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그리고 세월

신혜인200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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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그리고 세월

g.o.d가 몇 명이었는지 아직도 모른다.

해체했는지 아닌지 아직도 모른다.

뚱뚱하고 덩치 큰, 안경 낀 애가 미성으로 노래를 불렀고

(비슷한 느낌에 처음에는 ‘성시경과 아이들’ 뭐 이런 걸로 착각했다),

올망졸망 귀여운 몇 명과 흑인처럼 키가 삐죽한 한 명이 뭐라고

열심히 랩을 했던 거 말고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의 노래도 사실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유일하게 생각나는 노래 구절도 그나마 g.o.d가 부른 게 아니라

전지현이 싫어! 싫어! 하고 고함을 지르던 부분뿐이다.

그때 아 쟤는 또 생머리 흔들면서 고함 지르냐, 지겨워, 하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그나마 g.o.d라는 이름을 잊지 않고 있는 건 손호영 때문이다.

아니, 다시 말하면 어느 쇼 프로그램의 코너였던

'g.o.d의 육아일기’ 때문이다.

 

쟤, 나이도 젊은 남자애가 어쩜 저렇게 애를 잘 본다니.

 

그 코너도 그닥 열심히 보던 편은 아니었다.
나는 열아홉인가 스무 살인가 그랬고,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을지,
괜찮은 남자친구를 사귀어서 남부럽지 않은 스무 살의 생활을 하는 법은 대체 무엇인지 연구하느라 바빴다.


근데 그런 길은 도통 오지 않았고 그래서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하나도 모른다.

그런 연구에 지치면 가끔 엄마 옆에 털썩 주저앉아서

엄마가 뭐 하는지 구경했다.

엄마는 그 프로그램을 보는 걸 좋아했다.

 재민이가 하도 이뻐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풀파워 서클 렌즈를 낀 것처럼, 촉촉한 포도알 같은 눈망울을 한 원조 훈남 아가 재민이는

안 그래도 아기들에게 너그러운 엄마들의 마음을

얼마든지 사로잡을 만큼 충분히 귀여웠다.

 

하지만 그것보단, 팔팔한 20대 장정 여럿이서

애 하나 가지고 얼르고 달래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매는 걸 보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감탄하며 말했던 것이다.

쟤, 나이도 젊은 남자애가 어쩜 저렇게 애를 잘 본다니.

그게 손호영이었다.

털썩 주저앉아서 들여다본 브라운관에서는

말간 얼굴을 하고 근육이라곤 요만큼도 없어 보이는 가느다란 팔을 한,

머리가 노란 젊은 남자애가 애를 안고 업고 물고 빨고 하고 있었다.

잠 안 자고 칭얼거리는 아기를 들쳐업었다가 안고 흔들어서 재우는 얼굴엔

싫은 기색 하나 없었다.

덩치 큰 다른 멤버들 품에서 칭얼거리던 아기는 가냘플 만큼 왜소한 노란 머리 남자애 품 안에서 세상 모르게 단잠을 잤다.

웹에 들어가니 모든 건 가식!

지오디 멤버들은 카메라 돌아갈 때만 애한테 잘해줄 뿐이지 다 방송용이다!

그런 글들이 난무했다.

엄마에게 엄마, 쟤들 카메라 돌아갈 때만 애한테 잘해준대, 라고 하자

엄마가 준엄하게 말했다.

엄마들은 다 안다. 그렇게 했으면 애가 저렇게 안 따른다.

 

애를 안 키워봤으니까 모르고, 모르니까 할 말도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저거 진짠가 본데, 했던 게 손호영이 병원에 입원했던 에피소드였다.

 

병원에 입원한 손호영을 문병하러 간 재민이를 보고

간호사들이 귀엽다며 과자를 주었다.

아기들은 무조건 간식이든 뭐든 입에 덥썩 넣고 본다는 건

애를 안 키워봤고 엄마도 아닌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재민이는 그 큰 눈을 멀뚱멀뚱 뜨더니,

과자를 가지고 아장아장 걸어갔다.

재민이는 과자를 꼭 쥐고 손호영의 병실로 들어가

과자를 꼭 쥔 손을 펼쳐 내밀었다.

앗, 진짠가보네.

아기에게 과자를 양보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사랑이고,

아기가 직접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자기에게 사랑을 준 사람일 경우가 아니던가.

 

그리하여 나는 지오디의 노래는 하나도 몰랐지만

적어도 손호영에게는 급호감, 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정도는 늘 생각했던 것이다.

아이고 저 총각, 참하게 생겨서 애기도 잘 보네.

 

그리고 한동안 잊어버리고 살다가 회사 앞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여직원들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저기 봐, 손호영이야 손호영. 처음엔 몰랐다.

노란 머리에 애 잘 보던 참한 총각은 수염을 기르고

빳빳한 검은 머리를 하고 밥을 먹고 있었다.

언뜻 매치가 안 됐다. 손호영이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인데.

아, 그 애 잘 보던 총각. 뽀얀 얼굴은 사라지고, 약간 거무튀튀해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은 ‘나 절대 애 같은 거 잘 본 적 없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삼겹살을 상추에 싸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 세월이란 건 가는구나.

 

그러다 며칠 전 아침 잠에서 깰 겸 Mnet을 틀었더니

갑자기 그 애 잘 보던 총각,

회사 앞 식당에서 밥 먹던 그 총각이 다시 나타났던 것이다.

카메라를 마구 야리면서, 아이를 안았던 가느다란 팔은 어느새 울퉁불퉁, 뽀얀 피부도 남자 효리처럼 가무잡잡, 팔뚝을 마구 과시하면서

지금부터 남자에 대해 가르쳐드리겠다며 노래했다.

그놈이 섹시하다고 말하면 일단은 위험해, 조심해… 딱 한번만 원해, 함께 하기를 원해…. 말만 하면 다해, 내일 아침엔 뭐해… 섹시 다이너마이트 길건 등등과 사정없이 부비적거리면서, 네가 괜찮다면 지금부터 난 오케이… 라며 특유의 눈웃음을 버전 업해 날리는 그를 보자마자

아니, 재민이가 보면 어쩔려고 그래,

하며 얼빠진 혼잣말을 했다.

마치 아이에게 자상하고 부인에게 다정하던 옆집의 부러운 남편이

캬바레 가서 마성의 남자로 날리고 있는 걸 엿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황당한 생각이었다.

그게 너무나 황당한 생각이라고 스스로 황당해하면서,

아침부터 괜히 바닥에 앉아서, Mnet을 멍하니 보면서,

아직 잠이 덜 깨서 눈꼽을 떼면서,

나는 쓸쓸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세월이 너무 잘 간다.

세월이란 놈은, 손호영을 언제까지나 애를 안고 해맑게 웃고 있도록 내버려두질 않는 것이다.

어린이집을 차릴 것도 아니고, 손호영도 먹고살아야 하는 거고,

나도 먹고살아야 하는 거고…

그렇게 먹고사는 문제와 세월의 살벌함이 아침부터 조여 들어와서,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숨이 막혔다.

여름처럼 가을도 사정없이 잘 간다.

하긴, 뭐든 못 갈 리 없다.

 

"매거진넷"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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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완전 웃음.

앤 대공감.

 

그래, 세월은 흐르고,

아이를 얼르던 손호영도,

g.o.d. 가 세상에서 가장 맛깔스러운 랩을 한다고 믿던 나도,

이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