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시인과 동백꽃을 생각하면서 오선생 내외와 벼르고 벼르던 선운사의 꽃무릇을 보러 다녀왔다. 평소에 어디 좀 같이 가자고 조르면 늘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번번이 딱지를 놓던 오선생이 이번엔 무엇 땜에 마음이 동했는지 쾌히 승낙을 한다. 서울서 새벽 4시쯤 출발해서 선운사에 도착하니 7시 반쯤되었다. 월요일이라 선운사 입구에 차 몇 대만 주차되어 있을 뿐 한적하기 그지없다.
차를 대고 오선생이 말없이 건네주는 담배 한 대를 피워물며 주위를 둘러보니 나무밑둥마다 작은 울타리처럼 꽃무릇을 심어놓았다. 잎사귀는 없고 꽃대만 싱겁게 죽 올라간 것이 왠지 춥게만 느껴진다. 나 역시 옷을 여몄다. 입구 초입에서 문지기 아저씨에게 꽃무릇이 어디에 많으냐고 물으니 올라가면 지천이란다. 힘없이 외객에게 길을 열어주는 안개를 걷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 꽃무릇 한무덤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진달래처럼 무리져서 피어있기보다는 제 각기 자존심을 내세우면서도 오종종하게 모여있다. 하지만 나도 오선생 내외도 꽃무릇과의 첫대면이 다소 어색했던 탓일까...마치 처음보는 사람에게 일부러 무관심한 척 하려는 듯이 그냥 지나쳤다. 도솔천을 끼고 선운사를 향해 조금 걸었다. 울창한 나무들이 마치 지붕을 이었으되 군데군데 비새는 구멍으로 아침햇살이 비대신 내리쬐고 있다. 한두 송이의 꽃무릇이 우리의 발자국 소리에 놀란 토끼처럼 고개를 빼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꽃이 있으랴만, 꽃무릇은 내게는 왠지 다른 꽃과는 그 이미지가 확연하게 다르게 다가온다. 속세 여인과 스님의 비극적 사랑이라는 전설도 또한 그렇지만 잎사귀 없이 꽃대 하나만 올라 꽃을 피우는 것도 그렇고, 꽃이 질 때쯤해서 잎사귀가 나는 것도 그렇다.아침햇살을 머리를 받고 있는 그 빨간 꽃술은 또 어떤가. 무리져서 피어있는 놈들은 강렬해서 좋고 큰 고목 밑중에 홀로, 혹은 두 세가지가 오른 것은 청초해서 좋다.꽃무릇은 이렇듯 이중적 이미지를 지녔다. 누가 꽃무릇에 관한 전설을 지어냈는지는 모르지만 전설과 그 전설을 증거하는 증거물이 이렇게 잘 맞아 떨어지는 것도 없으리라. 전설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서 일단 그 전설을 믿어보기로 한다.
선운사는 봄에는 동백으로 가을에는 꽃무릇과 그 수려한 단풍으로 많은 탐방객을 끌고 있는 매우 대중적이면서도 친근한 사찰이다. 그러면서도 속된 느낌이 없는 것은 선운사에 배여있는 짙은 문학과 예술의 향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이 그 나름대로의 애잔한 설화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법하지만 선운사만큼 그렇게 대중들에게 묘한 문학적 감흥을 일으키는 사찰도 없으리라. 그래서 가수 송창식은 선운사와 관련하여 이렇게 노래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임아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이렇듯 동백꽃의 애잔한 이미지가 선운사를 감싸고 있는 이미지가 된 지 오래고 이러한 이미지가 문학의 향기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미당 서정주는 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최영미의 가 가장 좋다. 무엇보다 "~더군. ~이더군" 하는 절묘한 마무리가 너무 감상적이지도 않으면서 사랑의 아픔을 오래 삭히고 삭힌 체념의 결과인 듯, 선부른 달관이 아니어서 좋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보니, 오선생이 사라졌다. 뭐하나 싶었는데, 저쪽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비껴 서있다. 마치 어두운 연극무대에서 처음 서서 눈부셔하는 초보 배우처럼 꽃무릇 몇대가 이른 아침의 햇살을 받고 있다. 나도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의 설레는 마음으로 몇 컽 찍었다. 사실 이른 새벽에 선운사를 나선 이유도 바로 이런 그림을 보기 위함이었다. 일찍 나선 보람 중 하나를 얻었다.
어느 글에서 보니까, 대개 이렇게 폼나는 꽃무릇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손에 의해 "인위적"으로 심어진 것이라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되, 다음 사진은 그런 의구심을 족히 받음직한 것이다. 만약 이것이 단순히 호사가들의 입방아에서 나온 얘기에 귀얇은 나의 마음이 동한 것이라면 그저 저 거룩한 생명에 불경의 죄를 지은 것이로다... 어찌 저렇게 절묘할 수 있단 말인가? 썩은 고목에 어린 생명들이 숨죽여 목숨을 부지하고 있고, 그 틈바구니에 꽃무릇 세 주가 비집어 터를 잡았다.
얼추 선운사밖의 꽃무릇을 찍고 조급한 마음으로 선운사 경내로 들어갔다. 순간 카메라를 맨 일군의 아줌마부대가 경내를 이미 모두 섭렵했는지 산문밖으로 나온다. 그들의 시끌벅적함에 엷은 분노가 느껴진다. 하지만 제3자가 보기엔 똑같게 보였을 나를 생각하니 어깨에 힘이 빠지고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경내를 지나가다가 노스님에게 한 소릴 들었다.
"에이~ 사진 찍는 사람들, 미워....반갑지 않아..." / "............."
오선생이나 나나 몸둘 바를 몰랐다. 다행히 그 어색함을 오선생 안사람이 메워주었다. DSLR이 보급된 이후, 이제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사람이 많아지니ㅡ, 그것이 변고다. 해서 경내에서는 별로 사진을 찍지 못하고 내려왔다.
부랴부랴 선운사 경내를 나와 도솔천을 따라 도솔암 쪽으로 발을 옮겼다. 군락을 이루기보다는 도솔천 이쪽 저쪽에 듬성듬성 피어있는 것이 우리를 놀리는 것 같다.
도솔천 저쪽에 있는 놈을 보기 위해 건너니 이쪽 놈이 예뻐 보인다. 꼭 놈들에게 속는 기분이 들어 다시 건너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저쪽 건너편으로 녹차밭이 제법 넓게 펼쳐져있다. 오선생 안사람 얘기로는 을 촬영한 장소라고 ....애틋한 사랑의 속삭임이 있었으되, 그 내막을 알지 못하는 내게는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오선생 내외는 참 조용한 부부다. 아무리 죽마고우라도 서로의 침묵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친구가 있다. 딱히 뭐라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부담스러움을 메우기 위한 몇마디는 먹은 것 없는데도 계속 배부르게 느껴지는 헛배처럼 거북살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이 인간과 함께 있으면 헛배 부를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지나 나나 그렇게 호사스러운 인간들이 못되어 그런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되, 하여간 이 인간하고는 아무 말없이 며칠 간을 걷는다해도 침묵의 무게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도솔천을 다시 건너 도솔암쪽을 향해 막연한 걸음을 재촉하다가 마침내 꽃무릇 군락지에 도착했나보다. 이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무수한 꽃무릇이 길양쪽에 퍼드러졌다. 다만 전에 보았던 꽃무릇 사진과는 달리 무성한 느낌이 없달까?? 그 동안 가뭄이 심하기도 했거니와, 꽃대 오르는 시기에 꽃잎이 나지 않는 꽃무릇의 특성 때문인 것 같다. 잠시, 저것들을 어떻게 하면 무성하게 보이게 할까를 고민했으나, 이내 그만 두었다.
사실 꽃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꽃을 그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즐기기보다는 찍으려고만 하는 내가 무척 속돼 보인다. 사실 꼭 찍을 이유도 없고 찍는다고 해서 누구 줄 것도 아닌 것을, 뭣땜에 즐기지도 못하고 집착하는 것인지....더 이상 도솔암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발길을 돌렸다.
선운사 건너편 매점까지 내려 오니 1시쯤....선착객들이 도솔암에 오르기 위해 잠시 머물러있다. 먼저 다녀왔다는 것이 묘한 뿌듯함으로 남아서 파전과 묵 무침을 먹으며 앉아 있는 내내 기분이 알싸했다. 그리고 서울에 도착하니, 3시쯤... 내나 오선생내외나 전날 잠을 못자 비몽사몽이었다.
선운사 꽃무릇 이야기
MY PHOTO STORY 2006
두번째: 선운사 꽃무릇 이야기.
서정주 시인과 동백꽃을 생각하면서 오선생 내외와 벼르고 벼르던 선운사의 꽃무릇을 보러 다녀왔다. 평소에 어디 좀 같이 가자고 조르면 늘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번번이 딱지를 놓던 오선생이 이번엔 무엇 땜에 마음이 동했는지 쾌히 승낙을 한다. 서울서 새벽 4시쯤 출발해서 선운사에 도착하니 7시 반쯤되었다. 월요일이라 선운사 입구에 차 몇 대만 주차되어 있을 뿐 한적하기 그지없다.
차를 대고 오선생이 말없이 건네주는 담배 한 대를 피워물며 주위를 둘러보니 나무밑둥마다 작은 울타리처럼 꽃무릇을 심어놓았다. 잎사귀는 없고 꽃대만 싱겁게 죽 올라간 것이 왠지 춥게만 느껴진다. 나 역시 옷을 여몄다. 입구 초입에서 문지기 아저씨에게 꽃무릇이 어디에 많으냐고 물으니 올라가면 지천이란다. 힘없이 외객에게 길을 열어주는 안개를 걷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 꽃무릇 한무덤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진달래처럼 무리져서 피어있기보다는 제 각기 자존심을 내세우면서도 오종종하게 모여있다. 하지만 나도 오선생 내외도 꽃무릇과의 첫대면이 다소 어색했던 탓일까...마치 처음보는 사람에게 일부러 무관심한 척 하려는 듯이 그냥 지나쳤다. 도솔천을 끼고 선운사를 향해 조금 걸었다. 울창한 나무들이 마치 지붕을 이었으되 군데군데 비새는 구멍으로 아침햇살이 비대신 내리쬐고 있다. 한두 송이의 꽃무릇이 우리의 발자국 소리에 놀란 토끼처럼 고개를 빼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꽃이 있으랴만, 꽃무릇은 내게는 왠지 다른 꽃과는 그 이미지가 확연하게 다르게 다가온다. 속세 여인과 스님의 비극적 사랑이라는 전설도 또한 그렇지만 잎사귀 없이 꽃대 하나만 올라 꽃을 피우는 것도 그렇고, 꽃이 질 때쯤해서 잎사귀가 나는 것도 그렇다.아침햇살을 머리를 받고 있는 그 빨간 꽃술은 또 어떤가. 무리져서 피어있는 놈들은 강렬해서 좋고 큰 고목 밑중에 홀로, 혹은 두 세가지가 오른 것은 청초해서 좋다.꽃무릇은 이렇듯 이중적 이미지를 지녔다. 누가 꽃무릇에 관한 전설을 지어냈는지는 모르지만 전설과 그 전설을 증거하는 증거물이 이렇게 잘 맞아 떨어지는 것도 없으리라. 전설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서 일단 그 전설을 믿어보기로 한다.
선운사는 봄에는 동백으로 가을에는 꽃무릇과 그 수려한 단풍으로 많은 탐방객을 끌고 있는 매우 대중적이면서도 친근한 사찰이다. 그러면서도 속된 느낌이 없는 것은 선운사에 배여있는 짙은 문학과 예술의 향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이 그 나름대로의 애잔한 설화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법하지만 선운사만큼 그렇게 대중들에게 묘한 문학적 감흥을 일으키는 사찰도 없으리라. 그래서 가수 송창식은 선운사와 관련하여 이렇게 노래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임아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이렇듯 동백꽃의 애잔한 이미지가 선운사를 감싸고 있는 이미지가 된 지 오래고 이러한 이미지가 문학의 향기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미당 서정주는 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최영미의 가 가장 좋다. 무엇보다 "~더군. ~이더군" 하는 절묘한 마무리가 너무 감상적이지도 않으면서 사랑의 아픔을 오래 삭히고 삭힌 체념의 결과인 듯, 선부른 달관이 아니어서 좋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보니, 오선생이 사라졌다. 뭐하나 싶었는데, 저쪽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비껴 서있다. 마치 어두운 연극무대에서 처음 서서 눈부셔하는 초보 배우처럼 꽃무릇 몇대가 이른 아침의 햇살을 받고 있다. 나도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의 설레는 마음으로 몇 컽 찍었다. 사실 이른 새벽에 선운사를 나선 이유도 바로 이런 그림을 보기 위함이었다. 일찍 나선 보람 중 하나를 얻었다.
어느 글에서 보니까, 대개 이렇게 폼나는 꽃무릇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손에 의해 "인위적"으로 심어진 것이라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되, 다음 사진은 그런 의구심을 족히 받음직한 것이다. 만약 이것이 단순히 호사가들의 입방아에서 나온 얘기에 귀얇은 나의 마음이 동한 것이라면 그저 저 거룩한 생명에 불경의 죄를 지은 것이로다... 어찌 저렇게 절묘할 수 있단 말인가? 썩은 고목에 어린 생명들이 숨죽여 목숨을 부지하고 있고, 그 틈바구니에 꽃무릇 세 주가 비집어 터를 잡았다.
얼추 선운사밖의 꽃무릇을 찍고 조급한 마음으로 선운사 경내로 들어갔다. 순간 카메라를 맨 일군의 아줌마부대가 경내를 이미 모두 섭렵했는지 산문밖으로 나온다. 그들의 시끌벅적함에 엷은 분노가 느껴진다. 하지만 제3자가 보기엔 똑같게 보였을 나를 생각하니 어깨에 힘이 빠지고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경내를 지나가다가 노스님에게 한 소릴 들었다.
"에이~ 사진 찍는 사람들, 미워....반갑지 않아..." / "............."
오선생이나 나나 몸둘 바를 몰랐다. 다행히 그 어색함을 오선생 안사람이 메워주었다. DSLR이 보급된 이후, 이제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사람이 많아지니ㅡ, 그것이 변고다. 해서 경내에서는 별로 사진을 찍지 못하고 내려왔다.
부랴부랴 선운사 경내를 나와 도솔천을 따라 도솔암 쪽으로 발을 옮겼다. 군락을 이루기보다는 도솔천 이쪽 저쪽에 듬성듬성 피어있는 것이 우리를 놀리는 것 같다.
도솔천 저쪽에 있는 놈을 보기 위해 건너니 이쪽 놈이 예뻐 보인다. 꼭 놈들에게 속는 기분이 들어 다시 건너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저쪽 건너편으로 녹차밭이 제법 넓게 펼쳐져있다. 오선생 안사람 얘기로는 을 촬영한 장소라고 ....애틋한 사랑의 속삭임이 있었으되, 그 내막을 알지 못하는 내게는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오선생 내외는 참 조용한 부부다. 아무리 죽마고우라도 서로의 침묵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친구가 있다. 딱히 뭐라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부담스러움을 메우기 위한 몇마디는 먹은 것 없는데도 계속 배부르게 느껴지는 헛배처럼 거북살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이 인간과 함께 있으면 헛배 부를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지나 나나 그렇게 호사스러운 인간들이 못되어 그런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되, 하여간 이 인간하고는 아무 말없이 며칠 간을 걷는다해도 침묵의 무게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도솔천을 다시 건너 도솔암쪽을 향해 막연한 걸음을 재촉하다가 마침내 꽃무릇 군락지에 도착했나보다. 이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무수한 꽃무릇이 길양쪽에 퍼드러졌다. 다만 전에 보았던 꽃무릇 사진과는 달리 무성한 느낌이 없달까?? 그 동안 가뭄이 심하기도 했거니와, 꽃대 오르는 시기에 꽃잎이 나지 않는 꽃무릇의 특성 때문인 것 같다. 잠시, 저것들을 어떻게 하면 무성하게 보이게 할까를 고민했으나, 이내 그만 두었다.
사실 꽃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꽃을 그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즐기기보다는 찍으려고만 하는 내가 무척 속돼 보인다. 사실 꼭 찍을 이유도 없고 찍는다고 해서 누구 줄 것도 아닌 것을, 뭣땜에 즐기지도 못하고 집착하는 것인지....더 이상 도솔암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발길을 돌렸다.
선운사 건너편 매점까지 내려 오니 1시쯤....선착객들이 도솔암에 오르기 위해 잠시 머물러있다. 먼저 다녀왔다는 것이 묘한 뿌듯함으로 남아서 파전과 묵 무침을 먹으며 앉아 있는 내내 기분이 알싸했다. 그리고 서울에 도착하니, 3시쯤... 내나 오선생내외나 전날 잠을 못자 비몽사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