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땅에서 현재 까지의 한국 조기 유학생 풍토를 지켜보면서 다시 ‘씨알의 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 자의반 타의반, 경제적 이유로, 또는 교육 문제 등 다양한 이유들로 수 많은 조기 유학생들이 이곳 북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세계의 다른 곳에도 이미 많을 것입니다.
경제력과 여러 이유에 따라 다양한 유학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홀로 와서 친척또는 친분있는 집에 있는 학생, 그 중 어떤 이들은 아예 친척의 자녀로 입양도 했으며, 외국 사람 집에 홈 스테이하고 있는 학생들… (그것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집과 교회등을 통한 개인적 관심으로 하는 집등 차이가 있음.) 아주 고가의 사립학교 기숙사에 있는 학생, 형제 자매들 끼리 방 얻어 있는 학생, 사설 소규모 유학원 한인 집에 4-5 명 또는 그이상 집단으로 생활 하는 경우, 경제적 여유 있는 집안 일 경우, 한국의 살림 유지하며 이중 국적 인정국가에 이민하여 살림을 낸 경우, 집을 얻고나 사고 양쪽 부모 중 한 사람이 아이들만 데리고 떨어져 사는 경우, 이 경우 대부분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와 있고, 아빠들은 소위 기러기 아빠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어떤 돈 있는 사람은 집을 사서는 외국 가정을 무료로 살게 하며 자신들의 아이를 맡기고 약간의 생활비를 보태만 주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온 나라의 재정이 빠져나가고, 국민적 빈부차에 의한 위화감과 가정의 파탄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투자 한 것에 비해, 최근 한 자료가 보여 주는 것은 조기유학의 성공률은 10%가 채 안 된다는 것이 었습니다.
원인은 무엇일까요? 언어와 문화 적응의 실패, 학습이해의 어려움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와 원인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은 학생 개인및 또래 집단의 관계에 있어 긍정적이며 교육적이고 신앙적인 체계적인 관리와 돌봄이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학생 자신이나 몇몇 친구나 지역교회의 부분적 관심있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 이 부분에대하여는 거의 방목 상태였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수많은 외화 유출의 시급한 대처와, 이미 나와있는 우리의 청소년들의 장래를 생각해 볼때 이 일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참으로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이제 어찌해야 할까요? 다 되돌려 보내야 할까요? 막는다고 막아질까요?
이러한 현실적 정황들을 고려할때 그 최선의 방안은 무었일까요? 특별히 크리스챤으로서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할 수만 있으면, 긍정적이고 합리적이며 정직한 방법이라면 우리나라 한 사람이라도 더 해외로 그것도 하나님께서 인류 모두에게 쓰라고 주신 넓은 땅을 혼자 독차지 하고 있는 나라들로 건전한 꿈과 사명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사회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정상적인 삶을 영위 할 때, 남한 땅의 경우 최대 2000만 살기에 적합한 데 지금 4700만 이상이 살려니 수많은 경쟁 속의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이 시대 애국하는 길이 두가지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또 하나는 해외로 나가 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시와 농촌이 균형을 이루고 세계화 속에서 한민족의 우수한 두뇌와 성품들로 세계를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증거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다시 조기 유학 문제로 돌아와 생각해 볼때, 이미 해외에 나와 있고 또 앞으로 나올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으로 새로운 모습의 ‘씨알의 집’을 구상케 된 것입니다.
‘씨알의 집’은 국가적 차원의 외화 유출의 재정 누수를 최소화 시키고, 범국민적 빈부 격차의 위화감을 줄이며, 가정 파탄의 위기또한 최대한 줄이며, 이미 나와 있는 또 앞으로 나올 학생들의 유학비를 최소화 시키며 학업과 생활의 질을 높여 그 부정적 요소를 최소화 시키고, 긍정적 분야를 최대화 시켜 오히려 한민족의 시대적 사명과 하나님 나라의 비젼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할 수만 있으면 교육학상 적어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부득불 한 경우를 고려하여 그 대안으로 ‘씨알의 집’을 운영코자 하는 것입니다.
‘씨알의 집’에서는 ‘학교’, ‘부모’,‘홈 스테이 가정’, ‘교회’ 와 파트너 쉽의 긴밀한 관계속에 전인적 돌봄과 양육을 도모합니다.
왜 다시 "씨알의 집"을 시작하게 되었나?
미국 땅에서 현재 까지의 한국 조기 유학생 풍토를 지켜보면서 다시 ‘씨알의 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 자의반 타의반, 경제적 이유로, 또는 교육 문제 등 다양한 이유들로 수 많은 조기 유학생들이 이곳 북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세계의 다른 곳에도 이미 많을 것입니다.
경제력과 여러 이유에 따라 다양한 유학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홀로 와서 친척또는 친분있는 집에 있는 학생, 그 중 어떤 이들은 아예 친척의 자녀로 입양도 했으며, 외국 사람 집에 홈 스테이하고 있는 학생들… (그것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집과 교회등을 통한 개인적 관심으로 하는 집등 차이가 있음.) 아주 고가의 사립학교 기숙사에 있는 학생, 형제 자매들 끼리 방 얻어 있는 학생, 사설 소규모 유학원 한인 집에 4-5 명 또는 그이상 집단으로 생활 하는 경우, 경제적 여유 있는 집안 일 경우, 한국의 살림 유지하며 이중 국적 인정국가에 이민하여 살림을 낸 경우, 집을 얻고나 사고 양쪽 부모 중 한 사람이 아이들만 데리고 떨어져 사는 경우, 이 경우 대부분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와 있고, 아빠들은 소위 기러기 아빠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어떤 돈 있는 사람은 집을 사서는 외국 가정을 무료로 살게 하며 자신들의 아이를 맡기고 약간의 생활비를 보태만 주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온 나라의 재정이 빠져나가고, 국민적 빈부차에 의한 위화감과 가정의 파탄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투자 한 것에 비해, 최근 한 자료가 보여 주는 것은 조기유학의 성공률은 10%가 채 안 된다는 것이 었습니다.
원인은 무엇일까요? 언어와 문화 적응의 실패, 학습이해의 어려움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와 원인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은 학생 개인및 또래 집단의 관계에 있어 긍정적이며 교육적이고 신앙적인 체계적인 관리와 돌봄이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학생 자신이나 몇몇 친구나 지역교회의 부분적 관심있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 이 부분에대하여는 거의 방목 상태였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수많은 외화 유출의 시급한 대처와, 이미 나와있는 우리의 청소년들의 장래를 생각해 볼때 이 일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참으로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이제 어찌해야 할까요? 다 되돌려 보내야 할까요? 막는다고 막아질까요?
이러한 현실적 정황들을 고려할때 그 최선의 방안은 무었일까요? 특별히 크리스챤으로서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할 수만 있으면, 긍정적이고 합리적이며 정직한 방법이라면 우리나라 한 사람이라도 더 해외로 그것도 하나님께서 인류 모두에게 쓰라고 주신 넓은 땅을 혼자 독차지 하고 있는 나라들로 건전한 꿈과 사명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사회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정상적인 삶을 영위 할 때, 남한 땅의 경우 최대 2000만 살기에 적합한 데 지금 4700만 이상이 살려니 수많은 경쟁 속의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이 시대 애국하는 길이 두가지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또 하나는 해외로 나가 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시와 농촌이 균형을 이루고 세계화 속에서 한민족의 우수한 두뇌와 성품들로 세계를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증거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다시 조기 유학 문제로 돌아와 생각해 볼때, 이미 해외에 나와 있고 또 앞으로 나올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으로 새로운 모습의 ‘씨알의 집’을 구상케 된 것입니다.
‘씨알의 집’은 국가적 차원의 외화 유출의 재정 누수를 최소화 시키고, 범국민적 빈부 격차의 위화감을 줄이며, 가정 파탄의 위기또한 최대한 줄이며, 이미 나와 있는 또 앞으로 나올 학생들의 유학비를 최소화 시키며 학업과 생활의 질을 높여 그 부정적 요소를 최소화 시키고, 긍정적 분야를 최대화 시켜 오히려 한민족의 시대적 사명과 하나님 나라의 비젼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할 수만 있으면 교육학상 적어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부득불 한 경우를 고려하여 그 대안으로 ‘씨알의 집’을 운영코자 하는 것입니다.
‘씨알의 집’에서는 ‘학교’, ‘부모’,‘홈 스테이 가정’, ‘교회’ 와 파트너 쉽의 긴밀한 관계속에 전인적 돌봄과 양육을 도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