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일이다.. 집에서 만화를 보고.. 티비를 끌때쯤 채널을 돌렸다티비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고 난 그당시 IMF 가 뭔지 몰랐다..IMF ? 그당시 알파벳도 모르던 나에게는 너무 생소한 단어였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 버렸다.. 난 그 IMF 가 우리집에게..가족에게..나에게..어떤 영향을 줄지 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당시 건설그룹의 부장직을 맡고 계셨었다하지만 IMF 란 사태 때문에 부장직을 관두시고.. 조금한 가게를 열으셨는데그거마저 잘 되지않아 적자를 보고 접어야만 했다.. 부장직까지 맡고 계시던 아버지는다행이나마 조금한 일자리라도 찾으셔서 일을 하셨다.. 하지만 내가 보던 강한아버지도 그때만큼은 매일 힘들어 하시고..어머니는 눈물을 훔치신적도 많으셨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1학년 이 되었다..그때까지해도 우리집은 형편이 많이 좋지는 못하였다.. 회장이 되어도 난 반애들에게 먹을거리를 사준기억이 없다..햄버거..콜라..피자 등등 어느것하나 사준적이 없다..그당시 난 그게 너무 창피했었다. 또한 메이커 옷을 밝히고, 항상 부모님 속썪이고.. 성적도 떨어지고..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어리석었구나 라는 말밖에 안나온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아버지 어머니는 맛있는것 제대로 못드시고힘든일 다 하시면서.. 우리에게 힘든 내색 보이시지도 않으시고..항상 웃으며 말하시던 그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난 그때 마음가짐을 고쳐 먹었다..내 아버지 어머니는 내가 지켜 드린다고.. 그리고 난 성공할것 이라고..최고도 좋지만 최고이기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지나 난 중3이 되었다..아버지는 친구분의 권유로 다시 건설,인테리어 쪽에 종사하셨다..종사하신 후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아버지 보다 나이어린분 한테 여러소리 들으신적도 있으시고난 그런것이 정말 싫었다.. 왜 그럴까..아버지가 언제 나에게 이렇게 말하셨다.. 과거는 생각하되 그 과거에 연연하지말고현실을 생각하되 지금 하는것에 열심히 하고 즐기고 항상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미래를 생각하되 정말 큰 목표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고통없이는 절대로 얻는것은 없다 라는 말해주셨다그 당시의 그말을 가슴깊이 새겨두고 내가 힘들때마다아버지의 말을 생각해본다.. 시간이 지나서..우리 가족,아버지의 노력으로 아버지는 직원 20명 정도를 두신 사장님이 되셨다.. 그리 크지 않고 소규모 이지만 난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나 몰래 운적도 있다.. 내가 초3때부터 본것과 겪어온일들을 앨범을 넘기듯이 생각해보면그 당시에는 내가 이랬으면 어땟을까..하고 생각도 해본다.. 아버지랑 가끔식 그 힘들었던 일들을 추억삼아 웃으며 얘기하지만..내가 아버지의 얼굴을 볼땐 가족을 위해정말로 고생하신 삶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정말 이세상 모든 자식을 두신 아버지,어머니 분 보다위대한분은 없다고 난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은 고등학교2학년 학생이지만나중에 더 노력하여 큰 사람이 되고싶다.. Best Of Best 말이다!!3
IMF 가 날 너무 강하게 만들어 버렸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일이다..
집에서 만화를 보고.. 티비를 끌때쯤 채널을 돌렸다
티비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고 난 그당시 IMF 가 뭔지 몰랐다..
IMF ? 그당시 알파벳도 모르던 나에게는 너무 생소한 단어였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 버렸다.. 난 그 IMF 가 우리집에게..가족에게..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당시 건설그룹의 부장직을 맡고 계셨었다
하지만 IMF 란 사태 때문에 부장직을 관두시고..
조금한 가게를 열으셨는데
그거마저 잘 되지않아 적자를 보고 접어야만 했다..
부장직까지 맡고 계시던 아버지는
다행이나마 조금한 일자리라도 찾으셔서 일을 하셨다..
하지만 내가 보던 강한아버지도 그때만큼은 매일 힘들어 하시고..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신적도 많으셨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1학년 이 되었다..
그때까지해도 우리집은 형편이 많이 좋지는 못하였다..
회장이 되어도 난 반애들에게 먹을거리를 사준기억이 없다..
햄버거..콜라..피자 등등 어느것하나 사준적이 없다..
그당시 난 그게 너무 창피했었다.
또한 메이커 옷을 밝히고, 항상 부모님 속썪이고.. 성적도 떨어지고..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어리석었구나 라는 말밖에 안나온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아버지 어머니는 맛있는것 제대로 못드시고
힘든일 다 하시면서.. 우리에게 힘든 내색 보이시지도 않으시고..
항상 웃으며 말하시던 그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난 그때 마음가짐을 고쳐 먹었다..
내 아버지 어머니는 내가 지켜 드린다고..
그리고 난 성공할것 이라고..
최고도 좋지만
최고이기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지나 난 중3이 되었다..
아버지는 친구분의 권유로 다시 건설,인테리어 쪽에 종사하셨다..
종사하신 후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아버지 보다 나이어린분 한테 여러소리 들으신적도 있으시고
난 그런것이 정말 싫었다.. 왜 그럴까..
아버지가 언제 나에게 이렇게 말하셨다..
과거는 생각하되 그 과거에 연연하지말고
현실을 생각하되 지금 하는것에 열심히 하고 즐기고 항상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미래를 생각하되 정말 큰 목표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고통없이는 절대로 얻는것은 없다 라는 말해주셨다
그 당시의 그말을 가슴깊이 새겨두고 내가 힘들때마다
아버지의 말을 생각해본다..
시간이 지나서..
우리 가족,아버지의 노력으로 아버지는 직원 20명 정도를 두신 사장님이 되셨다..
그리 크지 않고 소규모 이지만 난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 몰래 운적도 있다..
내가 초3때부터 본것과 겪어온일들을 앨범을 넘기듯이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내가 이랬으면 어땟을까..하고 생각도 해본다..
아버지랑 가끔식 그 힘들었던 일들을
추억삼아 웃으며 얘기하지만..
내가 아버지의 얼굴을 볼땐 가족을 위해
정말로 고생하신 삶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정말 이세상 모든 자식을 두신 아버지,어머니 분 보다
위대한분은 없다고 난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은 고등학교2학년 학생이지만
나중에 더 노력하여 큰 사람이 되고싶다..
Best Of Best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