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FF-키갈리에서의 일요일]

양창모200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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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키갈리에서의 일요일]


14일 밤 9시. 남포동 대영시네마 1관.

 

 

 키갈리는 르완다의 수도다.

 이 영화는 94년 르완다 내전을 배경으로 한 로멘스 영화이면서

 르완다 내전을 불러일으킨 '다름'에 대한 증오심을 응시하고

 끔찍한 살육을 수수방관한 국제사회에 대해 비판하는 리얼리즘 영화다.

 

[PIFF-키갈리에서의 일요일]

 

키갈리에서의 일요일.로베르 파브로.캐나다.인터내셔널 프리미어.

 

 

 캐나다 퀘벡에서 온 다큐작가 베르나르. 아프리카에 퍼져있는 에이즈에 대한 다큐를 찍고 있던 그는 '장티유'라는 호텔 웨이트리스와 사랑에 빠진다. 결혼을 결심하고 캐나다로 떠나려 하지만 르완다 내전으로 인해 둘은 헤어지게 된다. 게다가 장티유는 르완다 내전의 피해자인 투치족의 생김새를 갖고 있다. 내전이 끝나고 돌아온 베르나르는 장티유를 찾아 헤메인다. 내전의 실상과 원인을 치열하게 추적하면서. 마침내 그는 장티유를 찾지만 그녀는 내전이 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

 

 영화는 장티유와 베르나르가 사랑했던 과거와 베르나르가 장티유를 찾아다니는 현재를 교차로 반복한다. 감독은 시제에 색감을 달리 써 과거는 따뜻한 느낌이, 현재엔 황량한 느낌을 주려 했다. 로멘스를 활용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르완다 내전이 준 아픈 상처인 듯 하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이 전쟁으로 인해 어떻게 망가져갔는지, 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르완다 내전은 서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끼리 피흘린 시간이었다. 베르나르를 따르던 동료가 후투반군이 되어 장티유를 빼앗아가고 웃음많은 호텔 종업원이 살기 위해 자신의 친구들을 죽여야 했다. 그 바탕에는 증오가 있다. 다른 인종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감이 이 내전을 낳은 것이다.

 

 영화는 또한 이런 상황을 수수방관한 르완다 정부와 (캐나다를 포함한) 국제사회에도 비난의 시선을 보낸다. 내전이 일어나기 직전과 직후, 인종갈등이 악화되는 분위기를 파악한 베르나르는 이 사태를 막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한다. 하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 르완다 정부는 후투족에게 당한 캐나다 신부의 죽음을 단순 사고로 처리해버리고, 내전 직후 찾아간 UN군의 장군은 자조적으로 "UN의 책임자들은 수천명의 아프리카인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국제사회의 무관심속에서 르완다는 아파했다고, 감독은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이 기본적으로 저널리스트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다큐 작가'인 주인공 베르나르는 감독의 현신인지 모른다. "날 찍지 말고, 지금 우리들에게 퍼진 증오에 대해 찍어"라는 에이즈환자의 말과 "영상을 보여주어도 광기는 멈추지 않겠지만, 일단 시도는 해봐야 한다"는 베르나르의 혼잣말은 감독이 지니고 있는 사명감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기도 하기에, 이런 점에선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로멘스가 엉성하다. 처음에 베르나르와 장티유의 갈등(나이많은 베르나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장티유의 목적은 비자를 얻어 서양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은 큰 개연성없이 '사랑'으로 해결되어 버린다. 결혼 승낙을 얻기 위해 장티유가 찾아간 그녀의 아버지가 완강히 반대하다 베르나르가 찾아오자 갑자기 태도가 바뀌는 장면에선 실소가 터질 정도였다. 망가진 장티유, 그녀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는 장면에서도 큰 갈등이 없이 속전속결로 진행된다. 괴로워하면서도 그녀의 청을 들어주게 되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일반 로멘스 영화였다면 패착이다.

 

 이 결점을 덮어주는 것은 감독의 '증오와 고통에 대한' 치밀한 성찰일 것이다. 장티유가 감금당했던 방에서 그녀의 고통을 상상하는 베르나르의 장면은 그 절정이다. 장티유가 강간당하는 모습과 아파하는 베르나르의 모습이 교차로 반복되면서 우리의 가슴에 박힌다. 아, 우리네들은 사랑하기도 부족한 시간에 왜이리 서로 증오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