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의 만남 2번째.- 따스한 심장과 맥주한잔.

최정훈200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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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의 만남 2번째.- 따스한 심장과 맥주한잔.

"이제 조금만 올라가면 될 꺼야."

 

"아함~ 힘들어..휴. 정말 얼마만에 산을 타보는거야? 

 

 정말.. .. 우리 조금만 앉아 있다 갈까? 이크...

 

여기 이자리 명당이다..히."

 

초저녁에 왠 등산이야고 물었더니 전망이 좋다고 그랬다.

 

여기 이 동네에 지금껏 살아도 물리지가 않는 건 단지 전망이 좋아

 

서라며 선은 이틀 전부터 나에게 산에 올라가자고 얘기 했다.

 

몇달 전에 한번 엄마 운동 겸 가는 산에 올라가본 적은 있지만 나는

 

그리 즐겨 산을 타진 않았기에 썩 내키진 않았다.

 

선이 말하길 사람은 제대로 된 숨을 내쉬어 봐야 한다며 전망이 좋

 

은 자기만의 자리가 있다며 오후 5시경에 동네 역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나는 4시 반쯤 채비를 하고 집을 나왔다.

 

날씨는 좋았다. 맑다거나 선선한 바람이 부는 건 아니 었지만

 

서서히 져며가는 태양이 물에 탄 잉크처럼 하늘의 서쪽으로 흘러가

 

고 있었다..

 

"말랑말랑해 보여.. 이 시간만 되면 그래.. 꼬옥 저기 쯔음 넘어 갈

 

땐 해파리처럼 흐믈흐믈 말랑말랑...막 쥐어 터진 것 같은 불쌍한 모

 

습이야.. 벌겋게 피를 흘리며 도망가는 해파리. 그래도 귀엽지 않

 

아? "

 

 

선은 줄곧 엉뚱한 얘길 하는 걸 좋아했다.  지는 해를 보고 얻어터

 

진  귀여운해파리 같다고 말하는 사람은 솔직히 선이 처음 이었다..

 

때론 어디 멀리갔다 올 일이 있어 얘기를 하면..

 

"멀리...어디?"

 

"음.. 아마도 여기선 가장 먼 곳 일꺼야.. 이삼일 걸릴 것 같애."

 

"그래 멀리 어디.."

 

"여기서 가장 먼 곳...히.."

 

그러면 선은 '흠...' 이러면서 입술을 삐쭉내밀고는 눈을 홀기며

 

내 얼굴을 이리 저리 살피었다 그러곤..

 

"너 독도 가는구나!!! 그렇치? 독도에 낚시하러 가는거야? 아님...

 

너도 '독도는 우리땅' 구호운동 맴버 아냐? 여기서 가장 멀다면..

 

독도 뿐이자나!!!"

 

"..................."

 

 

그럴때면 차라리 월북을 한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혹시 믿을 까

 

싶어서 그런 말까진 못하고 그냥 웃고 마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의 엉뚱한 얘기 속에는 어여쁜 표정이 있었고  현실의 갑갑함에

 

잠시 벗어날만한 작은 날개 같은 것이 있었기에 그렇게 기막힌 듯

 

웃고나면 선은 '바보 농담인거 알면서..' 하는 표정으로 씨익 쳐다보

 

며 눈웃음을 지어주는 것이 었다..

 

우린 십분쯤 앉아 있다 다시 산길을 올라갔다..곳곳에 단풍이 진 나

 

무 몇그루가 이리저리 휘어져 있었고 이름모를 하얀 들꽃들도  '난

 

그져 바람이 좋아.' 하는 것처럼 슬금슬금 흔들리고 있었다.

 

어느정도 더 오르자 나무 등산로가 나왔다. 그 옆엔 작은 도로가

 

도넛처럼 둥그렇게 산을 타듯 놓여있고 도로 위론 또 수많은 나무들

 

이 가을을 맞아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선이 말했다.

 

"이제부턴 힘들지 않아.. 그래도 한두번쯤은 여기 오지 않아봤어?"

 

"응..와봤어. 접때 엄마랑 운동겸 온적 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피

 

곤해서 그랬나봐.. 그땐 이렇게 단풍도 없었고.. 그래도 다시 전망

 

보니까 좋긴하다.."

 

그렇게 걸어가다 운동화 끈이 풀려 잠시 서서 끈을 리본으로 두번

 

맨다음 선의 것도 다시 풀어 두번 매워 주었다.. 선은 나보고 착하

 

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상으로 팔짱을 껴주겠다고 했다.

 

우린 팔짱을 끼고 단풍을 밟으며 산 중턱 쯔음 되는 곳에 서서 다시

 

전망을 바라보았다.. 동네 앞의 바다를 바라본 체 선은 입가 가득 만

 

족스런 미소를  머금고 이곳 저곳을 손짓하며 좋아했다.

 

"저기 자기 집 보인다. 빨간 벽돌 세모지붕... 자기 방도 보이네.."

 

선은 눈이 나보다 월등히 좋았다. 실눈을 뜨고 삐죽 입술을 내밀면

 

'나 지금 집중하고 있어'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다시 날 보곤

 

"어때 잘 찾아 내지? 난 아무레도 전생에 등대지기 였나봐 ...작은

 

돗단배도 놓치지 않는 천리안 같은 눈을 가졌던게 분명해. 레이져

 

발사준비!!!"

 

선의 장난이 시작된다..

 

난 두번 피하고 세번째 맞아 주어야만 했다..그럼 선이 다가와 어쩜

 

그렇게 말을 잘 듣냐며 이런 저런 상을 또 내려주는 것이다..

 

첨엔 유치해서 '얘가 왜 이러나 '싶었는데 나중엔 하다보니 앙큼한

 

재미가 솔깃솔깃 생겨서 나름 둘의 즐거움을 찾을 수가 있었다.

 

시간이 더 흐르자 날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우린 도로가에 세워진

 

작은 트럭에서 버드와이져 맥주캔 두세개를 사서 선이 말했던 그 장

 

소로 갔다. 벤치가 있고 4~5미터 정도 시야가 터져있는 곳이었다.

 

해져가는 풍경을 마음껏 볼 수 있고 바다가 보이는 곳 . 커다란 트럭

 

들도 장난감 자동차처럼 미니화(선이 즐겨 쓰는 표현)되어 보이는

 

그 곳에 앉아 맥주를 따고 건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긴 지금 내가 어떤 생각 하는 것 같아?"

 

"무슨 생각 하는데?"

 

내가 말했다.

 

"그냥.. 이런 저런 생각이 막 들어.. 난 오늘까지 일주일을 열심히

 

살다 다시 자기를 만난 거야. 때론 짜증이 나는 날도 있고 오늘은

 

왜 이러나 싶을 만큼 기분 좋은 날도 있어. 엊그젠 미정이가 전화를

 

해서 우성이가 어땧니 저랳니 하면서 하소연을 하는거야 ..왜 갑자

 

기 작년 스키장 사건을 들먹이며 그땐 왜 내 생각은 눈꼽만치도 해

 

주지 않고 니 생각만 했냐며 따지고 들었데..미정인 참 어이가 없어

 

서 왜 그런 얘길 하냐며 지지 않고 또 따져들고..결국 서로 이야기의

 

끝을 달리다 보니 서로의 일상이 너무 오래된 나머지 오는 권태기

 

같았다는 거야..권태기.. 어떤 목장에 한마리 사슴이 이뻐서 그 사슴

 

을 매일 보러 왔는데..사슴은 어느날 계속 풀만 뜯어 먹는거야..

 

하루종일 풀만.. 말을 걸면 바라고고 다가와 주기도 했는데 그냥 왔

 

냐는 식으로 풀만 뜯고 있었던 거야..저게 무슨 맛이 그렇게 있길래

 

그토록 먹어대는지 맛을 한번 보고 싶을 만큼 끈질기게 풀만 먹는

 

사슴.. 아무리 멋진 뿔을 가지고 당당히 지는 해를 보는 숫사슴이라

 

해도 풀만 먹으면 너무 매력 없지않아? 자기 우리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권태기라는게 찾아오지 않을까?  자기가 날봐도 너무 밋밋

 

해져서 '넌 마치 매일 먹는 김치찌개같은 존재야'라는 표정으로 날

 

볼까 걱정돼... 자긴 나 그런 찌개따위론 생각하지 않을꺼야 그치?"

 

선은 입술을 다물고 보조개를 지어내며 내게 말했다.

 

"아냐 절대 ..어떻게 내가 선을 그 따위 김치찌개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어? 아무리 맛있는 찌개도 선보단 좋치 않아.."

 

선은 내 무릅에 다리를 올리고 다가와 내 목에 두손을 걸친

 

체 계속 이야기를 했다.

 

선의 보라색 브라우스와 채크무니 치마가  지는 그 시간의 분위기에

 

알맞게 젖어가고 있었다. 어깨를 넘어 등까지 내려진 긴머리에

 

가벼운 웨이브를 진 선의 머리결을 만지작 거리며 저 멀리 날아가는 새 몇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선이 더 다가와

 

엉덩이를 내 다리 위까지 걸치곤 내가 보던 배경의 중간에 그려지며

 

눈안을 가득 채웠다. 선의 귓볼과 한들거리는 머릿결. 그리고 비스

 

듬히 바라보던 바람같던 눈웃음 짓.. 사람의 흔적이 없는 어중간한

 

시간대에서 우린 서로 둘만을 응시하며 한동안 말할 수없는 분위기

 

로만 그 시간을 채워 나갔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듯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아마 선의 그것도 나

 

처럼 뛰고 있을 거라 생각해보니 점점 더 끓어오르 듯 선의 입술만

 

을 보게 되었다..

 

"키스 하고 싶다..선.."

 

선은 잠시 하늘을 보고 천천히 그리고 우아할 만큼 고운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다 보았다..그러곤 살며시 고개를 끄떡이며 내 목을

 

감싸주었다. 난 한 손으로 선의 등을 감싸안고 한손은 선의 볼에 댄

 

체로 키스를 하였다.. 두 입술이 천천히 녹아내릴 듯 부드러웠다.

 

선의 혀에 나의 혀가 닿고 숨이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듯 가파져만

 

갔다.. 우리의 생각과 추억과 시간은 그토록 어여쁜 선의 숨결 속에

 

서 지는 해와 바다의 배경으로 되어지는 듯만 하였다.

 

"이게 우리의 첫키스 인거야..자긴 기억해줘야 해 지금 이순간만

 

을..말이야..."

 

그러고는 선은 다시 한번 나에게 키스를 해주었다..두번째의 것은

 

매우 짧았지만  부드러웠고 더 좋았던 기억이 든다..

 

아직도 그녀의 그날 했던  부탁을 잊을 수가 없다.

 

"난 지금 모든게 다 자기꺼야.. 그러니 꼭 기억해줘 .. 난 누구에게

 

나 함부러 웃어주진 않아..함부러 기대지도 않아.. 오로지 자기니

 

까 맘놓고 그러는 거야.. 기억하겠단 약속으로  날 꼭 안아줘.."

 

선의 작은 등을 안고 그녀의 향기를 맡으며 난 조용히 고개를 끄떡

 

였다. 보진 못했지만 선은 분명 바람같던 그 눈웃음짓을 얼굴 가득

 

짓고 있었을 꺼라 믿는다.. 선은 분명히 그랬다..

 

선의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 따스했기 때문이다.

 

'봄날의 양지보다도 포근하고 그래.. 자기를 안으면..그런거야..

 

바보..착하게 있어..'

 

선의 귓가에 흘리던 그 목소리가 길을 해매는 다람쥐마냥  아직도

 

나의 기억 속에 해매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