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21세기를 사는 중고딩들은 이 데스노트를 다들 봤을거다. (안 봤으면 봐라) 뭐 나로썬 점프 만화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단 이런 두뇌싸움을 테마로 한 만화가 점프에서 장기연재됬다는 사실이 그렇고 나중에 라이토가 초싸이언되서 연금술 같은걸 쓰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렇고 나름대로 결말도 기대해보면서 재미있게 봤다.
만화따위는 절대 보지 않는 모범생들을 위해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라이토라는 애가 우연히 사람의 이름을 써서 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 노트를 주워서 그 노트로 범죄자들을 처형해 나간다는 이야기다. 즉각에 범죄률은 급하강하고 사람들은 키라(라이토가 자기한테 붙인 가명)를 신으로 떠받들기 시작한다. 스토리는 키라와 그를 처단하고자 하는 명탐정 L과의 대결구조로 전개된다.
근데 대부분 라이토를 욕하는 놈들이 대부분이다. '자신만의 정의를 운운하는 라이토는 죽어야해!' 라며. 뭐 당연하다. 노트에 사람 이름 써서 자기 마음대로 죽이고 신세계의 신 따위를 자칭하는 녀석은 기분이 나쁘다. 상당히 재수없는 엄마친구아들로 묘사된 점도 있다.
근데 이거 알고 있을까. 너희들 중 대부분은 키라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학교에서 '난 신세계의 신이다!'같은 소리를 하는 자폐아는 물론 없겠지만, 9시 뉴스에서 성폭행범이 구속되었다는 뉴스를 봤을때 너희들은 무슨 소리를 했지? '저런 악당은 죽여야 해!'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 정의인가? 키라가 노트에 써서 죽이는 것과 법이 전기의자에 앉혀 죽이는 것과 뭐가 다르지?
살인범의 사형 찬반론을 보고 너희들은 아마 '사람을 죽였으니까 똑같이 죽어야 해.' 라고 말하겠지. 근데 그건 처벌이 아니라 보복일 뿐이다. 가해자가 죽는다고 피해자가 되살아나지는 않는다. 피해자의 인권 때문에 살인자를 죽여야 한다고? 자기가 피해를 받았다고 남에게 똑같이 피해를 줄 수 있는 권리따위는 없다. 가해자를 죽이는 것은 피해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닌, 단지 피해자를 또다른 가해자로 만들어 줄 뿐이다.
3권 완결이지만 꽤나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재주껏 찾아보도록
으로 유명한 사쿠라노 미네네 작가의 데뷔작인 라는 작품이 있다. 그런 작품에서 부자에게서 재물을 훔쳐 빈민들에게 나누어주는 괴도를 쫓는 소녀 탐정은 이런 말을 한다.
'나쁜 짓으로 나쁜 짓을 되갚는 것은 나쁜 짓이니까요.'
김정일이 우리한테 핵을 쐈다고 해서 우리가 똑같이 북한에 핵을 날리는게 정당화되지 않는 것처럼 죄로 죄를 씻으려는 발상은 극히 위험하다. 부정당을 부정당으로 정당화할수 없다(One cannot right a wrong with another wrong).
등가교환의 법칙이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보복은 대가지불이 아니라 단지 또다른 대가를 요구하는 행위일 뿐이다.
제목은 말 안해도 알 만한 이 만화에서 나온 '등가교환의 법칙'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에 A가 살인을 했다면 그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기 위해 A는 죽임을 당해야 한다, 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자. 살인은 살인을 위한 댓가인가? 살인은 살인을 정당화시키는가?
난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이 아저씨의 이 문구는 정말 좋아한다.
범죄자의 범죄를 옹호하라는 말이 아니다. 범죄자의 인권을 옹호하라는 말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예수가 말했었다. 만약에 A가 B를 살해했다면, B의 입장에서만 생각한다면 A를 죽여야 한다. 그러나 A와 B의 입장 양쪽을 생각한다면 무엇을 해야만 할까. A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돕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도와야만 하는 것이다.
범죄는 우발적인 범죄와 의도적인 범죄로 나뉜다. 우발적인 범죄는 말할 것도 없고, 의도적인 범죄라 하더라고 범인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만약에 그를 사형으로 처벌한다면 그의 '잘못된 생각'은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 단지 그는 잡혀서 억울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즉 사형은 죄를 씻지 못한다.
'넌 죄지었으니까 악당'이라는 생각은 극히 단면적이다. 사람이 죄를 짓지 죄가 사람을 만들어내는건 아니란 말이다. 만약에 당신의 자식이 과자를 훔쳤다면 그를 무작정 때리겠는가? 아니면 과자를 훔치는 것이 왜 나쁜지 가르쳐주고, 다음부터는 과자를 훔치지 않도록 가르치겠는가? 어느 쪽이 이성적으로 생각해 봤을떄 합당한가? 어느 쪽이 당신의 자식을 진정으로 뉘우치게 하고, 개선시키겠는가?
범죄의 재범률이 높다고? 당연하다. 감옥에 가서 등본에 빨간줄 찍힌 범죄자는 그 후로 일생 범죄자가 되어 다시는 재기불능이 된다. 감옥에 가서 짐승 이하의 취급을 받고, 사회에 나온 후에도 그는 다시는 직장을, 가정을 갖지 못하고 사회의 쓰레기가 된다. 그가 다시 범죄를 짓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는 이미 범죄자고, 앞으로도 평생 범죄자일 테니까.
선진국의 감옥을 보면 그 차이를 알수 있을 것이다. 호주의 감옥은 감옥인지 맨션인지 모를 정도로 화려하고 온갖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모든 범죄자가 들어가는 곳은 아니고, 생활 태도가 좋은 형무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형무원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다시 사회에 재기할 수 있도록 '치유'받는다. '감금'이나 '처벌'도 아닌, '재활'이자 '회복'인 것이다.
범죄자에게 무슨 극진한 대우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범죄자도 그렇고, 당신 역시 그렇다. 누구라도, 한순간의 충동으로 인해, 혹은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문제는 다시는 범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워하는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저지른 범죄니까 말이다.
혹자는 사형제도가 범죄 발생률을 감소시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데스노트에서 아이자와는 이렇게 말한다.
"공포와 탄압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야."
만약에 키라가 승리해서 신세계가 건설되었다고 쳐보자. 범죄를 일으킨 자는 죽는다. 죽음이 두려워 사람들은 범죄를 짓지 않는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들이 범죄를 일으키지 않는 이유는 단지 죽음이라는 리스크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The end does not justify its means).
고대의 유학자들은 그들의 왕에게 권력이 아닌 자애와 지혜로 백성을 다스리라고 말했다. 이것은 빈말이 아니다. 권력으로 백성들을 탄압한다면, 백성은 도덕이나 인륜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단지 권력이 무섭기 때문에 왕에게 복종할 뿐이고, 정권이 교체된다면 다시 세상은 혼란속으로 빠져들 뿐이다. 옛부터 유학자들은 이런 진리를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범죄자들의 인권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의 죄가 그들을 대변하지 않기에. 죽음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기에. 그들을 보복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치유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그것이 키라의 노트가 되었든 법이 되었든, 살인은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펌] 데스노트에서 읽는 반사형제도의 논리
격동의 21세기를 사는 중고딩들은 이 데스노트를 다들 봤을거다. (안 봤으면 봐라) 뭐 나로썬 점프 만화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단 이런 두뇌싸움을 테마로 한 만화가 점프에서 장기연재됬다는 사실이 그렇고 나중에 라이토가 초싸이언되서 연금술 같은걸 쓰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렇고 나름대로 결말도 기대해보면서 재미있게 봤다.
만화따위는 절대 보지 않는 모범생들을 위해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라이토라는 애가 우연히 사람의 이름을 써서 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 노트를 주워서 그 노트로 범죄자들을 처형해 나간다는 이야기다. 즉각에 범죄률은 급하강하고 사람들은 키라(라이토가 자기한테 붙인 가명)를 신으로 떠받들기 시작한다. 스토리는 키라와 그를 처단하고자 하는 명탐정 L과의 대결구조로 전개된다.
근데 대부분 라이토를 욕하는 놈들이 대부분이다. '자신만의 정의를 운운하는 라이토는 죽어야해!' 라며. 뭐 당연하다. 노트에 사람 이름 써서 자기 마음대로 죽이고 신세계의 신 따위를 자칭하는 녀석은 기분이 나쁘다. 상당히 재수없는 엄마친구아들로 묘사된 점도 있다.
근데 이거 알고 있을까. 너희들 중 대부분은 키라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학교에서 '난 신세계의 신이다!'같은 소리를 하는 자폐아는 물론 없겠지만, 9시 뉴스에서 성폭행범이 구속되었다는 뉴스를 봤을때 너희들은 무슨 소리를 했지? '저런 악당은 죽여야 해!'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 정의인가? 키라가 노트에 써서 죽이는 것과 법이 전기의자에 앉혀 죽이는 것과 뭐가 다르지?
살인범의 사형 찬반론을 보고 너희들은 아마 '사람을 죽였으니까 똑같이 죽어야 해.' 라고 말하겠지. 근데 그건 처벌이 아니라 보복일 뿐이다. 가해자가 죽는다고 피해자가 되살아나지는 않는다. 피해자의 인권 때문에 살인자를 죽여야 한다고? 자기가 피해를 받았다고 남에게 똑같이 피해를 줄 수 있는 권리따위는 없다. 가해자를 죽이는 것은 피해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닌, 단지 피해자를 또다른 가해자로 만들어 줄 뿐이다.
으로 유명한 사쿠라노 미네네 작가의 데뷔작인 라는 작품이 있다. 그런 작품에서 부자에게서 재물을 훔쳐 빈민들에게 나누어주는 괴도를 쫓는 소녀 탐정은 이런 말을 한다.
'나쁜 짓으로 나쁜 짓을 되갚는 것은 나쁜 짓이니까요.'
김정일이 우리한테 핵을 쐈다고 해서 우리가 똑같이 북한에 핵을 날리는게 정당화되지 않는 것처럼 죄로 죄를 씻으려는 발상은 극히 위험하다. 부정당을 부정당으로 정당화할수 없다(One cannot right a wrong with another wrong).
등가교환의 법칙이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보복은 대가지불이 아니라 단지 또다른 대가를 요구하는 행위일 뿐이다.
제목은 말 안해도 알 만한 이 만화에서 나온 '등가교환의 법칙'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에 A가 살인을 했다면 그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기 위해 A는 죽임을 당해야 한다, 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자. 살인은 살인을 위한 댓가인가? 살인은 살인을 정당화시키는가?
난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이 아저씨의 이 문구는 정말 좋아한다.
범죄자의 범죄를 옹호하라는 말이 아니다. 범죄자의 인권을 옹호하라는 말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예수가 말했었다. 만약에 A가 B를 살해했다면, B의 입장에서만 생각한다면 A를 죽여야 한다. 그러나 A와 B의 입장 양쪽을 생각한다면 무엇을 해야만 할까. A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돕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도와야만 하는 것이다.
범죄는 우발적인 범죄와 의도적인 범죄로 나뉜다. 우발적인 범죄는 말할 것도 없고, 의도적인 범죄라 하더라고 범인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만약에 그를 사형으로 처벌한다면 그의 '잘못된 생각'은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 단지 그는 잡혀서 억울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즉 사형은 죄를 씻지 못한다.
'넌 죄지었으니까 악당'이라는 생각은 극히 단면적이다. 사람이 죄를 짓지 죄가 사람을 만들어내는건 아니란 말이다. 만약에 당신의 자식이 과자를 훔쳤다면 그를 무작정 때리겠는가? 아니면 과자를 훔치는 것이 왜 나쁜지 가르쳐주고, 다음부터는 과자를 훔치지 않도록 가르치겠는가? 어느 쪽이 이성적으로 생각해 봤을떄 합당한가? 어느 쪽이 당신의 자식을 진정으로 뉘우치게 하고, 개선시키겠는가?
범죄의 재범률이 높다고? 당연하다. 감옥에 가서 등본에 빨간줄 찍힌 범죄자는 그 후로 일생 범죄자가 되어 다시는 재기불능이 된다. 감옥에 가서 짐승 이하의 취급을 받고, 사회에 나온 후에도 그는 다시는 직장을, 가정을 갖지 못하고 사회의 쓰레기가 된다. 그가 다시 범죄를 짓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는 이미 범죄자고, 앞으로도 평생 범죄자일 테니까.
선진국의 감옥을 보면 그 차이를 알수 있을 것이다. 호주의 감옥은 감옥인지 맨션인지 모를 정도로 화려하고 온갖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모든 범죄자가 들어가는 곳은 아니고, 생활 태도가 좋은 형무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형무원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다시 사회에 재기할 수 있도록 '치유'받는다. '감금'이나 '처벌'도 아닌, '재활'이자 '회복'인 것이다.
범죄자에게 무슨 극진한 대우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범죄자도 그렇고, 당신 역시 그렇다. 누구라도, 한순간의 충동으로 인해, 혹은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문제는 다시는 범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워하는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저지른 범죄니까 말이다.
혹자는 사형제도가 범죄 발생률을 감소시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데스노트에서 아이자와는 이렇게 말한다.
"공포와 탄압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야."
만약에 키라가 승리해서 신세계가 건설되었다고 쳐보자. 범죄를 일으킨 자는 죽는다. 죽음이 두려워 사람들은 범죄를 짓지 않는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들이 범죄를 일으키지 않는 이유는 단지 죽음이라는 리스크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The end does not justify its means).
고대의 유학자들은 그들의 왕에게 권력이 아닌 자애와 지혜로 백성을 다스리라고 말했다. 이것은 빈말이 아니다. 권력으로 백성들을 탄압한다면, 백성은 도덕이나 인륜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단지 권력이 무섭기 때문에 왕에게 복종할 뿐이고, 정권이 교체된다면 다시 세상은 혼란속으로 빠져들 뿐이다. 옛부터 유학자들은 이런 진리를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범죄자들의 인권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의 죄가 그들을 대변하지 않기에. 죽음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기에. 그들을 보복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치유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그것이 키라의 노트가 되었든 법이 되었든, 살인은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2006. 10. 21 -I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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