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미안한 사람들이 있듯이, 서로에게 감사한

김의현200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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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미안한 사람들이 있듯이, 서로에게 감사한


서로에게 미안한 사람들이 있듯이, 서로에게 감사한 사람들이 있다. 부모님이 그렇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듯이 벗에게도 그런 마음이 항상 있다. 언제나 어두운 그늘 아래서 홀로서기에 낑낑대고 있을 때 그것이 틀린길이라며 손을 내밀어준 이들이 있다. 고마워서 미안하고, 감사해서 섭섭하고, 좋아해서 더욱 애틋한 그들을 기억한다. 없으면 허전하고,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붙어 있으면 서로가 함께하는 이들, 스스로를 '벗'이라 칭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이의 보이지 않는 어떤 질긴 실고리로 연결되어 붙잡혀져 있는 이들, 그래서 징그럽지만서도 무감각하면서도 편안한 듯한 녀석들, 그들이 내 앞에 있다.

어느 덧 내 나이 스물 다섯, 누가 그랬던가? 인간은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인간이라고. 나 엮시 그런 평범한 인간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고독의 둘레에 엮어 놓은 체 기나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 빛을 찾으려 애썼던 그런 비극의 주인공인 양 홀로 외로움의 벽을 만들었던 인간이라 생각했다. 왜 그랬던 것일까? 진정 나를 위하는 가족이 있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이들이 있고, 스스로에게 힘이 되는 벗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다. 참으로 실례되는 말들, '외롭다, 슬프다, 고독하다, 심심하다, 죽고싶다...' 이 섭섭함으로 가득찬 영역의 감정들을 이제는 지워야 할때인 듯 싶다.

기억속에서 떠돌고 있던 망녕들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비극의 주인공이길 원했으니까. 아니, 어쩌면 지금도 원할지 모르니까. 하지만 , 내가 그 주인공의 역을 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버렸다. 바람따라 정처없이 흐르다보니 오늘의 나를 고독의 틀에 갖추기에는 부쩍 커버렸다. 외로움도, 슬픔도, 고독함도 모두 가슴한구석에 묻어버릴 수 있는 시기가 왔다. 때로는 울컥거리며 힘들때도 잊지만 흔들리지 않으리라.

밤이 저물고, 어둠 속에서 바람소리만을 분간해낼 수 있는 시간, 이제는 그 시간이 두렵지 않다. 고개를 수그리고 이불속에 파묻혀 하루를 걱정해야 했던 시간들, 이제는 무섭지 않다. 감사함으로 나아감에 있어 이제는 그들이 나에게 감사의 이유가 될 것이다.

때로는 싫어도 술한잔 기울여야 할 때가 있다. 이 고통의 시간을 견텨낼 수 있는 것은 그들과 함께일 것이다. 농구공 한 번 튀겨 밤하늘의 별이 밝다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도 없는 것은 요동치는 심장소리와 흘러내리는 땀방울, 그리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소리칠 수 있는 동료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안다.

홀로 남을 수 있는 시각, 외로움과 그리움의 기로에 서있다. 이제는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치게 만들었던, 힘들게 만들었던, 폐쇄하게 만들었던 기나긴 고독의 여운의 끈을 놓아야 할 때인것 같다. 쉽지 않을 것이다. 무려 이십 오년이나 함께 해온 사이이니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라는 망상이 또다시 나를 괴롭힐 테니까. 하지만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있으니까. 분명 외롭지 않고 그리워 할것이다. 나에게는 '벗' 있으니까. 고마워 할 것이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이들이 있으니까. 감사할 것이다. 오늘을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 계시니까.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든지 와서 나에게 기대어 그 시원한 그늘밑에 조용한 쉼터를 만들어주는 나무, 요란하지도 않고, 눈에도 띄지 않지만 뿌리만큼은 깊숙하게 박혀있는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몰아치는 비, 바람과 내리치는 눈보라 모두 견뎌낼 수 있는 흔들림없는 나무같은 사람이 되리라. 지금의 나는 어디쯤 와있을까? 아직도 나는 그 '나무'에 유효한 것일까? 깊은 사색의 바닷속 하나쯤 어디에서 오늘도 나는 허우적대고 있는 느낌이다. 이제는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터인데, 그 고마운 사람들 쉬게 해야 할 터인데, 아직도 나는 부족하다는 사실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