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대하여..

정성철2006.10.20
조회42

약속해 주십시오.

 

하나. 글을 처음부터 천천히 꼭 읽어 주십시오

둘. 반감(反感)을 가지고 무조건 비판부터 하려들지 말아 주십시오

셋. 인간은 모든걸 알고 있는 전지(全知)한 존재가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수 있다는걸

인정하시면서 읽어 주십시오.

넷. 고민해 주십시오.

다섯. 전 제가가진 믿음에 근거한 교회에서 쓰이는, 소위 '교횟말' 들을 사용할 것입니다. 거부반응이 드시더라도 이것이 저의 진심임을 알아 주시고 읽어 주십시오.

 

이걸 약속하지 않으시겠다면

절대 읽지 말아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저는 부천에 살고있는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나이는 85년생, 22살 입니다.

모태신앙으로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녀오다가

고등학교 때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알고있는 하나님에 관한 적은 지식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이 가진 오해를 풀어 주기 위해-가능하다고 생각치는 않습니다만-이 글을 씁니다.

 

그리고 이 글은 신앙적으로(믿음의 표현으로) 표현하는 글입니다.

따라서 먼저 신앙의 의미를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신앙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개념'입니다.

개념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양을 측정하거나 계산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말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없다. 만약 내 눈앞에 나타나서 나를 믿어!라고 말한다면 믿어줄 의향은 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랑'도 하나의 '개념'입니다.

여러분은 '사랑'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지않는 다면 이런일이 일어납니다.

(물론 이런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것같지는 않습니다만.)

 

철수  영희야, 오늘 너에게 꼭 할 말이 있었어. (꽃을 내밀며)내 사랑을 받아줘. 사랑해 영희야.

 

영희  그렇지만, 나에겐 너의 사랑이 보이지 않는걸? 그걸 보여준다면 그땐 니가 날 사랑한다는

        말을 믿어줄게.

 

우리는 사랑을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내가 누군가의 사랑을 느낀다'는건

나와 있을 때 그 사람의 행동, 나와 말할 때 나타나는 표정,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말

등을 통해 느껴지는 것입니다.

 

다시 믿음의 개념으로 돌아옵니다.

 

믿음을 보이는 방법은 그 믿음으로 야기된

나의 행위나 나의 말, 나의 행동들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것을 눈에 보이는 어떤 것들과 같이 이해해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제대로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믿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흔들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믿음을 부정하라'는 생각은 여기서 버리고 들어갑시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Q1. 유일신? 다양성 인정해!!

 

A1.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의미를 아십니까?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이라는 명칭과 다릅니다.

 

하느님 - 하늘에 있는 님

하나님 - 하나뿐인 님

 

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우상숭배이니까요.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믿습니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라는 이야기는 하나님을 부정하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전적으로 부정하라는 말이죠.

 

다양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겠습니다.

 

'진리'는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글 아랫 부분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두겠습니다)

 

예를들면, 여기 천동설과 지동설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있다'는 지동설을 진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양성의 개념을 개입시킬 수 있을까요?

 

"지동설을 주장하는 너희들은 다양성을 무시하고 있어! 천동설도 인정해 주라구!"

 

이건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진리에는 다양성이라는 것이 절대 개입될 수 없는 것입니다.

 

 

 

 

 

Q2. 전도? 나를 귀찮게 하는 것일뿐!

 

A2. 아닙니다.

 

전도하시는 분들의 마음은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앞서말씀드린 것과 같이 사랑은 행위로 이해되는 '개념'의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사랑할 때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철수  음 이건 집에 들어가기전에 내가 먹고싶은 아이스크림을 살돈이니까

         그(녀)의 생일 선물은 '다음에 돈이 더 생기면' 사줘야지.

 

이게 진짜 사랑이 아니라는 건 다들 아시겠죠?

 

철수  아 오늘이 그녀의 생일인대 선물을 사줄 돈이 없어...내가 가진 것 중 돈이 될만한건 이 시

         계뿐인데...에이, 그래 그(녀)에게 선물을 사줄수만 있다면야 이깟 시계정도야 팔수 있지!

 

표현이 좀 어설프긴 하지만 이게 사랑이라는건 공감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내가가진 최고의 것을-심지어 내 목숨이라도-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가진것 중에 가장 귀하고 값진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가 가진 전재산도 아니고, 내 목숨도 아니고,

바로 복음-복된 소식,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기쁩니다. 내가 가진 돈이 없어도, 내 몸에 병이 있어도, 아니 지금 당장 내가

죽게 되었어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전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말을 거는일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길을 가다가 정말 내가 꿈꾸던 이상형을 만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용기가 부족해서 그냥 그렇게 보내버리고 후회하거나

용기를 내서 말을 걸고 끈질기게 좇아가서 연락처라도 얻어내거나

아마 이 두 경우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용기가 없어서 말을 떠듬떠듬 하더라도 어떻게든 나의 사랑을 표현해 보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를 내어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무참히 짓밟지는 말아주십시오.

 

 

 

Q3. 성경은 과학적으로 말이 안돼! 그러니까 그건 거짓이야!

 

A3. 맞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짓은 아닙니다.

 

 

성경은 소설입니다.

하지만 허구는 아닙니다.

 

이 모순되어 보이는 말을 설명하겠습니다.

 

성경은 '진리'를 인간의 '말'로 풀어 놓은 글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 속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뜻은 '인간'입니다.

따라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범죄는 곧 인간의 범죄입니다.

단지 한 인간이 지은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표성의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으로 대표되는 한 인간의 범죄는

 

'내가 아담이었으면 절대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을거야!' 가 아니라

'어떤 인간이든 그 상황이었다면 선악과를 따먹었을 것이다.' 의 의미를 가집니다.

 

아담의 이야기는 이 진리를 이야기로 풀어 놓은 것입니다.

 

 

진리는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아니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질 수 있는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 없는 '성스러운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사상가 플라톤은 현상의 세계가 곧 진리의 세계의 모형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상의 세계를 잘 연구하고 이해한다면

진리의 세계를 이해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플라톤은 '진리'를 '태양'으로 설명했습니다.

 

인간이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면 인간의 눈은 멉니다.

이처럼 진리는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진리를 인간의 말로 풀어져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색안경을 끼고 보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하지만 색안경을 끼고 봤다는 건 곧 진리를 있는그대로, 곧 진리 그대로 보지 않았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과학이라는 붉은색 색안경을 끼고

 

"내가 저 진리를 보았는대 붉더라."

 

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

 

 

저는 기독교를 부정하고 논리적으로 그 약점을 반박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다시 반박하여 이겨내려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볼때

더더욱 안타깝습니다.

제가 잘나서가 아닙니다(실제로 잘나지도 않았구요). 제가 아는것? 별로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너무나 아프실겁니다.

그런글을 쓰고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흘리고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을 '죄에 대한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칭의'하셨습니다.

'의롭다고 말씀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범했다고 '죄인'으로 보시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안타까운 의인'으로 보십니다.

 

 

우리는 교만합니다.

교만은 천사들의 장(長)이었던 천사가 사탄이 되도록하고,

아담의 범죄-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교만-를 일으킨 최악의 죄,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에게 하나님 앞에 무조건 벌벌떨며 눈물흘리며 죄를 자백하라고

추궁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는 깨끗한 인간이야. 나는 하나님을 알고 싶지도 않지. 난 대단한 놈이거든."

이라고 말하는 교만을 모른척 해주는 종교는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입니다.

(마음-심-은 내 안에서 나오는 것, 감정-감-은 주변의 상황으로 인해 주어지는 것)

내가 잘났다는 나의 마음이 아닌, 내가 존귀한 존재라는 느낌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C.S.Lewis(씨.에스.루이스)의 소설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4명의 주인공은

그저 힘없이 연약한 아이들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셋째 남자아이는 죄인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사자로 나타나는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으로 그 소년의 죄는 사라집니다.

아마 그 소년은 진심으로 그 사자에게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그 나라의 동서남북을 다스리는 왕이 되지요.

 

긴 글, 끝까지 신중하게 읽어주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저는 신학대학을 다니고 있는 학생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글은 많이 부족한 줄로 압니다.

신학생분들이나 그 밖의 전문가들께서는

제가 잘못 알고 있는 점이나 부족한 점을

꼭 지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글을 읽지 않고 댓글만 달지는 말아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