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박물관 관람. 기억하자! 우리도...

유현승200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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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박물관 관람. 기억하자! 우리도... 야드바셈 입구    


 

 

야드바셈 - 이름을 기억하라고? 우리도 기억해야할 이름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

1986년 노벨상 수상자이며

유대인 학살기념관 야드바셈의 대변인인

엘리 위젤은

야드바셈의 존재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에겐 죽은 친구들을 기억할 의무가 있다. 그들의 희생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깨닫는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과연 희생당한 자신의 조상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통곡의 벽을 보고난 뒤 다음으로 들린 곳은

야드바셈, 일명 유대인학살기념관.

 

야드바셈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학살당한 유대인 600만 명을 추도하기 위해

1953년부터 조성하여 2005년 3월에는 5600만 달러를 들여

역사관을 세우고 새롭게 단장하여 재개장하였습니다.

 

10여만 평의 규모에

추도탑, 전시관, 역사관, 그리고 어린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별관이

따로 있다고 해요.

특히나 이 별관은

줄을 잡고 가야 할 만큼 캄캄한 실내에 희생자의 이름이 반복해서 방송되며

천정부터 바닥까지 어린이의 희생을 상징하는 수많은 촛불이 빛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기념관은

유대인 역사의 최대의 비극을 잊지 않고

후세에 영구히 전하기 위해 건설되었다고 해요.

야드바셈이란 히브리어어이며, “이름을 기억해!” 란 뜻으로

유대인 학살로 희생당한 그들의 이름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저희는 일정 상 새로 개관한 역사관만 구경했어요.

역사관은 나찌시대 유태인의 차별 정책과

게토 생활(유대인들이 따로 모여 살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은 거주 지역),

학살과 저항, 해방과 독립까지

시대별로 각종 자료들을 구성해 놓은 전시관이었어요.

 

단층의 현대적인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입장 전에 무선 이어폰을 받았어요.

이어폰을 끼면 안내자분이 말하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서

역사관에는 다른 관람객들이 엄청 많았지만 전혀 방해되지 않았지요.

 

다른 유적지나 기념관에서 불편했던 점은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려면

관람을 포기하고 안내자 옆에 가까이 서야 했어요.

안내자 옆을 차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는.

여행 인원이 30명이나 되니 멀리 있으면 전혀 들리지 않아서

제대로 설명을 듣기 위해 자리 쟁탈을 한 적도 있었다지요.

게다가 다른 그룹의 안내자들이 떠드는 소리랑 섞여

그것마저도 듣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어폰이 있으니 제가 구경하고 싶은 거 찬찬히 구경하면서도

안내자의 설명을 놓치지 않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이런 첨단 장치 넘 부럽다!  역시 잘 사는 나라는 틀리군!’

 

역사관은 견학을 온 이스라엘 고등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어요.

역시나 직업병 못 버리고 유심히 관찰.

어쩌면 그렇게 우리나라 학생들과 닮아보였던지!

열심히 듣는 학생은 거의 없었고, 구석에서 이어폰을 빼고

삼삼오오로 떠들거나 놀고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지루해하고 따분해 하는 마음이 얼굴 표정에 온전히 읽혀지더라는.

청소년 특유의 심드렁하고 반항적인 표정도 비슷하구요. 쿡.

 

좀 특이한 점은 유대인 복장인 키파를 쓴 학생들이 꽤 많았다는 거.

힙합 복장에 무스나 왁스를 잔뜩 바른 머리 위로

키파를 쓴 모습이 재미있었어요.

자신의 의지로 쓰고 있는 걸까 궁금도 했구요.

 

유대인들은 정말 반듯반듯한 인상을 주었답니다.

마치 수녀님이나 수사님을 보는 듯한 기분이요.

바른생활을 하는 사람들  특유의 분위기요.

성실하고, 진실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풍겼다지요.

친근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질퍽하게 노는 사람들 특유의 느끼하고 나태하고 싼 분위기와

딱 반대되는 분위기였어요.

 

역사관은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현대적인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예술적으로 한편으로는 관람자들에게 친숙하게 느끼게 전시해 놓았더군요.

 

즉, 너무 예술적이어서 박제된 듯한 거리감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재미나 흥미 위주로 전시해서

교훈이나 감동을 느낄 수 없게 한 것도 아니었고요.

재미와 감동을 모두 주는 유럽의 예술 영화를 보는 듯 했어요.

 

역사관 내부는 특이한 구조였어요.

입체적인 구조로 단순한 평면적인 전시관에 익숙한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기존의 전시관이나 박물관은

관람자와 전시품이 격리되어 있어서 현실감도 적었고,

내면에 와 닿지도 않았는데

이 기념관은 최대한 관람자가 느낄 수 있게 만들었으며,

평면 벽 전시가 아니라

입체적인 전시를 통해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배려했더군요.

아울러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불편이 없는 단층 구조였으나

지그재그로 되어 있어서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어요.

그냥 직선의 길을 따라 갔으면 지루할 수도 있잖아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소하고 세심한 곳까지 신경을 썼더군요.

 

나찌의 만행을 고발하는 인터뷰,

나찌의 유대인 학살 장면을 담은 비디오와

각종 사진들과 희생자들의 사소한 유품들까지 진열을 해놓았더군요.

눈길을 끌던 것은

나찌의 주역들 사진들을 고급스럽고 훌륭한 큰액자에 걸어 놓았던 점.

어쩐지 반어법을 적용한 듯했어요.

야유같기도 하고. 너무 국어쌤틱한 해석일까요? ^!^

 

에고, 우리나라는 반민족특별법도 제대로 통과되기 힘들었는데…….

아마 일제 제국 시대 전시관을 지어

이렇게 친일파들 사진을 크게 걸어놓자고 하면

난리날 것이라는.

인명 사전 만드는  데에도 반대를 했으니 말이죠. ㅠㅠ 

 

바닥 한쪽에 유리관으로 되어 있는 곳이 있어서 가까이 가보니

유리관 안에 낡은 신발 한 무더기가 있었어요.

그것은 가스실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유품이었어요.

 

‘저것들을 어디서 구했을까. 우리나라도 이런 것들을 다 모아야 할 텐데…….  세월과 함께 모두 사라지기 전에……. 아!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모두 모아 놓은 유대인의 저력이 부럽구나’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수준 높은 전시! 란 이런 거구나 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는!

기념관을 관람하는 내내 부러움과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몰라했다는.

아니, 우울하기까지 했어요.

 

‘우리나라도 이처럼 일제희생기념관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당연히 있어야하는 거 아냐?

배상 및 과거 반성을 철저히 하는 독일과 달리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 아니, 역사 왜곡과 망발을 서슴지 않는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서라도 36년간 일제 지배를 받은 우리나라야말로 제일 먼저 건설해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예술적이고, 감동적인 기념관을 만들어낸 이스라엘이 너무 부러워서

화나 날 지경이었어요. 눈물이 날 만큼요!

만약 수백 억 로또 복권에 당첨 되면 당장 이런 기념관을 테얏!

이런 헛된 생각까지 들었다면 저를 비웃으실랑가요? ㅠㅠ

 

역사란 잊혀지고 지워지고 흘러가기 마련일 텐데

자신들의 아픈 역사를 흘려보내지 않고,

그 이름을 잊지 말라며,

후손들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알리는 걸 게을리 하지 않는 유대인들!

 

유대인만큼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우리도 당연히 그래야하지 않을런지요!

 

우리 혼자 힘들면 반일감정이 강한 중국과 손을 잡고

일본의 과거 만행을 알리는 기념관을 만드는 건 어떨지요.

관람 내내 이런 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는.

 

복잡다난한 마음을 가지고

마지막 전시실에 향했습니다.

마지막 전시실은 위를 바라보게 되어 있었어요.

위쪽은 매우 큰 원추형으로 뿔 안쪽에 사람들의 흑백 사진이 빼곡히 박혀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나찌에게 희생당한 유대인들의 사진이었습니다!!!

 

아! 마지막에 이렇게 ‘훅’을 던져 주는구나! 

 

 

홀로코스트 박물관 관람. 기억하자! 우리도... 원래 촬영 불가이지만 사람이 없길래 도촬 박물관 마지막의 원뿔로 된 조형물 사진은 희생당한 유대인들    


 

전시관을 나와 이어폰을 반납하는 곳 벽 한 쪽에 근사한 조형물이 보였어요.

이스라엘 태생의 조각가가 나프탈리 배셈(naftali veshem)이 만든

야드바셈 상징물이었어요.

4개의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 바로 야드바셈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나타나 있다고 해요.

 

첫 번째 조각물의 제목은 ‘파괴’로

계속되는 학살과 희망이 없는 상태를

목 떨어진 생선으로 표현했구요.

 

두 번째 ‘저항’은

무너진 집과 회당에서 죽어가면서도

무기와 희망이라는 사다리를 잡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

그 어떤 핍박에도 살아남겠다는 강한 생명력을 표현한 듯 하구요.

 

그 다음 조각물인 ‘이민’은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배와 각종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팔레스타인 땅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표현했구요.

 

마지막 ‘재생’은

현재의 이스라엘의 모습을 사자를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냈으며,

이 중 똑바로 세워진 촛대는 이스라엘 가정과 국가의 평화가

모두 회복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마지막까지

이 기념관 이름 그대로 “기억해!” 를 반복 외치고 있네요.

 

 

 

홀로코스트 박물관 관람. 기억하자! 우리도... 베셈이 만든 야드바셈 상징물    


 

 

‘우리도…… 우리나라도…… 일제에 대항하고 저항한 독립 운동가들로부터 정신대에 희생된 여인들까지…… 

기억해야 할 아니, 반드시 꼭 기억해야할 안 되는 이름들과 얼굴들이 얼마나 많은데…….’

 

야드바셈을 보고난 저의 마음은 아주 복잡미묘했어요.

너무 속상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너무 부러워서 미칠 것 같았고,

너무 안타까워 울고 싶었습니다. 우애애애앵~~~ㅠㅠ

 

이스라엘 정부가

유대인 희생을 기억하게 하기 위한 노력은

이런 전시관 하나 뿐이 아니었어요.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2004년 11월에 야드바셈 웹 사이트(www.yadvashem)에

나치에 학살당한 유대인 320만 명의 명단과 신상 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했다는 거..

이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데

자그마치  2,200만 달러(약 230억 원)가 들었다고 합니다.

 

이 자료에는 희생자들의

이름, 생년월일, 주소, 사망 날짜와 생전의 사진, 일기, 편지, 가족과 친척 이름,

수용소로 끌려갈 때 탑승했던 열차 번호와 수용소에서 받은 수인번호까지

모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전세계 어디에서나 홈페이지에 접속해

사망자의 이름을 검색하면

생전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고합니다.

단순한 신상 명세 뿐만이 아니라

희생자가 평소에 어떤 버릇이 있었으며 첫사랑은 누구이며,

첫 번째 데이트 장소와 첫키스의 상대자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으며

수용소에 끌려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무엇인지 다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이 방대한 자료를 구축하기 위해

수년에 걸쳐 유가족와 친구들 함께 살던 이웃까지 수소문해서

인터뷰 했다고 하구요.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해 드릴게요.

파일 번호 PO_1613: 다윗 에르게가 죽기 전에

여자친구에게 보낸 엽서의 내용입니다.

 

“나는 다윗 에르게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았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억시키고 싶다.”

 

1941년 19세의 나이로 독일군에게 총살당한 유대인 청년 다윗은

그의 소망대로 기억되어 디지털 파일로 영원히 남겨지게 되었다는... 

야드바셈의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고 합니다.

 

'망각은 포로 상태를 이어지게 한다.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

 

그리고 야드바셈 개관 50주년 기념 표어는

이것이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


 

 

 

 

야드바셈 댓글  

2000년 2월 2차대전 종전 후 50여 년 만에 독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한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은 이스라엘 의회에서

전세계 유대인과 이스라엘 국민에게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함으로써 과거사 청산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나치에 의해 살해돼 용서를 빌 무덤조차 없는 이들에게 부족하나마 조의를 표한다"

고 말하고

"과거 독일인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용서를 빌며 아울러 나와 나의 세대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고 분명하게 사죄했다.

 

2005년 이스라엘과 독일 수교 20주년을 기념 2월 2일 가해자 독일의 퀄러 대통령이

이스라엘 방문하여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바로 야드바셈.

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감히 들어갈 용기가 생기지 않으나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다.'

라고 말문을 열었다고 한다.

 

2006년 1월 30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30일 예루살렘의 야드바셈)에 가서 다시 한번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했다.

메르켈 총리는 유대인 희생자의 영령에 헌화하고 방명록에

"과거를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고 썼다.

 

나는 위의 독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올바른 발언과 극도로 대조되는

일본 정치인들의 만행을 일일이 다 적을 수가 없다.

아니, 나의 위대한 여행기에 다 적고 싶지도 않다.

 

다만, 유대인들은 이렇게 철저히 과거를 기억하는데

어찌하여 한쪽에서는 과거를 청산하자고 하는지,

어찌하여 친일파에다가 독재자 기념관을 짓자는 모금운동은 일어나면서

왜 일제에 희생된 조선인들을 위한 기념관 건립 이야기는 없는지

유대인과 우리나라는 서로 당한 일은 비슷한데

그 뒤의 자세는 어쩜 저렇게 대조되는지...

 

또한,

스스로 홀로코스트 수용소를 철거하지 않고,

기념관을 세우고, 아직도 배상을 하고 있는

독일 정부와 몇 번이나 철저히 반성하고 사죄하는 독일 정치인과

6만여 명의 정신대를 부정하고, 역사 왜곡을 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

매번 신사참배와 망발을 하는 일본 정친인들은

또 어쩜 그렇게 대조되는지...

 

유대인과 한국인의 대조,

독일과 일본의 대조

 

정말 분통이 터지고,

너무나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그저 우리 조상들에게 그저 부끄럽고 죄송할 뿐이다.

 

내가 일제의 만행을 우리 조선인들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거대한 기념관을 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 데모를 할 강심장도 아니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 글을 끝으로

 

앞.으.로 평생 일본제품을 사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그것이

내가 야드바셈(이름을 기억하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결론내렸다.

 

야드바셈!

기억하자,

우리에게도 기억해야할 이름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에서 사람의 향길를 느끼다.

너무나 고풍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걷다.

거룩했던 성분묘교회(예수님 무덤교회) 에서 처음으로......... ㅠㅠ

이스라엘 출국사무소 역시! 선진국이구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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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점검

 

일본 제품을 안 사는 것. 나름 잘 지키고 있습니다.

SK2나 시세이도 화장품을 한 두개 썼는데

다 떨어져도 안 사고 있고요.

다이소나 슈퍼에서 판매하는 균일가 생활 용품도 안 사고 있어요. 씽긋~

 

그러나 그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저는 방학 때마다 만화책을 몰아서 보곤 하는데

일본 만화책도 많이 보고든요.

일본 작가의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추천을 받으면

가끔 보기도 하는데...

그런 것까지 안 봐야하나...

아울러 일본이 과거에 대한 사과를 하기 전까지

절대 일본 땅을 밝지 않으리라. 이렇게 더욱 비장한 각오도 해야하나.

그런 고민이 들곤 합니다.

 

우찌됐든.

제가 일본 제품을 안 사려고 노력하는 것,

아울러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일제시대에 희생된 우리 조상들의 이름을 기억하려는

노력의 하나가 아닐까 라고 긍정적으로 보기로 했답니다.

 

이 글만큼은

스크렙을 허용으로 올립니다.

 

조금이라도

많은 분들이 우리 나리에도 기억해야할 많은 이름들이 많다는 걸 아시기를

하는 마음에서요.

부디, 많은 분들이 스크렙을 해가시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