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전민아2006.10.29
조회181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아일랜드 독립전쟁시 투쟁했던 시민들, 특히 리더격인 형제 두 명을 중심으로 전쟁과 전쟁후를 잔혹하게 그려낸 영화. 깐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이제부터 밑에 쓴 리뷰는 스포일러 만땅, 그러나 내용에 대한 언급없이는 리뷰를 쓸 수가 없었답니다'ㅁ';;

 

 


 나는 이 영화의 전반부를 보기가 정말로 힘들었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둘째치더라도 전쟁영화 특유의 잔혹함 때문이었다.

 

 푸른 잔디밭에서 하키놀이를 하는 건장한 남자들이 보이나 싶더니, 갑자기 소대급 무장군인들이 쏟아져 나와 그들에게 총을 겨눈다. 불법집회를 가졌다는 죄목을 신고받고 달려나온 영국군이다. 영국 군인들에게 반항하는 사람은 곧바로 응징한다.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어머니 앞에서 ‘맞아죽는’것이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이렇듯 첫 장면부터 잔뜩 피를 보여준 영화는 계속해서 영국으로 대표되는 제국주의의 억압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계속해서 외치는 “카톨릭 돼지새끼!” , “아일랜드 시골뜨기들!” 같은 대사에서 이미 그들의 갈등구조를 깨달을 수 있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갈등상황은 이렇듯 깊고,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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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런 역사를 모르더라도 영화 자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 내면의 세계, 혹은 인간관계와 국가, 전쟁에 대한 감독의 의문제기는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가장 먼저 보이는 질문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문제이다.

 

 영국군에 잡혀 고문당할 때 한마디도 발설하지 않은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 순간 고통받는 동료를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는, 그 비장함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인가. 아니, 더 근본적으로, 목숨을 내 던져 지키고자 하는 것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 영국군으로 하여금 위풍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게 하고, 아일랜드 사람들을 위축되게 만드는가. 사회전체를 감싸는 힘의 논리, 그리고 그 논리에 중심에 선 국가, 조국, 민족! 이 질문은 ‘배신자 처형’에서 극에 달한다.

 

 투쟁자들을 밀고한 아일랜드 청년 크리스는 ‘규정’에 따라 배신자로 처형당해야 하지만, 같은 아일랜드 사람을 자신들의 손으로 과연 처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짓누른다. 같은 아일랜드 사람일 뿐 아니라, 서로 오래 전부터 알고지낸 사이인- 그러나 배신자인 크리스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하는 상황. 결국 총을 든 데이미언(주인공)은 중얼거린다. "크리스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조국이란건, 이만큼 (인정없이 처벌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거겠지....? ”

 

 처형직전의 대화도 아주 가관인데, “교회 뒷 편에 묻어줄게, 그 장소 기억나지?.... 기도는 했어...?” 라는 처형자와 범죄자 사이의 말도 안되는, 그래서 더욱 슬픈 유대관계가 드러난다. 여느 헐리우드 영화에서라면 총을 쏜 후에 총총 어디론가 뛰어가며 “으아악~!” 하고 소리라도 지를 법 한데 데이미언은 단지 멀리멀리 사라질 뿐이다. 그렇다. 슬픔이 지나치게 가슴을 짓누르는 사람은 크게 소리를 낼 수조차 없는 법이다. 그러나 이 슬픔은 국가를 위해 개인이 기꺼이 감수하는 슬픔이며, 국가 이데올로기에 따르자면 숭고한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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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돈을 많이 들인 것 같진 않았지만, 로케이션 장소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배신자 처형을 위해 이동하던 넓은 초원은 푸른 색이 넘실대고 있었고, 특히나 멀리서 찍은 샷(Extream long shot ;;;) 으로 바라본 그 광경은 이색적으로 아름다웠다. 순간적으로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이 생각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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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군과의 한판 전투를 그릴 때도 넘실거리는 푸른빛은 계속되었다. 영국군의 시선을 피해 숨어있는 곳은 아직 익지 않아 푸른 빛인 보리밭이었다. 아, 바람부는 대로 흔들리는 보리밭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네들에겐 ‘빼앗긴 들에도 보리는 자란다’ 정도일까. 아이러니컬하게도 푸른 보리밭에 숨은 그들은 붉은 피를 불러오고, 두어 소대쯤 되는 영국군을 몰살한다. 승리다. 그러나 입끝이 쓴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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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영국군에 대해 무장투쟁을 하고 있던 어느날, 기쁜 소식인지 슬픈 소식인지 모를 급보가 전해진다. 휴전협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투쟁군은 결국 자신들의 전쟁이 승리를 거둔 것이라며 자축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승리’였다. 온전한 독립이 아니라 북아일랜드 이남의 독립이었던 것이다. 대사를 따르자면 ‘영국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북쪽으로 갔을 뿐’. 투쟁을 계속해 북아일랜드까지 차지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정도의 승리에 만족하고 힘을 더 키워야 할 것인가? 조국의 독립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싸워온 아일랜드 인들은 분열하기 시작하고, 결국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눈다. 서로의 명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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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다시 사람의 명분, 신념, 이념에 대한 무서움이 드러난다. 가장 비물질적인 인간의 사상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물질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아프게, 다치게 하는지.. 뻔히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끼리 총을 쏘고, 그동안 숨어서 투쟁을 계속하던 바로 그곳을 수색하고, 그동안 자신을 먹여주고 숨겨줬던 분들에게 총을 들이대고, 급기야는 영국군에 잡혀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바로 그 장소에 형제를 가두고, 그 장소에서 형제에 의해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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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형제의 손에 처형당하는 모습은 차라리 희극적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형제의 죽음을 막아보려는 형의 모습이나, 여느 영화의 담담하고 대담한 사형수가 아닌 죽음 앞에서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는 동생의 모습이나, 결국 자신이 직접 처형 명령을 내리는 형의 목소리, 그리고 눈물까지. 무엇을 위해 함께 싸워왔는지, 무엇을 위한 죽음인지 쓴웃음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다. 결국 형은 자신도 친하게 지내던 동생의 연인에게서 ‘다신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황급히 집을 빠져나온다. 그것이 영화의 마지막이다. 그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사람의 명분이 어디까지 지속될 수 있는가... 영화의 엔딩크레딧은 많은 것을 관객에게 묻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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