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의 숨결] 편지

신용연200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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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의 숨결] 편지

 

아침글밭에 손님을 한 분 모셨습니다. 조운찬님입니다. 수요일 아침에는 조운찬(경향신문 문화부장)님의 `옛글의 숨결"을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름 지나 가을이 되어도 소식이 막혀 울적하였는데, 보내신 편지를 막 받고서 서리 내리는 추위에 잘 계심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됩니다. 다만 둘째 아드님께서 건강이 좋지 않다니 여러모로 염려됩니다. 저는 무더위로 생긴 뒤탈이 싸늘한 날씨에 더욱 기승을 부려 몹시 괴롭습니다. 보내주신 네 가지 물건은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별지에 쓰신 것은 더 생각을 해야 할 듯합니다만, 저의 역량이 그 일에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까요. 나머지는 줄이며 삼가 답장 올립니다.

 

임술년(1862) 윤8월 29일 재종 현주 올림 홍현주(洪顯周, 1793~1865)의 편지(한국고간찰연구회 편역 ‘조선시대 간찰첩 모음’에서)

 

홍석주·길주와 함께 ‘문장가 3형제’로 불렸던 홍현주가 육촌 친척에게 보낸 편지의 전문이다. 한자 원문은 모두 89자. 짧은 글이지만 문안 인사에서 선물에 대한 감사 표시, 부탁받은 일에 대한 자기의 견해 등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옛 사람에게 편지는 단순한 의사 전달 수단이 아니라 삶 자체였다. 학문이고, 문학이고, 수양의 도구였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 편지를 통해 성리학 논쟁을 벌인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추사 김정희의 편지들이 뒤에 ‘완당척독’으로 출간된 것은 그 속에 추사의 도저한 문학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퇴계가 자신의 편지들을 골라 ‘자성록’(自省錄)을 간행하고, 다산 정약용이 편지 한 편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 것은 자기반성과 성찰에 편지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옛 편지가 그리운 것은 시인의 노래말 때문만은 아니다.

 

〈조운찬/경향신문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