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26)

이성도200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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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감독 나쁜 감독

 

2002 년 월드컵 4 강 신화의 선봉에는 히딩크란 명감독이 있었다. 히딩크가 처음 우리 대표팀을 맡았을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에게 큰 기대를 걸지 하지 않았다.  생소한 트레이닝 방식에다 연습 상대팀을 만나 제대로 게임다운 게임을 해 보지 못하고 대패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는 5 대 0 이란 참담한 스코어로 패하자 네티즌들은 그에게 오대영이란 별명을 붙이며 조롱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그의 여자 친구 엘리자베스와 호텔을 쓴다 하여 양식이 없는 이상한 감독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히딩크는 그러나 이런저런 비난과 악소문 속에서도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남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되 결코 자신이 설정한 목표와 방식을 포기하지 않았다. 덕분에 히딩크는 한국 사람들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4 강 신화라는 값진 선물을 안겼다.

 

히딩크를 정말 우리들의 영웅이었고 우리들은 진심으로 그를 존경했고 좋아했다. 영원히 우리 대표팀을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네티즌들은 히딩크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우스개 소리도 했다.

 

히딩크의 모습을 보면서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했다.

군사 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았다 해서 미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고, 무리한 개발 정책으로 민주주의가 말살된다는 안팎의 비난 속에서도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목표와 소신을 밀어 붙였다.

 

숱한 악조건 속에서도 마침내 우리 대한민국을 5 천년간 이어져 온 가난의 한에서 벗어나고 했고, 경제 강국으로 우뚝 솟게 했다. 지금 우리들이 마음껏 대~한민국을 외치며 흥겨운 축제를 벌일 수 있는 것은, 민족 염원인 평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선 경제적 자립이 우선이라는 확고한 신념에 따른 박 대통령의 불굴의 의지와 실천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히딩크는 대한민국 축구 감독으로서 대한민국 축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박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선진 조국을 건설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안팎의 시련이 있었지만 흔들림 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갔고 마침내 뜻을 이뤘다.  한 사람은 대통령이고 한 사람은 축구 감독으로서 그 직책이 서로 다르지만 그런 면에서 두 사람 모두 훌륭한 지도자라 할 수 있겠다.

 

2006 년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을 맡았더 아드보카트도 잊을 수 없는 명감독이라 생각한다. 그 역시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이끄는 모습이나 자신의 스타일과 목표, 방식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는 등 전임 히딩크 감독에 견주어 손색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아드보카트에 든든한 신리가 느껴진 것은 , 항상 선수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대신 스스로를 낮출 수 있는 겸손함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전님 본프레레 감독은 히딩크나 아드보카트 감독에 비하면 정말 모자라는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2005 년 8 월까지 1 년여 동안 그는 끊임없이 변명만 늘어 놓았다. 히딩크에게는 많은 지원을 해 주었지만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다 불공평하다. 준비할 시간은 부족한데 기대치는 너무 높다는 등 항상 불만투성이었다. 게임에서 지기라도 하면 빠지지 않고 선수들을 질책했다.  " 선수들 집중력이 문제였다.선수들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다. 선수들의 내 전술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 는 등 단 한번도 선수들을 위로하거나 격려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선수들은 그래서 게임에 진 것만 해도 기가 죽고 속이 상하는데 공식 기자 회견장에서 대놓고 감독이 자신들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 대는 것을 보곤 더욱 어깨가 움츠러 들었다.  본프레레 감독과 함께 하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선수들 분위기는 더욱 엉망이 되어갔고 전력도 나빠졌다.

 

2005 년 9 월 월드컵 본선을 불과 9 개월 남겨두고 우리 대표님을 맡은 아드보카트는 달랐다. 한국팀 감독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위태로운 자리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고, 그래서 아드보카트가 한국팀 감독에 임명되자 마자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는 우선 땅에 떨어진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는 데 주력했다.  항상 잘할 수 있을거야 , 잘하고 있어 , 너는 훌륭해, 라며 끊임없이 선수들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아드카보트는 취임 1 개월만에 이란을 상대로 한 평가전에서 2 대 0 승리를 따내며 가능성을 보였다. 한국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그이 노력이 첫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후 한국팀은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갔다. 아드보카트는 게임에서 지더라고 " 선수들은 훌륭했다. 가능성을 보여 줬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는 등 선수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한편, 책임은 스스로에게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게임에서 이기더라도 모든 공은 역시 선수들 몫이었다. 아드보카트는 확실히 선수들 편이었던 것이다.

 

아트보카트는 경기 전 작전회의 때면 항상 선수들에게 티나 터너의 더 베스트란 노래를 들려 주었다고 한다. 네가 정말 최고야, 어떤 사람보다 낫지, 누구도 따를 수 없어~ 란 노래는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게임을 즐기면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게임을 잘못 풀거나 지고 있을 경우 하프타임 때 선수들을 심하게 질책하거나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는 감독도 있다.  그러나 설사 게임에 지고 있더라도 아드보카드는 좀 더 밀어 붙이면 이길 수 있다며 선수들 어깨를 다독였다.  선수들에게 강한 믿음을 보이는 대신 스스로 책임을 지고 뒤를 지켜주는 든든한 후원자 그 것이 아드보카트 감독의 리더십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립경제.평화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선 어떤 비난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밀고 나갔다.

 

진실된 목표가 있었기에 밀어 붙일 수 있었고, 그래서 "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 " 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 정권이 국민이 몰라 주어도 역사는 알아줄 것이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논리를 펴며 고집을 피우는 것은 "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 는 박 대통령의 진실된 마음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 지나 온 모든 역사를 부정하고 그야말로 처음처럼 새 출발하자는 이 정권의 음험한 속셈에 기가 질릴 따름이다.

 

같은 선수들인데도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팀 컬러와 성적이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우리는 축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본프레레 온 국민이 실망했지만 과감하게 그를 퇴임시키고 아드보카트를 새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국민들 모두가 신바람을 낼 수 있었다.

 

어떤 감독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나라별로 희비가 엇갈린다.

 

23 명의 엔트리만을 데리고 참가하는 월드컵만 해도 그러한데, 하물며 국민의 생존 문제가 달린 국가 지도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도자를 한번 잘못 뽑으면 나라가 흔들리고 생존권이 위협받게 된다. 선무당 사람 잡는다고 했다.

 

국민들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자고 표를 던져 주었지만 제 발등 찍은 꼴이 되고 말았다.  잉글랜드의 유인 핸드라는 사람은 " 세상에 두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한 가지는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축구 감독은 항상 잘린다는 사실이다" 고 말했다.  성적이 나쁘면 바로 잘리는 축구 감독의 운명을 빗댄 우스개 소리다.  그렇다 !!

 

축구 감독은 성적이 좋지 않으면 잘라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 국가의 지도자는 성적이 좋지 않다고 당장 자리를 뺏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탄핵이라는 결정적 계기가 한 번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국민들은 나라 꼴이 이 지경까지 될 줄은 몰랐고 그래서 불쌍한 대통령 해 가면서 탄핵을 반대하기도 했다.

 

탄핵이 오히려 대통령과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되었고 결국 그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되고 말았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언젠가 물러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들은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엉망진창 만신창이가 돼 버린 나라 살림이며 국가 안보며 흉흉해진 민심은 어떻게 누가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결국 뒷감당은 국민들이 해야 한다.

 

철없는 자식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나 몰라라 집을 나가 버리고 나면, 남은 가족들은 죽을 고생을 해야 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책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중에서 옮김

 

 






원문내용(작성자:이성도)-----------------------------------

하얀 연꽃이 핀 줄 알았다...

 

 

그 날 설핏 눈발이 날렸던가

 

마음은 벌써 봄을 향해 내쳐 달렸으나, 동장군은 쉬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듯 했다.

 

매화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고, 남쪽에선 곧 동백꽃을 보게 될 것이란 소리가 있었으니 ....

아마 3 월이 다 되어 갈 때 쯤이었나 보다.

 

그 날 박근혜 의원을 처음 만났다. 봄 날 설핏 스쳐간 상서로운 눈발 탓인지 아침부터 가슴이 설레였다.

 

하얀 연꽃이 핀 줄 알았다.

 

어쩌면 하얀 목련 같기도 하고, 그러나 여자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성의 구별을 초월한 관세음 보살 기운이 강하게 풍겼다.

 

처음 보는 박근혜 의원은 관세음 보살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보통 사람에게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그런 편안함이었다.

신기하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손을 내밀어 잡아보니 도무지 형언하기 어려운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얼굴의 육상은 한없이 부드러운 기운이 베어 나오는 상이었고,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께서 생전에 우리에게 보이신 그런 느낌이었다.

 

골상은 강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했다.

 

사주에 금이 많아 강한 리더십을 가졌던 박정희 대통령의 기운을 타고 난 것 같았다. 박 의원은 아버지의 강한 지도력과 어머니의 자상함과 너그러움을 함께 물려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 의원을 보는 순간 부처님과 함께 내 마음의 군주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나는 박 의원을 바라 보면서, 두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박 의원은 이 순간 합장을 하는 나의 모습이 부담스러웠던지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살며시 머리 숙여 답례 했다.

 

이제 우리 7 천만 동포를 위해 일해 주십시요. 지금 이 나라가 정말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우리 민족 모두가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도록 큰 일을 해 주십시요 !!

 

나는 진실된 마음으로 박 의원에게 간청했다.

 

그리고 또 박 의원에게 약속했다.

박 의원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던 나는 박 의원이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 것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이겨 나갈 것 같은 강한 카리스마를 보았다.

 

이미 혹독한 자기 수련으로 내공을 쌓아 높은 경지에 오른만큼 어떤 난관도 뚫고 나가 뜻하는 바를 이루어 내고야 말 것이라 믿는다.

 

나는 오늘 부처님 앞에서 기도한다.

 

"부처님 이 나라 이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요.

나라가 어리석은 자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미륵 보살을 보내 주셨으니

이제 그 미륵 보살이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정말 행복하게 잘 사는 길로 이끌어 나갈 수 있게 해 주십시요 "

 

 

책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중에서..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