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이해하기 1

이인원200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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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 이해하기 1

     " 국악은 느리고 슬픈 음악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국악하면 대개 너무 느리다거나 슬퍼서 싫다는 사람들이 많다. 또 어떤 경우에는 국악에는 화성이 없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볼 때 원시적인 수준의 음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어떤 측면에 있어서는 이러한 말들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말들은 국악에 대한 인식 부족이나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 많다. 국악이 너무 느리다는 말도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느린 아악의 경우 그 빠르기는 메트로놈으로 재기조차 힘들 정도로 느리다. 아니 느리다 못해 보통 사람들의 감각으로는 그 빠르기를 쉽게 감지하기조차 힘들다. 말하자면 일상적인 감각을 초월한 형이상학적 세계의 빠르기인 셈이다.

그러나 국악에는 느린 곡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나위나 산조 등의 후반부는 매우 빠른 빠르기로 연주되며 판소리나 풍물, 사물놀이의 빠른 장단은 어떤 서양음악보다도 빠르게 연주된다. 특히 사물놀이의 폭발적인 빠르기는 다른 요소와 어울려서 듣는 사람을 쉽게 무아의 경지로 몰아간다.

산조의 경우는 처음에 진양조라고 하는 매우 느린 장단으로 시작해서 점점 속도가 빨라져 나중에는 단모리라고 하는 매우 빠른 장단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니까 국악이 느리다고 하는 것은 국악의 단면만을 본 것이며 국악의 전체적인 모습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악은 서양음악에 비해 빠르기의 사용 폭이 매우 넓다고 볼 수 있다. 즉, 서양음악이 중간 정도의 빠르기를 중심으로 발달해온 데 비해 국악은 그보다 더 느리고, 그보다 더 빠른 빠르기를 즐겨 사용함으로써 음악적 표현력을 극대화시켜 왔다고 볼 수 있다.

국악이 슬픈 느낌을 준다는 말도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산조나 시나위, 판소리의 느린 계면조는 사람의 간장을 녹이는 듯 몹시 슬픈 가락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그 슬픔은 슬픔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슬픔은 어느 사이에 기쁨으로 변해 있다. 즉 슬픔의 정서를 극복하고 이를 기쁨의 정서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산조의 마지막 부분은 늘 기쁨과 희열로 가득 차 있다. 또 농악이나 사물놀이의 흥겨운 가락은 사람들을 집단적인 신명의 세계로 이끈다. 이러한 사실들은 국악이 슬픔과 기쁨, 다시 말하면 한과 흥의 양면을 매우 극대화시켜 표현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국악은 화성보다는 리듬중심의 음악"

주로 서양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는 '국악에 화성이 없다.' 는 말도 잘못된 말이다. 그 말은 '국악에는 서양음악 식의 화성체계가 없다.' 는 말로 고쳐져야 한다. '국악에 서양음악 식의 화성체계가 없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국악은 서양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국악에 서양음악 식의 화성체계가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국악에 서양음악 식의 화성체계가 있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 된다.

국악과 서양음악은 서로 다른 문화권속에서 서로 다른 가치체계를 지니고 서로 다르게 발전되어 왔다. 서양음악은 특히 화성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화성이 음악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화성이 모든 음악에 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국악에 있어서는 화성보다는 리듬이 발달해 왔다. 그러니까 국악은 화성보다는 리듬 중심의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화성을 중심으로 발달한 음악과 리듬을 중심으로 발달한 두 음악 중 어느 음악이 더 훌륭한 음악인가는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음악은 그 성격이 서로 다르다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국악을 , 서양음악의 측면에서 판단하여, 화성이 없는 원시적인 음악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서양음악은 국악에 비해 리듬이 덜 발달한 미개한 음악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식의 자기문화 중심적인 사고는 그 음악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서양음악은 서양문화의 배경 위에서 , 국악은 전통문화의 토대 위에서 서로 다르게 분석되고 평가되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두 음악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

국악과 서양음악은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빠르기와 음정이 매우 유동적인 국악"

음악의 기본요소라 할 빠르기에 있어서도 서양음악은 그 빠르기가 고정되어 있는데 반해 국악은 빠르기가 늘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즉, 서양음악의 경우 4악장으로 된 교향곡이라면 각 악장마다 빠르기가 정해져 있고 그 빠르기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각 악장이 끝날 때까지 변화하지 않는다. 반면 국악은 처음에 진양조의 느린 빠르기로 시작했다해도 진양조가 끝날 무렵에는 그 속도가 처음보다 훨씬 빨라져 끝나게 되며 그것은 다른 장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말하자면 곡이 진행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속도가 빨라지도록 연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양음악은 메트로놈을 놓고 거기에 맞춰 음악을 기계적으로 연습할 수 있지만 국악은 순전히 마음의 흐름에 의지해서 연습해야 한다. 이같은 빠르기의 유동성은 국악의 흥이나 신명의 요소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약 국악의 빠르기가 서양음악처럼 고정된다면 이러한 흥과 신명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빠르기에 있어서 국악과 서양음악이 다른 점은 결국 국악은 빠르기를 연주자의 마음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내맡기는데 비해 서양음악은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속도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실은 음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서양음악의 음정은 곡의 처음이나 끝이나 변함이 없다. 처음 시작할 때의 C음은 끝날 때도 그 피치를 잃지 않는다. 그러나 국악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처음 시작 때의 C음은 끝날 때는 그 피치가 C음보다 훨씬 높아져 있다. 특히 산조 같은 경우 처음 느리게 시작된 음악이 점차 빨라지고 신명이 오르면 자연히 피치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처음의 피치를 그대로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오히려 높아지는 피치를 음악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맡겨두는 것이 곡의 예술성을 높이는 길이 된다. 이러한 점들은 ,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엄격한 빠르기 속에서 연주되는 서양음악의 측면에서 보면 매우 이상한 일이지만 국악의 입장에서 보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것은 결국 음악의 물리적인 측면에 집착하는 서양음악과 그것을 뛰어넘어 인간의 심리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국악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라 할 것이다.



      "국악의 음색은 양악에 비해 부드럽고 따뜻하다."

빠르기나 음정 뿐 아니라 음색에 있어서도 두 음악은 서로 다르다. 서양음악이 대체적으로 날카롭고 차가운 음색을 중심으로 이지적인 느낌을 주는데 비해 국악은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을 중심으로 감성적인 느낌을 준다. 이러한 음색의 차이는 주로 악기를 만드는 재료에서 연유한다.

서양악기는 대개 금속성 재료를 많이 사용한다. 트럼펫, 트럼본, 튜바, 호른 등 금관악기가 발달해 있으며 플룻 등 일부 목관악기도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다. 또 현악기도 몸체는 목재이지만 음이 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 줄은 쇠줄로 되어 있다. 건반악기의 대표라 할 피아노 역시 쇠로 된 줄을 함마로 치도록 만들어져 있다. 심벌, 비브라폰, 트라이앵글 등의 타악기도 역시 쇠로 만들어져 있다.

반면에 국악기는 주로 동, 식물성 재료를 많이 사용한다. 대금, 피리, 단소 등의 관악기는 대개 대나무를 사용하며 가야금, 거문고, 해금 , 아쟁 등의 현악기는 소리를 내는 중요한 부분인 줄을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다. 타악기 역시 장구, 북, 좌고, 용고 등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악기와 축, 어, 박 등 나무로 만든 악기가 주종을 이룬다. 물론 국악기에도 꽹가리 , 징 등 금속으로 만든 타악기가 있으나 이들 악기들은 금속성의 날카로운 음색보다는 보다 부드러운 음색을 갖도록 고려되어 있다. 서양악기의 심벌이 내는 날카로운 음색과 국악기의 징이 내는 부드러운 울림을 비교해보면 이러한 차이점을 금방 알 수 있다.

이처럼 금속성 재료를 많이 사용하는 서양악기와 동, 식물성 재료를 많이 사용하는 국악기는 서로 다른 음색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음악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동적으로 살아서 움직이는 국악의 음"

서양음악의 화성체계는 오랜 세월동안 복잡하게 발달해 왔다. 그에 비해 국악의 화성체계는 매우 단순해 보인다. 어떤 사람은 국악은 유니즌으로만 되어 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악이 유니즌으로만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유니즌의 요소가 많은 아악에 있어서도 그 가락의 뼈대는 대체로 유니즌이라 하더라도 각 악기가 내는 독특한 이디엄은 서양음악에서 얘기하는 엄격한 유니즌과는 거리가 있다. 각각의 악기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주법과 가락으로 연주되며 이때 서로 다른 음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순간적인 화음을 이룬다. 이들 화음은 매우 불규칙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자세히 분석해보면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각각의 악기들이 전체적인 통일성을 강력히 유지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적인 특성을 추구함으로써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나위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남도 시나위의 경우 각각의 악기들은 계면조라고 하는 독특한 음진행 구조 속에서 자유스럽게 연주된다. 말하자면 계면조라고 하는 음구조를 똑같이 사용함으로써 전체적인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각각의 악기들은 서로 다른 가락을 마음껏 구사하면서 각 악기의 개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국악의 선율선은 둥그런 초가지붕의 선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다. 때로는 음을 폭넓게 떨기도 하고, 또 음을 미끌어 내리거나 밀어 올리기도 하면서 미분음적인 변화를 꾀한다. 이것은 서양음악에서는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 기법이다. 대개 현대 창작음악에서 특별한 효과를 위해 부분적으로 사용될 뿐이다. 국악에서는 이것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며 음의 한 본질을 이룬다. 즉, 국악에서의 음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유동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따라서 국악과 서양음악은 음의 본질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 음들이 모여서 이루는 화성 체계 또한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악과 서양음악, 서양음악과 국악의 이러한 차이점을 염두에 두고서 국악에 접근한다면 그 접근은 좀더 성공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국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전통음악보다는 창작음악부터 감상을"

하나는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음악이요, 다른 하나는 근래에 새로 만들어진 창작음악이다. 전통음악은 다시 궁중음악, 풍류방음악, 민간음악으로 나뉜다. 궁중음악은 주로 왕립 음악기관을 중심으로 궁중의 각종 행사나 의식, 연회 등에 사용된 음악이며 <수제천>,<해령>,<여민락>,<종묘제례악> 등이 여기에 속한다. 풍류방음악은 양반이나 선비들이 주로 즐긴 음악으로 <영산회상>,<가곡> <가사> <시조>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 두 음악은 대개 당시의 상류계층에서 즐긴 음악으로 볼 수 있다.

일반 서민들의 음악이라 할 민간음악은 주로 조선시대 후기에 크게 발달한 음악들로 민요나 풍물, 굿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음악은 대체로 감정을 절제하고자 하는 궁중음악이나 풍류방음악과는 달리 한과 흥의 감정을 짙게 표현해 내고 있다.

이들 전통음악과는 달리 창작음악은 근래에 새롭게 만들어진 음악들이다. 창작음악은 전통음악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전통음악이 상실한 시대감각을 다시 되찾음으로써 새로운 전통음악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악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옛 전통 음악보다는 새로 만들어진 창작음악부터 감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것은 이들 창작음악이 전통음악보다는 접근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시중에 나와있는 창작음악곡집 중에서 <황병기 작품집> <김영동 작품집> <조광제 작품집-슬기둥> <이병욱 작품집-어울림> 등은 누구나 큰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곡들이다. 이들 곡들은 레코드나 테이프뿐 아니라 콤팩트 디스크로도 나와 있어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이러한 창작음악에 일단 귀가 열리면 다음에는 민요나 판소리, 산조와 사물놀이 등 본격적인 전통음악 감상으로 들어가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좀더 국악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악기를 다루어보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관악기 중에서는 단소, 현악기 중에서는 가야금이 비교적 배우기 쉬우며 꽹과리, 징 , 장구, 북의 사물도 생각보다 훨씬 쉽게 배울 수 있다. 그것은 이들 국악의 장단과 가락이 우리 몸의 깊숙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계기가 주어져 그것이 일깨워 진다면 그 잠재된 음악성이 곧바로 표출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들은 나와 우리, 그리고 민족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될 것이며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