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군주와 환관의 관계를 실체와 그 그림자로 비유해 볼 수 있다. 이는 분명히 형상과 영상의 대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로부터 영상의 존재였던 환관에게는 악(惡)이라는 대명사가 붙여졌고, 군주는 마치 피해자인 양 동정적으로 간주되어 왔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역사가 환관에 대해서 죄악의 부분만을 기록해왔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과연 그 정도가 지나쳤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하진(何進)이 환관을 전멸시킬 계획을 세웠을 당시, ‘삼국지’로 잘 열려진 위(魏)의 조조(曹操)는 이러한 상황을 크게 비웃으며 ‘환자(患者)의 관(官)은 고금으로부터 있어 왔다. 다만 세주(世主)의 권총(權寵)을 빌려 마침내 일이 여기에 이르렀다. 일찍이 죄를 벌하려 한다면 원악(元惡)을 죄로 다루어야 함에, 그 한 사람의 옥리(獄吏)로 족하다.’라고 태연스레 말하였다. 과연 일대의 영웅이었던 조조만이 악의 근원이 군주에 있음을 지적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가해한 일은 환관의 횡포가 극한에까지 달하여 기승을 부리자, 오히려 그가 환관의 부정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그때 조조는 여전히 환관을 통솔하는 근위병의 부대장(部隊長)에 지나지 않았다. 어떠한 이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죄악은 제거해야 했기에 그랬다면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로 이해하기 힘든 그 부분에서 군주와 환관에 내재하는 공통적인 성격이 발견된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양자는 모두가 비이간적 존재라는 점에 근원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 점에 대하여 명말청초(明末淸初)의 대학자였던 황종희(黃宗羲)는 명저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에서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원시의 세상에 사람에게는 나의 것, 각자의 이(利)가 있을 뿐이었다. 천하의 공리(公利)를 흥(興)하게도 하지 않았고 공해(公害)를 제(除)하는 일도 없었다. 어떤 자가 나와서 말하기를 일신(一身)의 이(利), 일신(一身)의 해(害)를 가리지 않고서, 천하의 이(利)를 가져오고, 천하의 해(害)를 제(除)하는 그 근로(勤勞)는 천하의 사람에게 천만 배의 보람이라 했다. 그러나 그 천만 배의 근로만이 있고 내 자신이 그 이(利)를 받지 못한다면, 정녕코 인정(人情)이라 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군주는 생겨났다가 또 사라지는 자로 요, 순(堯, 舜)이 있다. 편안함을 좋아하고 근로를 싫어함은 인간의 성정(性情)이다.’
군주의 비인간성을 지적하여 심도있게 풍자한 내용인데, 이러한 비인간성은 실제로 고대 은(殷)왕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군주란 신의 대변자로서 출발하기 위하여 비인간성을 전제로 했던 것이다. 신의 가치는 은(殷)의 다음으로 이어지는 주(周)나라에서 천(天)이라는 문자로 바뀌어진다. 신(神)과 천(天)의 다른점을 비교하자면 은에서의 신(神)이란 조상신이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자손인 자신들을 보호해주리라는 자기 중심의 신이기에 이에 버금하여 배타적이다. 이에 반하여 천(天)은 개방적이며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준다. 그 대신에 딴 곳으로 옮겨갈 수도 있는 은총이기에 이를 확고히 하기 위해선 천(天)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중국의 대학자 곽말약(郭沫若)도 언급을 했던 바, 이는 주나라 사람의 일대 발견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하여 천(天)이라든가 천명(天命)이라는 문자는 상당히 완고한 의미로 간주되어져 주나라 이후 수천 년에 걸쳐서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력을 보유하면서 사용되어 왔다. 그 결과 이 시대 이후 중국의 군주는 하늘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되어진다. 하늘은 지진이나 일식 또는 그밖의 이상한 자연현상을 일으켜 군주에게 경고를 하므로 군주는 항상 이에 대하여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전한(前漢)시대에 병길(丙吉)이라는 재상이 궁정에서 귀가하는 중에 인민들이 길가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데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소가 숨 쉬고 있는 모양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재상의 태도를 비난하자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천자를 보위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으로 하늘이 어떤 형상으로 경고를 내리는지를 끊임없이 관찰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인민의 사사로운 일에는 상대할 수가 없다.’고 했다. 하늘에 책임을 지고 있다는 의미가 대략 이런 형편이었다.
심지어는 이런 예도 있다. 당(唐)대에 고양이가 쥐에게 젖을 먹이면서 자기 새끼와 사이좋게 양육시키는 일이 있었다. 한 신하가 이것을 가리켜 하늘이 황제의 덕행에 마음을 두고 있는 증거라고 하였다. 이에 황제도 크게 기뻐하자 대신들은 입을 모아 백관을 불러 대축하식을 거행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한 고지식한 관리가 나서며 ‘본디 고양이는 쥐를 먹는 것이 순리인데, 고양이가 쥐를 귀여워했다는 경우는 허무맹랑한 얘기지 무슨 하늘의 뜻이란 말인가.’하고 반대를 하자 축하식이 중지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본 대로 군주는 자연의 이변에 열심히 마음을 기울여 하늘에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존재가치가 인정된다. 그곳 사회는 농경 사회였고, 농경은 그 일체를 자연에 의지해야만 한다. 적당한 비가 내려주고 알맞게 태양빛을 내려쪼이게 하는 모두가 군주의 책임이다. 그런데 자연이 잘못되어 수해, 가뭄이 발생하여 흉작이 되면 그 책임을 묻게 된다.
고대 민중사에서는 흉년이 들면 군주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든가 경우에 따라서는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이처럼 군주는 인간보다는 자연과 대결하는 자였기에, 비인간적인 성격을 소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군주는 지극히 고독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원조비사(元朝秘史)》에는 불세출의 영걸 징키스칸이 아직 뜻을 세우지 않았던 청년시대를 ‘그림자를 따라서, 꼬리로 채찍을 삼아’라고 읊은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이 낭만적인 시적 표현은 영걸의 고난시대를 표현하고 있으나, 이 글에서 인식되는 고독한 그림자는 마침내 그가 대황제로서 맛보아야 할 군주의 고독감을 암시했던 것을 아니었을까.
또 명조(明朝)의 마지막 천자였던 숭정제(崇禎帝)는 처절하리만치 비극적인 생을 마쳤다. 유적(流賊) 이자성(李自成)의 군대에 포위당한 황성에는 황제를 보필해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황제 자신이 직접 비상종을 울렸건만 공허한 메아리만 울려퍼질 뿐, 광대한 궁성에는 고양이새끼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황제는 가장 아끼던 공주를 향하여, ‘그대는 무슨 인과로 황실의 가문에서 태어났단 말인가?’라고 탄식하고는 허리에 찬 칼로 공주를 참수(斬首)하고는 뒷산에 올라 스스로 목을 매달았다. 그때 단 한 사람의 환관이 황제와 함께 순직했다. 이 얼마나 적막하고 비참한 광경이란 말인가.
그러나 바로 이것이 군주라면 누구나 예외없이 짊어져야 할 운명이자 상징이다. 자기 자신 말고는 모든 사람에게 윗자리에서 명령하는 권력관계 이외의 모습은 용납되지도 않았으며. 직업선택의 자유도 없는 그 사람을 인간이라 할 수 있을는지. 게다가 보통사람이 느끼는 애정이라든가 이성(理性)의 즐거움을 희구하는 것마저도 모순스럽기 짝이 없다. 숭정제는 군주의 고독을 몸소 비극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왕조의 창시자라는 자들은 인간으로부터 비인간으로 전이되어 간 사람들이다. 한(漢)의 고조(高租)가 했던 일은 우선 수십만 명에 달하는 대량 살인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전쟁에 서툴렀던 이 군주를 승리로 이끌게 했던 유능한 부하들을 제후로 발탁하고는 또 가차없이 모두 살륙해버리고 만다. 황종희(黃宗羲)는 《명이대방록》에서 ‘훗날의 인군천하를 목표로 하여 막대한 산업을 일으켰다. 한의 고제(高帝) 스스로 나의 사업이 성취되면 부하도 머지않아 크게 된다고 말했다. 그 이(利)를 달성하고자 정(情)을 두지 않고 일을 일으킨다.’라고 하여 크게 비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살인자는 도량이 큰 영걸로 칭해지고 있다.
인간은 그 누구라도 선과 악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별난 성격, 이를테면 대선인(大善人)과 대악인(大惡人)이 공존하는 지점에 군주의 성격은 존재하며, 이를 광범위하게 독재자로 통칭하게 된다. 그들은 일단 군주가 되면 자기의 위치를 넘보는 자는 의심에 찬 눈으로 일관하여 그 자식과 형제들, 나아가 육친의 전부를 예외없이 살해하고 추방시킨다. 이러한 비정함과 고독감은 군주가 되기 위해선 빼어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이들은 이미 보통인간이 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주와 본질적으로 걸맞는 사람은 바로 비인간적인 환관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역사에서 환관 이외의 충성스런 관료가 있었음을 기록한 부분이 사실인가 묻고 싶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열거하는 예로 설명하고자 한다.
10세기경 광동성(廣東省)에 있었던 환관왕국의 형태를 갖춘 남한(南漢)의 군주가 말하기를 ‘모든 신하들은 예외없이 가정이 있으니 마땅히 자신의 자손들에 대하여 심려를 한다. 따라서 만사를 제치고서 군주를 위하여 전력할 까닭이 없다. 그렇다면 언제나 함께 지내는 환관만이 믿을 수 있는 우일한 사람이다.’라 하였다. 역사가는 남한(南漢)의 군주를 어리석다고 평하였다. 그러나 신하에 대한 감정이 획일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분명 그는 명군(名君)이었고 또 암군(暗君)이기도 했으며, 모든 군주들도 이에 상통되었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황종희(黃宗羲)는 부연하기를 군주에게 있어서 신하는 내외로 구별이 되는데 내신(內臣)으로는 환관이 있고 외신(外臣)에는 수상(首相) 이하의 관료가 있다. 그런데 군주의 입장에서 자기를 생각해주는 자는 내신이며, 외신이란 결국은 군주 이상으로 자기만을 돌볼 따름이라고 확신했음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인간인 이상 이러한 감정을 없애기는 어려울 것이다. 애정만 갖고서 논리가 성립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 지상에 높이 군림하고 있는 군주와 지하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환관과의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선이나 악에 휩싸여 허덕거리면서 지상에서 배회하는 무리가 인민이라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환관(宦官), 만들어진 제 3의 性-군주의 그림자, 환관
환관, 만들어진 제 3의 性
(6) 군주의 그림자, 환관
이제, 환관족과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군주의 성격에 대해서 검토해보자.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군주와 환관의 관계를 실체와 그 그림자로 비유해 볼 수 있다. 이는 분명히 형상과 영상의 대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로부터 영상의 존재였던 환관에게는 악(惡)이라는 대명사가 붙여졌고, 군주는 마치 피해자인 양 동정적으로 간주되어 왔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역사가 환관에 대해서 죄악의 부분만을 기록해왔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과연 그 정도가 지나쳤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하진(何進)이 환관을 전멸시킬 계획을 세웠을 당시, ‘삼국지’로 잘 열려진 위(魏)의 조조(曹操)는 이러한 상황을 크게 비웃으며 ‘환자(患者)의 관(官)은 고금으로부터 있어 왔다. 다만 세주(世主)의 권총(權寵)을 빌려 마침내 일이 여기에 이르렀다. 일찍이 죄를 벌하려 한다면 원악(元惡)을 죄로 다루어야 함에, 그 한 사람의 옥리(獄吏)로 족하다.’라고 태연스레 말하였다. 과연 일대의 영웅이었던 조조만이 악의 근원이 군주에 있음을 지적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가해한 일은 환관의 횡포가 극한에까지 달하여 기승을 부리자, 오히려 그가 환관의 부정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그때 조조는 여전히 환관을 통솔하는 근위병의 부대장(部隊長)에 지나지 않았다. 어떠한 이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죄악은 제거해야 했기에 그랬다면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로 이해하기 힘든 그 부분에서 군주와 환관에 내재하는 공통적인 성격이 발견된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양자는 모두가 비이간적 존재라는 점에 근원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 점에 대하여 명말청초(明末淸初)의 대학자였던 황종희(黃宗羲)는 명저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에서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원시의 세상에 사람에게는 나의 것, 각자의 이(利)가 있을 뿐이었다. 천하의 공리(公利)를 흥(興)하게도 하지 않았고 공해(公害)를 제(除)하는 일도 없었다. 어떤 자가 나와서 말하기를 일신(一身)의 이(利), 일신(一身)의 해(害)를 가리지 않고서, 천하의 이(利)를 가져오고, 천하의 해(害)를 제(除)하는 그 근로(勤勞)는 천하의 사람에게 천만 배의 보람이라 했다. 그러나 그 천만 배의 근로만이 있고 내 자신이 그 이(利)를 받지 못한다면, 정녕코 인정(人情)이라 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군주는 생겨났다가 또 사라지는 자로 요, 순(堯, 舜)이 있다. 편안함을 좋아하고 근로를 싫어함은 인간의 성정(性情)이다.’
군주의 비인간성을 지적하여 심도있게 풍자한 내용인데, 이러한 비인간성은 실제로 고대 은(殷)왕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군주란 신의 대변자로서 출발하기 위하여 비인간성을 전제로 했던 것이다. 신의 가치는 은(殷)의 다음으로 이어지는 주(周)나라에서 천(天)이라는 문자로 바뀌어진다. 신(神)과 천(天)의 다른점을 비교하자면 은에서의 신(神)이란 조상신이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자손인 자신들을 보호해주리라는 자기 중심의 신이기에 이에 버금하여 배타적이다. 이에 반하여 천(天)은 개방적이며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준다. 그 대신에 딴 곳으로 옮겨갈 수도 있는 은총이기에 이를 확고히 하기 위해선 천(天)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중국의 대학자 곽말약(郭沫若)도 언급을 했던 바, 이는 주나라 사람의 일대 발견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하여 천(天)이라든가 천명(天命)이라는 문자는 상당히 완고한 의미로 간주되어져 주나라 이후 수천 년에 걸쳐서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력을 보유하면서 사용되어 왔다. 그 결과 이 시대 이후 중국의 군주는 하늘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되어진다. 하늘은 지진이나 일식 또는 그밖의 이상한 자연현상을 일으켜 군주에게 경고를 하므로 군주는 항상 이에 대하여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전한(前漢)시대에 병길(丙吉)이라는 재상이 궁정에서 귀가하는 중에 인민들이 길가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데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소가 숨 쉬고 있는 모양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재상의 태도를 비난하자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천자를 보위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으로 하늘이 어떤 형상으로 경고를 내리는지를 끊임없이 관찰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인민의 사사로운 일에는 상대할 수가 없다.’고 했다. 하늘에 책임을 지고 있다는 의미가 대략 이런 형편이었다.
심지어는 이런 예도 있다. 당(唐)대에 고양이가 쥐에게 젖을 먹이면서 자기 새끼와 사이좋게 양육시키는 일이 있었다. 한 신하가 이것을 가리켜 하늘이 황제의 덕행에 마음을 두고 있는 증거라고 하였다. 이에 황제도 크게 기뻐하자 대신들은 입을 모아 백관을 불러 대축하식을 거행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한 고지식한 관리가 나서며 ‘본디 고양이는 쥐를 먹는 것이 순리인데, 고양이가 쥐를 귀여워했다는 경우는 허무맹랑한 얘기지 무슨 하늘의 뜻이란 말인가.’하고 반대를 하자 축하식이 중지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본 대로 군주는 자연의 이변에 열심히 마음을 기울여 하늘에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존재가치가 인정된다. 그곳 사회는 농경 사회였고, 농경은 그 일체를 자연에 의지해야만 한다. 적당한 비가 내려주고 알맞게 태양빛을 내려쪼이게 하는 모두가 군주의 책임이다. 그런데 자연이 잘못되어 수해, 가뭄이 발생하여 흉작이 되면 그 책임을 묻게 된다.
고대 민중사에서는 흉년이 들면 군주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든가 경우에 따라서는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이처럼 군주는 인간보다는 자연과 대결하는 자였기에, 비인간적인 성격을 소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군주는 지극히 고독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원조비사(元朝秘史)》에는 불세출의 영걸 징키스칸이 아직 뜻을 세우지 않았던 청년시대를 ‘그림자를 따라서, 꼬리로 채찍을 삼아’라고 읊은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이 낭만적인 시적 표현은 영걸의 고난시대를 표현하고 있으나, 이 글에서 인식되는 고독한 그림자는 마침내 그가 대황제로서 맛보아야 할 군주의 고독감을 암시했던 것을 아니었을까.
또 명조(明朝)의 마지막 천자였던 숭정제(崇禎帝)는 처절하리만치 비극적인 생을 마쳤다. 유적(流賊) 이자성(李自成)의 군대에 포위당한 황성에는 황제를 보필해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황제 자신이 직접 비상종을 울렸건만 공허한 메아리만 울려퍼질 뿐, 광대한 궁성에는 고양이새끼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황제는 가장 아끼던 공주를 향하여, ‘그대는 무슨 인과로 황실의 가문에서 태어났단 말인가?’라고 탄식하고는 허리에 찬 칼로 공주를 참수(斬首)하고는 뒷산에 올라 스스로 목을 매달았다. 그때 단 한 사람의 환관이 황제와 함께 순직했다. 이 얼마나 적막하고 비참한 광경이란 말인가.
그러나 바로 이것이 군주라면 누구나 예외없이 짊어져야 할 운명이자 상징이다. 자기 자신 말고는 모든 사람에게 윗자리에서 명령하는 권력관계 이외의 모습은 용납되지도 않았으며. 직업선택의 자유도 없는 그 사람을 인간이라 할 수 있을는지. 게다가 보통사람이 느끼는 애정이라든가 이성(理性)의 즐거움을 희구하는 것마저도 모순스럽기 짝이 없다. 숭정제는 군주의 고독을 몸소 비극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왕조의 창시자라는 자들은 인간으로부터 비인간으로 전이되어 간 사람들이다. 한(漢)의 고조(高租)가 했던 일은 우선 수십만 명에 달하는 대량 살인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전쟁에 서툴렀던 이 군주를 승리로 이끌게 했던 유능한 부하들을 제후로 발탁하고는 또 가차없이 모두 살륙해버리고 만다. 황종희(黃宗羲)는 《명이대방록》에서 ‘훗날의 인군천하를 목표로 하여 막대한 산업을 일으켰다. 한의 고제(高帝) 스스로 나의 사업이 성취되면 부하도 머지않아 크게 된다고 말했다. 그 이(利)를 달성하고자 정(情)을 두지 않고 일을 일으킨다.’라고 하여 크게 비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살인자는 도량이 큰 영걸로 칭해지고 있다.
인간은 그 누구라도 선과 악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별난 성격, 이를테면 대선인(大善人)과 대악인(大惡人)이 공존하는 지점에 군주의 성격은 존재하며, 이를 광범위하게 독재자로 통칭하게 된다. 그들은 일단 군주가 되면 자기의 위치를 넘보는 자는 의심에 찬 눈으로 일관하여 그 자식과 형제들, 나아가 육친의 전부를 예외없이 살해하고 추방시킨다. 이러한 비정함과 고독감은 군주가 되기 위해선 빼어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이들은 이미 보통인간이 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주와 본질적으로 걸맞는 사람은 바로 비인간적인 환관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역사에서 환관 이외의 충성스런 관료가 있었음을 기록한 부분이 사실인가 묻고 싶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열거하는 예로 설명하고자 한다.
10세기경 광동성(廣東省)에 있었던 환관왕국의 형태를 갖춘 남한(南漢)의 군주가 말하기를 ‘모든 신하들은 예외없이 가정이 있으니 마땅히 자신의 자손들에 대하여 심려를 한다. 따라서 만사를 제치고서 군주를 위하여 전력할 까닭이 없다. 그렇다면 언제나 함께 지내는 환관만이 믿을 수 있는 우일한 사람이다.’라 하였다. 역사가는 남한(南漢)의 군주를 어리석다고 평하였다. 그러나 신하에 대한 감정이 획일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분명 그는 명군(名君)이었고 또 암군(暗君)이기도 했으며, 모든 군주들도 이에 상통되었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황종희(黃宗羲)는 부연하기를 군주에게 있어서 신하는 내외로 구별이 되는데 내신(內臣)으로는 환관이 있고 외신(外臣)에는 수상(首相) 이하의 관료가 있다. 그런데 군주의 입장에서 자기를 생각해주는 자는 내신이며, 외신이란 결국은 군주 이상으로 자기만을 돌볼 따름이라고 확신했음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인간인 이상 이러한 감정을 없애기는 어려울 것이다. 애정만 갖고서 논리가 성립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 지상에 높이 군림하고 있는 군주와 지하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환관과의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선이나 악에 휩싸여 허덕거리면서 지상에서 배회하는 무리가 인민이라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