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과 경쟁하여 이긴다는 것보다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을 언제나 생각한다. 고통과 괴로움에 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달렸을 때 그것은 승리로 연결되었다. -아베베 비킬라- 1등을 위해 달리지도 눈 앞의 결승점을 위해 달리지도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해 달리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달릴 뿐이다. 1960년 로마 올림픽. 69명 중 무명의 흑인 주자.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Abebe Bikila) 2시간 15분 16초. 당시 세계기록 아프리카인. 최초 마라통 우승. 4년뒤 1964년 도코 올림픽. 낯익은 검은 얼굴. 맨발의 아베베. 4년을 기다렸다. 나는 오늘도 마음껏 달린다. 2시간 12분 11초. 종전기록 3분을 앞당긴 올림픽 마라톤 최초 2연패. 놀라운 기록에 대한 아베베의 답 "나는 다만 달릴 뿐이다." 아베베는 불과 경기 6주전 맹장수술을 받았었다. 아베베의 로마 올림픽 우승은 단순한 우승이 아니었다. 1935년 이탈리아 무솔리니 에티오피아 침공. 1년 6개월간 점령. 조국 에티오피아 평원을 달렸던 맨발, 아베베 "나는 내 조국 에티오피아가 항상 강인하게 시련을 이겨냈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그의 우승은 1960년도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자긍심을 주었다. 나는 달리는 것이 좋다. 나에겐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 조국 'Ethiopia'가 있다. ETHIOPIA 이후 아베베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 참가했으나 다리골절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한다. 1년후 빗길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다시는 걷지도 뛰지도 못하는 아베베 "내 다리는 더 이상 달릴 수 없지만 나에게 두 팔이 있다." 스토크 맨스빌 휠체어 게임 양궁 선수로 참가 불운을 뛰어 넘는 그의 의지는 장애인 대회에서 계속된다. 나는 남과 경쟁하여 이긴 다는 것보다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을 언제나 생각한다. 고통과 괴로움에 지지 않고 마지막 까지 달렸을 때 그것은 승리로 연결 되었다. 아베베 비킬라 (Abebe bikila) 아베베는 1932년 8월 7일,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약 1백30km 떨어진 자토(Jato)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목동으로 보내며 자란 그는, 열두 살 무렵부터 이미 운동에 탁월한 자질을 보였다. 1952년 20세의 젊은 나이에 그는 황제의 근위병이 됐고, 그 2년 후 결혼해 4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가 된다. 몇 년 동안을 근위대 생활로 보내던 그가 자신의 인생을 바꿀 결정적인 결심을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1956년 어느 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등에 ‘에티오피아’라고 쓰인 운동복을 입은 멋진 젊은이들이 퍼레이드를 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저들이 누구인지를 물었고, 그들이 막 멜버른 올림픽에서 돌아온 국가대표 육상선수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그 순간, 그는 결심한다. 자신도 저들 중의 한 명이 되기로. 24세의 아베베는 같은 해 전국 군인 체육대회에 참가한다. 당시 에티오피아의 스포츠 영웅은 5천m와 1만m 기록을 가지고 있던 와미 비라투(Wami Biratu)였다. 마라톤 경기가 시작되자, 스타디움에 있던 에티오피아 관중들은 선두로 들어오는 와미 비라투의 모습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얼마 동안 와미 비라투는 선두를 지켰다. 그런데 잠시 후, 라디오 방송에서 아베베라는 무명의 젊은 선수가 앞서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베베가 점점 뒤따르는 선수와의 거리를 넓혀가자, 관중들은 이 새롭고도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아베베는 자신의 첫 번째 마라톤 경기에서 쉽게 우승을 따낸다. 얼마 후 그는 와미 비라투가 가지고 있던 5천m와 1만m 기록도 깨버린다. 이런 놀라운 성과로, 그는 로마 올림픽 티켓을 단숨에 거머쥔다. 마침내, 등에 ‘에티오피아’라고 쓰인 운동복을 입는 그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탁구 라켓을 들고 획득한 장애인 올림픽 남자 탁구 단식 금메달. 그것은 두 개의 올림픽 금메달에 못지않은 또 다른 장엄한 성취였을 터이다. 사실 68년 올림픽 출전은 아베베에게는 여러 가지로 무리한 일이었다. 64년(3회), 65년(1회), 66년(2회) 등 6회의 레이스에서 모두 우승한 뒤 실질적으로 은퇴상태였던 것. 67년에 참가한 레이스는 사상 최초로 기권, 그 다음 출전 대회가 바로 68년 올림픽이었기 때문이다. 아베베의 마라톤 참가 횟수는 열다섯, 그중 1위로 골인한 레이스가 무려 열두 번이다. 마지막 두 번의 기권을 빼면 그가 우승하지 못한 유일한 레이스는 5위로 골인한 63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그렇다면 아베베가 1위로 골인한 마지막 레이스는 1966년 10월 30일, 서울과 인천을 왕복하는 코스에서 열린 동아마라톤 대회. 기록은 2시간17분04초.
나는 달린다. - 아베베 비킬라 (Abebe Bikila, 1932~1973)
1등을 위해 달리지도
눈 앞의 결승점을 위해 달리지도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해 달리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달릴 뿐이다.
1960년 로마 올림픽. 69명 중 무명의 흑인 주자.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Abebe Bikila)
2시간 15분 16초. 당시 세계기록 아프리카인. 최초 마라통 우승.
4년뒤
1964년 도코 올림픽.
낯익은 검은 얼굴. 맨발의 아베베.
4년을 기다렸다. 나는 오늘도 마음껏 달린다.
2시간 12분 11초.
종전기록 3분을 앞당긴 올림픽 마라톤 최초 2연패.
놀라운 기록에 대한 아베베의 답 "나는 다만 달릴 뿐이다."
아베베는 불과 경기 6주전 맹장수술을 받았었다.
아베베의 로마 올림픽 우승은 단순한 우승이 아니었다.
1935년 이탈리아 무솔리니 에티오피아 침공. 1년 6개월간 점령.
조국 에티오피아 평원을 달렸던 맨발, 아베베
"나는 내 조국 에티오피아가
항상 강인하게 시련을 이겨냈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그의 우승은 1960년도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자긍심을 주었다.
나는 달리는 것이 좋다.
나에겐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 조국 'Ethiopia'가 있다.
ETHIOPIA
이후 아베베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 참가했으나
다리골절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한다.
1년후 빗길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다시는 걷지도 뛰지도 못하는 아베베
"내 다리는 더 이상 달릴 수 없지만 나에게 두 팔이 있다."
스토크 맨스빌 휠체어 게임 양궁 선수로 참가
불운을 뛰어 넘는 그의 의지는 장애인 대회에서 계속된다.
나는 남과 경쟁하여 이긴 다는 것보다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을 언제나 생각한다.
고통과 괴로움에 지지 않고 마지막 까지 달렸을 때
그것은 승리로 연결 되었다.
아베베 비킬라 (Abebe bikila)
아베베는 1932년 8월 7일,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약 1백30km 떨어진 자토(Jato)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목동으로 보내며 자란 그는,
열두 살 무렵부터 이미 운동에 탁월한 자질을 보였다.
1952년 20세의 젊은 나이에 그는 황제의 근위병이 됐고,
그 2년 후 결혼해 4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가 된다.
몇 년 동안을 근위대 생활로 보내던 그가 자신의 인생을 바꿀
결정적인 결심을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1956년 어느 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등에 ‘에티오피아’라고 쓰인 운동복을 입은
멋진 젊은이들이 퍼레이드를 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저들이 누구인지를 물었고,
그들이 막 멜버른 올림픽에서 돌아온 국가대표 육상선수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그 순간,
그는 결심한다.
자신도 저들 중의 한 명이 되기로.
24세의 아베베는 같은 해 전국 군인 체육대회에 참가한다.
당시 에티오피아의 스포츠 영웅은 5천m와 1만m 기록을 가지고 있던
와미 비라투(Wami Biratu)였다.
마라톤 경기가 시작되자,
스타디움에 있던 에티오피아 관중들은 선두로 들어오는
와미 비라투의 모습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얼마 동안 와미 비라투는 선두를 지켰다.
그런데 잠시 후,
라디오 방송에서 아베베라는 무명의 젊은 선수가 앞서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베베가 점점 뒤따르는 선수와의 거리를 넓혀가자,
관중들은 이 새롭고도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아베베는
자신의 첫 번째 마라톤 경기에서 쉽게 우승을 따낸다.
얼마 후
그는 와미 비라투가 가지고 있던 5천m와 1만m 기록도 깨버린다.
이런 놀라운 성과로,
그는 로마 올림픽 티켓을 단숨에 거머쥔다.
마침내,
등에 ‘에티오피아’라고 쓰인 운동복을 입는
그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탁구 라켓을 들고 획득한 장애인 올림픽 남자 탁구 단식 금메달.
그것은 두 개의 올림픽 금메달에 못지않은
또 다른 장엄한 성취였을 터이다.
사실 68년 올림픽 출전은 아베베에게는
여러 가지로 무리한 일이었다.
64년(3회), 65년(1회), 66년(2회) 등
6회의 레이스에서 모두 우승한 뒤
실질적으로 은퇴상태였던 것.
67년에 참가한 레이스는 사상 최초로 기권,
그 다음 출전 대회가 바로 68년 올림픽이었기 때문이다.
아베베의 마라톤 참가 횟수는 열다섯,
그중 1위로 골인한 레이스가 무려 열두 번이다.
마지막 두 번의 기권을 빼면 그가 우승하지 못한 유일한 레이스는
5위로 골인한 63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그렇다면
아베베가 1위로 골인한 마지막 레이스는
1966년 10월 30일,
서울과 인천을 왕복하는 코스에서 열린 동아마라톤 대회.
기록은 2시간17분04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