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법연수생이 자살했다. 사법연수원 1학년. 친구들에 의하면 평소 발랄했던 그 친구는 연수원 입학후 몇 개월만에 우울증을 얻었다. 치료약이 담긴 봉투 등 작은 종이에 그는 수시로 메모를 남겼다. 힘들다. 사랑한다. 죄송하다.
검사를 지망했던 그는, 판사가 되기 희망하는 주변인들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인들은 아무 여자나 만나지 말 것을 그에게 주문했다. 연수원 성적에 의해 법조3륜의 직업이 결정되는 그곳. 그는 자신의 미래를 담보로 잡혔다. 이어진 연인과의 이별. 그는 고심했다. 내가 왜 여기있지. 나는 공부를 왜 했을까.
우울증을 얻은 그는 한달 뒤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뒤, 그는 다시 투신했다. 사법연수원 교수님께, 자신의 투신이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모를 남겼다. 일반인들은 학업스트레스로 여겼다. 힘들게 거기까지 갔으면서 왜 그랬대. 그런 놈이면 임관해서도 잘하긴 글렀겠군.
대학까지 12년,입학후 2~3년을 공부해 사법고시에 패스한 사람들. 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그곳은 24시간 경쟁만이 펼쳐진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곳에 들어온 이상 이들은 가족과 온갖 연줄에 의해 미래를 저당잡힌다. 당연히 여긴다면 훌륭한 판검사가 되겠지만 버티지 못한다면 낙오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법조인의 위치는 이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과거 판사 한명이 가출한 적이 있었다. 그의 장인은 정부고위관료. 변호사에 비해 턱없는 박봉인 판사로서, 그는 어머니의 막대한 병원비를 대지 못해 고민이었다. 옷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해야하나, 고민하던 그는 집에 들어온 순간 놀랐다고 한다.
고가의 사치품들이 집에 들어와있었고 이는 부인이 구입했던 것. 처가에 서운함이 들었던 그는 옷을 벗을 결심을 했지만 장인은 "나는 판사사위를 원했지 변호사는 아니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가출했고 돌아와 사표를 냈지만 반려됐다.
최근 한 국회의원이 판검사 출신 변호사의 월급을 공개했다. 건보공단 집계 월수익 상위 100명 명단에 전직 법조인이 20여명 들어있었다. 이들은 월평균 2000만~2억안팎을 받았다. 자신의 직원 월급등이 포함된 금액이라고는 하지만 고액임에는 틀림없는 액수다.
이 기사는 현직 법조인들에게 불똥을 튀겼다. 너는 뭐하냐는 마누라의 바가지는 "당신 부장검사때 옷벗었으면 이정도는 받았겠다"는 원망으로 발전했다. 이들은 허허 웃어 넘겼지만 애들교육에만 월 수백만원을 쏟아붓는 이곳, 한국에서 이들은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진 않았을까.
판검사는 고독하다. 애초에 고독한 명예직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지만 연수원 시절부터 이미 시작된 이 굴레를 평생 짊어지고 가야한다는 것. 최고의 명예인 대법관을 지낸 이들이 2명을 제외하고는 전원 변호사로 '홀가분하게'개업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대단하다. 내 평생을 이곳에 (외도하지 않고) 바쳤으니 이제 비로소 내 가족들에게 헌신하겠다. 그동안 감내해준 가족들에게 이제 비로소 고마움을 갚을 수 있게됐다.
마음이 답답하다. 종신 재판관, 또는 은퇴후 재판연구관으로 일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길을 열어준다면 어떨까. 20년이 지나도 집마련을 못하는 판사들을 위해 관사를 마련해준다면 어떨까. 변호사의 편법 탈세와 고액 수임료를 정부가 잡아준다면 어떨까.
최근의 법조 불신 사태가 남다르다. 일부 판사는 뼈를 깎는 고통을 참으며 이를 만회하려 한다. 어떤 판사는 직접 검사에 호통을 치며 자료를 요구하고 어떤 검사는 부패 검사를 쳐내기 위해 모든 비판을 무릅쓰고 칼을 갈았다. 비록 수사 종료 후 검찰 옷을 벗기는 했지만 누가 이 검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법조불신. 그건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혹시 명예를 돈으로 사려하는 한국 사회의 썩은 풍토때문이라고한다면, 내가 너무 근본주의자인가.
eyes - 어느 사법연수생의 자살
한 사법연수생이 자살했다. 사법연수원 1학년. 친구들에 의하면 평소 발랄했던 그 친구는 연수원 입학후 몇 개월만에 우울증을 얻었다. 치료약이 담긴 봉투 등 작은 종이에 그는 수시로 메모를 남겼다. 힘들다. 사랑한다. 죄송하다.
검사를 지망했던 그는, 판사가 되기 희망하는 주변인들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인들은 아무 여자나 만나지 말 것을 그에게 주문했다. 연수원 성적에 의해 법조3륜의 직업이 결정되는 그곳. 그는 자신의 미래를 담보로 잡혔다. 이어진 연인과의 이별. 그는 고심했다. 내가 왜 여기있지. 나는 공부를 왜 했을까.
우울증을 얻은 그는 한달 뒤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뒤, 그는 다시 투신했다. 사법연수원 교수님께, 자신의 투신이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모를 남겼다. 일반인들은 학업스트레스로 여겼다. 힘들게 거기까지 갔으면서 왜 그랬대. 그런 놈이면 임관해서도 잘하긴 글렀겠군.
대학까지 12년,입학후 2~3년을 공부해 사법고시에 패스한 사람들. 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그곳은 24시간 경쟁만이 펼쳐진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곳에 들어온 이상 이들은 가족과 온갖 연줄에 의해 미래를 저당잡힌다. 당연히 여긴다면 훌륭한 판검사가 되겠지만 버티지 못한다면 낙오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법조인의 위치는 이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과거 판사 한명이 가출한 적이 있었다. 그의 장인은 정부고위관료. 변호사에 비해 턱없는 박봉인 판사로서, 그는 어머니의 막대한 병원비를 대지 못해 고민이었다. 옷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해야하나, 고민하던 그는 집에 들어온 순간 놀랐다고 한다.
고가의 사치품들이 집에 들어와있었고 이는 부인이 구입했던 것. 처가에 서운함이 들었던 그는 옷을 벗을 결심을 했지만 장인은 "나는 판사사위를 원했지 변호사는 아니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가출했고 돌아와 사표를 냈지만 반려됐다.
최근 한 국회의원이 판검사 출신 변호사의 월급을 공개했다. 건보공단 집계 월수익 상위 100명 명단에 전직 법조인이 20여명 들어있었다. 이들은 월평균 2000만~2억안팎을 받았다. 자신의 직원 월급등이 포함된 금액이라고는 하지만 고액임에는 틀림없는 액수다.
이 기사는 현직 법조인들에게 불똥을 튀겼다. 너는 뭐하냐는 마누라의 바가지는 "당신 부장검사때 옷벗었으면 이정도는 받았겠다"는 원망으로 발전했다. 이들은 허허 웃어 넘겼지만 애들교육에만 월 수백만원을 쏟아붓는 이곳, 한국에서 이들은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진 않았을까.
판검사는 고독하다. 애초에 고독한 명예직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지만 연수원 시절부터 이미 시작된 이 굴레를 평생 짊어지고 가야한다는 것. 최고의 명예인 대법관을 지낸 이들이 2명을 제외하고는 전원 변호사로 '홀가분하게'개업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대단하다. 내 평생을 이곳에 (외도하지 않고) 바쳤으니 이제 비로소 내 가족들에게 헌신하겠다. 그동안 감내해준 가족들에게 이제 비로소 고마움을 갚을 수 있게됐다.
마음이 답답하다. 종신 재판관, 또는 은퇴후 재판연구관으로 일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길을 열어준다면 어떨까. 20년이 지나도 집마련을 못하는 판사들을 위해 관사를 마련해준다면 어떨까. 변호사의 편법 탈세와 고액 수임료를 정부가 잡아준다면 어떨까.
최근의 법조 불신 사태가 남다르다. 일부 판사는 뼈를 깎는 고통을 참으며 이를 만회하려 한다. 어떤 판사는 직접 검사에 호통을 치며 자료를 요구하고 어떤 검사는 부패 검사를 쳐내기 위해 모든 비판을 무릅쓰고 칼을 갈았다. 비록 수사 종료 후 검찰 옷을 벗기는 했지만 누가 이 검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법조불신. 그건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혹시 명예를 돈으로 사려하는 한국 사회의 썩은 풍토때문이라고한다면, 내가 너무 근본주의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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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는 지난해 동아일보의 사법연수원 르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