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프레션_마리오네트 pt.3

송진실200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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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춤을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다. 강한 비트에 빠른 리듬을 따라 묘기에 가까운 동작을 보여주는 브레이크 댄스에 매혹된 소년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동작을 따라 하며 춤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소년을 이해하지 못했다. 머리를 물들이고 교회에 간 날은 “차라리 오지 마라”는 야단을 맞았다. 춤을 좋아하는 게 죄인가. 소년은 실이 끊긴 인형처럼 온몸에 힘이 빠졌다.

1막:피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1992년. 소년은 자기 손으로 가족을 먹여살려야 할 처지였다. 가진 기술은 춤밖에 없었다. 방송국 백댄서를 시작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춤을 췄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사람들은 소년의 화려한 몸짓에 환호를 보냈다.

무대 위의 불빛이 꺼졌다. 아무도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좋아서 시작했던 춤은 시간이 갈수록 싫어도 해야 하는 일로 변해갔다. 춤 속에서 힘차게 손발을 움직일수록 마음은 텅 비워지는 느낌이었다.

2막:익스프레션

1997년. 소년은 자신과 같이 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았다. ‘남들을 위한 춤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표현한 우리의 춤을 추자.’ 이름은 ‘익스프레션(표현) 크루’. 한국 최초의 비보이 조직이었다.

춤 하나만은 자신 있었다. 배고픔은 윈드밀(머리를 땅에 대고 몸을 풍차처럼 돌리는 동작)로 잊었고 세상에 대한 불만은 프리즈(몸을 거꾸로 세우고 멈춰서는 동작)로 날렸다.

어느 교회의 청소년 수련회에 익스프레션을 공연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교회 안에서도 할 수 있구나.”

3막:배틀

2002년.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이들(비보이·B-boy)의 대회가 열렸다. 한국 예선 1등은 익스프레션 크루. 독일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대회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에 출전했다. 결과는 우승,아시아팀으론 처음이었다. 이듬해에는 프랑스에서 열린 ‘힙합 플래닛’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박수가 터졌다. ‘이제 고생은 끝이구나.’

4막:내 슬픔 변해 기쁨의 춤 추리

사람들은 빠르게 잊었다. 인기를 경험한 뒤라 더 힘들었다. 교회로 달려가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춤을 추게 해주세요.” 가슴 속에서 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무엇을 위해 춤을 추느냐.” 답은 시편 30편 11절에 있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소년은 눈물을 닦고 웃을 수 있었다. 왜 내가 춤을 추는지 이제는 알게 됐으니까. 세상을 위해,나 자신을 위해 추던 춤을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추기로 했다.

종막:마리오네트

서울 대학로 씨어터 일. 비보이가 만든 퍼포먼스 ‘마리오네트’가 공연되고 있다. 1시간30분 동안 화려한 춤과 안무가 이어진다. 실에 매달린 인형(마리오네트)이 인형사의 손짓에 따라 힘차게 춤을 춘다. 음악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무대 위의 화면에는 시편 30편 11절이 비춰진다.

커튼콜

소년의 이름은 이우성. 나이가 서른이나 됐으니 더 이상 소년은 아니다. 그가 극본을 쓰고 연출과 안무,출연까지 한 ‘마리오네트’는 15일까지 공연된다. 평일 저녁에도 좌석이 매진될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관객 중에는 “왜 비보이 공연에 성경이 나오고 복음성가가 나오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답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 공연을 만들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실 끊어진 인형처럼 낙담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찾아가라고 격려해주고 싶었습니다. 제 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추는 춤이란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마리오네트’를 더 다듬어 대학로뿐만 아니라 브레이크 댄스의 본고장인 미국에까지 진출하는 공연으로 만들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