서 줘라.”
칼질! 과일 시장에 과일 사러 와서 웬 칼질?
화곡동에서 ‘구루마’ 장사하는 이 아저씨는
구사하는 단어들도 전부 조폭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것들뿐이다.
깎아달라는 말도 꼭 칼질을 해달라는 말로 대신한다.
‘여기서 뭘 얼마나 더 칼질을 해? 시장을 다 뒤져봐라.
만삼천원짜리 사과가 있나.
다른 데 가면 이 값으로는 사지도 못한다는 거
자기가 더 잘 알면서 만날 그러더라.”
실랑이가 오가는데, 가게 구석에서 한 여자가
“저기요……” 하고 가게 주인인 언니를 불렀다.
“이런 거는 값이 얼마나 나가요?”
언제 들어왔는지 낯선 여자는 사과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아 있다.
그 사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주일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아
집에나 갖다먹어야할까 하던 것이었다.
만원만 내고 가져가라니까 여자는 벌떡 일어나 지갑을 열었다.
돈 만원을 꺼내면서 그렇게 뜸을 들일 수가 없었다.
별로 뒤질 것도 없어 보이는 지갑을 이리 뒤지고 저리 뒤지더니
여자는 십원짜리 동전까지 합쳐서 겨우 돈 만원을 만들어 내놓았다.
순간, 여자의 발밑에 쪼그려 앉아있던 아이들이 공처럼 튀어 올랐다.
“그러면 이제 이거 우리 사과야?”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둘째 아이가 여자를 올려다보는데
그 눈빛이 어찌나 간절한지 여자보다도 먼저 우리가
“그래, 그래.” 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와아!” 세 아이는 동시에 환호성을 내지르며
이제 막 저희 것이 된 사과 상자 앞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들여다 보고 만져본다.
그러고보니 아이들이 뭔가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세상에! 다 물러서 날파리들이 잔뜩 꼬인 포도알을 따 먹고 있지 뭔가!
막내가 물이 줄줄 흐르는 포도알을 말라비틀어진 줄기에서 떼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맏이가 동생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그리고는 제 입에 넣으려던 좀 나은 것을 동생 입에 넣어주는 것이었다.
언니와 나는 순간 멍해져 우두커니 서 있는데
조폭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야! 니들은 포도 맛도 모르나. 이런 거는 맛이 없어.
포도는 있지, 이런 게 진짜 맛있는 거라니까.”
별명이 조폭인 과일 장수는 자기가 팔려고 산 거봉 한 상자를
아이들 앞에 내놓고는 껍질까지 까서 아이들 입에 넣어주었다.
여자는 연신 허리를 숙여가며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덕분에 저희도 이번 추석엔 과일을 먹어 보네요.
좋기는 한데… 집이 멀어서 사과상자를 어떻게 가져가야 될지…
죄송하지만 봉투에 나눠서 담아갈 수 있을까요?”
가게 밖에서 안쪽의 일을 들여다 보던 용달차 기사가 달려 들어왔다.
집이 어디쇼?
그날, 시장 사람들은 추석을 하루 앞으로 남겨놓고
너나 없이 대목을 보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런데 이 돈독이 잔뜩 오른 상인들이
이번엔 여자에게 줄 것이 뭐가 없나 하고 눈에 불을 켜기 시작했다.
어떤 집에서는 사과를, 어떤 집에서는 배를 가지고 나왔다.
흠집이 나서 팔 수 없는 것들이 모여 빈 상자를 가득 채웠다.
여자는 용달차에 돈 만원을 주고 산 사과 상자 하나와
상인들의 마음으로 채워진 상자 하나를 더 싣고 돌아갔다.
지금도 나는 추석만 되면
“우리 사과”라는 말에 스며있던 그 아이의 간절함과
흠집 난 과일들로 꾸려졌던 상자 하나가 떠오르곤 한다.
[작가 이명랑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영등포 시장 안에서 작은 식당을 하는 친정 어머니를 비롯해 온 가족이 영등포와 가양동에서 과일 가게를 하고 있다. 장편 ‘꽃을 던지고 싶다’ ‘나의 이복형제들’과 연작소설집 ‘삼오식당’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