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이번 여행은 시카고를 경유하여야 하는데 시카고에서 연결되는 항공편을 바로 예약하지 못하여 불가피하게 시카고에 일시 체류하게 되었다. 필자는 시카고에 연고가 없어 걱정을 하던 중 스티븐 최님의 호의로 3일간 시카고에 머물게 되었는데 도착하는 첫날은 스티븐님이 다른 일정이 있어 우리 부부만이 일정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출발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검색하면서 여행안내를 하여줄 곳을 물색하였지만 마땅치가 않던 터에 비비안 리라는 여자 분이 홈스테이를 하면서 관광안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통화를 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그 유명한 영화배우와 같은 “비비안 리”였고 이메일 주소도 “피카소2(picasso2kr@yahoo.com)”였다. 아침일찍 공항에 도착한 우리를 그녀는 묵직한 RV를 몰고 나타나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우리 부부는 12시간이나 되는 긴 비행으로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도 그녀의 차를 타고 시카고의 곳곳을 돌면서 사진도 찍고 맛난 식사도 하면서 멋진 하루를 보냈다. 그녀는 한국에서 17년간 카톨릭계의 대학에서 수녀로서 교수생활을 하였던 분이었다. 촉망받는 교수생활을 접고 수녀의 신분을 그만 둔 채 홀연 단신 시카고에 와서 영성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물론, 아무도 그녀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학비와 생활비 마련을 위하여 이것저것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시카고에는 골프장이 많이 있는데 한번은 어떤 교민이 골프장에는 이른 아침 골프를 하는 사람이 많은데 골프장의 식당은 아침에 열지 않으니 햄버거를 만들어 팔면 좋을 것이라고 하여 밤새도록 햄버거 수십개를 만들어 팔려고 갔다가 골프장에서 쫓겨나 만들었던 햄버거를 하나도 팔지 못하고 당황하였던 일도 있었고 세탁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워낙 육체적인 노동이 필요한 직업인데다가 거기서 사용하는 염료와 세탁관련 약품의 냄새 때문에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어 사흘만에 손을 들고 나온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와 같이 있는 하루동안 그녀는 이런저런 일에 대하여 아프고 힘들었던 일들을 하나도 꾸밈이 없이 우리부부에게 이야기하였다. 그것도 계속 웃어가면서..... 30세에 남편을 잃고 세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미국으로 왔다는 할머니 교포가 경영하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녀는 교민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고 그녀와 같이 외로운 사람들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우리를 호텔로 데려다주면서 이별이 가까워지자 그녀는 어렵게 말을 꺼내는 것 같았다. 너무 힘들어서 한국에 돌아갈까 어쩔까를 고민하고 있노라고.... 수녀님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수녀님! 힘들고 어려워도 성직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갈 때의 대단했던 결의를 잊지 마시고 더 열심히 하세요. 성모님께서 수녀님을 꼬-옥 지켜주실 겁니다. 수녀님의 강건함을 기원합니다. 누구든지 시카고방면으로 여행하실 분들은 수녀님을 찾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전화번호가 필요하신 분은 저에게 연락하세요. 감사합니다(‘06. 10. 14. 최영호변호사). ----------------------
시키고에서 만난 수녀님
필자의 이번 여행은 시카고를 경유하여야 하는데 시카고에서 연결되는 항공편을 바로 예약하지 못하여 불가피하게 시카고에 일시 체류하게 되었다.
필자는 시카고에 연고가 없어 걱정을 하던 중 스티븐 최님의 호의로 3일간 시카고에 머물게 되었는데 도착하는 첫날은 스티븐님이 다른 일정이 있어 우리 부부만이 일정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출발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검색하면서 여행안내를 하여줄 곳을 물색하였지만 마땅치가 않던 터에 비비안 리라는 여자 분이 홈스테이를 하면서 관광안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통화를 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그 유명한 영화배우와 같은 “비비안 리”였고
이메일 주소도 “피카소2(picasso2kr@yahoo.com)”였다.
아침일찍 공항에 도착한 우리를 그녀는 묵직한 RV를 몰고 나타나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우리 부부는 12시간이나 되는 긴 비행으로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도
그녀의 차를 타고 시카고의 곳곳을 돌면서 사진도 찍고 맛난 식사도 하면서 멋진 하루를 보냈다.
그녀는 한국에서 17년간 카톨릭계의 대학에서 수녀로서 교수생활을 하였던 분이었다.
촉망받는 교수생활을 접고 수녀의 신분을 그만 둔 채
홀연 단신 시카고에 와서 영성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물론, 아무도 그녀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학비와 생활비 마련을 위하여 이것저것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시카고에는 골프장이 많이 있는데
한번은 어떤 교민이 골프장에는 이른 아침 골프를 하는 사람이 많은데 골프장의 식당은 아침에 열지 않으니 햄버거를 만들어 팔면 좋을 것이라고 하여
밤새도록 햄버거 수십개를 만들어 팔려고 갔다가 골프장에서 쫓겨나 만들었던 햄버거를 하나도 팔지 못하고 당황하였던 일도 있었고
세탁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워낙 육체적인 노동이 필요한 직업인데다가
거기서 사용하는 염료와 세탁관련 약품의 냄새 때문에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어
사흘만에 손을 들고 나온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와 같이 있는 하루동안 그녀는 이런저런 일에 대하여
아프고 힘들었던 일들을 하나도 꾸밈이 없이 우리부부에게 이야기하였다.
그것도 계속 웃어가면서.....
30세에 남편을 잃고 세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미국으로 왔다는 할머니 교포가 경영하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녀는 교민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고
그녀와 같이 외로운 사람들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우리를 호텔로 데려다주면서 이별이 가까워지자
그녀는 어렵게 말을 꺼내는 것 같았다.
너무 힘들어서 한국에 돌아갈까 어쩔까를 고민하고 있노라고....
수녀님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수녀님!
힘들고 어려워도
성직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갈 때의 대단했던 결의를 잊지 마시고
더 열심히 하세요.
성모님께서 수녀님을 꼬-옥 지켜주실 겁니다.
수녀님의 강건함을 기원합니다.
누구든지 시카고방면으로 여행하실 분들은 수녀님을 찾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전화번호가 필요하신 분은 저에게 연락하세요.
감사합니다(‘06. 10. 14. 최영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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