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0만t의 물을 정화(淨化)하는 하수처리장 한 편에서 노숙인들은 희망을 건져 올렸다. 서울 송정동 중랑물재생센터(구 중랑하수처리장)의 잿빛 건물 사이를 차로 5분 남짓 달리면, 주황색으로 산뜻하게 칠해진 1층 건물을 만나게 된다. 사랑의 전화 복지재단이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 ‘24시간 게스트하우스’. 이곳에서 거리를 떠돌던 노숙인들은 삶의 주인이 됐다.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하던 이모(39)씨는 외환위기가 터지고 6개월 만에 노숙자 신세가 됐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두 딸은 시골의 부모에게 보냈다. 한 달 동안 거리를 유령처럼 떠돌다 어느 날 우연히 신문 광고란에서 게스트하우스 소개 글을 보게 됐다.
입소 후에 하루 세 끼 챙겨 먹고 따뜻한 방에서 자며 기운을 차렸지만 더 이상 오란 데도, 갈 곳도 없었다. 중졸 학력에 별다른 기술도 없었다. 그래서 바닥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인근 여관에서 화장실 청소를 시작한 날은 와락 눈물이 났다. 이를 악물었다. 남들보다 한 시간 먼저 나오고 한 시간 늦게 퇴근했다. 성실한 그를 사장이 알아봤다. 6개월 만에 카운터와 금고 열쇠까지 맡았다. 지금은 월 수입이 200만원을 넘는다. 번 돈을 꼬박꼬박 저축하며 아이들 데려올 날을 손꼽고 있다.
다른 이모(48)씨. 그 역시 외환위기로 페인트 가게가 망해 거리에 나앉았다. 부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서울역에서 차가운 겨울을 겨우 보내고 이듬해 봄에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전공을 살려’ 페인트 공으로 변신했다. 직업 교육을 받고 도장 기능공 자격증도 땄다. 4년 만에 빚 7000만원을 전부 갚았다. 최근 한 여자를 만났다. 과거를 모두 용서한다고 했다. 그 동안 모아온 돈으로 조만간 인근에 방을 얻어 살림을 차릴 예정이다.
외환위기의 한파가 매섭던 지난 1998년 11월 설립된 게스트하우스.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간 노숙인들은 모두 2209명이다. 이 중 33명이 도장·목공·타일 등 자격증을 취득했고, 약 40%가 재기에 성공한 것으로 게스트하우스측은 보고 있다.
현재 머무르고 있는 인원은 141명. 이 중 40%가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고, 10명은 정규 직원, 3명은 조리사로 각각 취직했다. 정규직 가운데 3명은 지하철 건설 현장에서 노동을 하다 대기업 건설사에 현장직원으로 채용됐다. 입소자 중 30% 가량은 매달 30만원씩 저축하며 자활(自活)의 근육을 키우고 있다.
거리에 누워 의욕의 끈을 놓았던 이들은 이제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도 눈을 돌린다. 매주 금요일에는 10명씩 경기도 하남시 성프란체스코의집을 찾아 지체장애인들을 목욕시켜 준다. 도배·전기배선·미장 기술을 배운 이들이 작년 여름부터 성동구 내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집 7채를 수리해줬다. 지난 8월에는 이곳 직원을 포함한 17명이 수해로 초토화된 강원도 평창 대상리의 한 마을을 찾아 4박5일 동안 마을 전체를 ‘부활’시켰다. 이 인연으로 마을과 게스트 하우스는 자매결연을 했다.
7년 동안 이곳을 지켜온 임선미 팀장은 “처음에는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린다는 잔소리에도 ‘이× 저×’ 하며 욕부터 하던 아저씨들이지만, 따뜻한 보살핌과 적절한 교육을 받고 나면 놀라운 힘과 의지를 발휘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직원 10명이 상주하고 있지만, 빠듯한 살림에 어려움이 많다. 변변한 강의실 하나 없고, A4용지가 떨어져 문서 출력을 하지 못할 정도다.
김영택 관장은 “햇살이 있으면 그늘이 따라오듯이 노숙인들은 우리 사회와 항상 함께 가는 것”이라며 “노숙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버리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노숙인들과 둘러 앉아 국수 한 그릇을 간단히 비운 임 팀장이 또 다시 잔소리를 시작했다. “담배 꽁초 아무데나 버리지 말라니까요.”
♨신발끈 다시조이고..♨
[조선일보 선정민기자]
하루 150만t의 물을 정화(淨化)하는 하수처리장 한 편에서 노숙인들은 희망을 건져 올렸다. 서울 송정동 중랑물재생센터(구 중랑하수처리장)의 잿빛 건물 사이를 차로 5분 남짓 달리면, 주황색으로 산뜻하게 칠해진 1층 건물을 만나게 된다. 사랑의 전화 복지재단이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 ‘24시간 게스트하우스’. 이곳에서 거리를 떠돌던 노숙인들은 삶의 주인이 됐다.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하던 이모(39)씨는 외환위기가 터지고 6개월 만에 노숙자 신세가 됐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두 딸은 시골의 부모에게 보냈다. 한 달 동안 거리를 유령처럼 떠돌다 어느 날 우연히 신문 광고란에서 게스트하우스 소개 글을 보게 됐다.
입소 후에 하루 세 끼 챙겨 먹고 따뜻한 방에서 자며 기운을 차렸지만 더 이상 오란 데도, 갈 곳도 없었다. 중졸 학력에 별다른 기술도 없었다. 그래서 바닥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인근 여관에서 화장실 청소를 시작한 날은 와락 눈물이 났다. 이를 악물었다. 남들보다 한 시간 먼저 나오고 한 시간 늦게 퇴근했다. 성실한 그를 사장이 알아봤다. 6개월 만에 카운터와 금고 열쇠까지 맡았다. 지금은 월 수입이 200만원을 넘는다. 번 돈을 꼬박꼬박 저축하며 아이들 데려올 날을 손꼽고 있다.
다른 이모(48)씨. 그 역시 외환위기로 페인트 가게가 망해 거리에 나앉았다. 부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서울역에서 차가운 겨울을 겨우 보내고 이듬해 봄에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전공을 살려’ 페인트 공으로 변신했다. 직업 교육을 받고 도장 기능공 자격증도 땄다. 4년 만에 빚 7000만원을 전부 갚았다. 최근 한 여자를 만났다. 과거를 모두 용서한다고 했다. 그 동안 모아온 돈으로 조만간 인근에 방을 얻어 살림을 차릴 예정이다.
외환위기의 한파가 매섭던 지난 1998년 11월 설립된 게스트하우스.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간 노숙인들은 모두 2209명이다. 이 중 33명이 도장·목공·타일 등 자격증을 취득했고, 약 40%가 재기에 성공한 것으로 게스트하우스측은 보고 있다.
현재 머무르고 있는 인원은 141명. 이 중 40%가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고, 10명은 정규 직원, 3명은 조리사로 각각 취직했다. 정규직 가운데 3명은 지하철 건설 현장에서 노동을 하다 대기업 건설사에 현장직원으로 채용됐다. 입소자 중 30% 가량은 매달 30만원씩 저축하며 자활(自活)의 근육을 키우고 있다.
거리에 누워 의욕의 끈을 놓았던 이들은 이제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도 눈을 돌린다. 매주 금요일에는 10명씩 경기도 하남시 성프란체스코의집을 찾아 지체장애인들을 목욕시켜 준다. 도배·전기배선·미장 기술을 배운 이들이 작년 여름부터 성동구 내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집 7채를 수리해줬다. 지난 8월에는 이곳 직원을 포함한 17명이 수해로 초토화된 강원도 평창 대상리의 한 마을을 찾아 4박5일 동안 마을 전체를 ‘부활’시켰다. 이 인연으로 마을과 게스트 하우스는 자매결연을 했다.
7년 동안 이곳을 지켜온 임선미 팀장은 “처음에는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린다는 잔소리에도 ‘이× 저×’ 하며 욕부터 하던 아저씨들이지만, 따뜻한 보살핌과 적절한 교육을 받고 나면 놀라운 힘과 의지를 발휘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직원 10명이 상주하고 있지만, 빠듯한 살림에 어려움이 많다. 변변한 강의실 하나 없고, A4용지가 떨어져 문서 출력을 하지 못할 정도다.
김영택 관장은 “햇살이 있으면 그늘이 따라오듯이 노숙인들은 우리 사회와 항상 함께 가는 것”이라며 “노숙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버리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노숙인들과 둘러 앉아 국수 한 그릇을 간단히 비운 임 팀장이 또 다시 잔소리를 시작했다. “담배 꽁초 아무데나 버리지 말라니까요.”
(선정민기자 sunny@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