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는 누가 봐도 모범생이었다. 그것도 샌님 같은 범생이가 아닌 아주 멋진 모범생. 공부도 잘 하고, 공차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좋아하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안 하지만 일단 한 번 시작하면 싸움도 끝내주게 잘한다. 술도 친구들이 소주잔을 기울일 때 잔에 술 대신 콜라를 채워 마시지만 맘먹고 마시면 평소에 술을 입에 달고 사는 친구들보다 배는 더 잘 마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정과 의리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영화 은 그런 상호가 살인범이 되기까지의, 4주일이라는 짧고도 긴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 4주 동안 상호의 본성이나 본질이 바뀐 건 아니다. 그의 폭력은 결코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 아니었으나 분명한 이유라는 게 있었다. 우정과 의리가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복수’라는 이유.
우리는 학교에서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교육받았다. 이 과정의 중요성은 윤리, 수학, 논술을 비롯한 거의 모든 교과과정에서 강조하는 덕목이다. 그래서 그런가, ‘하드보일드 리얼액션’을 표방한 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사실적으로 그려낸 폭력이 아니라 그런 폭력을 생성해낸 ‘과정’이다. 결과적으로 살인범이 되어버린 모범생 상호가 쇠파이프를 들게 된 과정, 축구 모임이었던 ‘타이거’가 구성원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일진회와 같은 폭력써클로 비쳐지게 된 과정.
모든 분야에 걸쳐 못하는 게 없는 만능 모범생 상호(정경호 분)는 여느 모범생들과 달리 공부에 관심 없고 놀기 좋아하는 ‘패거리’들과 어울린다. 공부보다는 노는 데 더 관심이 많고 싸움에 재능 있는 단짝친구 재구(이태성 분), 공부도 싸움도 그저 그렇게 하지만 붙임성 좋은 창배(이행석 분), 체구는 작지만 깡이 좋은 경철(김혜성 분), 고아로 자랐지만 혼자 힘으로 꿋꿋하게 살아온 서러운 세월을 커다란 체구 속에 감추고 있는 홍규, 다른 친구들에 비해 나이는 한 살 더 많고 체구나 인상도 우락부락하지만 누구보다도 순한 상식. 이들은 축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살려 축구 모임인 ‘타이거’를 결성하고, 모임 제안을 한 상호가 얼떨결에 회장직을 맡는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들은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상호가 ‘여자’ 수희(장희진 분)를 보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문제의 발화점이 된 수희는 공고 폭력써클인 TNT의 회장 종석(연제욱 분)의 옛 여자친구였던 것. 종석은 수희가 자신을 떠나 상호에게 호감을 느끼는 게 싫어서 상호를 잡기 위해 타이거 구성원을 건드린다. 그냥 건드린 정도가 아니라 독하게 조졌다. 하지만 상호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렇게 잘 참아내고 있는데 어이없게도 종석의 똘마니가 결정타를 날렸다. 재구의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
결국, 재구의 시체 앞에서 인내심이 바닥난 상호는 남은 타이거 멤버들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TNT를 치기로 한다.
의도하지 않은 폭력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마지막 장면, 상호가 차가운 감옥 방바닥에 앉아 재구가 죽기 전 보내온 편지를 읽는 장면을 보며 떠오른 건 영화 의 인트로였다. 화면 가득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카메라와 그런 시각적 이미지를 극대화시키는 음향. 그러나 아무리 카메라를 돌리고 돌려도 이미 벌어진 일을 처음으로 돌이킬 수는 없다. 에서 상호에게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 설사 돌이킬 수 있다 해도 어디까지 돌아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상호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혹자는 말할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가 아니라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가 맞는 말이라고.
영화의 첫 장면, 상호는 경찰 앞에서 친구의 죄까지 뒤집어 쓰느라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진술한다. 아마도 상호는, 앞날이 창창했던 그 청춘이 겪은 과정은, 실제와는 다른 스토리로 재구성되어 ‘사정은 딱하지만 죄질이 나쁘므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판결을 받을 것이다. 이런 때 과정이란 건 감당하기 힘든 결말 앞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하나의 변명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 등 그간 ‘여자영화’인 공포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박기형 감독은 이번에 을 통해 빼어난 ‘남자영화’를 빚어내는 데 성공했다. 또 주연배우 정경호를 비롯해 재구 역의 이태성과 친구들 역을 맡은 배우들에게서 커다란 가능성을 발견한 것도 이 영화를 통해 얻은 큰 수확이다.
한 마디 덧붙인다면, 일단 이 영화는 남자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다. 육사에 들어가길 희망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처럼 살기 싫어하고, 예쁜 여학생을 보면 가슴이 떨리며, 우정에 죽고 우정에 사는 그들의 감성과 감정의 선은 모두 남자 고등학생들의 그것이 맞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폭력의 수위는 고등학생 수준을 훌쩍 넘는다. 그러니까 ‘하드보일드 리얼액션’이라는, 포스터에 살포시 얹혀 있는 이 한 줄의 문구는 관객들로 하여금 놀라지 말라고 미리 귀띔해주는 매우 ‘친절한 경고문씨’였던 것이다!
폭력써클 (Gangster High)
폭력써클 (Gangster High, 2006)
한국 | 액션, 드라마 | 101 분 | 개봉 2006.10.19
감독 : 박기형
출연 : 정경호(이상호), 이태성(김재구), 장희진(정수희)
상호는 누가 봐도 모범생이었다. 그것도 샌님 같은 범생이가 아닌 아주 멋진 모범생. 공부도 잘 하고, 공차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좋아하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안 하지만 일단 한 번 시작하면 싸움도 끝내주게 잘한다. 술도 친구들이 소주잔을 기울일 때 잔에 술 대신 콜라를 채워 마시지만 맘먹고 마시면 평소에 술을 입에 달고 사는 친구들보다 배는 더 잘 마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정과 의리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영화 은 그런 상호가 살인범이 되기까지의, 4주일이라는 짧고도 긴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 4주 동안 상호의 본성이나 본질이 바뀐 건 아니다. 그의 폭력은 결코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 아니었으나 분명한 이유라는 게 있었다. 우정과 의리가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복수’라는 이유.
우리는 학교에서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교육받았다. 이 과정의 중요성은 윤리, 수학, 논술을 비롯한 거의 모든 교과과정에서 강조하는 덕목이다. 그래서 그런가, ‘하드보일드 리얼액션’을 표방한 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사실적으로 그려낸 폭력이 아니라 그런 폭력을 생성해낸 ‘과정’이다. 결과적으로 살인범이 되어버린 모범생 상호가 쇠파이프를 들게 된 과정, 축구 모임이었던 ‘타이거’가 구성원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일진회와 같은 폭력써클로 비쳐지게 된 과정.
모든 분야에 걸쳐 못하는 게 없는 만능 모범생 상호(정경호 분)는 여느 모범생들과 달리 공부에 관심 없고 놀기 좋아하는 ‘패거리’들과 어울린다. 공부보다는 노는 데 더 관심이 많고 싸움에 재능 있는 단짝친구 재구(이태성 분), 공부도 싸움도 그저 그렇게 하지만 붙임성 좋은 창배(이행석 분), 체구는 작지만 깡이 좋은 경철(김혜성 분), 고아로 자랐지만 혼자 힘으로 꿋꿋하게 살아온 서러운 세월을 커다란 체구 속에 감추고 있는 홍규, 다른 친구들에 비해 나이는 한 살 더 많고 체구나 인상도 우락부락하지만 누구보다도 순한 상식. 이들은 축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살려 축구 모임인 ‘타이거’를 결성하고, 모임 제안을 한 상호가 얼떨결에 회장직을 맡는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들은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상호가 ‘여자’ 수희(장희진 분)를 보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문제의 발화점이 된 수희는 공고 폭력써클인 TNT의 회장 종석(연제욱 분)의 옛 여자친구였던 것. 종석은 수희가 자신을 떠나 상호에게 호감을 느끼는 게 싫어서 상호를 잡기 위해 타이거 구성원을 건드린다. 그냥 건드린 정도가 아니라 독하게 조졌다. 하지만 상호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렇게 잘 참아내고 있는데 어이없게도 종석의 똘마니가 결정타를 날렸다. 재구의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
결국, 재구의 시체 앞에서 인내심이 바닥난 상호는 남은 타이거 멤버들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TNT를 치기로 한다.
의도하지 않은 폭력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마지막 장면, 상호가 차가운 감옥 방바닥에 앉아 재구가 죽기 전 보내온 편지를 읽는 장면을 보며 떠오른 건 영화 의 인트로였다. 화면 가득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카메라와 그런 시각적 이미지를 극대화시키는 음향. 그러나 아무리 카메라를 돌리고 돌려도 이미 벌어진 일을 처음으로 돌이킬 수는 없다. 에서 상호에게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 설사 돌이킬 수 있다 해도 어디까지 돌아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상호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혹자는 말할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가 아니라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가 맞는 말이라고.
영화의 첫 장면, 상호는 경찰 앞에서 친구의 죄까지 뒤집어 쓰느라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진술한다. 아마도 상호는, 앞날이 창창했던 그 청춘이 겪은 과정은, 실제와는 다른 스토리로 재구성되어 ‘사정은 딱하지만 죄질이 나쁘므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판결을 받을 것이다. 이런 때 과정이란 건 감당하기 힘든 결말 앞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하나의 변명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 등 그간 ‘여자영화’인 공포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박기형 감독은 이번에 을 통해 빼어난 ‘남자영화’를 빚어내는 데 성공했다. 또 주연배우 정경호를 비롯해 재구 역의 이태성과 친구들 역을 맡은 배우들에게서 커다란 가능성을 발견한 것도 이 영화를 통해 얻은 큰 수확이다.
한 마디 덧붙인다면, 일단 이 영화는 남자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다. 육사에 들어가길 희망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처럼 살기 싫어하고, 예쁜 여학생을 보면 가슴이 떨리며, 우정에 죽고 우정에 사는 그들의 감성과 감정의 선은 모두 남자 고등학생들의 그것이 맞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폭력의 수위는 고등학생 수준을 훌쩍 넘는다. 그러니까 ‘하드보일드 리얼액션’이라는, 포스터에 살포시 얹혀 있는 이 한 줄의 문구는 관객들로 하여금 놀라지 말라고 미리 귀띔해주는 매우 ‘친절한 경고문씨’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