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의 등장이 "스토리"의 부실을 강요하다... <레이디 인 더 워터>

백혁현200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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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혹 동화는 아무나 쓰나... 초자연적인 이야기와 흥미만점의 반전, 음습한 기운 속에서도 전달되는 희망의 메시지라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특기들 중 ‘흥미만점의 반전’을 뺀 보다 순진무구한 형태의 동화... 하지만 자신의 아이들에게 (잠자리 동화로) 들려주기 위해 처음 시작되었다는 영화는 우리 모두를 신비로운 동화의 세계로 데리고 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영화의 초반부에 긴 애니메이션으로 설명되는 인간과 요정 나프의 관계는 그야말로 아이들에게나 먹힐 법한 상황 설명 아닌가.

 

  과거의 샤말란 감독은 모든 스토리를 주욱 풀어놓은 다음, 짜잔 그 스토리의 이면에는 이런 사실들이 숨겨져 있었다오, 라면 우리를 놀래켰다. 하지만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상대하는 듯 노골적이기 그지 없는 이번 영화에서 감독은 서프라이즈 반전쇼 대신 정공법을 택했다.

 

  자, 상황은 이래, 우리 인간과 요정 나프는 오래전에는 서로에게 좋은 영감을 주며 잘 지내왔어, 하지만 인간의 변질과 함께 요정들이 사는 블루 월드 물 속의 세계와 인간들이 사는 물 밖의 세계는 자꾸 멀어지게 되었지, 그리고 이제 이를 보다 못한 요정의 세계에서는 우리들에게 요정을 보내 꿈과 희망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 But, 이러한 요정을 위협하는 존재가 있으니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스크런트야, 이들은 특히 요정들의 여왕이 될 나프에게는 인정사정이 없는데, 오늘 바로 우리 아파트에 바로 그 요정이 나타난 거야, 괴물 스크런트와 함께...

 

  그렇게 시작부의 참으로 친절하기도 한 설명과 함께, 참혹한 과거를 지닌 아파트 관리인 클리블랜드에게 처음 발견된 요정 ‘스토리’는 신비로운 눈을 가진 (벗겠다는 건지 입고 있겠다는 건지 모를 어정쩡한 차림의) 여리고 여린 처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뒤이어 그녀를 좇아 아파트 수영장 건너편의 숲에 나타나 호시탐탐 스토리의 생명을 노리는 스크런트와 블루 월드의 여왕이 될 스토리의 무사 귀환을 위해 뭉친 수호자와 상징 해석가와 치료자 등등의) 우리 아파트 주민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는 이처럼 광대한 스토리에 어울릴만한 짜임새까지 갖추고 있지 않다. 반지의 제왕(이걸 동화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이나 해리포터, 나니아 연대기로 이어지는 환타지의 득세에 스리슬쩍 한 발을 들여놓을 심산이었을지 모르겠으만 오판도 이런 오판이 없다. 느닷없이 제3세계 재외국인 한국인 할머니가 어린 시절 구전으로 전해들은 이야기에 '스토리'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었다는 설정은 그렇다치고, 느닷없이 시리얼 봉지를 들여다보며 스토리의 생명을 되살리는 방법을 술술 뱉어내는 아이를 보면서는 관객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닌가 고개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요정의 이름을 ‘스토리’라고 지칭하여 영화 전체가 바로 (각본에 발굴의 기량을 선보이던 작가인 감독답게) 이야기를 보호하고 이야기를 되살리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듯 떠벌리고, 평론가들의 지적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투로 유일하게 괴물에게 죽임을 당하는 인물에 평론가를 대입시키는가 하면, 아예 ‘스토리’가 만나게 되는 소설가 역에 작가 자신이 직접 출연하여 인류의 구원을 위한 글을 쓰게 된다며 자의식 과잉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 안하무인의 설정을 하고 있다.

 

  헐리우드의 한복판에서 인도 출신의 영화감독으로 제3세계 이민자들, 트라우마를 지닌 일부 중년 백인과 사회 부적응자들처럼 보이는 또다른 백인들이라는 소수자들을 대거 투입하여, 어쨌든 희망을 잃지 말고 잘 살아보자, 라고 외치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정말 이건 아니잖아... 반전이 사라진 대신 갑작스러운 CG 괴물의 깜짝쇼를 선물받았지만, ‘스토리’가 사라진(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스토리’가 주인공임에도) 샤말란표 영화는 절대 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