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보면 때론 모험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모험은 때로 도박이라는 요소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알 수 없는 미래,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 앞에서 인간은 때로 운명에 모든 것을 맡기고 주사위를 던져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도박은 자신의 운명과 거래할 때만이 숭고하다. 타인의 것을 빼앗기 위한 도박은 모험도 아니고 도전도 아니며 그저 추악한 노름일 뿐이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다가 연거푸 낙선하고 정계를 은퇴한 한 정치인은, 자신이 판사였던 시절 매일 밤 동료들과 포커 판을 벌였던 과거를 고백했다. 모든 것이 암흑 같기만 하던 독재와 군사정권 시절에, 맞설 수 없는 거대한 권력 앞에 무기력했던 자신에 대한 고해성사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지난날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부모를 포함한 절대 다수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 역시 그렇게 시절을 한탄하면서도 또 순응하며 살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의무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장삼이사들처럼 불의 앞에 침묵으로 항거하며 세월을 보낸 사람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될 뻔 하였다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 도박(賭博)이라곤 전혀 모르던 고니는 우연히 끼게 된 노름판에서 도박의 묘미에 빠져든다. 하지만 고니는 도박의 묘미만 알게 되었을 뿐, 도박이란 인간의 유희가 가져올 비극적 결말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물론 영화 ‘타짜’가 가져다주는 교훈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노름은 결국 비극을 불러 온다’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인생은 도박이다’라는 메시지에 더 경도 될까봐 걱정이 된다.
고니가 누이의 돈을 꺼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순간, 자신이 담그게 될 냄새나는 오수의 인생 판에 대해 한 번이라도 고민하였다면,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니에게 더 살판나는 인생의 목표와 삶의 축제가 기다리고 있었다면, 고니는 도박에 인생을 걸겠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그 대통령 후보가 좀 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리고 좀 더 역사와 정의 앞에서 숙연한 사람이었다면 밤마다 포커 판을 벌이기보다는 다른 건설적인 일을 했어야 했다. 독재와 군사정권은 물러나라고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지는 못했을지라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던 수많은 정치범들을 위해 법률가로서 탄원서라도 쓰며 밤을 보냈어야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릇이라면 독서라도 하며 지성의 등불로 선비의 밤을 지켰어야 했다. 자신은 밤새워 포커 판을 벌였으면서, 낮에 재판정에 앉아서는 수많은 도박사범들을 정죄(定罪)했을 것이고, ‘도박죄’는 합헌이라는 판결도 내렸을 터이니 더 부끄러운 노릇이다.
하지만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이 더 슬프다. 나는 사실 ‘도박’을 형법으로서 치죄(治罪)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어른이 도박을 해서 돈을 잃고 쪽박을 차는 것도 자신의 선택의 문제이다. 그렇게 치자면, 사업이라는 것도 벌기보다는 잃기가 더 쉬우니 국가가 나서서 막아야 한다. 살다보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전 국민이 유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을 나라에서 통제해 주어야 하고 계도해 주어야 하는 나라이다. 성매매(性賣買)를 개인의 양심과 선택에 따라 조절하지 못해서, 정부가 따라다니며 일일이 간섭하고 선을 그어주어야 한다. 국가라는 존재가 왕이 합궁을 할 때 옆에 지키고 앉아 이리저리 조언하는 내시나, 신혼 첫날 밤 방문을 지키며 베개까지 일러주는 장모가 되어야 하는 나라이다. 개인 각자가 스스로의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여, 단순히 유희로 즐길 수도 있는 게임이 노름으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통제해야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너도 나도 둘러 앉아 고스톱 판을 벌이고, 바다이야기 같은 사행성 게임장에 들락거리다가, 문제가 생기자 그제야 팔짱끼고 있던 정부를 비판하는 이상한 나라이다.
법적으로 도박과 내기의 차이점은 승부에 있어 ‘요행’이 개입되는가의 차이이다. 우리의 판례도 이러한 입장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돈이 몇 억이 오가더라도 내기 골프는 ‘요행’이 아니라 ‘실력’을 다투는 것이기 때문에 도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무슨 무슨 대회라는 것들도 큰 프로 대회가 아닌 이상에는 대부분 참가자들이 참가비를 내고 우승자가 돈을 먹는 일종의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에 불과하다. 화투판이나 포커 판을 벌이는 사람들은 그것도 요행이 아니라 실력에 따르는 승부라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금액의 대소라는 기준을 놓고 보아도, 서민에게는 1억이 큰돈이지만 몇 천 억 부자에게는 푼돈이 될 수 있어 문제가 있다. 그러니 어떤 것은 도박이고 어떤 것은 내기라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그리고 더 우스운 일은, 우리의 일상과 산업을 둘러보면 대놓고 하는 도박이 넘쳐난다는 것이고 그런 도박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라는 것도 사실 도박과 다르지 않다. 이 손바닥만 한 땅덩어리를 둘러싸고 어느 땅, 어는 목이 값을 오를지 맞추는 도박판이나 마찬가지이다. 엄청난 금액이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고 은밀히 거래되어지니, 아마 이만큼 큰 도박판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주식 시장도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도박판이 된지 오래이다. 건실한 기업, 실력 있는 기업을 후원하여 배당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단타를 통해 조금이라도 이득을 얻어 보려는 사람들과 정보를 조작해 주가를 높여보려는 사기꾼들이 득시글거리는 소굴이 되었다. 그러다가 헤지 펀드라는 거대한 물주(物主)의 돈지랄에 당해낼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개미들은 손을 털고 일어선 형국일 뿐이다. 선물(先物) 거래 시장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앞으로 가격이 오를만한 물건을 맞추는 도박판이다. 실력이 있든 없든 허세를 부리고 연줄을 동원하면 입사하게 되는 우리의 취업시장도 도박판이나 다름없다. 머리가 있든 없든, 공부를 열심히 했든 안했든 돈과 반칙을 써서라도 좋은 대학에 가겠다고 하는 우리의 입시시장도 도박판이긴 마찬가지이다.
도박이든 내기든 어쨌든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개인들의 영역이라면 법적으로 처벌할 일은 아니다. 노름은 개인이 각자 알아서 선택할 문제라는 말이다. 결국 딸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개인이 어리석은 것이고, 도박판에 발을 들인 죄 값도 스스로 치러야 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성매매에 있어서도 불법 인신매매나 강제 성매매, 미성년자 성매매는 처벌해야 하듯이, 도박에 있어서도 사기도박, 강제 도박, 고리대업은 처벌해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쪽방에 숨어 도박판을 벌이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고, 도박판이 우리의 삶 전반을 버젓이 횡행하는 현실을 뜯어 고치는 일이다. 대한민국에서의 삶 자체가 도박인데 도박을 나쁘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요행이나 반칙이 성공의 수단이 아니라 노력과 합법이 성공의 수단이 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고니는 실력이나 운수로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사기 도박꾼일 뿐이다. ‘타짜’는 ‘가짜’와 다름 아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진정한 운(運)의 대결을 했다고 해서 그의 과거가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사기도 실력이다’라는 반론을 할 수 있다면 아마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시골의 여항지인(閭巷之人)들 조차도 화투짝 뒤에 코딱지를 붙여 이기려 한다는 사기 도박판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반론일 것이다. 그럼에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고니의 삶을 멋지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저런 삶을 한 번 살아봤으면 하는 꿈을 꾼다. 하지만 ‘타짜’의 핵심은 멋진 승부의 세계도 아니고, 엇갈린 사랑도 아니며, 인생의 무상함도 아니다. ‘타짜’의 세계는 사기와 배신과 폭력, 심지어 살인의 세계이다. 우리가 꿈꿔야할 동경의 세계는 아니라는 말이다.
일명 ‘빠친코’라고 불리는 도박 게임기가 가장 성업했던 나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로 일본이다. 특별히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이 그저 반복적으로 레버만 당기면 되는 빠친코는 불황과 절망에 빠진 일본인들의 현실 도피처였다. 지난 십여 년 간의 장기 불황이 일본의 빠친코 산업에는 큰 밑거름이 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큰 절망과 혼란과 정체(停滯)에 직면해 있다. 상승할 수도 탈출할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절망적인 현실에 중독된 우리 사회는 도박과 알코올, 마약, 색(色)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우리는 너무 빨리 많은 것을 이루고 얻으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이룬 것들 중 상당수는 허위(虛僞)이고 사기이다. 그래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허위로 이루고 허위로 잃은 것들을 다시 허위로 찾으려고 하는 이 대한민국의 절망이 슬프다.
타짜의 핵심은 대한민국의 절망
인생을 살다보면 때론 모험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모험은 때로 도박이라는 요소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알 수 없는 미래,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 앞에서 인간은 때로 운명에 모든 것을 맡기고 주사위를 던져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도박은 자신의 운명과 거래할 때만이 숭고하다. 타인의 것을 빼앗기 위한 도박은 모험도 아니고 도전도 아니며 그저 추악한 노름일 뿐이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다가 연거푸 낙선하고 정계를 은퇴한 한 정치인은, 자신이 판사였던 시절 매일 밤 동료들과 포커 판을 벌였던 과거를 고백했다. 모든 것이 암흑 같기만 하던 독재와 군사정권 시절에, 맞설 수 없는 거대한 권력 앞에 무기력했던 자신에 대한 고해성사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지난날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부모를 포함한 절대 다수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 역시 그렇게 시절을 한탄하면서도 또 순응하며 살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의무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장삼이사들처럼 불의 앞에 침묵으로 항거하며 세월을 보낸 사람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될 뻔 하였다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 도박(賭博)이라곤 전혀 모르던 고니는 우연히 끼게 된 노름판에서 도박의 묘미에 빠져든다. 하지만 고니는 도박의 묘미만 알게 되었을 뿐, 도박이란 인간의 유희가 가져올 비극적 결말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물론 영화 ‘타짜’가 가져다주는 교훈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노름은 결국 비극을 불러 온다’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인생은 도박이다’라는 메시지에 더 경도 될까봐 걱정이 된다.
고니가 누이의 돈을 꺼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순간, 자신이 담그게 될 냄새나는 오수의 인생 판에 대해 한 번이라도 고민하였다면,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니에게 더 살판나는 인생의 목표와 삶의 축제가 기다리고 있었다면, 고니는 도박에 인생을 걸겠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그 대통령 후보가 좀 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리고 좀 더 역사와 정의 앞에서 숙연한 사람이었다면 밤마다 포커 판을 벌이기보다는 다른 건설적인 일을 했어야 했다. 독재와 군사정권은 물러나라고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지는 못했을지라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던 수많은 정치범들을 위해 법률가로서 탄원서라도 쓰며 밤을 보냈어야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릇이라면 독서라도 하며 지성의 등불로 선비의 밤을 지켰어야 했다. 자신은 밤새워 포커 판을 벌였으면서, 낮에 재판정에 앉아서는 수많은 도박사범들을 정죄(定罪)했을 것이고, ‘도박죄’는 합헌이라는 판결도 내렸을 터이니 더 부끄러운 노릇이다.
하지만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이 더 슬프다. 나는 사실 ‘도박’을 형법으로서 치죄(治罪)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어른이 도박을 해서 돈을 잃고 쪽박을 차는 것도 자신의 선택의 문제이다. 그렇게 치자면, 사업이라는 것도 벌기보다는 잃기가 더 쉬우니 국가가 나서서 막아야 한다. 살다보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전 국민이 유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을 나라에서 통제해 주어야 하고 계도해 주어야 하는 나라이다. 성매매(性賣買)를 개인의 양심과 선택에 따라 조절하지 못해서, 정부가 따라다니며 일일이 간섭하고 선을 그어주어야 한다. 국가라는 존재가 왕이 합궁을 할 때 옆에 지키고 앉아 이리저리 조언하는 내시나, 신혼 첫날 밤 방문을 지키며 베개까지 일러주는 장모가 되어야 하는 나라이다. 개인 각자가 스스로의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여, 단순히 유희로 즐길 수도 있는 게임이 노름으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통제해야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너도 나도 둘러 앉아 고스톱 판을 벌이고, 바다이야기 같은 사행성 게임장에 들락거리다가, 문제가 생기자 그제야 팔짱끼고 있던 정부를 비판하는 이상한 나라이다.
법적으로 도박과 내기의 차이점은 승부에 있어 ‘요행’이 개입되는가의 차이이다. 우리의 판례도 이러한 입장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돈이 몇 억이 오가더라도 내기 골프는 ‘요행’이 아니라 ‘실력’을 다투는 것이기 때문에 도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무슨 무슨 대회라는 것들도 큰 프로 대회가 아닌 이상에는 대부분 참가자들이 참가비를 내고 우승자가 돈을 먹는 일종의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에 불과하다. 화투판이나 포커 판을 벌이는 사람들은 그것도 요행이 아니라 실력에 따르는 승부라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금액의 대소라는 기준을 놓고 보아도, 서민에게는 1억이 큰돈이지만 몇 천 억 부자에게는 푼돈이 될 수 있어 문제가 있다. 그러니 어떤 것은 도박이고 어떤 것은 내기라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그리고 더 우스운 일은, 우리의 일상과 산업을 둘러보면 대놓고 하는 도박이 넘쳐난다는 것이고 그런 도박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라는 것도 사실 도박과 다르지 않다. 이 손바닥만 한 땅덩어리를 둘러싸고 어느 땅, 어는 목이 값을 오를지 맞추는 도박판이나 마찬가지이다. 엄청난 금액이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고 은밀히 거래되어지니, 아마 이만큼 큰 도박판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주식 시장도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도박판이 된지 오래이다. 건실한 기업, 실력 있는 기업을 후원하여 배당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단타를 통해 조금이라도 이득을 얻어 보려는 사람들과 정보를 조작해 주가를 높여보려는 사기꾼들이 득시글거리는 소굴이 되었다. 그러다가 헤지 펀드라는 거대한 물주(物主)의 돈지랄에 당해낼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개미들은 손을 털고 일어선 형국일 뿐이다. 선물(先物) 거래 시장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앞으로 가격이 오를만한 물건을 맞추는 도박판이다. 실력이 있든 없든 허세를 부리고 연줄을 동원하면 입사하게 되는 우리의 취업시장도 도박판이나 다름없다. 머리가 있든 없든, 공부를 열심히 했든 안했든 돈과 반칙을 써서라도 좋은 대학에 가겠다고 하는 우리의 입시시장도 도박판이긴 마찬가지이다.
도박이든 내기든 어쨌든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개인들의 영역이라면 법적으로 처벌할 일은 아니다. 노름은 개인이 각자 알아서 선택할 문제라는 말이다. 결국 딸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개인이 어리석은 것이고, 도박판에 발을 들인 죄 값도 스스로 치러야 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성매매에 있어서도 불법 인신매매나 강제 성매매, 미성년자 성매매는 처벌해야 하듯이, 도박에 있어서도 사기도박, 강제 도박, 고리대업은 처벌해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쪽방에 숨어 도박판을 벌이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고, 도박판이 우리의 삶 전반을 버젓이 횡행하는 현실을 뜯어 고치는 일이다. 대한민국에서의 삶 자체가 도박인데 도박을 나쁘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요행이나 반칙이 성공의 수단이 아니라 노력과 합법이 성공의 수단이 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고니는 실력이나 운수로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사기 도박꾼일 뿐이다. ‘타짜’는 ‘가짜’와 다름 아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진정한 운(運)의 대결을 했다고 해서 그의 과거가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사기도 실력이다’라는 반론을 할 수 있다면 아마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시골의 여항지인(閭巷之人)들 조차도 화투짝 뒤에 코딱지를 붙여 이기려 한다는 사기 도박판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반론일 것이다. 그럼에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고니의 삶을 멋지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저런 삶을 한 번 살아봤으면 하는 꿈을 꾼다. 하지만 ‘타짜’의 핵심은 멋진 승부의 세계도 아니고, 엇갈린 사랑도 아니며, 인생의 무상함도 아니다. ‘타짜’의 세계는 사기와 배신과 폭력, 심지어 살인의 세계이다. 우리가 꿈꿔야할 동경의 세계는 아니라는 말이다.
일명 ‘빠친코’라고 불리는 도박 게임기가 가장 성업했던 나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로 일본이다. 특별히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이 그저 반복적으로 레버만 당기면 되는 빠친코는 불황과 절망에 빠진 일본인들의 현실 도피처였다. 지난 십여 년 간의 장기 불황이 일본의 빠친코 산업에는 큰 밑거름이 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큰 절망과 혼란과 정체(停滯)에 직면해 있다. 상승할 수도 탈출할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절망적인 현실에 중독된 우리 사회는 도박과 알코올, 마약, 색(色)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우리는 너무 빨리 많은 것을 이루고 얻으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이룬 것들 중 상당수는 허위(虛僞)이고 사기이다. 그래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허위로 이루고 허위로 잃은 것들을 다시 허위로 찾으려고 하는 이 대한민국의 절망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