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하자 음악과 함께 카메라가 팔로우쇼트로 한강의 모습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세피아 톤의 질감에서 묻어나오는 알 수 없는 촌스러운 느낌은 바로 88년이라고 생각되는 겨울의 방송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대 위에는 최고의 락커 최곤(役박중훈)이 자신의 불멸의 히트곡이 될 노래를 보르고 있고 카메라는 관객과 인기절정의 최곤의 무대와 매니저 박민수(役안성기)를 차례로 비춰내주고 최곤의 88년 가수왕 등극과 함께 오프닝이 끝이 난다. 이 짧은 오프닝 속에 영화는 짤막한 영화의 프리퀄을 보여주고 영화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등장인물의 캐릭터까지 오롯이 보여주며 과거의 짙은 향수와 그리움을 베어나게 한다. 다른 영화처럼 그 시대를 재현하기 위한 세트를 만들거나 특별한 기술을 보여주지 않음에도 그렇게 믿게 만드는 진실된 힘은 이 영화를 지배하는 하나의 양식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니체는 과거를 망각하라고 했다. 과거를 망각하고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고민을 떨쳐내고 현재에 충실하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과거의 성찰을 통해 현재, 더 나아가 미래의 나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과거는 잊어야 하는 것인가? 간직해야 하는 것인가? 적어도 극중 박중훈이 분하는 최곤은 88년도 가수왕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지금까지 자신이 최고의 스타인듯 행동하는 인물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조용필쯤 되는 스타인 것처럼 생각하고(생각하고 싶어하지만) 미사리의 음악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고작인 현실을 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언제나 한결같은 나무로 존재하는 박민수는 20년의 세월을 최곤의 옆에서 함께 해온 매니저다. 온갖 사고와 말썽을 피고다니는 최곤의 곁에서 그는 묵묵히 형처럼, 아버지처럼 최곤의 뒤치닥거리를 한다. 초반에 사고를 치고 경찰서에 끌러간 최곤의 옆에서, 조사를 하는 경찰에게 최곤의 이름, 주민등록번호를 대신 불러주면서 "차라리 내가 때린 거였으면 좋겠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고 호소하는 박민수의 진심어린 표정에서 이들의 외적인 관계와 내적인 관계가 모두 드러난다.
그둘은 스타와 매니저의 관계이면서, 동생과 형의 관계이며 동시에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이다. 결국은 사고를 치고 통폐합을 3달앞둔 강원도 영월의 라디오 DJ를 맡아야하는 신분으로 전락한 최곤의 칭얼댐과 짜증속에도 민수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힘을 다해 최선의 선택이 되도록 할 뿐이다. 주목할 것은 그런 과정에서 보여지는 둘의 행동과 대사에서 둘의 관계가 일차원적인 스타-매니저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곤이 민수에게 내는 짜증섞인 투정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그것과 비슷하며, 민수가 최곤에게 때로는 화를 내면서 때로는 달래가면서 그의 재기와 성공을 비는 모습은 아들의 성공을 위해 묵묵히 인내하고 뒷바라지 하는 영락없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최곤이 영월에서 라디오 DJ로 자리잡아 어느정도의 성공하여 100회특집 공개방송을 하기전과 후로 이 영화의 텍스트를 구분해볼 수 있을 듯 싶다. 그렇게 전반부는 과거와의 조우와 망각의 과정 속에서 사람과의 소통과 관계를 발견하면서 그제야 현재를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게 된 아이(최곤)의 성장을 그리고 있다면, 후반부는 아버지(박민수)의 부재를 겪음으로서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현재에 충실하게 되는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전반부에서 최곤과 민수는 영월이라는 도시에서 과거와 조우하며 자신을 치유하고 현재를 바라보는 시서을 갖는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끔 하는 건 역시 사람이다. 멀리 외진 땅에 와서 라디오를 진행하는 최곤에게는 짜증나는 일이고 신세한탄할 일이지만 영월주민에게는 새로운 삶의 낙이 된다. 여전히 자신이 최고의 가수인지 아는 최곤은 무성의한 진행과 방송사고를 일으키지만 그 지역 주민들에게는 웃음을 선사하는 새로운 소일거리가 된다. 덕분에 최곤의 무성의한 진행은 우연한 계기에 주민들의 의사표출구이자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로서 자리잡는 데 성공하게 된다. 자신들이 20년 전 열광적인 환영을 받은 기억이 여전히 존재하는(그들이 주로가는 해장국집에 걸린 최곤의 사인) 그곳에서 그들은 열정으로 가득찬 젊은 락 밴드 '이스트리버'를 만나고 다방, 중국집, 철물점, 세탁소 주인과 종업원들, 그리고 영월주민을 만난다. 여전히 88년도 가수왕이라는 타이틀에 목을 매달고는 있지만 그렇게 최곤은 세상과 만나고 사람과 만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과정을 알아간다. 그 옆에서 함께 방송을 만들어가는 강 PD(役 최정윤), 박기사, 지국장까지 이들은 처음의 식어버려진 열정을 최대한으로 끌어들이면서 하나되는 기쁨을 뒤늦게야 느껴볼 수 있다.
어느정도의 성공후에 강 PD가 술자리에서 하는 대사는 적절한 시점에서 영화를 환기시켜준다. "내가 왜 청취율에 신경쓰며 바락바락일하는 지 아세요? 당신, 당신, 그리고 당신들처럼 되버릴까봐!!" 이 말에는 과거의 성공과 향수에 매달린 채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 대한 지탄섞인 애정이 담겨있다. 88년도 가수왕이라는 타이틀 하나로 여전히 스타라는, 최고라는 착가에 빠져있는 최곤이나 자신의 스타가 다시 최정성에 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매니저 민수나 "내가 예전에는 말야"라며 과거의 이야기를 줄곧 꺼내는 지국장이 박기사나 사실은 모두 똑같이 과거에 연연하고 그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물이다.
어쩌면 '라디오 스타'라는 이 제목은 최곤 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를 지칭하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TV에 밀린 라디오라는 매체에서의 스타는 결국은 한물 간 스타, 과거에 매달린 이들을 통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최곤을 통해 우리 스스로 과거를 버리고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거다. 이는 영화의 에피소드를 제공하는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와 대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과거의 영화에 매달리고 다시 찾아올 성공만을 기다리는 그들과 달리 어떤 이에게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용서받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어떤이에게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쳐다보는 사랑이, 또 어떤이에게는 손님하나 없이 지내는 불황이 끝나는 것이, 그리고 어떤이에는 음악에 대한 충만한 열정같은 현재가 더없이 절실하다. 과거를 돌아보더라도 현재에 충실하면서 현재를 즐기는 마을 주민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의 교훈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싶다. 그리고 그들과 방송국 사람들이 맺는 인연들은 이 영화가 가진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인지시켜준다. 영화는 어느 순간에도 비정하지 못하고 따뜻하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렇게 찾아온 성공앞에 잠시 잊혀졌던 현실의 고민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폭발적인 반응으로 최곤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거대 매니지먼트회사는 그들과 친분이 있는 서울 방송국 국장을 통해 최곤을 민수와 떼어놓으려 한다. 많은 아버지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자식을 놓아주는 것처럼 민수는 최곤을 위해 그의 곁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아버지로서의 선택이자 부성애이다.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는 민수의 속마음을 모르는 최곤의 입에서 '배신'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가 다시는 안보겠다고 맘에도 없는 말이 나올지언정 민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혼자서 담배라도 사서 피울 수 있을까, 내가 없어도 사고는 치지 않을까? 수습은 누가 해줄까하는 그런 걱정만이 그의 앞길을 막을 뿐이다. 그만큼 20년이라는 세월은 그들을 단순한 가수-매니저의 관계가 아닌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로 성장시킨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를 느낀 아들이 그제서야 아버지의 존재를 느끼는 것처럼 최곤은 그제서야 민수의 존재를 몸으로 느낀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을 자신보다 잘 아는 민수를 통해 그는 비로소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민수의 부재속에서 서울로 이관되었음에도 가는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매니저 계약을 뿌리친 최곤은 그가 그렇게 남기 싫어했던 영월에서 홀로 전국의 청취자들을 상대로 새롭게 방송을 시작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는 호영의 사연을 내보내면서 비로소 그는 마음을 열고 진심을 호소한다. 당신이 필요하다고, 내 곁에는 당신이 있어야 한다고. 물론 그것은 그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예전의 그런 최곤의 모습이 아닌, 아버지의 존재, 민수의 존재를 오롯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새로운 최곤의 모습이다. 그 진심어린 눈물과 민수를 찾아헤매는 박중훈의 목소리는 영화 내내 짜증나는 표정으로 일관했던 최곤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진심어린 표정을 가능하게 하며,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나던 박중훈의 연기를 무장해제시키고 오롯이 최곤의 그것으로 만들어내고 만다. 그리고 그 진심어린 최곤의 외침은 민수를 그의 곁으로 돌아오게 한다.
예정대로라면 잠시 지나가는 공간이어야 했던 영월에서 최곤은 계속해서 최곤은 그렇게 현실에 충실하면서 사람들과 더불어 즐기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비로서 그는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훌훌 어른으로 성장한다. 비를 맞으면서 말없이 최곤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민수의 모습과 그런 돌아온 민수를 보면서 씩 웃는 최곤의 모습은 그들이 행복할 것이며 서로에게 가장 큰 존재로 남을 것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한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명장면이었음..) 다시 예전의 가수왕이 되지 못한들 어떠하며 라디오 스타에 머물른들 어떠한가? 살벌한 경쟁 속에서 나와서 그들은 이제 보다 즐기면서 행복하게 라디오 스타로 남게 될 것이다. 더이상 그들은 강 PD가 닮고 싶어지지 않은 실패한 현재가 아닌, 진정으로 성숙해진 자아로, 현재로 태어난 것이다. 최곤도 민수도 방송국 사람들도 그리고 관객들고 이 과정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다. 라디오 스타인들 어떠하리오!!
이준익 감독이 말했듯이 이 영화는 안성기와 박중훈이라는 한국의 대배우들에게 바치는 헌정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건 삶에 지치고 과거의 영화에만 집착하는, 그래서 현실에 충실하지 못하는 모든 이에게 바치는 영화이기도 하다. 스스로 민수가, 최곤이 된 안성기와 박중훈은 그들의 존재감을 스크린위에 또렷이 아로새기어 넣는다. 특히 안성기는 그 자체가 민수인 듯, 행동, 대사, 표정 어느 작은 하나까지도 그의 것으로 아니 민수처럼 행동한다. 당연히, 그가 거기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만큼 그는 당연했다. 박중훈 역시, 그간의 흥행실패의 부담을 훌훌털고 자신의 이야기와 가까운 이 영화에서 오랜만에 진심을 담아 연기를 해낸다. 이 노련한 두 배우와 이준익 감독은 그렇게 자신들을 '라디오 스타'로 각인시키는데 성공한다.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분명하며 쉽다. 이 영화의 서사체계는 관객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기대를 저버리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한길을 걷는다. 그렇지만 짜임새 있으며 인과관계의 구성도 두렷하고 서사체계를 이루는 기본적인 세가지-인과율, 시간, 공간-를 조화롭게 녹여낸다. 좋은 영화는 많다. 진정성이 담긴 영화도 많다. 그리고 쉬운 영화도 많다. 하지만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를 가지고 그 안에 진심을 담아내는 장인의 혼을 느끼게하는 영화를 만난다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영화를 하나 만난 셈이다. 별다른 기교도 없고 효과도 없고 꾸밈도 없고 스타일도 돋보이지 않지만 묵묵하게 충실한 영화언어로 가득한 이 영화, 참 따뜻하다. 이보다 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줄곧 잊지 않기도 힘들다.
이 영화는 우리 모두를 위한 영화다. 텍스트적으로도 과거와 현재,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 소통의 관계같은 이 많은 텍스트를 이 영화안에서 담고 있다. 과거와 현재는 조화를 이루고,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재를 인정해 내고, 사람들은 서로 믿고 소통해나간다. 게다가 그 반복되는 갈등과 화해의 과정 속에서도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착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참 쉬워보이고 간단한 내용인데 그 이상으로 풍부하고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영화다. 그리고 영화는 진정 이래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감히 최고라는 말이 아쉽지 않는 좋은 영화이다.
영화는 진정 이래야 한다
니체는 과거를 망각하라고 했다. 과거를 망각하고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고민을 떨쳐내고 현재에 충실하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과거의 성찰을 통해 현재, 더 나아가 미래의 나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과거는 잊어야 하는 것인가? 간직해야 하는 것인가? 적어도 극중 박중훈이 분하는 최곤은 88년도 가수왕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지금까지 자신이 최고의 스타인듯 행동하는 인물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조용필쯤 되는 스타인 것처럼 생각하고(생각하고 싶어하지만) 미사리의 음악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고작인 현실을 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언제나 한결같은 나무로 존재하는 박민수는 20년의 세월을 최곤의 옆에서 함께 해온 매니저다. 온갖 사고와 말썽을 피고다니는 최곤의 곁에서 그는 묵묵히 형처럼, 아버지처럼 최곤의 뒤치닥거리를 한다. 초반에 사고를 치고 경찰서에 끌러간 최곤의 옆에서, 조사를 하는 경찰에게 최곤의 이름, 주민등록번호를 대신 불러주면서 "차라리 내가 때린 거였으면 좋겠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고 호소하는 박민수의 진심어린 표정에서 이들의 외적인 관계와 내적인 관계가 모두 드러난다.
그둘은 스타와 매니저의 관계이면서, 동생과 형의 관계이며 동시에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이다. 결국은 사고를 치고 통폐합을 3달앞둔 강원도 영월의 라디오 DJ를 맡아야하는 신분으로 전락한 최곤의 칭얼댐과 짜증속에도 민수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힘을 다해 최선의 선택이 되도록 할 뿐이다. 주목할 것은 그런 과정에서 보여지는 둘의 행동과 대사에서 둘의 관계가 일차원적인 스타-매니저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곤이 민수에게 내는 짜증섞인 투정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그것과 비슷하며, 민수가 최곤에게 때로는 화를 내면서 때로는 달래가면서 그의 재기와 성공을 비는 모습은 아들의 성공을 위해 묵묵히 인내하고 뒷바라지 하는 영락없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최곤이 영월에서 라디오 DJ로 자리잡아 어느정도의 성공하여 100회특집 공개방송을 하기전과 후로 이 영화의 텍스트를 구분해볼 수 있을 듯 싶다. 그렇게 전반부는 과거와의 조우와 망각의 과정 속에서 사람과의 소통과 관계를 발견하면서 그제야 현재를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게 된 아이(최곤)의 성장을 그리고 있다면, 후반부는 아버지(박민수)의 부재를 겪음으로서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현재에 충실하게 되는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전반부에서 최곤과 민수는 영월이라는 도시에서 과거와 조우하며 자신을 치유하고 현재를 바라보는 시서을 갖는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끔 하는 건 역시 사람이다. 멀리 외진 땅에 와서 라디오를 진행하는 최곤에게는 짜증나는 일이고 신세한탄할 일이지만 영월주민에게는 새로운 삶의 낙이 된다. 여전히 자신이 최고의 가수인지 아는 최곤은 무성의한 진행과 방송사고를 일으키지만 그 지역 주민들에게는 웃음을 선사하는 새로운 소일거리가 된다. 덕분에 최곤의 무성의한 진행은 우연한 계기에 주민들의 의사표출구이자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로서 자리잡는 데 성공하게 된다. 자신들이 20년 전 열광적인 환영을 받은 기억이 여전히 존재하는(그들이 주로가는 해장국집에 걸린 최곤의 사인) 그곳에서 그들은 열정으로 가득찬 젊은 락 밴드 '이스트리버'를 만나고 다방, 중국집, 철물점, 세탁소 주인과 종업원들, 그리고 영월주민을 만난다. 여전히 88년도 가수왕이라는 타이틀에 목을 매달고는 있지만 그렇게 최곤은 세상과 만나고 사람과 만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과정을 알아간다. 그 옆에서 함께 방송을 만들어가는 강 PD(役 최정윤), 박기사, 지국장까지 이들은 처음의 식어버려진 열정을 최대한으로 끌어들이면서 하나되는 기쁨을 뒤늦게야 느껴볼 수 있다.
어느정도의 성공후에 강 PD가 술자리에서 하는 대사는 적절한 시점에서 영화를 환기시켜준다. "내가 왜 청취율에 신경쓰며 바락바락일하는 지 아세요? 당신, 당신, 그리고 당신들처럼 되버릴까봐!!" 이 말에는 과거의 성공과 향수에 매달린 채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 대한 지탄섞인 애정이 담겨있다. 88년도 가수왕이라는 타이틀 하나로 여전히 스타라는, 최고라는 착가에 빠져있는 최곤이나 자신의 스타가 다시 최정성에 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매니저 민수나 "내가 예전에는 말야"라며 과거의 이야기를 줄곧 꺼내는 지국장이 박기사나 사실은 모두 똑같이 과거에 연연하고 그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물이다.
어쩌면 '라디오 스타'라는 이 제목은 최곤 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를 지칭하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TV에 밀린 라디오라는 매체에서의 스타는 결국은 한물 간 스타, 과거에 매달린 이들을 통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최곤을 통해 우리 스스로 과거를 버리고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거다. 이는 영화의 에피소드를 제공하는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와 대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과거의 영화에 매달리고 다시 찾아올 성공만을 기다리는 그들과 달리 어떤 이에게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용서받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어떤이에게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쳐다보는 사랑이, 또 어떤이에게는 손님하나 없이 지내는 불황이 끝나는 것이, 그리고 어떤이에는 음악에 대한 충만한 열정같은 현재가 더없이 절실하다. 과거를 돌아보더라도 현재에 충실하면서 현재를 즐기는 마을 주민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의 교훈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싶다. 그리고 그들과 방송국 사람들이 맺는 인연들은 이 영화가 가진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인지시켜준다. 영화는 어느 순간에도 비정하지 못하고 따뜻하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렇게 찾아온 성공앞에 잠시 잊혀졌던 현실의 고민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폭발적인 반응으로 최곤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거대 매니지먼트회사는 그들과 친분이 있는 서울 방송국 국장을 통해 최곤을 민수와 떼어놓으려 한다. 많은 아버지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자식을 놓아주는 것처럼 민수는 최곤을 위해 그의 곁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아버지로서의 선택이자 부성애이다.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는 민수의 속마음을 모르는 최곤의 입에서 '배신'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가 다시는 안보겠다고 맘에도 없는 말이 나올지언정 민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혼자서 담배라도 사서 피울 수 있을까, 내가 없어도 사고는 치지 않을까? 수습은 누가 해줄까하는 그런 걱정만이 그의 앞길을 막을 뿐이다. 그만큼 20년이라는 세월은 그들을 단순한 가수-매니저의 관계가 아닌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로 성장시킨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를 느낀 아들이 그제서야 아버지의 존재를 느끼는 것처럼 최곤은 그제서야 민수의 존재를 몸으로 느낀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을 자신보다 잘 아는 민수를 통해 그는 비로소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민수의 부재속에서 서울로 이관되었음에도 가는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매니저 계약을 뿌리친 최곤은 그가 그렇게 남기 싫어했던 영월에서 홀로 전국의 청취자들을 상대로 새롭게 방송을 시작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는 호영의 사연을 내보내면서 비로소 그는 마음을 열고 진심을 호소한다. 당신이 필요하다고, 내 곁에는 당신이 있어야 한다고. 물론 그것은 그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예전의 그런 최곤의 모습이 아닌, 아버지의 존재, 민수의 존재를 오롯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새로운 최곤의 모습이다. 그 진심어린 눈물과 민수를 찾아헤매는 박중훈의 목소리는 영화 내내 짜증나는 표정으로 일관했던 최곤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진심어린 표정을 가능하게 하며,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나던 박중훈의 연기를 무장해제시키고 오롯이 최곤의 그것으로 만들어내고 만다. 그리고 그 진심어린 최곤의 외침은 민수를 그의 곁으로 돌아오게 한다.
예정대로라면 잠시 지나가는 공간이어야 했던 영월에서 최곤은 계속해서 최곤은 그렇게 현실에 충실하면서 사람들과 더불어 즐기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비로서 그는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훌훌 어른으로 성장한다. 비를 맞으면서 말없이 최곤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민수의 모습과 그런 돌아온 민수를 보면서 씩 웃는 최곤의 모습은 그들이 행복할 것이며 서로에게 가장 큰 존재로 남을 것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한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명장면이었음..) 다시 예전의 가수왕이 되지 못한들 어떠하며 라디오 스타에 머물른들 어떠한가? 살벌한 경쟁 속에서 나와서 그들은 이제 보다 즐기면서 행복하게 라디오 스타로 남게 될 것이다. 더이상 그들은 강 PD가 닮고 싶어지지 않은 실패한 현재가 아닌, 진정으로 성숙해진 자아로, 현재로 태어난 것이다. 최곤도 민수도 방송국 사람들도 그리고 관객들고 이 과정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다. 라디오 스타인들 어떠하리오!!
이준익 감독이 말했듯이 이 영화는 안성기와 박중훈이라는 한국의 대배우들에게 바치는 헌정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건 삶에 지치고 과거의 영화에만 집착하는, 그래서 현실에 충실하지 못하는 모든 이에게 바치는 영화이기도 하다. 스스로 민수가, 최곤이 된 안성기와 박중훈은 그들의 존재감을 스크린위에 또렷이 아로새기어 넣는다. 특히 안성기는 그 자체가 민수인 듯, 행동, 대사, 표정 어느 작은 하나까지도 그의 것으로 아니 민수처럼 행동한다. 당연히, 그가 거기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만큼 그는 당연했다. 박중훈 역시, 그간의 흥행실패의 부담을 훌훌털고 자신의 이야기와 가까운 이 영화에서 오랜만에 진심을 담아 연기를 해낸다. 이 노련한 두 배우와 이준익 감독은 그렇게 자신들을 '라디오 스타'로 각인시키는데 성공한다.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분명하며 쉽다. 이 영화의 서사체계는 관객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기대를 저버리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한길을 걷는다. 그렇지만 짜임새 있으며 인과관계의 구성도 두렷하고 서사체계를 이루는 기본적인 세가지-인과율, 시간, 공간-를 조화롭게 녹여낸다. 좋은 영화는 많다. 진정성이 담긴 영화도 많다. 그리고 쉬운 영화도 많다. 하지만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를 가지고 그 안에 진심을 담아내는 장인의 혼을 느끼게하는 영화를 만난다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영화를 하나 만난 셈이다. 별다른 기교도 없고 효과도 없고 꾸밈도 없고 스타일도 돋보이지 않지만 묵묵하게 충실한 영화언어로 가득한 이 영화, 참 따뜻하다. 이보다 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줄곧 잊지 않기도 힘들다.
이 영화는 우리 모두를 위한 영화다. 텍스트적으로도 과거와 현재,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 소통의 관계같은 이 많은 텍스트를 이 영화안에서 담고 있다. 과거와 현재는 조화를 이루고,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재를 인정해 내고, 사람들은 서로 믿고 소통해나간다. 게다가 그 반복되는 갈등과 화해의 과정 속에서도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착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참 쉬워보이고 간단한 내용인데 그 이상으로 풍부하고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영화다. 그리고 영화는 진정 이래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감히 최고라는 말이 아쉽지 않는 좋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