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뛰어난 고찰에 놀랐고 20대 초반에 이런 사유를 할 수 있음에 놀랐으며 화려한 고증과 종교에 대한 논증에 놀랐으나 마지막 작자가 아직도 20대의 그 감응이 변하지 않았음에 실망했다. 이문열씨의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세간에 떠도는 기독교 비판의 총체라 할 수 있는 이 책을 기독교 비판을 통한 변화를 생각하는 내가 읽지 않는 다면 과연 제대로 된 항변과 대답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였다. 선배형의 추천도 있던 차 구입을 해서 읽었다. 결과는 나의 기대 이상.. 자칫하면 빨려 들어갈 정도로 화려한 수사로 쓰여진 이 책은 뭇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강한 반 기독교적 정서를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자가 당착에 빠지고 마는데 그 이유는 이문열씨 자신이 기독교인이 아닌 것 때문 만이 아니라 기타 다른 종교인이 아닌데서 온다. 이문열씨가 간과하는 것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holly에 대한 무시 혹은 건너 집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고증 종교학자들이 그렇듯 너무나 과학적인 측면에만 매달리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 신성을 인정하는 부분은 기독교의 신인 야훼를 비판하는데만 그칠 뿐이고 예수의 능력을 인정함에 있어서도 변덕스러운 신이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을 요구하는 수단으로만 인식한다. 하지만 특이할 만한 면은 야훼와 함께 더불어 세상을 창조한 신이 있다는 가정이다. 야훼는 인간의 선의 부분을 담당했고 이문열씨가 상정하고 있는 신은 지혜의 신으로 인간의 지혜를 담당했다고 가정한다. 선악과를 따먹게하는 뱀이 바로 지혜의 천사이며 지혜의 신을 악마로 묘사한 것은 야훼의 모함 혹은 질투에 의한 왜곡에 있다고 본다. 정말 그럴싸한 말이다. 하지만 신약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책의 내용에서 본다면 이런 의견이 타당성이 있다. 야훼는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자신의 구미에 맞는 행동만을 하길 원하고 가난이나 고통에 대해 믿고 참는 다면 그건 신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부를 추구하면 악마라고 매도 했다고 당시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인간안에 있는 이기적인 본성을 억누르게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왜 자유의지를 주어 나약한 본성의 사람에게 무거운 선택을 얻어 주느냐는 반문 ...충분이 타당성이 있다. 어쩌면 야훼의 기대가 컷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소 장난 같지만 오히려 그만큼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이문열씨는 야훼는 가난을 견디며 자신에게 맹목적인 믿음을 보이는 자만을 건져내어 천국에 오르게 해주는 편협한 신이라고 상정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예수를 보내어 야훼가 바라고자 한 바는 서로를 사랑하여 서로의 입에 물질의 식량을 넣어 주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문열씨의 말대로라면 현대에는 그 '지혜의 신'이 온세상을 지배하고 야훼의 등장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물론 '지혜의 신'은 인간에게 너희의 죄를 씻는 것도 인간이며 구원을 시키는 것도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과연 인간의 이기적인 지혜로써 인간을 용서하고 구원할 수 있을까?? 지극히 이성적이라고 하는 철학자들 또한 이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난이 이성으로 해결이 날 수 있는 것일까? 지상의 관점에 머문다면 인간이 과연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내가 보는 현대의 세상은 '지혜의 신'이 지배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를 악마라 부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것 또한 인간의 본성인 것을 어찌 인간을 악마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지혜의 신'은 인간의 아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이해 시키기 위해 인간사의 모든 쾌락과 고통에 허덕이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줬다고 했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인간은 그런 이들을 뒤돌아 보지 않는다. 그것이 지혜가 이끌어 온 세상의 모습이다. 그 지혜 위에 사랑의 권능이 임하여야 만이 선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지혜의 신'은 인간이 갖고 태어난 선행을 행하는 마음이 굳이 절대자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지 않고서도 선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과연 그런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내가 평소에 신에게 의지하여 살고 있어서 그런 불안이 있을 수도 있지만 불완전한 인간이 과연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지는 부정적인 쪽으로 기우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공부해야한다는 것을 느꼈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믿는 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스스로 확인 할 수 있는 통과의례가 되었음을 감사하는 바이다. 많은 기독교 인들이 이책을 읽어야 한다. 그러고도 자신의 교의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 즉'아가페'를 참되게 깨닫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혹 이 책을 읽었을 사람을 위해 마지막으로 기독교 아니 크리스트교에서 말하는 참 된 원리를 논하겠다. 내가 지금까지 교회를 다니고 성경에 대해서 공부를 한 결과 기독교의 교리는 인간에게 윤리적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창조한 신에 대해 감사하고 그에 대한 복종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사랑을 느끼라는 것이다. 그런다음 그 사랑을 바로 옆에 있는 이웃에게 전하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이문열씨가 간과한 부분이다. 이문열씨의 논리는 신이 인간에게 복종과 믿음을 강요한 곳에서 끝나고 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라 바로 시작이다. 하늘에 부를 쌓으라는 말은 바로 옆사람에게 선행을 행하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똑같은 양의 자원이 있다. 모든 사람이 각각 자기 스스로 입에 넣으나 옆사람에게 한 입씩 먹여 주나 결과는 똑같은 것이거늘.. 한편으로느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을 왜 강요하냐고도 할 수 있지만 내가 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보기에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왜 쉬운 길을 가는 자가 악이 되어야냐고 말한다면 거기에 대해선 아직 답변해 줄 답이 없다. 하지만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그에 대한 답 또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 속의 민요섭이 결국은 다시 야훼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은 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모든 것을 짊어 지기에는 세상의 권세가 너무 큰 것일수 있다. '지혜의 신'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부여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견뎌낼 수가 없고 선을 행하여도 상이 없고 악을 행하여도 형벌이 없는 침묵하는 신 앞에서 무기력 해지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본연적으로 침묵하는 신 앞에 두려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자신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을까? 혹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항상 고민 하고 있는 인간이기에 신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일 수 있다. 물론 신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지 못한것이 현실인 것이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꼭 이루어 내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뛰어난 고찰에 놀랐고 20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뛰어난 고찰에 놀랐고 20대 초반에 이런 사유를 할 수 있음에 놀랐으며 화려한 고증과 종교에 대한 논증에 놀랐으나 마지막 작자가 아직도 20대의 그 감응이 변하지 않았음에 실망했다. 이문열씨의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세간에 떠도는 기독교 비판의 총체라 할 수 있는 이 책을 기독교 비판을 통한 변화를 생각하는 내가 읽지 않는 다면 과연 제대로 된 항변과 대답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였다. 선배형의 추천도 있던 차 구입을 해서 읽었다. 결과는 나의 기대 이상.. 자칫하면 빨려 들어갈 정도로 화려한 수사로 쓰여진 이 책은 뭇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강한 반 기독교적 정서를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자가 당착에 빠지고 마는데 그 이유는 이문열씨 자신이 기독교인이 아닌 것 때문 만이 아니라 기타 다른 종교인이 아닌데서 온다. 이문열씨가 간과하는 것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holly에 대한 무시 혹은 건너 집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고증 종교학자들이 그렇듯 너무나 과학적인 측면에만 매달리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 신성을 인정하는 부분은 기독교의 신인 야훼를 비판하는데만 그칠 뿐이고 예수의 능력을 인정함에 있어서도 변덕스러운 신이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을 요구하는 수단으로만 인식한다. 하지만 특이할 만한 면은 야훼와 함께 더불어 세상을 창조한 신이 있다는 가정이다. 야훼는 인간의 선의 부분을 담당했고 이문열씨가 상정하고 있는 신은 지혜의 신으로 인간의 지혜를 담당했다고 가정한다. 선악과를 따먹게하는 뱀이 바로 지혜의 천사이며 지혜의 신을 악마로 묘사한 것은 야훼의 모함 혹은 질투에 의한 왜곡에 있다고 본다. 정말 그럴싸한 말이다. 하지만 신약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책의 내용에서 본다면 이런 의견이 타당성이 있다. 야훼는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자신의 구미에 맞는 행동만을 하길 원하고 가난이나 고통에 대해 믿고 참는 다면 그건 신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부를 추구하면 악마라고 매도 했다고 당시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인간안에 있는 이기적인 본성을 억누르게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왜 자유의지를 주어 나약한 본성의 사람에게 무거운 선택을 얻어 주느냐는 반문 ...충분이 타당성이 있다. 어쩌면 야훼의 기대가 컷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소 장난 같지만 오히려 그만큼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이문열씨는 야훼는 가난을 견디며 자신에게 맹목적인 믿음을 보이는 자만을 건져내어 천국에 오르게 해주는 편협한 신이라고 상정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예수를 보내어 야훼가 바라고자 한 바는 서로를 사랑하여 서로의 입에 물질의 식량을 넣어 주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문열씨의 말대로라면 현대에는 그 '지혜의 신'이 온세상을 지배하고 야훼의 등장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물론 '지혜의 신'은 인간에게 너희의 죄를 씻는 것도 인간이며 구원을 시키는 것도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과연 인간의 이기적인 지혜로써 인간을 용서하고 구원할 수 있을까?? 지극히 이성적이라고 하는 철학자들 또한 이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난이 이성으로 해결이 날 수 있는 것일까? 지상의 관점에 머문다면 인간이 과연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내가 보는 현대의 세상은 '지혜의 신'이 지배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를 악마라 부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것 또한 인간의 본성인 것을 어찌 인간을 악마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지혜의 신'은 인간의 아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이해 시키기 위해 인간사의 모든 쾌락과 고통에 허덕이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줬다고 했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인간은 그런 이들을 뒤돌아 보지 않는다. 그것이 지혜가 이끌어 온 세상의 모습이다. 그 지혜 위에 사랑의 권능이 임하여야 만이 선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지혜의 신'은 인간이 갖고 태어난 선행을 행하는 마음이 굳이 절대자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지 않고서도 선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과연 그런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내가 평소에 신에게 의지하여 살고 있어서 그런 불안이 있을 수도 있지만 불완전한 인간이 과연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지는 부정적인 쪽으로 기우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공부해야한다는 것을 느꼈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믿는 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스스로 확인 할 수 있는 통과의례가 되었음을 감사하는 바이다. 많은 기독교 인들이 이책을 읽어야 한다. 그러고도 자신의 교의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 즉'아가페'를 참되게 깨닫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혹 이 책을 읽었을 사람을 위해 마지막으로 기독교 아니 크리스트교에서 말하는 참 된 원리를 논하겠다. 내가 지금까지 교회를 다니고 성경에 대해서 공부를 한 결과 기독교의 교리는 인간에게 윤리적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창조한 신에 대해 감사하고 그에 대한 복종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사랑을 느끼라는 것이다. 그런다음 그 사랑을 바로 옆에 있는 이웃에게 전하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이문열씨가 간과한 부분이다. 이문열씨의 논리는 신이 인간에게 복종과 믿음을 강요한 곳에서 끝나고 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라 바로 시작이다. 하늘에 부를 쌓으라는 말은 바로 옆사람에게 선행을 행하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똑같은 양의 자원이 있다. 모든 사람이 각각 자기 스스로 입에 넣으나 옆사람에게 한 입씩 먹여 주나 결과는 똑같은 것이거늘.. 한편으로느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을 왜 강요하냐고도 할 수 있지만 내가 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보기에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왜 쉬운 길을 가는 자가 악이 되어야냐고 말한다면 거기에 대해선 아직 답변해 줄 답이 없다. 하지만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그에 대한 답 또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 속의 민요섭이 결국은 다시 야훼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은 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모든 것을 짊어 지기에는 세상의 권세가 너무 큰 것일수 있다. '지혜의 신'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부여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견뎌낼 수가 없고 선을 행하여도 상이 없고 악을 행하여도 형벌이 없는 침묵하는 신 앞에서 무기력 해지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본연적으로 침묵하는 신 앞에 두려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자신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을까? 혹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항상 고민 하고 있는 인간이기에 신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일 수 있다. 물론 신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지 못한것이 현실인 것이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꼭 이루어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