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 붉은 모란꽃 세 송이, 이를 줄지어 찾아가는 두 마리의 흰나비, 그리고 지그재그로 뻗어있는 청색의 괴석이 조화를 이룬 간결하면서도 활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부분.
단순함의 묘미
민화의 조형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어떤 그림은 궁중회화처럼 화려하고 장식적인 반면, 어떤 그림은 사대부회화보다 단순하고 간결하다. 궁중회화는 장식성을 추구하고 사대부회화가 단순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면, 민화는 두 성향을 모두 갖고 있다. 왜냐하면 민화는 궁중회화와 사대부회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식성과 단순성 사이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오고갈 수 있는 것은 민화만의 특권이다.
운현궁의 유물로서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된 은 장식적인 화려함으로 가득하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섭정을 하던 1863년부터 1873년 사이에 지어진 주택인데, 고종이 임금 자리에 오른 뒤 확장해서 궁으로 격상시켰다. 이 병풍은 19세기 후반의 화풍을 보여주는 것으로, 운현궁을 지은 이후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커다란 꽃잎이 화면을 주도한 가운데 그것을 받쳐주는 가지와 잎들이 복잡하게 어우러져 있다. 잎의 묘사도 다채롭다. 윗면은 녹색, 아래쪽 뒷면은 황색, 위쪽 뒷면은 홍색으로 잎 하나에만 보색의 대비가 강한 세 가지 색이 베풀어져 있다. 꽃잎의 색도 기본적으로 적색과 백색이지만 그 변화는 보다 다양하다. 이러한 색채의 변화는 장식성을 드높이려는 작가의 의도이다.
이 모란도는 화려하기 그지 없으나, 나비와 벌레가 날라들지 않은 향기없는 모란꽃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원 운현궁 소장(이미지 출처 : 반갑다 우리민화)
그런데 이 모란도병은 화려하면서 장식적이지만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화면을 주도하는 큰 모란꽃잎이 일정한 규칙에 의하여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모두 9송이 활짝 핀 꽃잎과 8개의 꽃봉오리가 좌우동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활짝 핀 꽃잎들은 위로부터 1, 2, 1, 2, 1, 2 송이의 정형화된 틀 속에서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좌우 두 송이를 배치할 경우에는 한쪽은 적색, 다른 한쪽은 백색의 꽃을 두었는데, 이를 음양의 원리가 적용된 것으로 해석된다. 모란꽃을 받치고 있는 수석도 두 첩을 한 쌍으로 하여 한 첩의 수석은 청색, 다른 한 첩의 수석은 회색으로 달리 표현하였다. 이 병풍은 장식성을 최대한 살리되, 복잡하거나 혼란스럽지 않게 좌우동형과 음양의 원리를 적용하여 일정한 질서를 부여하였다.
모란도병에 화려하게 표현한 이유는 이 병풍이 궁중에서 혼인, 즉위, 책봉 등 가례(嘉禮) 때 사용되기 때문이다. 즐거움으로 축복해야 할 잔치에 모란도병은 화려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모란은 꽃 중의 왕으로 부귀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 의미도 잔치에 걸맞다. 모란도병을 잔치의 필수품이 된 것은 궁중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대부들도 혼례 때 모란대병을 사용하였는데, 제용감(濟用監)이라는 관청에서 이 병풍을 빌려서 잔치를 치르기도 했다. 모란대병은 사대부로서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경기도 화성 굿중에는 “모란평풍에 인물평풍, 화초평풍을 얼기설기 쌍으로 쳐놓고”라고 시작되는 사설이 있다. 이는 모란병풍이 병풍 중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삼성미술관 리움(이미지 출처 : 꿈과 사랑)
그런데 화려함을 내뿜는 궁중 모란도병도 민화로 수용되면, 간결하게 단순화된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는 민화의 단순한 조형세계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기하학적으로 처리된 바위 위에 붉은색 모란꽃들과 흰색 모란꽃들이 소담스럽게 피었다. 궁중 모란도에 비하면 여백을 충분히 활용하여 여유롭다. 더욱이 오른쪽에는 두 마리 나비까지 날아들고 있어 따뜻한 정감마저 느낄 수 있다. 궁중모란도에는 나비와 벌이 날아들지 않는다. 선덕여왕의 모란처럼 화려할 뿐 향기가 없기 때문이다. 민화 모란도는 그 몸집이 작지만 커다란 궁중모란도에 비하여 대단한 변신을 이룬 것이다.
모란잎과 꽃들이 바람결에 춤추는 연못의 모습은 감미로운 교향곡을 듣는 것 같이 화면이 아름다운 음률로 가득 차있다. 삼성미술관 리움(이미지 출처 : 꿈과 사랑)
모란도병 못지않게 궁중이나 민간에서 사랑을 받았던 병풍으로 연화도병이다. 연꽃은 불교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더러운 진흙 속에서 맑은 꽃을 피우는 연꽃, 이것은 속세에서 밝히는 진리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꽃은 불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유교와 도교에서도 불교와 다른 상징성으로 선호되었다.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연꽃은 군자의 왕이라고 비유하였다. 이 유명한 고사에 따라 유교에서 연꽃은 군자를 상징한다. 도교에서는 연꽃이 다산, 행복, 풍요, 평화 등 길상적인 의미를 뜻한다. 그것도 수에 따라 의미가 다르고 무엇과 짝짓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민화에서는 도교의 상징에 따라 길상의 꽃으로 자리 잡았다. 그것도 병풍으로 제작될 경우 각 첩마다 연꽃의 다양한 상징성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여러 상징의 연꽃그림을 한 병풍에 모두 담아 방에 친다면, 거주자는 다양한 길상의 의미 속에서 사는 셈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연화도가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조형적 표현 또한 다채롭게 전개되었다.
궁정이나 사대부가에서 소장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연화도병풍이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병풍은 10첩(貼)으로 높이가 98.5cm이고, 길이가 380.0cm이 되는 크기에다 세련된 화풍으로 보아 민화로 보기에는 어렵다. 궁중의 가례를 상세히 기록한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에 의하면 중병풍 크기의 연화도병 10첩이 잔치용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아마 이 병풍이 궁중 가례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연대에 비하여 유난히 크지만 힘겹게 느껴지기 보다는 즐겁게 춤추듯 이리저리 휘날리는 연잎들의 구성은 아름다운 가락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연잎들 위로 흥겹게 솟아오른 연꽃과 갈대들이 화면을 흥을 돋우고 있다. 이러한 흥취는 앞서 일본민예관소장 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궁중회화와 민화를 막론하고 한국회화의 중요한 특색중의 하나이다. 옅은 청색으로 바린 병풍 상단은 푸른 하늘이면서 연못에 깊은 공간감을 부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0첩의 화면 전체가 연꽃이 가득한 하나의 연못으로 표현된 것이다.
좌우동형의 연잎과 꽃의 배치는 우리에게 묵직함이라 연꽃의 또다른 미감을 전해준다. , 일본민예관(이미지 출처 : 반갑다 우리민화)
이처럼 가락이 연잎들의 흐름은 민화 연화도에 와서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우선 화면 전체를 연못으로 삼는 구성은 화폭별로 분리된 구성으로 바뀐다. 일본민예관 소장 는 매우 현대적인 조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것은 세리자와케이스케가 기증한 것으로 이와 짝으로 보이는 연화도가 세리자와케이스케 미술관(芹澤銈介美術館)에도 소장되어 있다. 일본민예관본을 보면,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연잎 두 개가 그림의 중심을 잡고 있다. 이러한 중량감을 상쇄시켜 주는 것이 연꽃의 줄기이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연꽃의 줄기는 그 상승감을 점점 높이고 있다. 맨 아래부터 연꽃의 줄기가 4-3-2-1 순으로 줄어드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연봉오리는 좌우로 가볍게 위로 뻗어 올라가 줄기와 상응하고 있다. 수평 방향의 묵직하게 자리 잡은 조형과 수직 방향의 가볍게 상승하는 조형이 이 그림 안에서 절묘한 대조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연꽃 아래에는 붉은 선으로 묘사한 물고기 두 마리가 놀고 있다. 이 물고기는 풍요를 상징한다. 단순하고 패턴화되어 있지만 매우 회화적인 작품이다. 회화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패턴화된 가운데 변화의 묘미가 돋보이고 조형 자체도 거칠고 묵직하기 때문이다. 묵직한 조형의 연봉오리나 연꽃은 서양화법으로 채색하였다. 단순함의 묘미, 이것은 바로 민화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매력이다. @ 정병모
단순함의 묘미 / 민화와 상상력 4
활짝 핀 붉은 모란꽃 세 송이, 이를 줄지어 찾아가는 두 마리의 흰나비, 그리고 지그재그로 뻗어있는 청색의 괴석이 조화를 이룬 간결하면서도 활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부분.
단순함의 묘미
민화의 조형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어떤 그림은 궁중회화처럼 화려하고 장식적인 반면, 어떤 그림은 사대부회화보다 단순하고 간결하다. 궁중회화는 장식성을 추구하고 사대부회화가 단순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면, 민화는 두 성향을 모두 갖고 있다. 왜냐하면 민화는 궁중회화와 사대부회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식성과 단순성 사이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오고갈 수 있는 것은 민화만의 특권이다.
운현궁의 유물로서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된 은 장식적인 화려함으로 가득하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섭정을 하던 1863년부터 1873년 사이에 지어진 주택인데, 고종이 임금 자리에 오른 뒤 확장해서 궁으로 격상시켰다. 이 병풍은 19세기 후반의 화풍을 보여주는 것으로, 운현궁을 지은 이후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커다란 꽃잎이 화면을 주도한 가운데 그것을 받쳐주는 가지와 잎들이 복잡하게 어우러져 있다. 잎의 묘사도 다채롭다. 윗면은 녹색, 아래쪽 뒷면은 황색, 위쪽 뒷면은 홍색으로 잎 하나에만 보색의 대비가 강한 세 가지 색이 베풀어져 있다. 꽃잎의 색도 기본적으로 적색과 백색이지만 그 변화는 보다 다양하다. 이러한 색채의 변화는 장식성을 드높이려는 작가의 의도이다.
이 모란도는 화려하기 그지 없으나, 나비와 벌레가 날라들지 않은 향기없는 모란꽃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원 운현궁 소장(이미지 출처 : 반갑다 우리민화)
그런데 이 모란도병은 화려하면서 장식적이지만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화면을 주도하는 큰 모란꽃잎이 일정한 규칙에 의하여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모두 9송이 활짝 핀 꽃잎과 8개의 꽃봉오리가 좌우동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활짝 핀 꽃잎들은 위로부터 1, 2, 1, 2, 1, 2 송이의 정형화된 틀 속에서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좌우 두 송이를 배치할 경우에는 한쪽은 적색, 다른 한쪽은 백색의 꽃을 두었는데, 이를 음양의 원리가 적용된 것으로 해석된다. 모란꽃을 받치고 있는 수석도 두 첩을 한 쌍으로 하여 한 첩의 수석은 청색, 다른 한 첩의 수석은 회색으로 달리 표현하였다. 이 병풍은 장식성을 최대한 살리되, 복잡하거나 혼란스럽지 않게 좌우동형과 음양의 원리를 적용하여 일정한 질서를 부여하였다.
모란도병에 화려하게 표현한 이유는 이 병풍이 궁중에서 혼인, 즉위, 책봉 등 가례(嘉禮) 때 사용되기 때문이다. 즐거움으로 축복해야 할 잔치에 모란도병은 화려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모란은 꽃 중의 왕으로 부귀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 의미도 잔치에 걸맞다. 모란도병을 잔치의 필수품이 된 것은 궁중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대부들도 혼례 때 모란대병을 사용하였는데, 제용감(濟用監)이라는 관청에서 이 병풍을 빌려서 잔치를 치르기도 했다. 모란대병은 사대부로서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경기도 화성 굿중에는 “모란평풍에 인물평풍, 화초평풍을 얼기설기 쌍으로 쳐놓고”라고 시작되는 사설이 있다. 이는 모란병풍이 병풍 중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삼성미술관 리움(이미지 출처 : 꿈과 사랑)
그런데 화려함을 내뿜는 궁중 모란도병도 민화로 수용되면, 간결하게 단순화된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는 민화의 단순한 조형세계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기하학적으로 처리된 바위 위에 붉은색 모란꽃들과 흰색 모란꽃들이 소담스럽게 피었다. 궁중 모란도에 비하면 여백을 충분히 활용하여 여유롭다. 더욱이 오른쪽에는 두 마리 나비까지 날아들고 있어 따뜻한 정감마저 느낄 수 있다. 궁중모란도에는 나비와 벌이 날아들지 않는다. 선덕여왕의 모란처럼 화려할 뿐 향기가 없기 때문이다. 민화 모란도는 그 몸집이 작지만 커다란 궁중모란도에 비하여 대단한 변신을 이룬 것이다.
모란잎과 꽃들이 바람결에 춤추는 연못의 모습은 감미로운 교향곡을 듣는 것 같이 화면이 아름다운 음률로 가득 차있다. 삼성미술관 리움(이미지 출처 : 꿈과 사랑)
모란도병 못지않게 궁중이나 민간에서 사랑을 받았던 병풍으로 연화도병이다. 연꽃은 불교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더러운 진흙 속에서 맑은 꽃을 피우는 연꽃, 이것은 속세에서 밝히는 진리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꽃은 불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유교와 도교에서도 불교와 다른 상징성으로 선호되었다.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연꽃은 군자의 왕이라고 비유하였다. 이 유명한 고사에 따라 유교에서 연꽃은 군자를 상징한다. 도교에서는 연꽃이 다산, 행복, 풍요, 평화 등 길상적인 의미를 뜻한다. 그것도 수에 따라 의미가 다르고 무엇과 짝짓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민화에서는 도교의 상징에 따라 길상의 꽃으로 자리 잡았다. 그것도 병풍으로 제작될 경우 각 첩마다 연꽃의 다양한 상징성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여러 상징의 연꽃그림을 한 병풍에 모두 담아 방에 친다면, 거주자는 다양한 길상의 의미 속에서 사는 셈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연화도가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조형적 표현 또한 다채롭게 전개되었다.
궁정이나 사대부가에서 소장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연화도병풍이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병풍은 10첩(貼)으로 높이가 98.5cm이고, 길이가 380.0cm이 되는 크기에다 세련된 화풍으로 보아 민화로 보기에는 어렵다. 궁중의 가례를 상세히 기록한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에 의하면 중병풍 크기의 연화도병 10첩이 잔치용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아마 이 병풍이 궁중 가례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연대에 비하여 유난히 크지만 힘겹게 느껴지기 보다는 즐겁게 춤추듯 이리저리 휘날리는 연잎들의 구성은 아름다운 가락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연잎들 위로 흥겹게 솟아오른 연꽃과 갈대들이 화면을 흥을 돋우고 있다. 이러한 흥취는 앞서 일본민예관소장 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궁중회화와 민화를 막론하고 한국회화의 중요한 특색중의 하나이다. 옅은 청색으로 바린 병풍 상단은 푸른 하늘이면서 연못에 깊은 공간감을 부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0첩의 화면 전체가 연꽃이 가득한 하나의 연못으로 표현된 것이다.
좌우동형의 연잎과 꽃의 배치는 우리에게 묵직함이라 연꽃의 또다른 미감을 전해준다. , 일본민예관(이미지 출처 : 반갑다 우리민화)
이처럼 가락이 연잎들의 흐름은 민화 연화도에 와서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우선 화면 전체를 연못으로 삼는 구성은 화폭별로 분리된 구성으로 바뀐다. 일본민예관 소장 는 매우 현대적인 조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것은 세리자와케이스케가 기증한 것으로 이와 짝으로 보이는 연화도가 세리자와케이스케 미술관(芹澤銈介美術館)에도 소장되어 있다. 일본민예관본을 보면,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연잎 두 개가 그림의 중심을 잡고 있다. 이러한 중량감을 상쇄시켜 주는 것이 연꽃의 줄기이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연꽃의 줄기는 그 상승감을 점점 높이고 있다. 맨 아래부터 연꽃의 줄기가 4-3-2-1 순으로 줄어드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연봉오리는 좌우로 가볍게 위로 뻗어 올라가 줄기와 상응하고 있다. 수평 방향의 묵직하게 자리 잡은 조형과 수직 방향의 가볍게 상승하는 조형이 이 그림 안에서 절묘한 대조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연꽃 아래에는 붉은 선으로 묘사한 물고기 두 마리가 놀고 있다. 이 물고기는 풍요를 상징한다. 단순하고 패턴화되어 있지만 매우 회화적인 작품이다. 회화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패턴화된 가운데 변화의 묘미가 돋보이고 조형 자체도 거칠고 묵직하기 때문이다. 묵직한 조형의 연봉오리나 연꽃은 서양화법으로 채색하였다. 단순함의 묘미, 이것은 바로 민화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매력이다. @ 정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