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네가 갖고 있는 능력의 150%를 발휘하도록 해라. 그것은 화가가 되든 음악가가 되든
아니면 소방관이 되든 모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Whatever You're doing or whatever you're trying
to be, you should do 150percent. Whether You're a painter or a musician or a
fireman.
Destiny words :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네가 갖고 있는
능력의 150%를 발휘하도록 해라!
‘자신의 야망을 펼치고 싶다면 밖으로 나서라. 그리고 세상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해라!’ 기타리스트 겸 가수로 한몫을 해내고 있는 카를로스 산타나는‘안락한 교실보다는 거친 사회생활을 통해 실용적인 음악을
시도, 단시일 내에 팝 거물로 등극한 음악인’이다.
멕시코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온 산타나는 언어 장벽으로 인해
중학교 과정부터 다시 이수해야 하는 고충을 겪었다. “창피하게도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랐습니다. 당연히 급우들과 말이 안 통했습니다.
다행히 내 존재를 밝힐 수 있는 것은 그림과 음악뿐이었습니다.”
산타나가 음악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부친 때문이다. 멕시코
티후아나 지역에서 밴드 단원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던 부친은 아들 산타나에게 기타· 바이올린· 베이스 등 주요 악기를 다룰 수 있는 방법과
작곡법 등을 전수해준다. 음악의 매력에 한껏 빠져 있던 어린 산타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방과 후 유흥가 거리를 쏘다니면서 거리 공연을
펼치는 당돌함을 보인다. 음악 세계에 미쳐 있던 산타나는 거리 여인들이 뭇 남성들을 호객하는 풍경을 훔쳐보며 새벽까지 기타 연주를 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그때 세상 풍경을 거의 대부분 목격했다고 봐야죠. 평일에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의 순간들을 지켜보았고,
주말이면 교회를 찾아가 근엄한 분위기 속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영적 존재의 가치를 찾았으니까요. 극과 극을 오가는 이러한 양면적인 상황 속에서
인생을 균형 있게 살아가야 한다는 삶의 철학을 스스로 자각했다고 한다면 너무 조숙한 표현일까요?”
멕시코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었지만
그는 18살 때 미국에서 중학교 과정을 다시 이수해야만 했다. 당연히 교과 수업에 흥미를 잃고 수업시간에는 그림 그리기, 수업 후에는 거리에서
기타를 치는 공연을 하면서 일상을 보내게 된다.
그런 어느 날, 미술 선생의 호출을 받게 된다. “애야. 네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구나. 성적표를 보니 거의 F인데 그림 과목에서는 꾸준히 A를 받았구나. 그리고 저녁에는 악기 연주를 하고
있다며? 너 혹시 체계적인 그림을 배워볼 생각은 없니?” 멕시코 촌뜨기에게 건넨 미술 담당 여선생의 말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산타나의
열정을 부추겨 주는 계기가 된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서 제가 미술에 상당한 소질이 있는 것으로 알았죠. 하지만 선생님과 함께
미술 전문학원을 방문하면서 제가 그동안 그린 것은 단지 잡스런 그림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체계적으로 그림을 배운 학생들의
습작품은 마치 정교한 사진을 찍어놓은 듯 세련되고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충격이었죠. 제가 세상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증거였으니까요.”
한껏 움츠려 있던 그에게 미술 선생은 격려의 말을 건넨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네가 갖고 있는 능력의
150%를 발휘하도록 해라. 그것은 화가가 되든 음악가가 되든 아니면 소방관이 되든 모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저는 나름대로
세상의 풍속도를 알 수 있다는 음악에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죠. 능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는 대상으로 화가보다는 음악가로 방향을 결정한
동기를 제공한 것입니다.”
그 즉시 산타나는 당대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이 공연하는 곳을 밤낮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리고 거물들의
공연을 보면서 모방하고 과감하게 찬조 공연에 끼어들면서 이론보다는 실무적인 음악 능력을 구축해 나간다. 열성적인 산타나의 태도는 블루스 의
대가인 B. B. 킹· 마일즈 데이비스·존 리 후커 마이클 블룸필드 등의 수제자로 선택되어 생생한 실전 독주법을 전수받는 행운을 얻게
된다.
“늙은 중학생이던 저의 잠재력을 일깨워주신 미술 선생님의 조언이 오늘날 음악인 산타나가 존재하는 원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현장에서 체험한 경험이 매우 생동감 있는 음악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됐구요.”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이 저변에
깔려 있는 미국 팝 시장에서 멕시코 출신 산타나가 독보적인 음악 영역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생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거물 음악가들을
찾아가 수련생을 자처한 용기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빠트릴 수 없다.
“저는 지금도 음악가뿐 아니라 어떤 예술 영역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경험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책이나 주변의 충고, 조언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좌절하고 엎어져 무릎이 까진다 해도 다양한 경험을 쌓으시길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음악가를 희망하는 분이 있다면 지금 당장 악기를 둘러메고
밖으로 나가 즉석 공연을 시도해 보세요. 몇 십 년 후 아니 빠르면 몇 년 뒤 대가 반열에 올라 있을 여러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
1947년 멕시코 하리스코 주
아우트란 태생. 기타리스트 겸 가수. 1961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부친의 영향을 받아 9살 때부터 기타 독주법을
익힌다.
2000년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페인어권 출신 가수를 지칭하는 히스패틱 가수로는 처음으로 그래미 ‘올해의 음반
Record of the Year’상을 수상했다. 롭 토마스와 듀엣으로 부른 ‘Smooth’가 수록된 앨범 ‘Supernatural’은
그래미 9개 부분상을 휩쓰는 히트작이 된다. 팝 전문지 롤링 스톤즈 선정,‘가장 위대한 록큰롤 아티스트 90’에
선정됐다.
입력 :
2006-07-28, 09:42 조회 : 226
출처 : 이경기
<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
카를로스 산타나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네가 갖고 있는 능력의 150%를 발휘하도록 해라. 그것은 화가가 되든 음악가가 되든 아니면 소방관이 되든 모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Whatever You're doing or whatever you're trying to be, you should do 150percent. Whether You're a painter or a musician or a fireman.
Destiny words :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네가 갖고 있는 능력의 150%를 발휘하도록 해라!
‘자신의 야망을 펼치고 싶다면 밖으로 나서라. 그리고 세상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해라!’
기타리스트 겸 가수로 한몫을 해내고 있는 카를로스 산타나는‘안락한 교실보다는 거친 사회생활을 통해 실용적인 음악을 시도, 단시일 내에 팝 거물로 등극한 음악인’이다.
멕시코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온 산타나는 언어 장벽으로 인해 중학교 과정부터 다시 이수해야 하는 고충을 겪었다.
“창피하게도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랐습니다. 당연히 급우들과 말이 안 통했습니다. 다행히 내 존재를 밝힐 수 있는 것은 그림과 음악뿐이었습니다.”
산타나가 음악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부친 때문이다. 멕시코 티후아나 지역에서 밴드 단원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던 부친은 아들 산타나에게 기타· 바이올린· 베이스 등 주요 악기를 다룰 수 있는 방법과 작곡법 등을 전수해준다.
음악의 매력에 한껏 빠져 있던 어린 산타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방과 후 유흥가 거리를 쏘다니면서 거리 공연을 펼치는 당돌함을 보인다.
음악 세계에 미쳐 있던 산타나는 거리 여인들이 뭇 남성들을 호객하는 풍경을 훔쳐보며 새벽까지 기타 연주를 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그때 세상 풍경을 거의 대부분 목격했다고 봐야죠. 평일에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의 순간들을 지켜보았고, 주말이면 교회를 찾아가 근엄한 분위기 속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영적 존재의 가치를 찾았으니까요. 극과 극을 오가는 이러한 양면적인 상황 속에서 인생을 균형 있게 살아가야 한다는 삶의 철학을 스스로 자각했다고 한다면 너무 조숙한 표현일까요?”
멕시코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었지만 그는 18살 때 미국에서 중학교 과정을 다시 이수해야만 했다. 당연히 교과 수업에 흥미를 잃고 수업시간에는 그림 그리기, 수업 후에는 거리에서 기타를 치는 공연을 하면서 일상을 보내게 된다.
그런 어느 날, 미술 선생의 호출을 받게 된다.
“애야. 네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구나.
성적표를 보니 거의 F인데 그림 과목에서는 꾸준히 A를 받았구나. 그리고 저녁에는 악기 연주를 하고 있다며? 너 혹시 체계적인 그림을 배워볼 생각은 없니?”
멕시코 촌뜨기에게 건넨 미술 담당 여선생의 말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산타나의 열정을 부추겨 주는 계기가 된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서 제가 미술에 상당한 소질이 있는 것으로 알았죠. 하지만 선생님과 함께 미술 전문학원을 방문하면서 제가 그동안 그린 것은 단지 잡스런 그림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체계적으로 그림을 배운 학생들의 습작품은 마치 정교한 사진을 찍어놓은 듯 세련되고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충격이었죠. 제가 세상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증거였으니까요.”
한껏 움츠려 있던 그에게 미술 선생은 격려의 말을 건넨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네가 갖고 있는 능력의 150%를 발휘하도록 해라. 그것은 화가가 되든 음악가가 되든 아니면 소방관이 되든 모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저는 나름대로 세상의 풍속도를 알 수 있다는 음악에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죠. 능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는 대상으로 화가보다는 음악가로 방향을 결정한 동기를 제공한 것입니다.”
그 즉시 산타나는 당대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이 공연하는 곳을 밤낮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리고 거물들의 공연을 보면서 모방하고 과감하게 찬조 공연에 끼어들면서 이론보다는 실무적인 음악 능력을 구축해 나간다. 열성적인 산타나의 태도는 블루스 의 대가인 B. B. 킹· 마일즈 데이비스·존 리 후커 마이클 블룸필드 등의 수제자로 선택되어 생생한 실전 독주법을 전수받는 행운을 얻게 된다.
“늙은 중학생이던 저의 잠재력을 일깨워주신 미술 선생님의 조언이 오늘날 음악인 산타나가 존재하는 원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현장에서 체험한 경험이 매우 생동감 있는 음악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됐구요.”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이 저변에 깔려 있는 미국 팝 시장에서 멕시코 출신 산타나가 독보적인 음악 영역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생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거물 음악가들을 찾아가 수련생을 자처한 용기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빠트릴 수 없다.
“저는 지금도 음악가뿐 아니라 어떤 예술 영역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경험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책이나 주변의 충고, 조언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좌절하고 엎어져 무릎이 까진다 해도 다양한 경험을 쌓으시길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음악가를 희망하는 분이 있다면 지금 당장 악기를 둘러메고 밖으로 나가 즉석 공연을 시도해 보세요. 몇 십 년 후 아니 빠르면 몇 년 뒤 대가 반열에 올라 있을 여러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
1947년 멕시코 하리스코 주 아우트란 태생. 기타리스트 겸 가수.
1961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부친의 영향을 받아 9살 때부터 기타 독주법을 익힌다.
2000년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페인어권 출신 가수를 지칭하는 히스패틱 가수로는 처음으로 그래미 ‘올해의 음반 Record of the Year’상을 수상했다.
롭 토마스와 듀엣으로 부른 ‘Smooth’가 수록된 앨범 ‘Supernatural’은 그래미 9개 부분상을 휩쓰는 히트작이 된다. 팝 전문지 롤링 스톤즈 선정,‘가장 위대한 록큰롤 아티스트 90’에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