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6,17 모노노케 히메

전중재200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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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 자연을 지배하다

우리들이 어릴때 즐겨읽던 동화, 가령 [헨젤과 그레텔] 같은 이야기들을 보면 항상 삼림-숲은 어둡고 두려움과 공포를 주는, 그리하여 반드시 벗어나야할 인간 문명의 적처럼 묘사되죠. 그 곳엔 괴물, 야수나 마귀할멈 등 위험만이 득실대는 곳이니까요.
뿐만 아니라 사실 지금껏 인류역사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투쟁과 지배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죠.
태초에 논밭이나 집들이 어디 있었나요. 다 인간들이 나무베고 풀을 깎고 강들을 막아세운게 결국 마을이 되고 식량이 되고, 인간이 재생산하면서부터 문명이 시작되었던 것 아닙니까.
가령, 지금 전쟁으로 신음하는 저주의 땅 이라크는 옛날 인류 최고의 메소포타미아문명 발상지죠.
그중에서도 5천년전 최초의 도시인 우룩의 신화에는 영웅 길가메시 얘기가 나오죠. 헌데 길가메시의 업적은 거대한 숲의 수호자인 훔바바를 죽이고, 그 숲을 인간이 이용할 수 있게 한거죠. 더욱이 숲에서 짐승들과 함께 자란 용사 엔키두와 싸워 그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문명의 세계로 인도하는 장면도 나오죠. 또 그리스신화에도 프로메테우스가 자연속에서 허약하기 이를데없는 인간에게 불을 줌으로써, 그 불과 나무로 무기나 배, 집들을 만들게 함으로써 문명이 시작되게 하죠. 결국 숲은 인간문명 발전을 위해선 제거되거나 이용될 자원의 보고인 셈이죠. 사실 근대에 석탄, 그리고 석유가 주요 에너지원이 되기 전까진 목재와 그것을 태운 숯이 에너지원이었잖아요.
그리하여 삼림의 개간이 진행되고 마을과 인구가 커져갈수록 자연신들을 절대화해 모시는 애니미즘 대신 인간 형상을 한, 인간중심의 신들을 섬기는 고대종교들이 나타나는 것이구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영화속 숲의 자연신(애니미즘)들을 보면, 신화속 상징들이 떠오릅니다.
우선, '재앙신'으로 나타난 멧돼지의 경우, 많은 신화에서 욕망과 저돌성의 상징으로 나옵니다. 그리스신화에서도 전쟁신 마르스/아레스의 충복으로 여겨진데다, 밭농작물을 망치는 주범이었기 때문에 농경문화권에선 항상 재앙을 불러오는 것으로 여겨졌죠. 따라서 사냥감으로도 으뜸이었구요.
들개(혹 늑대) '모로' 경우도 일본의 설화에 나오는 괴물 중 하나인데다, 역시 그리스의 전쟁신 마르스를 수호하는 용맹의 짐승이기도 하죠. 더욱이 북유럽의 흑삼림에선 이들이 왕인데다 오딘신이 타고 다니기도 하는 짐승이니, 숲의 수호자로 딱 들어맞는거죠.
또한 숲의 신으로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시시가미'는 사슴으로 형상되었는데, 시베리아부터 동북아시아 전역에 걸쳐 사슴은 하늘/신과 소통하는 짐승으로 여겨졌고, 왕들의 사냥에서도 항상 하늘에 직접 제사지내는 희생물로 바쳐졌죠. 우리나라 백제나 신라 왕관에도 보면, 사슴뿔 형상이 항상 새겨져 있잖아요.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그 뿔들이야말로 고대인들에겐 하늘과의 소통으로 보였던 거죠. 아울러 북유럽 신화에서도 영원한 생명나무 이그드라실(세계수)을 수호하고 상징하는 동물이 바로 사슴임을 염두에 두면, 영화캐릭터들이 그렇게 설정된 것에 고개가 끄덕그려집니다.
이 신수(神獸)들이 버티는 원시림을 파괴해서, 야만 대신 문명이, 신화 대신 이성이 자리잡게 하는 과정의 형상화, 그것이 영화 [모노노케히메]의 뼈대가 됩니다.

2. 인간, 인간을 지배하다

영화 속 시대배경인 14-16세기의 일본 무로마치시대는 또 어떤가요.
일본사에서 이 시기는 중세로부터 근세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보죠. 특히 16세기는 영주들간 전쟁으로 날이 새고 지는 전국시대이면서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진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설치고, 이후 도쿠가와막부가 전국 통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시기죠. 특히 노부나가군이 서양에서 도입, 생산해 전쟁에서 써먹은 화승총부대의 위력은 혁명적이었죠(이걸 잘 보여주는게 구로사와감독의 [가게무샤]입니다).
이런 총들을 생산하려면 제철기술이 발달해야 했는데, 이 영화속 에보시의 마을에서 제철하는 장면들(특히 여인들이 밟아대는 발풍구)과 같은 기술이 당시 선보이면서 엄청 생산력이 높아지죠.
그런데, 제철을 위해선 높은 열의 화력이 필요했고, 그 에너지원인 숯을 구하기 위해선 목재들이 무진장 많은 삼림지역과 풍부한 물이 필수적이었죠. 또 운송배들을 만들려면 좋은 나무들이 엄청 필요했거든요. 이리 보면 숲과 대립되는 제철마을과 총이란 배경들을 한번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영화속 제철마을의 노동장면이나 복장, 무사들의 싸움장면 고증의 정밀함에는 감탄할 뿐입니다)
특히 영화에서 제일 흥미로운 인간은 에보시와 지코승이었는데, 가장 현실적 군상들이라 여겨지네요. 에보시는 사회에서 소외된 나병환자나 떠돌이, 버림받은 여자들을 모아 강력한 자립공동체를 만드는 여성지도자죠. 말하자면 가장 천대받던 피지배계층이나 여성들이 모여 가장 강력한 무기를 만들고, 생존을 위해 가장 거대한 자연과 투쟁하는 불굴의 개척 전사들이 된거죠. 거기서 에보시는 차별없는 인간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상주의자이자 합리적 이성을 대변하는 근대인의 모습이죠. 반면 지코는 봉건정권의 명령을 받아 행동하는 출세지향의 현실주의자이자 주술적 믿음에 따라 움직이는(시시신의 목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중세적 지식인의 전형이죠. 당연히 그는 신분적으로 낮은 사람들의 목숨보단 정권의 명령이 우선이구요.
더욱이 제철마을을 침략하는 영주군대는 이익을 위해 인간이 인간을 착취, 지배하는 현실의 힘의 논리를 그대로 펼쳐보입니다. 곧, 정권지배층-소외된 피지배층-자연으로 이어지는 이 수탈의 먹이사슬이, 나무(자원)와 쌀, 총이란 도구를 매개로 적나라하게, 폭력적으로 펼쳐지는 모습의 현실(그리고 그 외피로서의 신화). 그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의 모습 아닐까요.
여기선 결코 선악을 넘어 생명의 절대성을 상징하는 신이 살아남을 공간은 없죠. 오직 네편의 신과 내편의 신(선신/악신)들만 있을 뿐. 존재의 설 곳을 잃은 신은 결국 죽어야할 운명이죠. 이미 자연을 지배한 채 자기들끼리 적대적으로 갈라진 인간을 위해서.

3. 숲과 인간의 공존은 불가능할까

이 영화 속에서 결론은 숲의 신들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다시 피고 인간은 다시 문명을 세우며 살아가야 하는 그 '생명의 절대성'이라고 볼 수 있겠죠.
물론 현실의 무대에선 숲은 계속 제거되고, 제철마을도 오염되며, 그들의 생명 또한 새로운 무사정권에게 의지해야 했겠지만요(실제 17세기부터 일본은 일반 백성들의 무장이 전면 금지되었죠). 그리하여 숲과 자연은 '힘센 세력의 지배하에 독점되는 자원'이란, 인간에게 종속적인 지위밖에 안되는 거죠. 수호신이 없어진 그곳의 황폐화는 가속될 뿐이겠죠.
아이러니한 건 우리나라에서도 산이 푸르게 된 것은 박정희정권의 독재적 삼림정책 때문이었단 거죠. 땔감으로 나무를 베면 잡아가고, 의무적으로 나무를 심어야 하고, 또 그린벨트지역을 설정해 도시에도 녹지공간들이 숨쉴 수 있게 했으니까요. 나무가 주에너지원이었던 전시대까진 헐벗은 붉은산이 대표적이었죠. 서구나 일본 역시 주에너지원이 나무에서 석탄과 석유로 바뀌기까지의 시대엔 숲이 무차별 약탈당했죠. 자연이 인간에게는 단지 수탈과 지배의 대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인식의 산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환경과 녹지 보존이 더 강조되어야 할 요즘들어 우리나라에선 거꾸로 그린벨트지역이 다 풀려버리고 있죠. 개인의 재산문제나 경제적 이익들이 물론 전제된 거지만, 결국 들어서는 건 아파트와 골프장이요, 잃어버리는 것은 생명의 미래인데 말이죠.
물론 발전된 나라들의 숲이 아닌 아마존을 비롯한 원시림들이 엄청 유린되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그런데, 원시림의 무차별 남획과 그곳에 사는 전혀 낯선 동물들과의 접촉은 결국 인간에게 에볼라 바이러스(영화 [아웃 브레이크]에 잘 묘사된)나 에이즈, 사스처럼 엄청난 질병의 재앙으로 되돌아오게 되죠. 더욱이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그 재앙이 세계로 번지는 것은 예전의 몇백배로,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가 되었구요.
아울러 지금의 이라크전쟁이나 현실화된 북핵위기 등을 보면서, 영화에서 숲의 신들을 제거한 화승총이나 철포에 환호하는 인간들처럼, 현실에서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나오는 거신병(핵무기)의 발포를 환호하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더욱 듭니다. 그속에서 '살아라'는 외침은 허공의 메아리로 될른지도 모르구요.
영화에서 인간으로 인해 생명을 파괴당한 재앙신의, 인간에게 남긴 저주는 어쩌면 영화에서보다도 훨씬 더 크고 두렵게 우리에게 닥쳐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바로 죽음의 질병과 생명의 엄청난 손실들로 말입니다.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삼라만상은 기적이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한다.
울퉁불퉁한 산맥, 꽃이 핀 라일락
깃털을 활짝편 공작새, 당신 팔에 가득한 햇빛...
자 이제 당신이 선택하라.
이런 기적에 놀라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거나

그래서 별점은 별4개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