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초의 승부사 - 레지 밀러

김태하200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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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초의 승부사 - 레지 밀러

'그는 떠났지만 팬들에겐 전설을 남겼다.' NBA 역사에 잊혀지지 않을 3점 슈터 레지 밀러(39·인디애나 페이서스).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마지막 경기까지 치렀지만 아직도 농구팬들은 밀러가 남긴 '그때 그 장면'을 잊지못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8.9초의 기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사건. 밀러는 당시(95년 동부 4강 1차전) 뉴욕 닉스를 상대로 이 잛은 시간 무려 8득점을 집중하는 '경악의 원맨쇼'로 모두를 놀라게했다. '8.9초의 기적'은 'NBA.com이 그를 기리며 현재 실시 중인 '밀러의 플레이오프 활약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명장면은?'이라는 조사(전체 1만3,133명)에서도 과반이 넘는 58%차지, 마이클 조던을 따돌리고 0.7초전 통렬한 클러치 3점포를 꽂고 '빙글빙글 세리모니'를 연출했던 98년 동부결승 4차전(15%), 1명이 보여준 활약으로는 플레이오프 역사상 최고로 손꼽히는 '25득점 4쿼터 반란'(14%·94년 동부 결승 대 뉴욕전)을 크게 압도했다. 따라서 기자는 무관의 제왕으로 아쉽게 떠나는 밀러를 되돌아보며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그때의 활약상을 다시 한번 조명해본다. 95년 5월 8일(이하 한국시간) 뉴욕의 홈 메디슨 스퀘어 가든, 인디애나는 종료 18.7초를 남겨두고 99-105로 열세. 공격권을 가지고는 있지만 점수 차나 시간상 승부를 뒤집기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분위기는 묘하게도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폭풍을 예고하듯 끝났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결국 밀러가 마크 잭슨으로부터 인바운드 패스를 받자마자 왼쪽 45도 각도에서 깨끗하게 3점포를 작렬, 코트에 이상 기류를 흐르게 한다. 남은 시간은 16.4초. 수비에 일가견이 있었던 존 스탁스가 막아보려 했지만 밀러는 상대가 파울 할 틈조차 허용치 않으며 특유의 빠른 템포로 드라마의 시작을 알렸다. 불과 2.3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점수 차도 102-105, 이젠 원타임 찬스다. 갑자기 밀러가 바빠졌고 뉴욕은 숨이 차왔다. 인바운드 패스를 준비 중인 앤소니 메이슨은 패스를 하려했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3점슛을 넣자마자 밀러는 이 틈을 이용,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그렉 앤소니 뒤에 붙었고 그와 충돌이 일어나며 앤소니는 코트에 엎어지고 만다. 이것이 뉴욕의 비극이었다. 포워드 치고는 패스를 잘했었던 메이슨이 공교롭게 앤소니가 넘어진 그때 5초룰에 걸리지 않기 위해 허둥지둥 공을 투입, 앤소니가 아닌 밀러에게 패스를 안겨주고 만 것. 상대적으로 뉴욕의 모든 패스 길목을 차단하고 있던 인디애나의 수비가 좋았지만 뉴욕으로서는 작전타임이 없어 흐름을 끊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화근이었다. 공을 스틸한 밀러는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0.1초, 0.1초, 타들어가는 시간이 고도의 집중감을 주는 그 시간, 밀러는 재빨리 공을 잡고 몸을 3점라인 쪽으로 돌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 한 방의 3점슛, 성공하면 동점이 되는 상황이었다. 넘어졌던 앤소니가 황급히 일어나 공을 가진 밀러를 발견했다. 그러나 밀러는 이미 3점 라인쪽으로 거의 다가가 앤소니와 이격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전광판의 남은 시간은 15.8초(녹색원), 앞으로 무슨 일을 밀러가 벌일 것인지는 그 순간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숨막히는 순간이었다. 몸을 급히 돌려 첫 번째 3점슛을 집어넣은 곳과 거의 비슷한 지점으로 돌아온 밀러는 골대와 상대 수비수 앤소니를 동시에 응시했다. 쓰러졌던 앤소니가 나름대로 빨리 접근했지만 밀러가 슛을 던질 수 있는 공간은 충분히 확보됐다. 오른쪽 발은 3점 라인밖에 이미 위치시켰고 이제 왼쪽 발만 빼 몸의 균형을 잡고 슛을 던지기만 하면 된다. 자연스럽게 앤소니와 아이솔레이션이 되버렸다. 결정적인 턴오버를 범한 메이슨의 심정은 '제발 들어가지 말라'를 기도하지 않았을까. 샷 클락은 15.5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밀러가 마침내 솟구쳤다. 밀러의 등번호 31번은 '(3)점의 지존(1)은 나'라는 것을 알리 듯 유달리 선명하게 대비를 이뤘다. 당시 미국여성 육상계의 '달리는 패션모델' 그리피스 조이너(59~98)가 6년전 디자인했던 인디애나의 유니폼은 남색과 노란색의 보색을 이용한 절묘한 하모니, 클로즈업이 되듯 완벽한 슈팅 릴리스를 보여주며 밀러는 전세계 농구팬이 바라보고 있는 농구공을 공중에 비상(飛上)시켰다. 이후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 두 번의 정적이 흘렀다, 공이 포물선이 그리는 순간 벌어졌던 '긴장의 침묵'이 첫 번째, 밀러의 연이은 3점슛이 림안에 빨려들어가자 나타난 '충격의 침묵'이 그 두 번째였다. 105-105 동점을 이루는 극적인 3점포였다. 밀러는 영원한 숙적 스파이크 리 감독을 응시하며 특유의 동작을 보여줬고 뉴욕은 무엇에 강하게 얻어맞은 듯 '집단 패닉'에 빠져들었다. 경기 종료까지 남은 13.2초가 뉴욕에게는 132분의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놀란 것은 뉴욕 선수들 뿐만이 아니었다. 팀 동료 인디애나 선수들까지 동점이 되었다는 상황을 오인, 곧바로 이어진 수비에서 포워드 샘 미첼은 팀이 1점이 뒤졌다고 착각, 고의적인 파울작전으로 스탁스에게 반칙을 범한 웃지못할 해프닝을 연출했다. 운명의 여신이 등장할 곳은 여기라고 누가 말했나. 스탁스는 그러나 팀의 사활이 걸린 자유투 2개를 모두 놓치는 어이없는 실수를 했고 덩달아 2구째 들어가지 않은 공을 뉴욕의 센터 패트릭 유잉이 풋백으로 득점을 시도했지만 또 불발, 밀러가 수비리바운드를 잡고 루스볼 파울까지 획득, 자유투를 모두 넣어 마침내 팀의 107-105 승리에 종지부를 찍는다. 밀러 앞에서 뼈저린 3점슛을 내준 앤소니는 팀 패배가 확정되자 코트에 벌렁 누워 믿기지 않는 듯 한동안 코트를 떠나지 못했다. 첫 번째 3점슛이 터진 경기 종료 16.4초부터 2구째 자유투를 성공한 7.5초전까지. 8.9초 드라마는 이렇게 완성됐다. 이 장면이 밀러가 만들어낸 그 많은 영광의 스크린보다도 특히 돋보이는 이유는 그가 선수생활 보여줬던 장점이 이 8.9초안에 모두 집약적으로 녹아들어 있기 때문. 공을 가지지 않았을때 슛을 노리기 위한 순간적인 움직임, 자신있게 뿌렸던 확률 높은 3점슛과 반드시 팀을 구하겠다는 강한 승부근성, 수비 리바운드와 심장의 크기를 말해주는 정확한 자유투까지. 무려 10년이 흐른 경기 모습이지만 아직도 그 당시 밀러의 환희는 이렇게 시간의 흐름속에 선명한 흔적으로 남아 가슴안의 파장을 묘하게 자극한다. 팬들이 '밀러타임'을 잊지 못하는 그 바탕에는 바로 이 기적과 같은 '8.9초 드라마'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떠났지만 팬들에겐 결코 지울 수 없는 '농구의 추억'을 남겼다. 심현석 기자 hssim@imbcsports.com -------------------------------------------- 밀러 타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레지밀러..나에게 3점슛의 묘미를 알려준 누구보다도 멋진 사람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가 2004-2005 플레이오프 마이애미와의 준결승을 끝으로 코트를 떠낫다. 많은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코트를 떠나는 그는 한마디를 남겼다. "지난동안의 NBA선수생활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새로운 도전을 향해 떠납니다." 밀러는 더이상 코트위를 달리진 않지만 내 기억속에서 밀러는 항상 승부사로 남아있을 것 같다...k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