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2일 간의 역사탐방은 참으로 뜻깊은 것이었다. 잉카, 마야 문화의 수준 높음에 감탄하고
또한 지구의 아름다움과 인간창조의 위대함을 느끼고 감동하였다
가만히 생각하니 주마등처럼 곳곳의 정경들이 머리 속을 지나간다.
*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상파울로의 야경.
* 이과수폭포의 그 웅장함.(「미션」비디오를 빌려다 보고 재이해를 하였습니다)
* 자연의 위력 앞에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본연적으로 분출시킨 박신부님의 함성.
* 폭포 틈새에 집 지은 제비의 모습. 이과수폭포 근처 잔디에서 들려오던 귀뚜라미 소리.
* 갖가지 고기를 쇠꼬챙이에 끼워 권하던 브라질 식당.
* 컴컴하게 느껴지던 리마市의 풍경.
* 비행장에서 내려다 본 안데스 산맥과 티티카카호. 쿠스코市 全景.
* 우르밤바에서 쿠스코로 넘어가던 해발 3400m의 산등성이 길.
* 마추피추가던 열차.
* 마추피추의 신비한 돌건축물들. 안녕!을 외쳐대던 인디오 소년.
* 에메랄드블루의 칼리브해 물빛. 대 리조트 칸쿤에서의 휴식과 쇼핑.
* 스콜을 맞았던 항구유적지 툴룸.
* 과테말라의 티칼에서 본 열대정글 속의 마야 최대의 대 신전.
* 치첸이짜로 가는 버스 속에서의 각자 자기소개(시원찮은 사회자인 필자 때문에 웃던 일).
* Ball경기장을 본 느낌. 메리다 지역 박물관에서 본 편두의 두개골.
* 야외에서 즉석구이를 먹고 생음악 듣고 춤추고 마차탔던 메리다의 낭만적인 밤.
* 가장 훌륭한 마야유적 깔렝케.
* 와하카 분지를 내려다보는 웅대한 유적 몽테알반.
* 돌벽의 문양이 기하학적으로 아름답던 미틀라 유적.
* 멕시코국립인류학 박물관의 그 웅장한 외관과 충실하고 놀라운 내용물.
* 멕시코 최대의 종교도시국가 테오티와칸의 大피라미드들.
* 록키 산맥과의 웅대한 모습과 그랜드캐년의 장관. 벤쿠버의 크고 아름다운 시가지... etc.
* 기간: 1995. 7. 13 ~ 8. 3
* 답사경로 : 서울(13日)→동경→로스엔젤레스→브라질의 상파울로
(14日)→이과수폭포(15日)→상파울로(16日)→페루의 리마(17日)→쿠스
코(18日)→우르밤바→마추피추(19日)→쿠스코→리마(20日)→멕시코의
칸쿤(20日)→칸쿤에서의 휴식(21日)→치첸이짜 유적지답사 후 메리다
도착(25日)→우수말 유적지답사 후 메리다로 귀환(26日)→비야에르모사
도착 후 팔렝케 유적지답사(27日)→멕시코시티도착, 박물관 관람(30日)
→테오티와칸 유적지답사(31日)→멕시코시티 출발(8月 1日)→벤쿠버 경
유→기내숙박→동경(2日)→서울(3日)
7월 13일(木) : 제 1 일
아침 11시 김포공항 제1청사 2층 외환은행 앞에서 24명 전원집합하여 오후 2시에 김포공항 출발, 2시간만에 동경 나리다(成田)공항 도착하였다.
밤 10시에 동경에서 출발하였고 저녁은 11시 30분에 기내에서 먹었다.
7월 14일(金) : 제 2 일
아침 6시 30분 기내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는데 밤새 비행기는 해를 따라가며 일부변경선을 넘은 탓으로 밖은 내내 대낮이었다.
8시 10분에 La에 도착하였는데 현지시간으로는 13일 오후 4시 10분이었다.
하루를 벌었다! (이하 현지시간)6시 20분에 La 출발하여 11시 30분 기내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14日아침 6시 30분에 찬란하고 아름다운, 해뜨는 광경을 보았다.
30분뒤에 기내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비행기는 南美의 아마존 상류를 가로지르는 모양으로, 광활한 대평원과 밀림, 그리고 작은 강줄기들이 보였다.
9시 25분에 축구와 축제의 나라 브라질의 상파울로에 도착했다.
한국과의 시차는 12시간이었다. 10시 30분에 공항을 출발하여 11시 20분에 상파울로 힐튼 호텔에 도착하였고 오후 1시까지 호텔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1시 30분에 Villa's 식당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했는데 맛있고 풍요한 쇠고기 요리를 먹었다. 꾸삥, 삐까냐, 알까뜨랴 등 무려 19가지의 부위 별 쇠고기를 쇠꼬챙이에 끼어 구어와서 서빙하는 등, 푸짐한 음식문화에 일행은 완전히 K.O 당했다.
오후 3시부터 4시까지는 세(se)광장에 있는 카테드랄, 메트로폴리타나 성당을 관람하였는데 대성당 앞에는 상파울로 방위기점과 도로원표가 있었다.
동양인의 거리, 비즈니스 거리(무역상사, 금융가), 성프란시스코 성당, 茶의 다리, 리베로 橋 등을 관람했다. 4시 40분에 다시 호텔에 도착하여 7시에 한국식당 에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등 한식을 저녁으로 먹고 9시에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취침했다. 참으로 멀고 긴 비행기 여행이었다.
7월 15일(土) : 제 3 일
아침 6시 먼동이 트는 상파울로의 새벽거리는 낮과 달리 깨끗하고 상쾌해 보였다. 코끝이 상큼한 섭씨 16°의 시원한 공기는 늦가을을 느끼게 했다. 멋진 피서여행이라 생각했다.
오전 8시 40분 상파울로의 꿈삐까 비행장에 도착하여 10시에 탑승하였다.
12시 50분에 꾸리티바(Curitiba)를 경유하여 이과수fall 공항에 도착하였다.
끝없는 정글 한 가운데서 본 시뻘건 江과 폭포는 참으로 장관이다. 비행기 안에서부터 가슴이
설레였다.
오후 1시 30분 까따라타스(Catatatas)호텔에 도착하여 2시에 호텔에서 출발, 점심을 먹고 3시 30분에 이과수폭포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정글을 헤치고 짚차트레일러를 타고 마치 용감한 탐험대처럼 선착장을 행해갔다.
5시 30분까지 두 팀으로 나뉜 일행은 이과수 폭포수를 맞기 위해 시뻘겋고 울퉁불퉁한 강을 따라 보트를 타고 폭포에 접근하고 왔다. 5시 40분 호텔에 도착하여 6시 40분까지 까따라타스 호텔 앞의 길을 따라 이과수폭포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정말 장관이었다. 장엄하였다!
과연 "거대한 물"이었다. 반밖에 안 되는 나이아가라는 이과수에 비하면 정말 저리 나아가라다. 황혼에 이과수폭포 위를 단체 비행하는 가르샤 라는 새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이과수 폭포 앞에서
6시 50분 호텔에 도착하여 휴식하고 8시에는 뷔페식의 푸짐한 음식과 신나는 남미음악, 브라질 특유의 삼바춤을 보면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정말 여기가 南美구나!"라고 절감하였다.
안선자氏의 생일을 축하하며 건배하였다.
11시에 호텔에 도착하여 밤새도록 폭포소리를 들으며 잠을 잤다
7월 16일(日) : 제 4 일
9시부터 다시 한번 가장 장관인 부분의 이과수폭포를 보았다.
아침에 보는 폭포는 어제 저녁보다 더 장엄해 보였다.
거대한 물의 흐름을 가까이에서 보니, 마치 백만대군이 확 밀어 닥쳐오는 느낌이었다.
50분 뒤 호텔을 출발하여 10시 반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선을 통과하여 이과수강 위의 다리를 지나,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폭포에 도착하였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풍경이 거의 같고 왕래도 자유로웠다.
오후 1시까지 멀리 브라질 쪽이 내려다 보이는 길을 따라 큰 폭포, 작은 폭포를 물안개를 맞으며 걸었다. 온통 폭포뿐이었다. 감동 또 감동이었다.
물이 부서지는 소리, 그 웅장한 폭포의 굉음, 뽀오얀 물안개, 거대한 물줄기의 떨어짐... 장관, 장관이었다. 어제는 올려다 본 폭포였고 오늘은 내려다 본 폭포였다.
브라질 음식은 맛있었다
1시 40분에 브라질 식의 뷔페식당 Churasca식당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3시에는 토산품 점에 들렸는데 예쁜 돌, 아름다운 색깔의 돌, 화석 등이 특이했다. 4시에 공항으로 출발하여 5시에 이과수 공항을 출발, 7시 10분에 꾸리띠바 공항을 경유하여 상파울로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상파울로의 야경은 마치 보석을 박아놓은 듯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저녁 8시 한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10시에 호텔에 도착하여 일요미사를 보았다.
7월 17일(月) : 제 5 일
이른 아침인데도 좋은 朝食을 대접받았다.
그러나 버스 기사의 사보타쥐로 일행은 황급히 일곱 대의 택시에 나누어타고 공항으로 나갔다. 현지 가이드 msKim의 기지와 일행의 일사불란한 행동은 오블리가도!
오전 7시 30분 리마행 페루항공기에 탑승하여 8시에 이륙했다. 비행기는 비교적 깨끗했으나
스튜어디스의 외모는 안데스산맥처럼 굴곡만 심할 뿐 아름답지 않았다.
말은 여기서부터 포르투갈어의 부드러운 어투에서 명확한 스페인어로 바뀌었다.
11시경에 안데스 산맥을 지났다. 검은산, 회색산, 녹색의 산, 황토산, 만년설의 설산, 민둥산... 구름 한 점 없는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높고 광활한 안데스산맥의 장관... 그런데 그 한가운데 짙은 초록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거대한 호수 티티카카호가 보였다.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산허리 사이사이에 인간의 흔적이 보였다.
도대체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이 높고 깊은 산과 계곡에 자리잡고 살았을까?
정말 미지의 세계, 신비의 세계, 외경의 세계다. 12시 35분에 리마의 호르체차베스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시간으로는 오전 10시 35분이었다. (이하 현재시간) 11시 15분에 공항을 출발하여 시내로 향했다.
초겨울처럼 대기가 찼다. 리마市는 안데스산맥의 독산(禿山;민둥산)처럼 황폐하고 어두운 느낌의 도시였다. 집도, 거리도, 사람도 모두 컴컴했다.
12시 쉐라톤리마 호텔에 도착하여 1시에 한국식당에서 콩나물국과 밥, 나물, 불고기를 먹었다.
2시 30분부터는 시내관광을 하였는데 메인에비뉴 라오니온 거리와 시청 앞 광장(센트랄파크), 산토도밍고 교회, 주변의 콜로니얼 건축물 등을 살펴보았다.
3시 30분에는 라르콜 거리를 지나 리마市의 해변가에서 거대하고 망망한 태평양을 보았다.
4시에는 Catedral(수태성모 성당) 관람하였다. 南美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초석을 높은 대성당으로 1606, 1687, 1746년 세 번의 대지진으로 1755년에 최종 복구가 이루어 졌다. 피사로의 미이라가 잠든,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었다.
5시에는 국립인류고고학 박물관에 도착하였으나 너무나 안타깝게도 월요일은 휴관일이라 잉카문화의 정수를 보지 못하였다. 전시품 중에는 나스카의 미이라, 토기, 직물 등이 특히 유명한데, 그 중에서도 치밀하고 선명한 염색으로 이름난, 미이라를 감싼 헝겁천이 특히 유명한 것이라 한다. 리마시 교외에 있는 황금박물관도 관람하지 못하였음은 애석한 일이었다.
그래서 잉카문명의 모습은 단지 마추피추의 돌 건축모습만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 5시 40분에 호텔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고 저녁 7시에 한국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점심보다 푸짐했다. 그러나 제일 난코스인 내일 쿠스코 방문답사를 위해 수도자적 기분으로
음식을 절제하며 9시에 호텔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7월 18일(火) : 제 6 일
새벽 4시 45분 호텔을 출발해서 5시에 리마 공항에 도착했고 6시 20분에 탑승했다.
새벽하늘엔 예쁜 반달이 떠있었고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7시 40분에 해발 3400m의 잉카수도 쿠스코(배꼽=세계의 中心)에 도착했다.
안테스 산맥 속의 한 계곡에 생겨있는 놀라운 도시다. 과연 높은 곳이었다.
기압이 680미리바로 내려가고 숨이 갑갑해졌다.
8시 20분에는 쿠스코 시내로 들어갔다. 기온이 싸늘했다. 추운데 햇살을 따가웠다.
현지가이드 로사의 또렷또렷한 해설은 차단장님의 통역과 함께 감명깊었다.
피챠쿠텍 황제동상을 지나, 생명의 상징물인 잉카폭포를 지나서 사보이 호텔에 도착했다.
9시에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고산병에 좋은 코카차를 마셨다.
그리고 9시 35분에 쿠스코 시내를 관광하였다.
산토도밍고 교회(잉카궁전터의 초석 위에 세운 콜로니얼 교회)를 보았다.
스페인은 기존 문명을 완전파괴치 않고 그 위에 건축물을 세우는 특징이 있었다.
대지진에도 잉카의 석조토대는 그대로 보존된다.
코리간차(황금거주지)에는 무지개사원, 천둥의 사원, 달의 사원, 번개사원, 별의 신전, 궁전 등이 있었으며 옛날엔 금, 은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3은 성스러운 숫자로 여겨 3계명(도둑질, 거짓말, 게으르지 말 것 등)이 있었고 3개의 창문이 있었다.
10시 15분에는 카테드랄, 콜로니얼 성당, 거리, 잉카인의 집들, 붉은 감자, 양파, 과일, 옥수수 등을 파는 시장거리를 버스를 탄 채 쭉 둘러보며 관광했다.
메소티소족(흰 모자를 씀)과 뿌노족(검정모자를 씀)의 인디오들의 모습이 특이했다.
11시에는 해발 3700m고지의 전망대인 푸카푸카라를 답사했다.
20C중엽 팔레스타인캐톨릭이 세운 흰 예수상이 서 있는 이곳에선 인구 27만의 쿠스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갑갑하기 시작했다. 11시 20분에는 쇼핑점에 들려 따뜻한 알파카 제품의 스웨터를 각자 샀고 30분 뒤에는 삭사이와만 요새(성채)를 답사했다.
6월에 가 열리는 곳이다. 거석을 사용해서 쌓은 3층의 성채였다.
이 곳에서 단체사진촬영을 하였다.
그런데 고산병 징후가 농후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12시 20분에는 캔코유적을 답사했는데 이 곳은 잉카제국의 제례장이 있었던 곳으로 동물희생을 바쳤다. 지그재그의 미로와 퓨마형상의 돌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탐보마차이를 답사하였는데 '성스러운샘'의 뜻으로 잉카시대의 목욕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결국 고산병으로 K.O되었다.
두통, 호흡곤란, 가슴답답, 어지러움, 구토증세, 흐르는 진땀, 맥이 뛰지않고 육신이 차가워지면서 힘이 모두 쏙 빠졌다.
오후 3시 우르밤바의 알함브라 호텔에 도착하였다.
페루 현지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휴식에 들어갔다.
7시 30분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숙진 선생님의 생신축하 Cake을 끊었다.
콜롬비아에서 공수되어 온 식탁 위의 국화꽃이 더욱 분위기를 돋구었다.
7월 19일 (水) : 제 7 일
6시 30분에 큰 여행가방은 쿠스코의 사보이 호텔로 보내고 간단한 차림으로 우르밤바의 알함브라 호텔을 출발하여 마추피추行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갔다.
가는 도중, 깊은 계곡의 우르밤바 강을 따라가면서 잉카의 묘지, 잉카의 다리초석, 잉카시기의 초소, 잉카인의 길(잉카트레일) 그리고 지하, 지상 水路 암염생산지, 힘을 상징하는 각 집의 지붕 위의 표식 등을 보았다.
생산되는 것은 옥수수, 고구마, 감자가 주를 이루는데, 그 중 옥수수는 세계에서 가장 질이 좋으며 年8000톤이 수출된다고 한다.
7시 20분 기차역에 도착하였다. 잠시 시장이 설 정도로 많은 인디오들이 특산품을 팔러 모여 들었다. 하나씩 사고 8시 5분에 마추피추行 One Way Rale의 관광객 용 기차를 탔다.
기차는 비교적 쾌적했고, 가는 길 주변은 산과 계곡, 사막과 선인장, 만년설의 설봉들이 어우러져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마추비추에서
9시 반에 마추피추역에 기차가 도착했다. 다시 표를 사서 버스로 우뚝 솟은 바위산(마추피추마운틴, 영마운틴)을 옆에 끼고 꼬부랑길을 따라 정상을 향해 계속 올라갔다.
드디어 세계 7大 불가사의의 하나인 "공중도시", "요새도시", "비밀도시", "잊혀진 도시"로 불리는 1만명 정도를 수용했다는 성채도시 마추피추에 올랐다. 놀라웠다.
정말 기묘한 곳이었다. (한국 아시아자동차회사에서 만든 중형버스가 일본 머쯔비시자동차와 함께 중요한 수송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면서 가슴이 뿌듯했다.)
10시 30분 해발 2400m, 총면적 5㎢, 240채의 가옥, 채석장, 태양의 신전, 궁정, 범죄인수용소, 주택가, 해시계(인티와타나), 광장 Ⅰ,Ⅱ,Ⅲ, 계단형 밭 등을 보았다.
1991년 예일대학의 히람빙엄이 발견했다고 하고 관계유물은 예일大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발굴시체 170구 중 150구가 여성이었다고 한다.
오후 1시에는 그 곳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각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식당은 인종전시장 같았다.
2시 반 하산하는 우리들 버스 앞에, 구비구비 길마다에서 만난 인디오 소년(good - bye boy)의 "안녕!" 소리는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3시에 기차로 마추피추 역을 출발하였다.
가는 도중에 기차바퀴를 식히느라 계곡의 물을 계속 바퀴에 퍼붓는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4시 30분에 우르밤바 역에 도착하여 대기중인 버스로 쿠스코를 향해 출발했다.
계속 해발 3000m 이상되는 산길로 우르밤바에서 쿠스코까지 간 이 버스여행은 신비하고 환상적인 것이었다. 그 높은 高山지대에, 산높이와 같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곡식들이 심겨져 있었으며 띄엄띄엄 환히 불을 밝힌 마을들이 보였다.
황혼이 드리운 높은 산골길을 달린, 버스여행은 정말 영원히 잊지 못할 신비함 그 자체였다. 7시 40분 쿠스코의 사보이 호텔에 짐을 풀었다. 침실엔 초콜릿이 예쁘게 놓여있었다.
7월 20일(木) : 제 8 일
쿠스코에서
아침 7시 40분에 쿠스코 공항에 도착하여 8시에 탑승, 20분 뒤에 이륙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니 해발 6000여m의 雲山들이 보였다. 정말 장관이었다.
이 높은 곳에 스페인 군대는 어떻게 쳐들어왔을까? 놀라울 뿐이었다.
9시 25분 리마 공항에 도착했다. 쿠스코에선 파리약 먹은 것처럼 맥을 출 수가 없었는데 리마에 도착하니 가슴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11시 15분, 잉카문명의 하드웨어인 그 유적지는 보았으나 소프트웨어인 박물관 전시물들을 관람치 못해 아쉬움을 남기면서 여러 가지 수속을 마친 후 칸쿤行 peru항공기에 탑승했다.
30분 뒤에 이륙했는데 안데스 산맥과 아마존 강 상류 상공을 날며 지구는 아직 깊은 병에 들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아름답고 신비했다.
이 큰 우주 속의 작은 지구의 하늘과 땅을 감동어린 눈으로 보면서 우주의 광활함과 무한함에 막막해졌다.
1시 30분에 기내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4시 35분에 Cancun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시간으로는 3시 35분이었다. 가이드 이종규氏 가 마중나와 있었다. (이하 현지시간) 4시 20분, 칸쿤 공항을 출발하여 대 리조트의 호텔로 향했다.
한반도 면적의 9배나 되는 넓은 멕시코는 세계 4, 5 위의 산유국이며 석유매장량은 1위라고 하고, 관광산업이 2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자원과 광활한 밀림, 많은 조상의 유적지, 칼리브 해의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었다.
버스가 칸쿤해안의 호텔Zone에 들어서자 아름다운 칼리브海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에메랄드 블루의 칼리브해 물빛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순백의 모래사장, 잔잔한 물결, 눈이 시릴만큼 푸르른 하늘. 에메랄드 빛의 바다...
일행은 탄성을 발했다.
칸쿤의 바다 색갈은.....
5시에 멋진 카미노레알 호텔에 도착했다. 정말 아름다운 대휴양지였다.
칼리브해가 한눈에 보이는 훌륭한 방에 여장을 풀었다. 꿈만 같았다.
저녁 8시에는 멕시코 현지식으로 푸짐하게 저녁을 먹었는데 그 곳은 저녁식사가 늘 늦게 시작된다고 하였다.
7월 21일(金) : 제 9 일
아침 8시에 호텔에서 서양식 뷔페로 식사를 하고 1시에는 생선요리로 점심식사를 했다.
2시 반부터 두시간 동안 해저구경을 위해 바다로 갔는데 쾌속정으로 칼리브해 가운데로 가서, 거기에 대기하고 있는 잠수함을 타고 해저로 내려갔다.
칼리브 바다속의 희귀한 물고기드과 산호 등 아름다운 바다 밑 풍경을 보았다.
8시에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했는데 멕시코는 아열대지방이어서 아주 더웠다.
그러나 냉방시설 잘된 특급호텔은 퍽 쾌적하였다.
이 칸쿤의 호텔Zone에는 무려 50여개의 특급호텔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T.V에선 마치 여기가 미국인 듯 온갖 미국방송이 다 방영되고 NAFTA때문인지 여러 가지가
미국적 영향하에 있음을 느끼게 했다.
아무튼 오랜만에 하루종일을 완전 Free하게 휴식을 취했다. 늦잠자고, 빨래하고, 쇼핑몰에서 쇼핑도 하고, 에메랄드 빛 물에 몸도 담그고, 망망한 칼리브해를 바라보며 사색도 하고, 산책도 하고, 해저탐사도 하고...etc. 경치 좋고 배부르고 걱정없이 즐겁고...
이것이 바로 낙원이 아닐까?
7월 22일(土) : 제 10 일
아침 6시 칸쿤 공항에 도착하여 7시 10분에 이륙했다.
8시 5분에 플로레스 공항에 착륙해서 30분에 출발, 9시 20분에 티칼에 도착했다.
10시, 티칼 유적지 근처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면적 11만㎢, 인구 천만, 인디오 60%, 1523년 에스파냐의 정복자 페드로 데 알바라도에 정복된 마야족의 후손들이 사는 과테말라는 아직 잘 사지 못하고 있었다.
11시 티칼("메아리"의 뜻) 유적지를 답사했다.
과테말라의 상징나무인 쎄이버가 우거진 정글 속으로 모기약을 칠하고 들어갔다.
티칼 유적의 중심부인 대 광장을 출발하여 東西로 거대한 1호 신전(높이 51m, 700년 경 건축. 일명 재규어 신전. 티칼 건축의 집대성. 이 피라미드에서 왕의 유골과 200개의 비취장식품, 20여개의 토기가 나옴), 2호 신전(높이 38m, 일명 가면의 신전)이 있고 북쪽에는 노스아크로폴리스 건물, 남쪽에는 센트럴아크로폴리스 건물군이 있다.
1호 신전 뒤에 있는 비명( 碑銘)의 신전(213개의 문자, 해독)을 본 후, 높이 70m의 4호 신전(741년 건조)에 이르러 젊은 대원들은 용감하게 정상에 올라가 티칼유적전경을 인상깊게 보았다.
거대한 피라믿 앞에서
오후 2시 반, 밀림을 헤매며 새소리, 원숭이 소리를 듣고, 모기, 개미에게 물리기도 했지만 훌륭한 유적을 본 만족감이 가슴에 가득했다.
석쇠구이 쇠고기와 밥, 콜라로 맛있게 늦은 점심을 먹었다. 4시에는 박물관을 관람했는데 유적지하에서 발견된, 분묘에서 나온 부장품(보석, 도기, 뼈조각 등)들을 보았다.
5시에 플로레스 공항에 도착하였는데 비행기의 연발로 50분 뒤에 이륙하여 6시 55분에 칸쿤 공항에 도착했다.
8시에 카미노레알 호텔에 도착하여 8시 30분에 저녁식사를 했다.
7월 23일(日) : 제 11 일
아침 9시 호텔을 출발하여 11시에 뚤룸(Tulum; 성벽, 담의 뜻. 해안가의 마야유적지)에 도착하였다. 망망한 칼리브해의 연안 항구로서 마야교역의 중심지였다.
높이 2m 정도의 성벽은 성스러운 곳 즉, 신전영역의 경계선을 뜻했다.
지도자의 모덤과 채색이 아름다운 신전(회화의 신전), 꿀의 신전, 해시계, 항구의 등대 등을 살펴보았다. 도중에 스콜이 쏟아져 초가집 아래로 모두 피하기도 했다.
오후 1시부터 한시간 동안 생선요리를 점심으로 먹고 2시에 셀하유적지로 출발했다.
40분만에 셀하에 도착하였다. 관광지 Xel - ha는 천연적인 바다연못, 해수욕장 구역이었다. 3시 15분 셀하를 출발하여 칸쿤으로 갔다.
끝없는 정글 속에 쭉 뻗어있는 道路를 달려 칸쿤으로 돌아왔다.
도중에 쏟아지는 스콜을 만났다. 4시 45분 Camino Real 호텔이 도착하여 5시에 일요저녁미사를 보고 7시 50분에 멕시코 식 양곱창 국을 저녁식사로 먹었다.
7월 24일(月 ): 제 12 일
하루종일 아쥬시간을 가졌다. 칸쿤에서의 마지막 휴양시간이었다. 8시에 아침을 먹고 1시에 점심, 8시에 새우요리로 저녁을 먹었다.
쇼핑도하고, 낮잠도 자고, 오후에는 칼리브바다에 들어가 해수욕도 하고 소라도 잡고 아쉬운 시간을 즐겼다.
7월 25일(火) : 제 13 일
아침 9시 반 호텔을 출발하여 칸쿤 시내를 경유, 치첸이짜로 이동했다.
정글 속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버스 속에서 일행은 여행출발 2주만에 처음으로 각자 자신을 소개할 기회를 갖고, 노래와 유머를 함께 즐기며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12시 20분에 점심식사를 하였다. 멕시코는 가는 곳마다 깨끗하게 정비된 식당이 있었다.
관광국의 면모를 도처에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1시 반, 치첸이짜("우물가"라는 뜻)를 답사했다. 9~ 10C 마야문명으로 우물(물 저장 탱크), 태양력 신전, 비너스 신전, 전사의 신전, 공(Ball)경기장 등 참으로 놀라운 유적지였다.
구기놀이를 그 옛날부터 한 거대한 유적을 보며 역시 중남미가 축구에 강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후 4시, 다시 버스로 메리다로 향했다. 5시 40분에 호텔 홀리데이인에 도착하였다.
소칼로광장을 중심으로 몬테호 거리로 뻗은 구획정리가 잘 되어 있는 古都메리다는 매우 아름다웠다. 8시에 저녁식사를 하였는데 가장 멋있는 저녁식사였다.
야외식당에서 붉은 장미를 車단장님으로부터 여성대원이 선물 받았으며, 4인조 밴드가 생음악으로 멕시코 곡을 들려주는 가운데, 쇠고기와 생선을 즉석에서 입맛대로 구워 먹으며 즐겼다.
데낄라도 마시고 춤도 추며 흥겨워 하였다.
늦은 밤, 메리다 거리를 고풍스런 마차를 타고 달리는 낭만도 즐겼다. 메히코의 밤이 깊어갔다.
7월 26일(水) : 제 14 일
아침 9시 반 우수말(Uxmal) 유적지로 갔다.
물저장소(3만ℓ), 마술사의 집(난쟁이의 성. 높이 35m, 121개 계단의 타원형의 파라미드), 비의 신전, 승려의 방, Ball운동경기장, 거북의 신전, 지도자의 집(왕궁), 재규어 제단 등을 답사했다. 톨텍 영향이 적고 포크양식이었다.
잠시동안 대원들 간에 토론이 벌어졌는데 주 내용은 5만명 정도가 살았다고 하는데 연맹왕국 정도의 규모일까?, 마야, 잉카는 고대사가 아니고 신석기 시대다?, 과연 고대사가 아닌가?,
석기시대에 어떻게 동맹왕국이 성립될 수 있을까? 등이었다.
볼 경기장 앞에서
오후 1시부터 한시간 반동안 생선요리를 점심으로 먹고 2시 반에 우수말 유적지를 출발하여 3시 40분에 메리다 시내에 도착했다.
몬테호 거리의 주택가, 공원 등에 빨간 꽃이 핀 홀람보탄 나무가 쭉 가로수로 뻗어 있었다.
5분 뒤 메리다 지역 인류학 박물관에 도착했다. 두가지 모양의 편두(偏頭) 두개골이 인상적이었다(귀족, 평민). 마야문자, 도자기 등 많은 유물을 보았다. 스콜이 쏟아졌다.
4시 50분에 박물관을 나와 시장거리로 갔다.
5시 30분부터 시장구경도 하고 간단한 쇼핑을 하고 한시간 뒤에 호텔에 도착했다.
8시에는 어제 밤처럼 고기와 생선 즉석구이를 마음껏 먹고, 신나는 멕시코 음악에 맞추어 춤추고, 또 유카탄의 민속춤을 구경하며 데낄라 싸우자 술에 취한채,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메리다의 밤은 깊어갔다.
7월 27일(木) : 제 15 일
아침 7시 반, 호텔을 출발하여 메리다 공항으로 향했다.
8시 50분, 비야에르모사로 가기 위해 Mexicana항공의 작은 비행기를 탔다.
9시 10분 비행기가 이륙했고 9시 55분에 비야에르모사 공항에 착륙했다.
10시 10분에 공항을 출발하여 팔렝케로 향했다. 가는 길엔 아름다운 초원, 마을과 콩, 참깨, 따바스코가 심겨진 밭들을 볼 수 있었다.
따바스코州의 도청소재지 비야에르모사에서 치아파스州의 팔렝케로 넘어가면서 일행은 퍽 조심하고 걱정을 하였다. 치아파스 주는 사파티스타의 본거지로, 치아파스의 농민군이 항거하고 있는 위험지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지금은 소강상태였다.
12시 아담한 식당 에서 현지식 뷔페를 맛있게 먹고 1시 반에 식당을 출발하여 1시 40분부터 2시간동안 가장 훌륭한 마야유적지 팔렝케를 답사했다.
팔렝케 유적은 무덤이 많은 것이 특색이었는데 비문의 신전, 왕의 궁전과 천문대, 태양의 신전, 십자가(옥수수)신전 등을 답사했다.
마야 문자에 의하면 파칼왕은 603년에 태어나 12세 때인 615년에 즉위하였고 683년에 사망했다고 되어 있으며, 파칼의 대관식 조각이 있었다.
피라미드 아래로 69계단을 내려간 지하무덤 속의 석곽과 그 덮개인 석판은 대단했다.
바로 여기서 비취 입힌 파칼왕의 미이라가 나왔다.
그리고 궁전 내에는 수세식 화장실과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는데 일행은 앉아보고, 사우나실에도 들어가 앉고 하는데 스콜이 한 줄기 시원하게 쏟아졌다.
팔렝케 유적 발굴작업은 10%가 진행되었을 뿐 아직 90%는 발굴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후 4시, 비야에르모사로 돌아가 6시에 하이야트 호텔에 도착했다.
7시에 뷔페식의 저녁식사를 하였다.
7월 28일(金) : 제 16 일
9시 20분 비야에르모사 공항에 도착하여 10시 40분에 와하카行 비행기에 탑승하여 15분 뒤 이륙했다. 11시 15분 똑스뚤라 꾸디에루수를 경유하여 11시 45분 똑스뚤라를 출발, 12시 25분에 와하카에 도착했다.
해발 1550m의 분지 와하카는 초가을 날씨 같아서 쿠스코를 상기시켰다.
멕시코 도착이후 처음 느끼는 시원한 공기였다.
12시 50분 와하카 공항을 출발했다. 인구 80만의 와하카는 아담한 곳이었다.
집들은 각층마다 색깔을 다르게 칠한 특색있는 풍경으로 인디오 출신의 대통령 베니토 후에레스의 집을 지나칠 때는 인디오의 자존심을 느낄 수 있었다.
1시 20분 Fiesta inn 호텔에 도착했다. 풀장도 있고 예쁜 꽃을 담 밑에 심어놓은 아기자기한 호텔로 퍽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바로 옆의 이 시끄러웠다.
1시 40분 호텔 식당에서 뷔페식 점심을 먹고 2시 반에 산토도밍고 성당을 관람하였다.
교회에 질린 사람이라도 이 성당은 한번 둘러보아야 할만큼 황금으로 장식된 바로크 양식의 훌륭한 성당이었다. 스페인의 성당 못지 않게 화려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3시에는 와하카지역 박물관을 관람했다. 신석기의 토기, 금, 은, 옥, 골제품 등의 뛰어난 보물이 놀라웠다. 이는 몬테알반과 미틀라에서 출토된 유물들이었다.
4시 반에 호텔로 돌아와 5시엔 호텔 건너편 Sears백화점과 대형수퍼마켓에서 쇼핑을 하고 8시에 저녁식사를 하였다.
7월 29일(土) : 제 17 일
9시, 호텔을 출발하여 9시 20분에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 산등성이에 있는 몬테알반("흰색의 산"이라는 뜻)유적지에 도착하였다. 정말 좋았다.
해발 2000m에 위치한 몬테알반은 와하카분지를 내려다 보는 웅대한 유적이었다.
B.C800~A.D1000년까지 계속된, 사포텍의 영향을 받은 이곳엔 구기장(경기의 승자가 희생물이 됨), 팬타곤 식의 천문대, 의식장소, 제단, 상형문자의 비석, 광장이 있었다.
소리의 울림이 강한 광장에서 오성교수는 "아- 가을인가"를 빼어난 목소리로 불렀다.
특히 큰 돌 20여개에 조각된 그림(인체모습, 임신한 여인상, 제왕절개모습, 척추병 노인의 모습 등)은 병원도 있었음을 추측케 했다.
(수술시 마취제는 참피뇬이라는 독버섯을 사용했다고 한다)
멸망원인은 물기근과 지진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11시에는 몬테알반유적 전시관을 관람했다. 큰돌에 새겨진 오리지날 조각 모습을 보았다.
11시 30분에 몬테알반을 출발하였다. 멕시코 3大유적지 중 팔렝케와 몬테알반은 보았고 이제 태오티와칸만 남은 셈이었다.
12시 20분부터 한시간 동안 점심식사를 했는데 가는 곳마다 친절하게 손님을 맞는 깨끗한 식당은 퍽 마음에 들었다. 멕시코 관광정책은 우리보다 한차원 높았다.
점심에는 매운게탕과 메뚜기 튀김 등 맛있는 현지요리의 뷔페였다. 게탕을 두그릇이나 먹고나니 속이 확트이는 듯해서 김치찌개 먹고싶은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1시 반 미틀라 유적지로 출발했다. 일행은 이제 지치고 집생각이 나는지 아무말들도 하지 않고 뚜벅뚜벅 걷고만 있을 뿐 조용했다.
도중에 뚤레마을에 있는 뚤레나무(Arbal del Tule; 타소디움科, 둘레 58m, 높이 41m)를 보았다. 2000년 묵은 나무의 신비하고 장엄한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나무 정령에게 기도 드렸다.
2시 반에는, 양털로 양탄자를 짜는 집(가게)에 들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색상과 무늬였다. 천연염료로 염색한 양털을 실로 잣아서 하나하나 무늬대로 짜는 모습을 보며 인간 인내의 한계를 생각해 보았다. 한점도 사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미틀라로 가는 도중 한 인디오의 집에 잠시 들렸는데 부엌에는 불씨가 든 화덕이 있었고 마당엔 닭, 칠면조, 개들이 노닐고, 집 앞엔 당나귀와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화분에는 제라늄을, 뜰에는 석류나무를 가꾸는 정서도 있었다. 옛날 우리 농촌을 보는 것 같았다.
3시 20분에 미틀라 유적지에 도착했다.
궁전, 신전, 물저장소, 9개 기둥으로 된 제사장의 집과 접견실 등이 있었다.
특히 돌로된 벽을 장식한 기하학적인 돌무늬문양은 경탄스러울 정도였다.
1000~1500년까지 번성하였는데 침략자 스페인은 기존의 마야신전 위에 현재의 성당을 지어놓았는데, 마야의 유적과 성당의 종소리는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4시 15분 미틀라 유적지를 출발하여 5시에 호텔에 도착했다.
7월 30일(日) : 제 18 일
아침 9시 와하카 공항에 도착했다. 아침공기는 더욱 상쾌하여 완연한 가을 날씨였다.
10시에 와하카 공항을 이륙하여 55분만에 멕시코 시티에 도착했다.
(해발 2000m의 멕시코시티는 하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이 다 있는 곳이란다)
12시에 한식당 서울회관에 도착하여 약 2주만에 정말 맛있는 된장찌개와 젓갈, 나물, 김치로
음식회포를 풀었다.
1시에 멕시코 국립인류학 박물관으로 출발하여 10분만에 도착해 3시 30분까지 관람하였다. 누가 멕시코를 못산다고, 후진국이라고 했는가?! 박물관만 보고도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감탄, 감탄이었다. 세계 유수의 규모와 내용을 자랑하는 외관뿐만 아니라 내용이 충실한 박물관이다. 현지에서 볼 수 없는 전시품이 12개의 홀에 나누어져 있었다.
12개의 Hall을 중간중간 쉬어가며 돌아도 다리가 아팠다.
무궁무진한 유물전시관이었다. 멕시코에 대한 인식이 완전 달라졌다.
세계에서 매장량이 가장 많은 석유산유국, 조상의 은덕으로 번창하는 관광산업, 풍성하고 일과 먹거리가 있는 멕시코는 우리보다 더 걱정할 것이 없는 나라로 보였다.
오후 4시 10분에 호텔에 도착하였다. 해발 2300m의 지역인 이곳에서도 왠지 다소 가슴이 답답하고 두통이 있었다.
7시에 저녁을 먹고 밤에는 시내구경을 한 뒤 Royal호텔 스카이라운지 Bar에서 데낄라를 마시며 멕시코시티의 비오는 야경을 즐겼다.
7월 31일(月) : 제 19 일
아침 9시 호텔을 출발하여 40분만에 꽈딸두뻬('빛'의 뜻, '聖女'의 뜻)성당에 도착했다.
거대한 규모의 성당은 아름답고 은은한 조명 속에 검은 성모상이 걸려있었고 파이프 오르간의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장엄한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중남미지역 역사탐방
피라믿 앞에서
이번 22일 간의 역사탐방은 참으로 뜻깊은 것이었다. 잉카, 마야 문화의 수준 높음에 감탄하고 또한 지구의 아름다움과 인간창조의 위대함을 느끼고 감동하였다 가만히 생각하니 주마등처럼 곳곳의 정경들이 머리 속을 지나간다.
*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상파울로의 야경. * 이과수폭포의 그 웅장함.(「미션」비디오를 빌려다 보고 재이해를 하였습니다) * 자연의 위력 앞에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본연적으로 분출시킨 박신부님의 함성. * 폭포 틈새에 집 지은 제비의 모습. 이과수폭포 근처 잔디에서 들려오던 귀뚜라미 소리. * 갖가지 고기를 쇠꼬챙이에 끼워 권하던 브라질 식당. * 컴컴하게 느껴지던 리마市의 풍경. * 비행장에서 내려다 본 안데스 산맥과 티티카카호. 쿠스코市 全景. * 우르밤바에서 쿠스코로 넘어가던 해발 3400m의 산등성이 길. * 마추피추가던 열차. * 마추피추의 신비한 돌건축물들. 안녕!을 외쳐대던 인디오 소년. * 에메랄드블루의 칼리브해 물빛. 대 리조트 칸쿤에서의 휴식과 쇼핑. * 스콜을 맞았던 항구유적지 툴룸. * 과테말라의 티칼에서 본 열대정글 속의 마야 최대의 대 신전. * 치첸이짜로 가는 버스 속에서의 각자 자기소개(시원찮은 사회자인 필자 때문에 웃던 일). * Ball경기장을 본 느낌. 메리다 지역 박물관에서 본 편두의 두개골. * 야외에서 즉석구이를 먹고 생음악 듣고 춤추고 마차탔던 메리다의 낭만적인 밤. * 가장 훌륭한 마야유적 깔렝케. * 와하카 분지를 내려다보는 웅대한 유적 몽테알반. * 돌벽의 문양이 기하학적으로 아름답던 미틀라 유적. * 멕시코국립인류학 박물관의 그 웅장한 외관과 충실하고 놀라운 내용물. * 멕시코 최대의 종교도시국가 테오티와칸의 大피라미드들. * 록키 산맥과의 웅대한 모습과 그랜드캐년의 장관. 벤쿠버의 크고 아름다운 시가지... etc.
* 기간: 1995. 7. 13 ~ 8. 3
* 답사경로 : 서울(13日)→동경→로스엔젤레스→브라질의 상파울로 (14日)→이과수폭포(15日)→상파울로(16日)→페루의 리마(17日)→쿠스 코(18日)→우르밤바→마추피추(19日)→쿠스코→리마(20日)→멕시코의 칸쿤(20日)→칸쿤에서의 휴식(21日)→치첸이짜 유적지답사 후 메리다 도착(25日)→우수말 유적지답사 후 메리다로 귀환(26日)→비야에르모사 도착 후 팔렝케 유적지답사(27日)→멕시코시티도착, 박물관 관람(30日) →테오티와칸 유적지답사(31日)→멕시코시티 출발(8月 1日)→벤쿠버 경 유→기내숙박→동경(2日)→서울(3日)
7월 13일(木) : 제 1 일
아침 11시 김포공항 제1청사 2층 외환은행 앞에서 24명 전원집합하여 오후 2시에 김포공항 출발, 2시간만에 동경 나리다(成田)공항 도착하였다. 밤 10시에 동경에서 출발하였고 저녁은 11시 30분에 기내에서 먹었다.
7월 14일(金) : 제 2 일
아침 6시 30분 기내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는데 밤새 비행기는 해를 따라가며 일부변경선을 넘은 탓으로 밖은 내내 대낮이었다. 8시 10분에 La에 도착하였는데 현지시간으로는 13일 오후 4시 10분이었다. 하루를 벌었다! (이하 현지시간)6시 20분에 La 출발하여 11시 30분 기내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14日아침 6시 30분에 찬란하고 아름다운, 해뜨는 광경을 보았다. 30분뒤에 기내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비행기는 南美의 아마존 상류를 가로지르는 모양으로, 광활한 대평원과 밀림, 그리고 작은 강줄기들이 보였다.
9시 25분에 축구와 축제의 나라 브라질의 상파울로에 도착했다. 한국과의 시차는 12시간이었다. 10시 30분에 공항을 출발하여 11시 20분에 상파울로 힐튼 호텔에 도착하였고 오후 1시까지 호텔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1시 30분에 Villa's 식당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했는데 맛있고 풍요한 쇠고기 요리를 먹었다. 꾸삥, 삐까냐, 알까뜨랴 등 무려 19가지의 부위 별 쇠고기를 쇠꼬챙이에 끼어 구어와서 서빙하는 등, 푸짐한 음식문화에 일행은 완전히 K.O 당했다.
오후 3시부터 4시까지는 세(se)광장에 있는 카테드랄, 메트로폴리타나 성당을 관람하였는데 대성당 앞에는 상파울로 방위기점과 도로원표가 있었다. 동양인의 거리, 비즈니스 거리(무역상사, 금융가), 성프란시스코 성당, 茶의 다리, 리베로 橋 등을 관람했다.
4시 40분에 다시 호텔에 도착하여 7시에 한국식당 에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등 한식을 저녁으로 먹고 9시에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취침했다. 참으로 멀고 긴 비행기 여행이었다.
7월 15일(土) : 제 3 일
아침 6시 먼동이 트는 상파울로의 새벽거리는 낮과 달리 깨끗하고 상쾌해 보였다. 코끝이 상큼한 섭씨 16°의 시원한 공기는 늦가을을 느끼게 했다. 멋진 피서여행이라 생각했다.
오전 8시 40분 상파울로의 꿈삐까 비행장에 도착하여 10시에 탑승하였다. 12시 50분에 꾸리티바(Curitiba)를 경유하여 이과수fall 공항에 도착하였다. 끝없는 정글 한 가운데서 본 시뻘건 江과 폭포는 참으로 장관이다. 비행기 안에서부터 가슴이 설레였다.
오후 1시 30분 까따라타스(Catatatas)호텔에 도착하여 2시에 호텔에서 출발, 점심을 먹고 3시 30분에 이과수폭포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정글을 헤치고 짚차트레일러를 타고 마치 용감한 탐험대처럼 선착장을 행해갔다. 5시 30분까지 두 팀으로 나뉜 일행은 이과수 폭포수를 맞기 위해 시뻘겋고 울퉁불퉁한 강을 따라 보트를 타고 폭포에 접근하고 왔다.
5시 40분 호텔에 도착하여 6시 40분까지 까따라타스 호텔 앞의 길을 따라 이과수폭포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정말 장관이었다. 장엄하였다! 과연 "거대한 물"이었다. 반밖에 안 되는 나이아가라는 이과수에 비하면 정말 저리 나아가라다. 황혼에 이과수폭포 위를 단체 비행하는 가르샤 라는 새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6시 50분 호텔에 도착하여 휴식하고 8시에는 뷔페식의 푸짐한 음식과 신나는 남미음악, 브라질 특유의 삼바춤을 보면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정말 여기가 南美구나!"라고 절감하였다. 안선자氏의 생일을 축하하며 건배하였다. 11시에 호텔에 도착하여 밤새도록 폭포소리를 들으며 잠을 잤다
7월 16일(日) : 제 4 일
9시부터 다시 한번 가장 장관인 부분의 이과수폭포를 보았다. 아침에 보는 폭포는 어제 저녁보다 더 장엄해 보였다. 거대한 물의 흐름을 가까이에서 보니, 마치 백만대군이 확 밀어 닥쳐오는 느낌이었다. 50분 뒤 호텔을 출발하여 10시 반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선을 통과하여 이과수강 위의 다리를 지나,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폭포에 도착하였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풍경이 거의 같고 왕래도 자유로웠다. 오후 1시까지 멀리 브라질 쪽이 내려다 보이는 길을 따라 큰 폭포, 작은 폭포를 물안개를 맞으며 걸었다. 온통 폭포뿐이었다. 감동 또 감동이었다. 물이 부서지는 소리, 그 웅장한 폭포의 굉음, 뽀오얀 물안개, 거대한 물줄기의 떨어짐... 장관, 장관이었다. 어제는 올려다 본 폭포였고 오늘은 내려다 본 폭포였다.
1시 40분에 브라질 식의 뷔페식당 Churasca식당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3시에는 토산품 점에 들렸는데 예쁜 돌, 아름다운 색깔의 돌, 화석 등이 특이했다. 4시에 공항으로 출발하여 5시에 이과수 공항을 출발, 7시 10분에 꾸리띠바 공항을 경유하여 상파울로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상파울로의 야경은 마치 보석을 박아놓은 듯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저녁 8시 한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10시에 호텔에 도착하여 일요미사를 보았다.
7월 17일(月) : 제 5 일
이른 아침인데도 좋은 朝食을 대접받았다. 그러나 버스 기사의 사보타쥐로 일행은 황급히 일곱 대의 택시에 나누어타고 공항으로 나갔다. 현지 가이드 msKim의 기지와 일행의 일사불란한 행동은 오블리가도!
오전 7시 30분 리마행 페루항공기에 탑승하여 8시에 이륙했다. 비행기는 비교적 깨끗했으나 스튜어디스의 외모는 안데스산맥처럼 굴곡만 심할 뿐 아름답지 않았다. 말은 여기서부터 포르투갈어의 부드러운 어투에서 명확한 스페인어로 바뀌었다.
11시경에 안데스 산맥을 지났다. 검은산, 회색산, 녹색의 산, 황토산, 만년설의 설산, 민둥산... 구름 한 점 없는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높고 광활한 안데스산맥의 장관... 그런데 그 한가운데 짙은 초록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거대한 호수 티티카카호가 보였다.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산허리 사이사이에 인간의 흔적이 보였다.
도대체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이 높고 깊은 산과 계곡에 자리잡고 살았을까? 정말 미지의 세계, 신비의 세계, 외경의 세계다.
12시 35분에 리마의 호르체차베스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시간으로는 오전 10시 35분이었다. (이하 현재시간) 11시 15분에 공항을 출발하여 시내로 향했다. 초겨울처럼 대기가 찼다. 리마市는 안데스산맥의 독산(禿山;민둥산)처럼 황폐하고 어두운 느낌의 도시였다. 집도, 거리도, 사람도 모두 컴컴했다. 12시 쉐라톤리마 호텔에 도착하여 1시에 한국식당에서 콩나물국과 밥, 나물, 불고기를 먹었다.
2시 30분부터는 시내관광을 하였는데 메인에비뉴 라오니온 거리와 시청 앞 광장(센트랄파크), 산토도밍고 교회, 주변의 콜로니얼 건축물 등을 살펴보았다. 3시 30분에는 라르콜 거리를 지나 리마市의 해변가에서 거대하고 망망한 태평양을 보았다.
4시에는 Catedral(수태성모 성당) 관람하였다. 南美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초석을 높은 대성당으로 1606, 1687, 1746년 세 번의 대지진으로 1755년에 최종 복구가 이루어 졌다. 피사로의 미이라가 잠든,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었다.
5시에는 국립인류고고학 박물관에 도착하였으나 너무나 안타깝게도 월요일은 휴관일이라 잉카문화의 정수를 보지 못하였다. 전시품 중에는 나스카의 미이라, 토기, 직물 등이 특히 유명한데, 그 중에서도 치밀하고 선명한 염색으로 이름난, 미이라를 감싼 헝겁천이 특히 유명한 것이라 한다. 리마시 교외에 있는 황금박물관도 관람하지 못하였음은 애석한 일이었다.
그래서 잉카문명의 모습은 단지 마추피추의 돌 건축모습만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
5시 40분에 호텔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고 저녁 7시에 한국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점심보다 푸짐했다. 그러나 제일 난코스인 내일 쿠스코 방문답사를 위해 수도자적 기분으로 음식을 절제하며 9시에 호텔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7월 18일(火) : 제 6 일
새벽 4시 45분 호텔을 출발해서 5시에 리마 공항에 도착했고 6시 20분에 탑승했다. 새벽하늘엔 예쁜 반달이 떠있었고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7시 40분에 해발 3400m의 잉카수도 쿠스코(배꼽=세계의 中心)에 도착했다. 안테스 산맥 속의 한 계곡에 생겨있는 놀라운 도시다. 과연 높은 곳이었다. 기압이 680미리바로 내려가고 숨이 갑갑해졌다.
8시 20분에는 쿠스코 시내로 들어갔다. 기온이 싸늘했다. 추운데 햇살을 따가웠다. 현지가이드 로사의 또렷또렷한 해설은 차단장님의 통역과 함께 감명깊었다. 피챠쿠텍 황제동상을 지나, 생명의 상징물인 잉카폭포를 지나서 사보이 호텔에 도착했다. 9시에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고산병에 좋은 코카차를 마셨다.
그리고 9시 35분에 쿠스코 시내를 관광하였다. 산토도밍고 교회(잉카궁전터의 초석 위에 세운 콜로니얼 교회)를 보았다. 스페인은 기존 문명을 완전파괴치 않고 그 위에 건축물을 세우는 특징이 있었다. 대지진에도 잉카의 석조토대는 그대로 보존된다.
코리간차(황금거주지)에는 무지개사원, 천둥의 사원, 달의 사원, 번개사원, 별의 신전, 궁전 등이 있었으며 옛날엔 금, 은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3은 성스러운 숫자로 여겨 3계명(도둑질, 거짓말, 게으르지 말 것 등)이 있었고 3개의 창문이 있었다.
10시 15분에는 카테드랄, 콜로니얼 성당, 거리, 잉카인의 집들, 붉은 감자, 양파, 과일, 옥수수 등을 파는 시장거리를 버스를 탄 채 쭉 둘러보며 관광했다. 메소티소족(흰 모자를 씀)과 뿌노족(검정모자를 씀)의 인디오들의 모습이 특이했다.
11시에는 해발 3700m고지의 전망대인 푸카푸카라를 답사했다. 20C중엽 팔레스타인캐톨릭이 세운 흰 예수상이 서 있는 이곳에선 인구 27만의 쿠스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갑갑하기 시작했다. 11시 20분에는 쇼핑점에 들려 따뜻한 알파카 제품의 스웨터를 각자 샀고 30분 뒤에는 삭사이와만 요새(성채)를 답사했다. 6월에 가 열리는 곳이다. 거석을 사용해서 쌓은 3층의 성채였다. 이 곳에서 단체사진촬영을 하였다. 그런데 고산병 징후가 농후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12시 20분에는 캔코유적을 답사했는데 이 곳은 잉카제국의 제례장이 있었던 곳으로 동물희생을 바쳤다. 지그재그의 미로와 퓨마형상의 돌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탐보마차이를 답사하였는데 '성스러운샘'의 뜻으로 잉카시대의 목욕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결국 고산병으로 K.O되었다. 두통, 호흡곤란, 가슴답답, 어지러움, 구토증세, 흐르는 진땀, 맥이 뛰지않고 육신이 차가워지면서 힘이 모두 쏙 빠졌다.
오후 3시 우르밤바의 알함브라 호텔에 도착하였다. 페루 현지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휴식에 들어갔다. 7시 30분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숙진 선생님의 생신축하 Cake을 끊었다. 콜롬비아에서 공수되어 온 식탁 위의 국화꽃이 더욱 분위기를 돋구었다.
7월 19일 (水) : 제 7 일
6시 30분에 큰 여행가방은 쿠스코의 사보이 호텔로 보내고 간단한 차림으로 우르밤바의 알함브라 호텔을 출발하여 마추피추行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갔다. 가는 도중, 깊은 계곡의 우르밤바 강을 따라가면서 잉카의 묘지, 잉카의 다리초석, 잉카시기의 초소, 잉카인의 길(잉카트레일) 그리고 지하, 지상 水路 암염생산지, 힘을 상징하는 각 집의 지붕 위의 표식 등을 보았다. 생산되는 것은 옥수수, 고구마, 감자가 주를 이루는데, 그 중 옥수수는 세계에서 가장 질이 좋으며 年8000톤이 수출된다고 한다.
7시 20분 기차역에 도착하였다. 잠시 시장이 설 정도로 많은 인디오들이 특산품을 팔러 모여 들었다. 하나씩 사고 8시 5분에 마추피추行 One Way Rale의 관광객 용 기차를 탔다. 기차는 비교적 쾌적했고, 가는 길 주변은 산과 계곡, 사막과 선인장, 만년설의 설봉들이 어우러져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마추비추에서 9시 반에 마추피추역에 기차가 도착했다. 다시 표를 사서 버스로 우뚝 솟은 바위산(마추피추마운틴, 영마운틴)을 옆에 끼고 꼬부랑길을 따라 정상을 향해 계속 올라갔다. 드디어 세계 7大 불가사의의 하나인 "공중도시", "요새도시", "비밀도시", "잊혀진 도시"로 불리는 1만명 정도를 수용했다는 성채도시 마추피추에 올랐다. 놀라웠다.
정말 기묘한 곳이었다. (한국 아시아자동차회사에서 만든 중형버스가 일본 머쯔비시자동차와 함께 중요한 수송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면서 가슴이 뿌듯했다.) 10시 30분 해발 2400m, 총면적 5㎢, 240채의 가옥, 채석장, 태양의 신전, 궁정, 범죄인수용소, 주택가, 해시계(인티와타나), 광장 Ⅰ,Ⅱ,Ⅲ, 계단형 밭 등을 보았다. 1991년 예일대학의 히람빙엄이 발견했다고 하고 관계유물은 예일大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발굴시체 170구 중 150구가 여성이었다고 한다.
오후 1시에는 그 곳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각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식당은 인종전시장 같았다. 2시 반 하산하는 우리들 버스 앞에, 구비구비 길마다에서 만난 인디오 소년(good - bye boy)의 "안녕!" 소리는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3시에 기차로 마추피추 역을 출발하였다. 가는 도중에 기차바퀴를 식히느라 계곡의 물을 계속 바퀴에 퍼붓는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4시 30분에 우르밤바 역에 도착하여 대기중인 버스로 쿠스코를 향해 출발했다. 계속 해발 3000m 이상되는 산길로 우르밤바에서 쿠스코까지 간 이 버스여행은 신비하고 환상적인 것이었다. 그 높은 高山지대에, 산높이와 같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곡식들이 심겨져 있었으며 띄엄띄엄 환히 불을 밝힌 마을들이 보였다. 황혼이 드리운 높은 산골길을 달린, 버스여행은 정말 영원히 잊지 못할 신비함 그 자체였다.
7시 40분 쿠스코의 사보이 호텔에 짐을 풀었다. 침실엔 초콜릿이 예쁘게 놓여있었다.
7월 20일(木) : 제 8 일
쿠스코에서
아침 7시 40분에 쿠스코 공항에 도착하여 8시에 탑승, 20분 뒤에 이륙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니 해발 6000여m의 雲山들이 보였다. 정말 장관이었다. 이 높은 곳에 스페인 군대는 어떻게 쳐들어왔을까? 놀라울 뿐이었다.
9시 25분 리마 공항에 도착했다. 쿠스코에선 파리약 먹은 것처럼 맥을 출 수가 없었는데 리마에 도착하니 가슴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11시 15분, 잉카문명의 하드웨어인 그 유적지는 보았으나 소프트웨어인 박물관 전시물들을 관람치 못해 아쉬움을 남기면서 여러 가지 수속을 마친 후 칸쿤行 peru항공기에 탑승했다. 30분 뒤에 이륙했는데 안데스 산맥과 아마존 강 상류 상공을 날며 지구는 아직 깊은 병에 들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아름답고 신비했다. 이 큰 우주 속의 작은 지구의 하늘과 땅을 감동어린 눈으로 보면서 우주의 광활함과 무한함에 막막해졌다.
1시 30분에 기내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4시 35분에 Cancun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시간으로는 3시 35분이었다. 가이드 이종규氏 가 마중나와 있었다. (이하 현지시간)
4시 20분, 칸쿤 공항을 출발하여 대 리조트의 호텔로 향했다. 한반도 면적의 9배나 되는 넓은 멕시코는 세계 4, 5 위의 산유국이며 석유매장량은 1위라고 하고, 관광산업이 2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자원과 광활한 밀림, 많은 조상의 유적지, 칼리브 해의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었다.
버스가 칸쿤해안의 호텔Zone에 들어서자 아름다운 칼리브海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에메랄드 블루의 칼리브해 물빛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순백의 모래사장, 잔잔한 물결, 눈이 시릴만큼 푸르른 하늘. 에메랄드 빛의 바다... 일행은 탄성을 발했다.
칸쿤의 바다 색갈은.....
5시에 멋진 카미노레알 호텔에 도착했다. 정말 아름다운 대휴양지였다. 칼리브해가 한눈에 보이는 훌륭한 방에 여장을 풀었다. 꿈만 같았다. 저녁 8시에는 멕시코 현지식으로 푸짐하게 저녁을 먹었는데 그 곳은 저녁식사가 늘 늦게 시작된다고 하였다.
7월 21일(金) : 제 9 일
아침 8시에 호텔에서 서양식 뷔페로 식사를 하고 1시에는 생선요리로 점심식사를 했다. 2시 반부터 두시간 동안 해저구경을 위해 바다로 갔는데 쾌속정으로 칼리브해 가운데로 가서, 거기에 대기하고 있는 잠수함을 타고 해저로 내려갔다. 칼리브 바다속의 희귀한 물고기드과 산호 등 아름다운 바다 밑 풍경을 보았다. 8시에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했는데 멕시코는 아열대지방이어서 아주 더웠다. 그러나 냉방시설 잘된 특급호텔은 퍽 쾌적하였다. 이 칸쿤의 호텔Zone에는 무려 50여개의 특급호텔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T.V에선 마치 여기가 미국인 듯 온갖 미국방송이 다 방영되고 NAFTA때문인지 여러 가지가 미국적 영향하에 있음을 느끼게 했다. 아무튼 오랜만에 하루종일을 완전 Free하게 휴식을 취했다. 늦잠자고, 빨래하고, 쇼핑몰에서 쇼핑도 하고, 에메랄드 빛 물에 몸도 담그고, 망망한 칼리브해를 바라보며 사색도 하고, 산책도 하고, 해저탐사도 하고...etc. 경치 좋고 배부르고 걱정없이 즐겁고... 이것이 바로 낙원이 아닐까?
7월 22일(土) : 제 10 일
아침 6시 칸쿤 공항에 도착하여 7시 10분에 이륙했다. 8시 5분에 플로레스 공항에 착륙해서 30분에 출발, 9시 20분에 티칼에 도착했다. 10시, 티칼 유적지 근처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면적 11만㎢, 인구 천만, 인디오 60%, 1523년 에스파냐의 정복자 페드로 데 알바라도에 정복된 마야족의 후손들이 사는 과테말라는 아직 잘 사지 못하고 있었다.
11시 티칼("메아리"의 뜻) 유적지를 답사했다. 과테말라의 상징나무인 쎄이버가 우거진 정글 속으로 모기약을 칠하고 들어갔다. 티칼 유적의 중심부인 대 광장을 출발하여 東西로 거대한 1호 신전(높이 51m, 700년 경 건축. 일명 재규어 신전. 티칼 건축의 집대성. 이 피라미드에서 왕의 유골과 200개의 비취장식품, 20여개의 토기가 나옴), 2호 신전(높이 38m, 일명 가면의 신전)이 있고 북쪽에는 노스아크로폴리스 건물, 남쪽에는 센트럴아크로폴리스 건물군이 있다. 1호 신전 뒤에 있는 비명( 碑銘)의 신전(213개의 문자, 해독)을 본 후, 높이 70m의 4호 신전(741년 건조)에 이르러 젊은 대원들은 용감하게 정상에 올라가 티칼유적전경을 인상깊게 보았다.
거대한 피라믿 앞에서
오후 2시 반, 밀림을 헤매며 새소리, 원숭이 소리를 듣고, 모기, 개미에게 물리기도 했지만 훌륭한 유적을 본 만족감이 가슴에 가득했다. 석쇠구이 쇠고기와 밥, 콜라로 맛있게 늦은 점심을 먹었다. 4시에는 박물관을 관람했는데 유적지하에서 발견된, 분묘에서 나온 부장품(보석, 도기, 뼈조각 등)들을 보았다.
5시에 플로레스 공항에 도착하였는데 비행기의 연발로 50분 뒤에 이륙하여 6시 55분에 칸쿤 공항에 도착했다. 8시에 카미노레알 호텔에 도착하여 8시 30분에 저녁식사를 했다.
7월 23일(日) : 제 11 일
아침 9시 호텔을 출발하여 11시에 뚤룸(Tulum; 성벽, 담의 뜻. 해안가의 마야유적지)에 도착하였다. 망망한 칼리브해의 연안 항구로서 마야교역의 중심지였다. 높이 2m 정도의 성벽은 성스러운 곳 즉, 신전영역의 경계선을 뜻했다. 지도자의 모덤과 채색이 아름다운 신전(회화의 신전), 꿀의 신전, 해시계, 항구의 등대 등을 살펴보았다. 도중에 스콜이 쏟아져 초가집 아래로 모두 피하기도 했다.
오후 1시부터 한시간 동안 생선요리를 점심으로 먹고 2시에 셀하유적지로 출발했다. 40분만에 셀하에 도착하였다. 관광지 Xel - ha는 천연적인 바다연못, 해수욕장 구역이었다.
3시 15분 셀하를 출발하여 칸쿤으로 갔다. 끝없는 정글 속에 쭉 뻗어있는 道路를 달려 칸쿤으로 돌아왔다. 도중에 쏟아지는 스콜을 만났다. 4시 45분 Camino Real 호텔이 도착하여 5시에 일요저녁미사를 보고 7시 50분에 멕시코 식 양곱창 국을 저녁식사로 먹었다.
7월 24일(月 ): 제 12 일
하루종일 아쥬시간을 가졌다. 칸쿤에서의 마지막 휴양시간이었다. 8시에 아침을 먹고 1시에 점심, 8시에 새우요리로 저녁을 먹었다. 쇼핑도하고, 낮잠도 자고, 오후에는 칼리브바다에 들어가 해수욕도 하고 소라도 잡고 아쉬운 시간을 즐겼다.
7월 25일(火) : 제 13 일
아침 9시 반 호텔을 출발하여 칸쿤 시내를 경유, 치첸이짜로 이동했다. 정글 속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버스 속에서 일행은 여행출발 2주만에 처음으로 각자 자신을 소개할 기회를 갖고, 노래와 유머를 함께 즐기며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12시 20분에 점심식사를 하였다. 멕시코는 가는 곳마다 깨끗하게 정비된 식당이 있었다. 관광국의 면모를 도처에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1시 반, 치첸이짜("우물가"라는 뜻)를 답사했다. 9~ 10C 마야문명으로 우물(물 저장 탱크), 태양력 신전, 비너스 신전, 전사의 신전, 공(Ball)경기장 등 참으로 놀라운 유적지였다. 구기놀이를 그 옛날부터 한 거대한 유적을 보며 역시 중남미가 축구에 강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후 4시, 다시 버스로 메리다로 향했다. 5시 40분에 호텔 홀리데이인에 도착하였다. 소칼로광장을 중심으로 몬테호 거리로 뻗은 구획정리가 잘 되어 있는 古都메리다는 매우 아름다웠다. 8시에 저녁식사를 하였는데 가장 멋있는 저녁식사였다. 야외식당에서 붉은 장미를 車단장님으로부터 여성대원이 선물 받았으며, 4인조 밴드가 생음악으로 멕시코 곡을 들려주는 가운데, 쇠고기와 생선을 즉석에서 입맛대로 구워 먹으며 즐겼다. 데낄라도 마시고 춤도 추며 흥겨워 하였다. 늦은 밤, 메리다 거리를 고풍스런 마차를 타고 달리는 낭만도 즐겼다. 메히코의 밤이 깊어갔다.
7월 26일(水) : 제 14 일
아침 9시 반 우수말(Uxmal) 유적지로 갔다. 물저장소(3만ℓ), 마술사의 집(난쟁이의 성. 높이 35m, 121개 계단의 타원형의 파라미드), 비의 신전, 승려의 방, Ball운동경기장, 거북의 신전, 지도자의 집(왕궁), 재규어 제단 등을 답사했다. 톨텍 영향이 적고 포크양식이었다. 잠시동안 대원들 간에 토론이 벌어졌는데 주 내용은 5만명 정도가 살았다고 하는데 연맹왕국 정도의 규모일까?, 마야, 잉카는 고대사가 아니고 신석기 시대다?, 과연 고대사가 아닌가?, 석기시대에 어떻게 동맹왕국이 성립될 수 있을까? 등이었다.
오후 1시부터 한시간 반동안 생선요리를 점심으로 먹고 2시 반에 우수말 유적지를 출발하여 3시 40분에 메리다 시내에 도착했다. 몬테호 거리의 주택가, 공원 등에 빨간 꽃이 핀 홀람보탄 나무가 쭉 가로수로 뻗어 있었다. 5분 뒤 메리다 지역 인류학 박물관에 도착했다. 두가지 모양의 편두(偏頭) 두개골이 인상적이었다(귀족, 평민). 마야문자, 도자기 등 많은 유물을 보았다. 스콜이 쏟아졌다.
4시 50분에 박물관을 나와 시장거리로 갔다. 5시 30분부터 시장구경도 하고 간단한 쇼핑을 하고 한시간 뒤에 호텔에 도착했다. 8시에는 어제 밤처럼 고기와 생선 즉석구이를 마음껏 먹고, 신나는 멕시코 음악에 맞추어 춤추고, 또 유카탄의 민속춤을 구경하며 데낄라 싸우자
술에 취한채,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메리다의 밤은 깊어갔다.
7월 27일(木) : 제 15 일
아침 7시 반, 호텔을 출발하여 메리다 공항으로 향했다. 8시 50분, 비야에르모사로 가기 위해 Mexicana항공의 작은 비행기를 탔다. 9시 10분 비행기가 이륙했고 9시 55분에 비야에르모사 공항에 착륙했다. 10시 10분에 공항을 출발하여 팔렝케로 향했다. 가는 길엔 아름다운 초원, 마을과 콩, 참깨, 따바스코가 심겨진 밭들을 볼 수 있었다. 따바스코州의 도청소재지 비야에르모사에서 치아파스州의 팔렝케로 넘어가면서 일행은 퍽 조심하고 걱정을 하였다. 치아파스 주는 사파티스타의 본거지로, 치아파스의 농민군이 항거하고 있는 위험지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지금은 소강상태였다.
12시 아담한 식당 에서 현지식 뷔페를 맛있게 먹고 1시 반에 식당을 출발하여 1시 40분부터 2시간동안 가장 훌륭한 마야유적지 팔렝케를 답사했다. 팔렝케 유적은 무덤이 많은 것이 특색이었는데 비문의 신전, 왕의 궁전과 천문대, 태양의 신전, 십자가(옥수수)신전 등을 답사했다. 마야 문자에 의하면 파칼왕은 603년에 태어나 12세 때인 615년에 즉위하였고 683년에 사망했다고 되어 있으며, 파칼의 대관식 조각이 있었다. 피라미드 아래로 69계단을 내려간 지하무덤 속의 석곽과 그 덮개인 석판은 대단했다. 바로 여기서 비취 입힌 파칼왕의 미이라가 나왔다. 그리고 궁전 내에는 수세식 화장실과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는데 일행은 앉아보고, 사우나실에도 들어가 앉고 하는데 스콜이 한 줄기 시원하게 쏟아졌다. 팔렝케 유적 발굴작업은 10%가 진행되었을 뿐 아직 90%는 발굴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후 4시, 비야에르모사로 돌아가 6시에 하이야트 호텔에 도착했다. 7시에 뷔페식의 저녁식사를 하였다.
7월 28일(金) : 제 16 일
9시 20분 비야에르모사 공항에 도착하여 10시 40분에 와하카行 비행기에 탑승하여 15분 뒤 이륙했다. 11시 15분 똑스뚤라 꾸디에루수를 경유하여 11시 45분 똑스뚤라를 출발, 12시 25분에 와하카에 도착했다. 해발 1550m의 분지 와하카는 초가을 날씨 같아서 쿠스코를 상기시켰다. 멕시코 도착이후 처음 느끼는 시원한 공기였다.
12시 50분 와하카 공항을 출발했다. 인구 80만의 와하카는 아담한 곳이었다. 집들은 각층마다 색깔을 다르게 칠한 특색있는 풍경으로 인디오 출신의 대통령 베니토 후에레스의 집을 지나칠 때는 인디오의 자존심을 느낄 수 있었다. 1시 20분 Fiesta inn 호텔에 도착했다. 풀장도 있고 예쁜 꽃을 담 밑에 심어놓은 아기자기한 호텔로 퍽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바로 옆의 이 시끄러웠다. 1시 40분 호텔 식당에서 뷔페식 점심을 먹고 2시 반에 산토도밍고 성당을 관람하였다. 교회에 질린 사람이라도 이 성당은 한번 둘러보아야 할만큼 황금으로 장식된 바로크 양식의 훌륭한 성당이었다. 스페인의 성당 못지 않게 화려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3시에는 와하카지역 박물관을 관람했다. 신석기의 토기, 금, 은, 옥, 골제품 등의 뛰어난 보물이 놀라웠다. 이는 몬테알반과 미틀라에서 출토된 유물들이었다.
4시 반에 호텔로 돌아와 5시엔 호텔 건너편 Sears백화점과 대형수퍼마켓에서 쇼핑을 하고 8시에 저녁식사를 하였다.
7월 29일(土) : 제 17 일
9시, 호텔을 출발하여 9시 20분에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 산등성이에 있는 몬테알반("흰색의 산"이라는 뜻)유적지에 도착하였다. 정말 좋았다. 해발 2000m에 위치한 몬테알반은 와하카분지를 내려다 보는 웅대한 유적이었다. B.C800~A.D1000년까지 계속된, 사포텍의 영향을 받은 이곳엔 구기장(경기의 승자가 희생물이 됨), 팬타곤 식의 천문대, 의식장소, 제단, 상형문자의 비석, 광장이 있었다. 소리의 울림이 강한 광장에서 오성교수는 "아- 가을인가"를 빼어난 목소리로 불렀다. 특히 큰 돌 20여개에 조각된 그림(인체모습, 임신한 여인상, 제왕절개모습, 척추병 노인의 모습 등)은 병원도 있었음을 추측케 했다. (수술시 마취제는 참피뇬이라는 독버섯을 사용했다고 한다) 멸망원인은 물기근과 지진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11시에는 몬테알반유적 전시관을 관람했다. 큰돌에 새겨진 오리지날 조각 모습을 보았다.
11시 30분에 몬테알반을 출발하였다. 멕시코 3大유적지 중 팔렝케와 몬테알반은 보았고 이제 태오티와칸만 남은 셈이었다. 12시 20분부터 한시간 동안 점심식사를 했는데 가는 곳마다 친절하게 손님을 맞는 깨끗한 식당은 퍽 마음에 들었다. 멕시코 관광정책은 우리보다 한차원 높았다. 점심에는 매운게탕과 메뚜기 튀김 등 맛있는 현지요리의 뷔페였다. 게탕을 두그릇이나 먹고나니 속이 확트이는 듯해서 김치찌개 먹고싶은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1시 반 미틀라 유적지로 출발했다. 일행은 이제 지치고 집생각이 나는지 아무말들도 하지 않고 뚜벅뚜벅 걷고만 있을 뿐 조용했다. 도중에 뚤레마을에 있는 뚤레나무(Arbal del Tule; 타소디움科, 둘레 58m, 높이 41m)를 보았다. 2000년 묵은 나무의 신비하고 장엄한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나무 정령에게 기도 드렸다. 2시 반에는, 양털로 양탄자를 짜는 집(가게)에 들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색상과 무늬였다. 천연염료로 염색한 양털을 실로 잣아서 하나하나 무늬대로 짜는 모습을 보며 인간 인내의 한계를 생각해 보았다. 한점도 사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미틀라로 가는 도중 한 인디오의 집에 잠시 들렸는데 부엌에는 불씨가 든 화덕이 있었고 마당엔 닭, 칠면조, 개들이 노닐고, 집 앞엔 당나귀와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화분에는 제라늄을, 뜰에는 석류나무를 가꾸는 정서도 있었다. 옛날 우리 농촌을 보는 것 같았다.
3시 20분에 미틀라 유적지에 도착했다. 궁전, 신전, 물저장소, 9개 기둥으로 된 제사장의 집과 접견실 등이 있었다. 특히 돌로된 벽을 장식한 기하학적인 돌무늬문양은 경탄스러울 정도였다. 1000~1500년까지 번성하였는데 침략자 스페인은 기존의 마야신전 위에 현재의 성당을 지어놓았는데, 마야의 유적과 성당의 종소리는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4시 15분 미틀라 유적지를 출발하여 5시에 호텔에 도착했다.
7월 30일(日) : 제 18 일
아침 9시 와하카 공항에 도착했다. 아침공기는 더욱 상쾌하여 완연한 가을 날씨였다. 10시에 와하카 공항을 이륙하여 55분만에 멕시코 시티에 도착했다. (해발 2000m의 멕시코시티는 하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이 다 있는 곳이란다) 12시에 한식당 서울회관에 도착하여 약 2주만에 정말 맛있는 된장찌개와 젓갈, 나물, 김치로 음식회포를 풀었다.
1시에 멕시코 국립인류학 박물관으로 출발하여 10분만에 도착해 3시 30분까지 관람하였다.
누가 멕시코를 못산다고, 후진국이라고 했는가?! 박물관만 보고도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감탄, 감탄이었다. 세계 유수의 규모와 내용을 자랑하는 외관뿐만 아니라 내용이 충실한 박물관이다. 현지에서 볼 수 없는 전시품이 12개의 홀에 나누어져 있었다. 12개의 Hall을 중간중간 쉬어가며 돌아도 다리가 아팠다. 무궁무진한 유물전시관이었다. 멕시코에 대한 인식이 완전 달라졌다. 세계에서 매장량이 가장 많은 석유산유국, 조상의 은덕으로 번창하는 관광산업, 풍성하고 일과 먹거리가 있는 멕시코는 우리보다 더 걱정할 것이 없는 나라로 보였다.
오후 4시 10분에 호텔에 도착하였다. 해발 2300m의 지역인 이곳에서도 왠지 다소 가슴이 답답하고 두통이 있었다. 7시에 저녁을 먹고 밤에는 시내구경을 한 뒤 Royal호텔 스카이라운지 Bar에서 데낄라를 마시며 멕시코시티의 비오는 야경을 즐겼다.
7월 31일(月) : 제 19 일
아침 9시 호텔을 출발하여 40분만에 꽈딸두뻬('빛'의 뜻, '聖女'의 뜻)성당에 도착했다. 거대한 규모의 성당은 아름답고 은은한 조명 속에 검은 성모상이 걸려있었고 파이프 오르간의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장엄한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