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의 영화를 노골적으로 불편해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을 찾아봤던 이유는 하나다. 영화에 담긴 주산지의 사계절과 물 위의 나무, 나룻배의 모습은 지상의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신비로웠다. ‘저곳에 가자!’ 계획을 세우는 일엔 소질도 관심도 없던 탓에 한 번 가보고야 말겠다는 결심만으로 무작정 1박 2일의 청송 여행길에 올랐다. 출발 당일 아침, 택시 안에서 터미널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어보니 서울에서 청송까지 가는 가장 빠른 차편은 동서울터미널에서 주왕산까지 직행하는 9시 20분 버스. 첫차였다.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는 얘길 듣고, 못내 미심쩍어 하는 포토그래퍼와 김밥 한 줄을 싸들고 버스에 올랐다. 얼마나 왔을까. 단잠을 자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지나는 길 어귀마다 옹기종기 모여 작은 부락을 이룬 한옥 마을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당에 자리한 알록달록한 빨래며 들녘에 그림처럼 선 아낙들의 모습이 도심생활에 익숙한 여행자에게 이국적인 풍광보다 더 생경하게 다가온다. 안동을 지나자 곧 청송이다. 강원도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버스기사는 ‘볼 것도 없는 청송엔 뭣 하러 가느냐’며 혀를 차고, 먼지를 뒤집어 쓴 청송 역엔 지나는 버스도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역 앞에 위치한 택시 사무소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먼저 짐을 풀기 위해 며칠 전 예약한 전통한옥 숙박집, 송소 고택으로 향했다.
전통 테마 마을에 도착하다 하늘을 향해 솟대와 장승이 선 청송군 부동면은 전통 테마 마을이다. 흔한 담배꽁초 하나 없는 단아한 마을길은 전통 한옥과 사과나무, 논두렁으로 이어져 있고 심씨 가문 일가가 모여 살았던 마을엔 아직도 ‘송소고택’과 사당의 흔적이 남아있다. 7만원에 반나절 동안 대절하기로 한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이곳저곳 기웃거리자니 ‘천연염색체험장’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다. 마침 녹차를 우려내던 안주인은 우리를 발견하고 들어와 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며 대청마루에 자리 한 켠을 내준다. 약수를 매염제로, 사과와 사과나무 잎사귀, 한약재를 염료로 하여 천에 물을 들이는 이곳은 아무나 들어와서 차 한 잔 나누며 쉬었다 가도 좋고, 하루 동안 머물며 명주 실크 스카프니 열쇠고리니 가방이니 하는 것들을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는 곳이라고 한다. 손님들이 열심히 명주에 물을 들이고 있으면 안주인은 감자와 옥수수를 간식거리로 들고 나온다. 모여 앉은 마을 사람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택시를 타러 마을 어귀로 나왔다. 잡티 하나 없는 푸른 하늘에, 날씨 한 번 끝내주게 좋다.
달기 약수터와 달기 폭포 마을에서 주산지까지는 차로 30여분. 어차피 가는 길에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달기 약수터와 달기폭포를 차례로 들러 구경하기로 했다. 상탕, 중탕, 원탕, 이렇게 세 개의 터에서 솟는 약숫물은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위가 안 좋은 사람들에게 특히 좋다고 한다. 줄을 선 사람들 틈에 섞여 한 모금 마셔보니 사이다처럼 톡 쏜다. 주변엔 달기약백숙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 대 여섯 곳 모여 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닭백숙이다!’ 아침만 제공된다는 송소 고택 주인장의 얘기에 흔한 식당 간판조차 찾기 힘든 시골 마을에서 절망한 에디터에게 모처럼의 희소식.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달기 폭포로 향했다. 폭포 밑에서 용이 승천하였다고 하여 ‘용소’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물이 얼마나 깊은지 명주꾸리를 다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폭포의 높이만 11m. 띄엄띄엄 놓인 바위와 바위 사이를 건너 물가에 닿으니 나무가 이룬 천연 그늘에 몸이 서늘해진다. 객지 사람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아 오염되지 않은 물은 바닥이 훤히 들일 정도로 맑고 차가웠다.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해지는 달기 폭포에서 다시 차로 20여 분을 달리자 멀리 주왕산이 보인다. 세종대왕이 심씨 가문에게 하사했다던 주왕산은 일제시대를 지나면서 나라 소유로 바뀌었다. 국립공원인 탓에 부근엔 수세식 화장실도 설치될 수 없다. 수세식 화장실은 물론, 어떤 인위적인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다. 주왕산에서부터 이어지는 전래 동화 속의 그것 같은 그 예쁜 길을 타고, 10분 정도만 차로 나아가면 드디어 주산지다.
주산지, 마법에 걸린 그 하늘과 나무 입구에서부터 걸어서 10여 분. 주산지로 향하는 산책로엔 철을 모르는 나비가 날아다니고 겁 많은 날다람쥐가 사람이 지날 때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포르르 수풀 사이를 뛰어간다. 마침내 이른 주산지의 흔들림 없는 수면엔 파란 하늘과 30여 그루의 왕 버들, 수양버들이 잠겨 있었다. 사진에 담고 보면 수면을 경계로 위와 아래를 구분하기 힘들만큼 하늘과 주산지는 닮았다. 1720년 숙종 46년에 농사를 위해 만들어진 이 인공호는 3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깊은 산골에 갇혀 속세를 잊고 태고적 신비로움으로 다시 태어났다.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 물속의 수양버들과 그 기묘한 자태의 아름다움은 여느 때고 아름답지만 새벽이 되면 더욱 빛을 발한다. 안개 탓에 수양버들은 구름 위에 솟은 것처럼 몽환적이며 주산지는 그 끝과 수면의 경계를 알 수 없어 신비롭다. 저 나무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면 희뿌연 안개 너머로 천상이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 둥그렇게 몸을 말아 물가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 수양버들에 기댄 아침 이슬이 물가에 떨어지는 또르륵 소리가 들린다. 잠이 덜 깬 수면 위로 이슬이 일으키는 작은 파문을 지켜보는 것은 또 어떤가. 고라니의 울음과 다람쥐의 발걸음, 이름 모를 산새의 날개 짓도 들려온다. 새벽녘 안개를 뒤로하고 내려오면 유난히 부지런한 이곳의 상인들이(그래봤자 채 10개도 안 되는 작은 점포뿐이지만) 신 새벽부터 물을 끓여 여행자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건네고, 해질녘 이 곳을 찾아 산책로를 빠져나오면 핏빛으로 물든 하늘이 감상에 빠진 여행자를 또 한 번 감탄하게 한다.
송소 고택에서의 하룻밤 주산지에서 온 종일을 보내고, 숙소에 들어서자 툇마루 아래에 장작불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하룻밤을 묵으며 전통 한옥을 체험할 수 있는 송소고택은 조성 영조때 만석꾼 심처대의 7대손 심호택이 고종 17년에 지은 고택으로 지금은 외부인이 관리하고 있다. 대문채, 안채, 별당,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로 흙벽과 창호지로 만들어진 방과 마당들은 하도 닮아 주인이 두어 번 방의 위치를 일러주어야 그제야 찾아갈 수 있을 정도다. 외부에 따로 위치한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장 외엔 작은 우물과 꽃담까지 옛 것 그대로. 장작 온돌방 안엔 덩그러니 비단금침 몇 채만 놓여 있을 뿐, TV조차 없다. 됫돌에 놓인 신발을 신고 마당에 나서자 마당 한 가득 별이 쏟아져 내린다. 고택에서 기르는 순한 개 한 마리와 마당을 한 바퀴 휘휘 돌고 잠을 청했다.
5일장을 끝으로 다시 서울로... 매 4일과 9일 마다 읍내에서 열린다는 장터 구경을 끝으로 청송 여행을 마무리했다. 인구가 줄어들어 예전처럼 크게 장이 서진 않는다던 택시 기사의 말 대로 장터는 소박하다. 50평 남짓한 공간. 갓 빚어낸 떡을 가위로 써는 아주머니, 생선장수, 직접 텃밭에서 길렀을 몇 종류의 야채 더미를 파는 할머니들이 장터의 파란 천막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별로 지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손짓을 한다. 인절미 몇 개와 청송에서 유명하다는 사과를 사서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어떤 사진이나 말로도 설명하기 힘든 주산지의 아름다운 풍광과 세월이 흘러도 도무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시골 마을. 대문은 열려있고 순한 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과의 몇 마디 대화에도 ‘자고 가라’며 옷깃을 붙잡는다. 버스 시간이 늦자 이틀 동안 우리와 함께 한 택시 기사는(그 역시 심씨 가문의 사람이다) 많이 늦지만 않았으면 버스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로 가는 버스를 붙잡아 줄 수 있다고 한다. 이 곳 사람들은 건너집의 이불이 몇 채인지조차 아마 다 알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속 배경지로 알려진 이후, 관광객들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청송은 쉽게 변할 것 같지 않다. 300년 동안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다는 주산지의 그 신비한 기운 덕에, 주왕산의 그 장엄한 기상 덕에 오늘도 사람들은 넉넉한 인심으로 이방인을 위로하고 하늘을 담은 맑은 호수는 버들잎에서 떨어지는 아침 이슬에 뿌연 잠에서 깨어 날 것이다.
외국으로 몇 번의 여행을 다녀온 뒤 들었던 두 가지의 의문 하나, 온갖 도시의 시청을 들렀으면서 정작 서울의 시청은 가보지 않았다는 것. 둘째, 국내에서는 일부러 호수를 찾아가본 적이 없다는 것. 왜 난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호수를 찾아가지 않았던 것일까.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가 없어서였을까. 그런 의문으로 찾아보게 된 국내 호수 여행. 새로 생긴 댐 때문에, 세월의 흔적 때문에 호수들은 다양한 이유를 담고 있었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호수 사진들 사이로, 마치 백두산의 천지와 같이 호수가 산 속에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의 호수를 발견했다. 그곳은 사진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한번 들른다는 전라북도 임실의 옥정호. 사진을 찍었다하면 바로 엽서가 된다는 사진작가들의 찬사가 가득했다. 게다가 그곳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순수한 강, 섬진강 상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면 위에 가득 피어오른 현실감 없어 보이는 물안개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번 가을에는 저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임실은 관광 정보가 많지 않은, 때 묻지 않은 곳이다 전라북도 임실은 서울에서 차로 약 4~5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임실군에 대한 관광 정보는 많지 않고 구하기도 힘들다. 특히 그곳에 어떻게 가야하는지 안내해둔 자료가 많지 않다. 미리 임실군 홈페이지에 들어가 관광 안내 지도를 요청하거나, 임실에 도착하자마자 군청에 들러 관광지도부터 찾아놓기를 권한다. 임실군의 관광 포인트는 단순하다. 옥정호 관광권, 사선대 관광권, 오수의견 관광권, 성수산관광권, 세심 관광권 이렇게 5곳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임실을 찾는 사람의 대부분은 옥정호를 보기 위해 온다. 이곳에 갈 때는 되도록 자가용을 이용하라고 싶다. 옥정호 한 곳만 가기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큰 무리가 없지만 임실군 내의 다른 볼거리들을 둘러보기에는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다. 거리는 둘째 치더라도, 결코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새벽 물안개 낀 일출을 보기 위해 국사봉 전망대에 올라가야 하는 시각에는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다. 택시를 예약하거나 렌터카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옥정호 그리고 단 한 가구만이 살고 있는 섬 전라도에 갈 때마다 탁 트인 평야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만날 수 있어 항상 기분이 좋아진다. 00를 지나면서 차는 점점 오지마을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평야를 한참 넘어, 거대한 산맥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 즈음,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1926년 섬진강댐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옥정호는 만수면적이 25.5km2로, 다른 호수에 비해 아담한 크기지만 호반도로를 따라 달리면서는 옥정호를 한눈에 담을 방법은 없다. 가장 아름다운 옥정호의 모습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국사봉에 올라야 한다. 국사봉에 도착하기 전, 산줄기를 따라 굽이굽이 호반도로를 타고 올라가다가 국사봉 휴게소에 잠시 내렸다. 비로소 현실감 없이 물 위에 떠 있는 섬과, 산에 둘러 싸여 둥근 모습을 하고 있는 옥정호의 모습이 두눈 가득 들어온다. 그 광경은 너무 고요해서 마치 시간이 정지해버린 것 같다. 눈부시도록 푸른 빛깔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호수는 풀색에 가깝다. 마치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 녹아 나온 물 같다. 수면 위로 드리워진 산그림자가 신비감을 더한다. 호수 중앙에는 ‘외안날 마을’이라는 유인도가 자리 잡고 있는데, 얼마 전만 해도 팔순 노인과 젊은 부부 한쌍이 살고 있다고 했지만, 지금은 한 가구마저 빠져, 완벽히 한가구만이 살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본 섬에는 집이 서너 채 보이고, 밭이 보인다. 인근 마을에 들러, 외안날 마을에 들어갈 수 있는 배를 요청해봤지만, 마을 주민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가는 배를 얻어 타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인근 마을에도 그 흔한 펜션도, 화려한 간판을 달고 줄지어선 식당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휴게소에서 마지막 고개처럼 보이는 언덕을 넘어가면 국사봉에 오를 수 있는 입구가 나온다. 그곳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 올라간다. 초입부터 시작하는 나무 계단이 꽤 멋스럽다. 계단이 끝나서부터는 완벽한 산행이다. 올라가는 내내 삼각대를 어깨에 메고 등산화를 신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올라가는 중간중간 바라본 호수는 아래에서 볼 때보다 가깝게 보이는 느낌이다. 약 30분 쯤 올랐을까. 크지 않은, 하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바닥이 다져진 공간이 나온다. 한눈에 봐도 그곳이 옥정호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옥정호 휴게소에서는 결코 하나의 렌즈 안에 담기지 않았던 옥정호가 국사봉에 오르니 비로소 한 공간에 들어간다. 산에서 내려와서 근처 팔각정에 한번 더 들렀다. 이곳에 오르니 옥정호 뿐 아니라 마이산, 나래산, 모악산은 물론 멀리 지리산 연봉까지도 아련하게 보인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섬진강을 따라가는 자갈길 호반도로를 벗어나 27번 국도를 따라가면 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 간판이 나온다. 간판을 따라 꺾어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김용택 시인의 고향인 장산 마을이 나오고, 마을 앞부터 천담계곡을 따라 가는 약 10km의 자갈길이 나온다. 비포장도로가 흔하지 않은 요즘, 꽤나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이다. 좁은 길옆으로 햇살을 가득 머금은 섬진강이 함께 흐른다. 물 흐름이 어찌나 고요한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고인 물처럼 느껴질 정도다. 숨이 막힐듯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직접 몸을 물에 담그고 플라잉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치열함도, 절박함도 없다. 이곳은 현실과는 너무 떨어져 있다.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인 구담 마을은 오지에 가깝다. 4년 전에야 포장공사가 끝난 진입로를 따라 올라갔다. 도로의 끝에 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가 있다. 세월을 보여주는, 기묘하다 못해 아름다운 나무뿌리들로 둘러싸인 구담마을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보일듯 말듯 섬진강의 징검다리가 보인다. 징검다리를 놓은 것조차 미안했는지 그 모습이 마치 자연적으로 생긴 것만 같다. 공터의 평평한 돌 위에 누우니 세상에는 온통 물 흐르는 소리, 풀벌레 소리뿐이다. 마을에서 내려와 오수의견관광권으로 이동을 했다. 산 속 불길에서 술에 곯아떨어진 주인을 자신의 몸으로 구하고 죽은 것으로 유명한 충견 ‘오수의 개’. 오수의 견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오수의견공원을 찾았다. 벤치가 많고 한적하여 잠시 들러서 쉬기 좋은 곳이다. 곳곳에 세계의 충견 동상들과 함께 그 일화들이 적혀 있어서 재미있다. 옥정호의 새벽 물안개를 보기 위해 숙소를 옥정호 근처로 잡았다. 아무리 늦어도 새벽 5시에는 그곳에 올라가 있어야 할 듯하다. 그리고 다음날, 깜깜한 어둠을 걷어내고 다시 전망대에 올랐다. 낮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하루가 서서히 밝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물안개를 볼 수는 없었다. 아무리 가을이라고 해도 호수 전면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볼 수 있는 날은 1년 중 손에 꼽는다고 한다. 소나기가 내린 직후가 물안개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사선대 관광지와 느티마을 치즈 체험 아쉬움을 안고 사선대 관광권으로 이동했다. 신선 4명이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고 놀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사선대라지만 지금은 관광단지로 조성이 되어 있다. 드넓은 잔디밭, 곳곳에 자리한 정자와 벤치, 그 뒤로 작가들의 다양한 느낌과 주제를 가진 조각품이 전시 되어 있는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조각공원 뒤로 보이는 산에 절의 그림자가 비쳐 가보니, 가을이면 시제를 지냈다는 운서정이다. 지금은 비어 있는데, 조선 본래의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그곳에 오르니 또 한번 사선대가, 임실이 내려다보인다. 참 조용한 느낌의 도시다. 오후에는 치즈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임실 치즈 피자'로 먼저 들어봤을 임실 치즈. 임실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치즈를 만들기 시작한 곳이다. 임실역 쪽으로 이동하면 마을 초입부터 개울을 따라 수십년 된 느티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마을에 다다를 수 있는데, 이곳 느티마을에서 치즈, 발효유, 우유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들어 보는 치즈-낙농 체험을 할 수 있다. 세련된 시설에,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흥미롭다. 매일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전에 문의를 해야 한다. 하루 중에도 동 트기 전, 오후 햇살이 부서지는 오후, 해질 무렵, 별이 쏟아지는 밤 모두 다른 모습을 보일 것 같아 어느 순간에 가야 할지 수도 없이 망설였던 옥정호. 돌아온 지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떤 계절에 어떤 모습을 만나러 가야할지 또 다른 꿈을 꾸게 한다.
하늘 호수로 떠나는 여행
전통 테마 마을에 도착하다
하늘을 향해 솟대와 장승이 선 청송군 부동면은 전통 테마 마을이다. 흔한 담배꽁초 하나 없는 단아한 마을길은 전통 한옥과 사과나무, 논두렁으로 이어져 있고 심씨 가문 일가가 모여 살았던 마을엔 아직도 ‘송소고택’과 사당의 흔적이 남아있다. 7만원에 반나절 동안 대절하기로 한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이곳저곳 기웃거리자니 ‘천연염색체험장’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다. 마침 녹차를 우려내던 안주인은 우리를 발견하고 들어와 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며 대청마루에 자리 한 켠을 내준다. 약수를 매염제로, 사과와 사과나무 잎사귀, 한약재를 염료로 하여 천에 물을 들이는 이곳은 아무나 들어와서 차 한 잔 나누며 쉬었다 가도 좋고, 하루 동안 머물며 명주 실크 스카프니 열쇠고리니 가방이니 하는 것들을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는 곳이라고 한다. 손님들이 열심히 명주에 물을 들이고 있으면 안주인은 감자와 옥수수를 간식거리로 들고 나온다. 모여 앉은 마을 사람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택시를 타러 마을 어귀로 나왔다. 잡티 하나 없는 푸른 하늘에, 날씨 한 번 끝내주게 좋다.
달기 약수터와 달기 폭포
마을에서 주산지까지는 차로 30여분. 어차피 가는 길에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달기 약수터와 달기폭포를 차례로 들러 구경하기로 했다. 상탕, 중탕, 원탕, 이렇게 세 개의 터에서 솟는 약숫물은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위가 안 좋은 사람들에게 특히 좋다고 한다. 줄을 선 사람들 틈에 섞여 한 모금 마셔보니 사이다처럼 톡 쏜다. 주변엔 달기약백숙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 대 여섯 곳 모여 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닭백숙이다!’ 아침만 제공된다는 송소 고택 주인장의 얘기에 흔한 식당 간판조차 찾기 힘든 시골 마을에서 절망한 에디터에게 모처럼의 희소식.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달기 폭포로 향했다. 폭포 밑에서 용이 승천하였다고 하여 ‘용소’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물이 얼마나 깊은지 명주꾸리를 다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폭포의 높이만 11m. 띄엄띄엄 놓인 바위와 바위 사이를 건너 물가에 닿으니 나무가 이룬 천연 그늘에 몸이 서늘해진다. 객지 사람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아 오염되지 않은 물은 바닥이 훤히 들일 정도로 맑고 차가웠다.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해지는 달기 폭포에서 다시 차로 20여 분을 달리자 멀리 주왕산이 보인다. 세종대왕이 심씨 가문에게 하사했다던 주왕산은 일제시대를 지나면서 나라 소유로 바뀌었다. 국립공원인 탓에 부근엔 수세식 화장실도 설치될 수 없다. 수세식 화장실은 물론, 어떤 인위적인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다. 주왕산에서부터 이어지는 전래 동화 속의 그것 같은 그 예쁜 길을 타고, 10분 정도만 차로 나아가면 드디어 주산지다.
주산지, 마법에 걸린 그 하늘과 나무
입구에서부터 걸어서 10여 분. 주산지로 향하는 산책로엔 철을 모르는 나비가 날아다니고 겁 많은 날다람쥐가 사람이 지날 때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포르르 수풀 사이를 뛰어간다. 마침내 이른 주산지의 흔들림 없는 수면엔 파란 하늘과 30여 그루의 왕 버들, 수양버들이 잠겨 있었다. 사진에 담고 보면 수면을 경계로 위와 아래를 구분하기 힘들만큼 하늘과 주산지는 닮았다. 1720년 숙종 46년에 농사를 위해 만들어진 이 인공호는 3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깊은 산골에 갇혀 속세를 잊고 태고적 신비로움으로 다시 태어났다.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 물속의 수양버들과 그 기묘한 자태의 아름다움은 여느 때고 아름답지만 새벽이 되면 더욱 빛을 발한다. 안개 탓에 수양버들은 구름 위에 솟은 것처럼 몽환적이며 주산지는 그 끝과 수면의 경계를 알 수 없어 신비롭다. 저 나무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면 희뿌연 안개 너머로 천상이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 둥그렇게 몸을 말아 물가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 수양버들에 기댄 아침 이슬이 물가에 떨어지는 또르륵 소리가 들린다. 잠이 덜 깬 수면 위로 이슬이 일으키는 작은 파문을 지켜보는 것은 또 어떤가. 고라니의 울음과 다람쥐의 발걸음, 이름 모를 산새의 날개 짓도 들려온다. 새벽녘 안개를 뒤로하고 내려오면 유난히 부지런한 이곳의 상인들이(그래봤자 채 10개도 안 되는 작은 점포뿐이지만) 신 새벽부터 물을 끓여 여행자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건네고, 해질녘 이 곳을 찾아 산책로를 빠져나오면 핏빛으로 물든 하늘이 감상에 빠진 여행자를 또 한 번 감탄하게 한다.
송소 고택에서의 하룻밤
주산지에서 온 종일을 보내고, 숙소에 들어서자 툇마루 아래에 장작불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하룻밤을 묵으며 전통 한옥을 체험할 수 있는 송소고택은 조성 영조때 만석꾼 심처대의 7대손 심호택이 고종 17년에 지은 고택으로 지금은 외부인이 관리하고 있다. 대문채, 안채, 별당,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로 흙벽과 창호지로 만들어진 방과 마당들은 하도 닮아 주인이 두어 번 방의 위치를 일러주어야 그제야 찾아갈 수 있을 정도다. 외부에 따로 위치한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장 외엔 작은 우물과 꽃담까지 옛 것 그대로. 장작 온돌방 안엔 덩그러니 비단금침 몇 채만 놓여 있을 뿐, TV조차 없다. 됫돌에 놓인 신발을 신고 마당에 나서자 마당 한 가득 별이 쏟아져 내린다. 고택에서 기르는 순한 개 한 마리와 마당을 한 바퀴 휘휘 돌고 잠을 청했다.
5일장을 끝으로 다시 서울로...
매 4일과 9일 마다 읍내에서 열린다는 장터 구경을 끝으로 청송 여행을 마무리했다. 인구가 줄어들어 예전처럼 크게 장이 서진 않는다던 택시 기사의 말 대로 장터는 소박하다. 50평 남짓한 공간. 갓 빚어낸 떡을 가위로 써는 아주머니, 생선장수, 직접 텃밭에서 길렀을 몇 종류의 야채 더미를 파는 할머니들이 장터의 파란 천막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별로 지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손짓을 한다. 인절미 몇 개와 청송에서 유명하다는 사과를 사서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어떤 사진이나 말로도 설명하기 힘든 주산지의 아름다운 풍광과 세월이 흘러도 도무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시골 마을. 대문은 열려있고 순한 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과의 몇 마디 대화에도 ‘자고 가라’며 옷깃을 붙잡는다. 버스 시간이 늦자 이틀 동안 우리와 함께 한 택시 기사는(그 역시 심씨 가문의 사람이다) 많이 늦지만 않았으면 버스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로 가는 버스를 붙잡아 줄 수 있다고 한다. 이 곳 사람들은 건너집의 이불이 몇 채인지조차 아마 다 알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속 배경지로 알려진 이후, 관광객들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청송은 쉽게 변할 것 같지 않다. 300년 동안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다는 주산지의 그 신비한 기운 덕에, 주왕산의 그 장엄한 기상 덕에 오늘도 사람들은 넉넉한 인심으로 이방인을 위로하고 하늘을 담은 맑은 호수는 버들잎에서 떨어지는 아침 이슬에 뿌연 잠에서 깨어 날 것이다.
외국으로 몇 번의 여행을 다녀온 뒤 들었던 두 가지의 의문 하나, 온갖 도시의 시청을 들렀으면서 정작 서울의 시청은 가보지 않았다는 것. 둘째, 국내에서는 일부러 호수를 찾아가본 적이 없다는 것. 왜 난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호수를 찾아가지 않았던 것일까.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가 없어서였을까. 그런 의문으로 찾아보게 된 국내 호수 여행. 새로 생긴 댐 때문에, 세월의 흔적 때문에 호수들은 다양한 이유를 담고 있었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호수 사진들 사이로, 마치 백두산의 천지와 같이 호수가 산 속에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의 호수를 발견했다. 그곳은 사진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한번 들른다는 전라북도 임실의 옥정호. 사진을 찍었다하면 바로 엽서가 된다는 사진작가들의 찬사가 가득했다. 게다가 그곳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순수한 강, 섬진강 상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면 위에 가득 피어오른 현실감 없어 보이는 물안개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번 가을에는 저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임실은 관광 정보가 많지 않은, 때 묻지 않은 곳이다
전라북도 임실은 서울에서 차로 약 4~5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임실군에 대한 관광 정보는 많지 않고 구하기도 힘들다. 특히 그곳에 어떻게 가야하는지 안내해둔 자료가 많지 않다. 미리 임실군 홈페이지에 들어가 관광 안내 지도를 요청하거나, 임실에 도착하자마자 군청에 들러 관광지도부터 찾아놓기를 권한다. 임실군의 관광 포인트는 단순하다. 옥정호 관광권, 사선대 관광권, 오수의견 관광권, 성수산관광권, 세심 관광권 이렇게 5곳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임실을 찾는 사람의 대부분은 옥정호를 보기 위해 온다. 이곳에 갈 때는 되도록 자가용을 이용하라고 싶다. 옥정호 한 곳만 가기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큰 무리가 없지만 임실군 내의 다른 볼거리들을 둘러보기에는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다. 거리는 둘째 치더라도, 결코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새벽 물안개 낀 일출을 보기 위해 국사봉 전망대에 올라가야 하는 시각에는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다. 택시를 예약하거나 렌터카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옥정호 그리고 단 한 가구만이 살고 있는 섬
전라도에 갈 때마다 탁 트인 평야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만날 수 있어 항상 기분이 좋아진다. 00를 지나면서 차는 점점 오지마을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평야를 한참 넘어, 거대한 산맥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 즈음,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1926년 섬진강댐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옥정호는 만수면적이 25.5km2로, 다른 호수에 비해 아담한 크기지만 호반도로를 따라 달리면서는 옥정호를 한눈에 담을 방법은 없다. 가장 아름다운 옥정호의 모습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국사봉에 올라야 한다. 국사봉에 도착하기 전, 산줄기를 따라 굽이굽이 호반도로를 타고 올라가다가 국사봉 휴게소에 잠시 내렸다. 비로소 현실감 없이 물 위에 떠 있는 섬과, 산에 둘러 싸여 둥근 모습을 하고 있는 옥정호의 모습이 두눈 가득 들어온다. 그 광경은 너무 고요해서 마치 시간이 정지해버린 것 같다. 눈부시도록 푸른 빛깔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호수는 풀색에 가깝다. 마치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 녹아 나온 물 같다. 수면 위로 드리워진 산그림자가 신비감을 더한다. 호수 중앙에는 ‘외안날 마을’이라는 유인도가 자리 잡고 있는데, 얼마 전만 해도 팔순 노인과 젊은 부부 한쌍이 살고 있다고 했지만, 지금은 한 가구마저 빠져, 완벽히 한가구만이 살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본 섬에는 집이 서너 채 보이고, 밭이 보인다. 인근 마을에 들러, 외안날 마을에 들어갈 수 있는 배를 요청해봤지만, 마을 주민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가는 배를 얻어 타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인근 마을에도 그 흔한 펜션도, 화려한 간판을 달고 줄지어선 식당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휴게소에서 마지막 고개처럼 보이는 언덕을 넘어가면 국사봉에 오를 수 있는 입구가 나온다. 그곳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 올라간다. 초입부터 시작하는 나무 계단이 꽤 멋스럽다. 계단이 끝나서부터는 완벽한 산행이다. 올라가는 내내 삼각대를 어깨에 메고 등산화를 신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올라가는 중간중간 바라본 호수는 아래에서 볼 때보다 가깝게 보이는 느낌이다. 약 30분 쯤 올랐을까. 크지 않은, 하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바닥이 다져진 공간이 나온다. 한눈에 봐도 그곳이 옥정호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옥정호 휴게소에서는 결코 하나의 렌즈 안에 담기지 않았던 옥정호가 국사봉에 오르니 비로소 한 공간에 들어간다. 산에서 내려와서 근처 팔각정에 한번 더 들렀다. 이곳에 오르니 옥정호 뿐 아니라 마이산, 나래산, 모악산은 물론 멀리 지리산 연봉까지도 아련하게 보인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섬진강을 따라가는 자갈길
호반도로를 벗어나 27번 국도를 따라가면 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 간판이 나온다. 간판을 따라 꺾어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김용택 시인의 고향인 장산 마을이 나오고, 마을 앞부터 천담계곡을 따라 가는 약 10km의 자갈길이 나온다. 비포장도로가 흔하지 않은 요즘, 꽤나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이다. 좁은 길옆으로 햇살을 가득 머금은 섬진강이 함께 흐른다. 물 흐름이 어찌나 고요한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고인 물처럼 느껴질 정도다. 숨이 막힐듯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직접 몸을 물에 담그고 플라잉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치열함도, 절박함도 없다. 이곳은 현실과는 너무 떨어져 있다.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인 구담 마을은 오지에 가깝다. 4년 전에야 포장공사가 끝난 진입로를 따라 올라갔다. 도로의 끝에 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가 있다. 세월을 보여주는, 기묘하다 못해 아름다운 나무뿌리들로 둘러싸인 구담마을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보일듯 말듯 섬진강의 징검다리가 보인다. 징검다리를 놓은 것조차 미안했는지 그 모습이 마치 자연적으로 생긴 것만 같다. 공터의 평평한 돌 위에 누우니 세상에는 온통 물 흐르는 소리, 풀벌레 소리뿐이다. 마을에서 내려와 오수의견관광권으로 이동을 했다. 산 속 불길에서 술에 곯아떨어진 주인을 자신의 몸으로 구하고 죽은 것으로 유명한 충견 ‘오수의 개’. 오수의 견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오수의견공원을 찾았다. 벤치가 많고 한적하여 잠시 들러서 쉬기 좋은 곳이다. 곳곳에 세계의 충견 동상들과 함께 그 일화들이 적혀 있어서 재미있다. 옥정호의 새벽 물안개를 보기 위해 숙소를 옥정호 근처로 잡았다. 아무리 늦어도 새벽 5시에는 그곳에 올라가 있어야 할 듯하다. 그리고 다음날, 깜깜한 어둠을 걷어내고 다시 전망대에 올랐다. 낮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하루가 서서히 밝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물안개를 볼 수는 없었다. 아무리 가을이라고 해도 호수 전면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볼 수 있는 날은 1년 중 손에 꼽는다고 한다. 소나기가 내린 직후가 물안개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사선대 관광지와 느티마을 치즈 체험
아쉬움을 안고 사선대 관광권으로 이동했다. 신선 4명이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고 놀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사선대라지만 지금은 관광단지로 조성이 되어 있다. 드넓은 잔디밭, 곳곳에 자리한 정자와 벤치, 그 뒤로 작가들의 다양한 느낌과 주제를 가진 조각품이 전시 되어 있는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조각공원 뒤로 보이는 산에 절의 그림자가 비쳐 가보니, 가을이면 시제를 지냈다는 운서정이다. 지금은 비어 있는데, 조선 본래의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그곳에 오르니 또 한번 사선대가, 임실이 내려다보인다. 참 조용한 느낌의 도시다. 오후에는 치즈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임실 치즈 피자'로 먼저 들어봤을 임실 치즈. 임실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치즈를 만들기 시작한 곳이다. 임실역 쪽으로 이동하면 마을 초입부터 개울을 따라 수십년 된 느티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마을에 다다를 수 있는데, 이곳 느티마을에서 치즈, 발효유, 우유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들어 보는 치즈-낙농 체험을 할 수 있다. 세련된 시설에,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흥미롭다. 매일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전에 문의를 해야 한다. 하루 중에도 동 트기 전, 오후 햇살이 부서지는 오후, 해질 무렵, 별이 쏟아지는 밤 모두 다른 모습을 보일 것 같아 어느 순간에 가야 할지 수도 없이 망설였던 옥정호. 돌아온 지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떤 계절에 어떤 모습을 만나러 가야할지 또 다른 꿈을 꾸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