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밖에 우람하게 서있는 상수리나무에 까치가 새 집을 짓기 시작했다. 까치 두 마리가 우리집 정원의 잔 나뭇가지들을 번갈아 물고 날아다닌다. 두 놈이 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내가 있거나 말거나 부지런히 종종걸음으로 잔가지들을 물어 나른다. 얼마 전 과수나무들 웃자란 것을 가지치기를 하고 이 구실 저 구실 붙여가며 정원 구석에 어질러 놓은 것이 까치들에게는 더 없는 집짓기 재목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두 다리를 모아 총총 예쁘게 뛰며 이가지 저 가지를 저울질하며 부리로 물어 나른다. 내가 옆에 가까이라도 다가가면 두 다리를 번갈아 가며 멋있게 걸어 다니면서 나뭇가지에 여전히 눈짓을 한다. 걸어가면서 꼬리를 치켜 올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마치 늘씬하게 잘 차려입은 신사가 걸어가는 것을 연상케 한다.
까치는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텃새다. 낯선 사람이라도 보이면 그렇게 “까치까치”하며 수다를 떨어댄다. 그래서 옛날부터 까치가 울어대면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는 이야기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까치의 섭성 때문이다. 먹성도 좋아 동물성 식물성 열매과일등 가리는 것이 없고 텃새 또한 심해서 독수리 까지도 무서워 하지않는다.우리뿐 아니라 중국과 몽고, 일본에서도 공통되게 길조로 생각하고 있다.
까치야 우리와 너무도 친근한 새이기 때문에 전래 이야기에도 친근하게 등장한다. 칠석날 하늘강(天之江 은하수)에 견우와 직녀를 위해 다리를 놓아 두 연인의 만남을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다리를 오작교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이것은 견우와 직녀의 사랑의 가교라고 할 것이다. 또 이 때 까치가 잘 보이지 않고 뒷날 보이는 까치는 머리에 깃털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를 건너면서 가치의 머리를 밟아서 깃털이 없어졌다고 우리나라에는 전해지는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그 무렵 까치는 깃털갈이 하는 시기라고 한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 동요를 우리 모두가 어린 시절에 즐겨 불렀던 노래이다. 이는 까치가 우리 겨레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더불어 살아왔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까치를 모르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까치가 시기적으로 언제 집을 짓는 것은 잘 모르는 모양이다. 친구들 보고도 ‘까치가 언제 집 짓나?’ 하고 물어도 ‘일년 열두 달 아무 때나’하고 대답한다.
까치는 암수가 힘을 합쳐서 집을 짓고 빠르면 12월 무렵에 둥지의 재료를 운반하기 시작하지만 대개 2월 또는 3월 무렵부터가 보통이다. 대체로 넓은 잎을 가진 아카시아나무, 미루나무, 감나무, 참나무등에 둥지를 틀지만 가끔은 전봇대나 송전탑 위에다 둥지를 틀어 한전 사람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루기도 한다. 나는 지금껏 소나무나 잣나무 같은 침엽수에 지은 까치집을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까치가 없는 유일한 곳이 제주도와 울릉도 인데 제주도는 1989년도에 한 매스컴에서 이 새를 보낸 일이 있다. 까치는 자연스럽게 토착화 했지만 먹이사슬의 균형에 교란을 일으켰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울릉도에도 1991년에 경상북도가 울릉도에 까치를 보내어 토착화 훈련을 시켜 방사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이제 까치가 없는 곳이 없다. 울릉도 같은 경우에는 섬의 면적이 적기 때문에 까치가 상위 포식자가 되어 생태에 교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자연계의 순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간섭 때문에 자연사랑에 역행이나 아니 하는지 모를 일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까치가 천연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사실도 우리나라와 일본사이의 바다가 자연 방패막이가 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그들이 들여다 키우기 시작한 것이 그들의 까치 원조이고 지금도 일본인들은 까치라 부른다.
까치를 위해서라도 나는 정원의 나뭇가지들 치우는 것을 조금은 기다려야 하겠다. 봄이면 늘어난 까치 가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집에는 자연스럽게 까치들의 새로운 식구가 나와 함께 살아 갈 것이다.
까 치
까 치
울타리 밖에 우람하게 서있는 상수리나무에 까치가 새 집을 짓기 시작했다. 까치 두 마리가 우리집 정원의 잔 나뭇가지들을 번갈아 물고 날아다닌다. 두 놈이 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내가 있거나 말거나 부지런히 종종걸음으로 잔가지들을 물어 나른다. 얼마 전 과수나무들 웃자란 것을 가지치기를 하고 이 구실 저 구실 붙여가며 정원 구석에 어질러 놓은 것이 까치들에게는 더 없는 집짓기 재목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두 다리를 모아 총총 예쁘게 뛰며 이가지 저 가지를 저울질하며 부리로 물어 나른다. 내가 옆에 가까이라도 다가가면 두 다리를 번갈아 가며 멋있게 걸어 다니면서 나뭇가지에 여전히 눈짓을 한다. 걸어가면서 꼬리를 치켜 올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마치 늘씬하게 잘 차려입은 신사가 걸어가는 것을 연상케 한다.
까치는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텃새다. 낯선 사람이라도 보이면 그렇게 “까치까치”하며 수다를 떨어댄다. 그래서 옛날부터 까치가 울어대면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는 이야기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까치의 섭성 때문이다. 먹성도 좋아 동물성 식물성 열매과일등 가리는 것이 없고 텃새 또한 심해서 독수리 까지도 무서워 하지않는다.우리뿐 아니라 중국과 몽고, 일본에서도 공통되게 길조로 생각하고 있다.
까치야 우리와 너무도 친근한 새이기 때문에 전래 이야기에도 친근하게 등장한다. 칠석날 하늘강(天之江 은하수)에 견우와 직녀를 위해 다리를 놓아 두 연인의 만남을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다리를 오작교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이것은 견우와 직녀의 사랑의 가교라고 할 것이다. 또 이 때 까치가 잘 보이지 않고 뒷날 보이는 까치는 머리에 깃털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를 건너면서 가치의 머리를 밟아서 깃털이 없어졌다고 우리나라에는 전해지는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그 무렵 까치는 깃털갈이 하는 시기라고 한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 동요를 우리 모두가 어린 시절에 즐겨 불렀던 노래이다. 이는 까치가 우리 겨레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더불어 살아왔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까치를 모르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까치가 시기적으로 언제 집을 짓는 것은 잘 모르는 모양이다. 친구들 보고도 ‘까치가 언제 집 짓나?’ 하고 물어도 ‘일년 열두 달 아무 때나’하고 대답한다.
까치는 암수가 힘을 합쳐서 집을 짓고 빠르면 12월 무렵에 둥지의 재료를 운반하기 시작하지만 대개 2월 또는 3월 무렵부터가 보통이다. 대체로 넓은 잎을 가진 아카시아나무, 미루나무, 감나무, 참나무등에 둥지를 틀지만 가끔은 전봇대나 송전탑 위에다 둥지를 틀어 한전 사람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루기도 한다. 나는 지금껏 소나무나 잣나무 같은 침엽수에 지은 까치집을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까치가 없는 유일한 곳이 제주도와 울릉도 인데 제주도는 1989년도에 한 매스컴에서 이 새를 보낸 일이 있다. 까치는 자연스럽게 토착화 했지만 먹이사슬의 균형에 교란을 일으켰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울릉도에도 1991년에 경상북도가 울릉도에 까치를 보내어 토착화 훈련을 시켜 방사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이제 까치가 없는 곳이 없다. 울릉도 같은 경우에는 섬의 면적이 적기 때문에 까치가 상위 포식자가 되어 생태에 교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자연계의 순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간섭 때문에 자연사랑에 역행이나 아니 하는지 모를 일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까치가 천연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사실도 우리나라와 일본사이의 바다가 자연 방패막이가 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그들이 들여다 키우기 시작한 것이 그들의 까치 원조이고 지금도 일본인들은 까치라 부른다.
까치를 위해서라도 나는 정원의 나뭇가지들 치우는 것을 조금은 기다려야 하겠다. 봄이면 늘어난 까치 가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집에는 자연스럽게 까치들의 새로운 식구가 나와 함께 살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