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 아들의 ''아버지 이야기''♨

김영종200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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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어머니에겐 언제까지나 '아버지가 만드신 음식'이 '최고'다. 

 

갓 볶아 따끈따끈한 자장 

 

 

3주 전, 부모님이 ‘중국집’을 새로 개업하셨다. 부모님은 추석연휴, 하루도 쉬지 않고 준비하시더니 드디어 가게 문을 연 것이다.

우리 가게는 아버지가 ‘주방장’, 어머니가 ‘주방보조’, 삼촌 두 분이 ‘배달’을 하는 ‘아담한’ 중국집이다.

영업을 시작하고 일주일여가 지난 어느 날 밤, 나는 “가게회식을 하고 있으니 운전기사노릇 할 겸 와”라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가게로 갔다.

가게에 달린 작은 방에서 하는 조촐한 회식이었지만, 내가 가게에 도착했을 때 분위기는 이미 무르익고 있었다. 가게 삼촌들에게 개업 전 인사를 드리긴 했지만,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었다.


'맛있는' 아버지의 음식, 그런데 '오래' 걸린다

 

개업 초창기다보니, 회식자리에선 자연스레 가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갔다. 배달을 하는 한 삼촌은 아버지가 만드신 음식에 대해 손님들이 한결같이 “맛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더욱이 내 옆에 앉은 삼촌도 “내가 15년 동안 중국음식점에서 일했는데 아버지만큼 음식을 맛있게 하시는 분도 없었다”며 입에 침이 마르게 아버지의 음식을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와 어머니는 아버지가 만드신 자장면, 짬뽕이 가장 맛있다. 하지만 이는 오랫동안 먹어 익숙해졌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인사치레라 감안해 들어도 삼촌들의 말씀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음식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짬뽕

 

 

다만, 그 삼촌은 “한 가지 흠이라면 아버지가 손이 조금 느리시다”며 “그래서 배달이 밀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삼촌은 “하지만 그 역시 한 그릇을 만드시더라도 정성을 쏟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촌의 말씀을 듣자마자 나는 어머니에게 여쭸다.

“엄마, 아빠가 원래 느리셨나?”

“빠르진 않았지.”

“그럼 느려지신 거지? 아무래도 오래 쉬셔서 그런가봐, 그렇지?”

“글쎄, 아빠가 해내질 못해.”

 

아버지가 음식을 하시는 게 느려진 것은 '이미 오래 전'

 

사실 아버지가 음식을 하시는 게 느려진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부모님은 이전에도 중국집을 하셨다.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가 중국집에서 일하신 것을 제외하고 가게를 차려 직접 운영하신 것만 7년이다. 그때도 역시 아버지가 주방장, 어머니가 주방보조, 삼촌과 형이 배달을 하는 아담한 가게였다.

부모님이 가게를 차리시고 3, 4년이 지났을 즈음, 대학새내기였던 나는 여름방학을 맞아 가게에서 두 달여간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다. 당시 내가 하는 일이래 봤자 전화 받고, 서빙하고, 청소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한여름에 냉방기 없는 중국집 내부는 찜통처럼 더워 녹록치 않았다.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첫날 나는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전쟁터가 된 테이블을 치우다 선풍기 앞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두세 시간을 주방에서 요리만 하신 아버지가 뒷문으로 나가시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누구보다 이 더위에 일하시는 아버지가 걱정돼 따라 갔고,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고 있던 고무신에 땀이 가득 차 따라 버리시는 것이었다.

 

 

요샌 후라이팬을 드는 것도 힘에 부쳐 보이시는 아버지(참고로 아버지는 가수 'DOC'가 부른 의 노랫말처럼 당당히 '박박 밀은 멋쟁이'시다.)

 

 

가만히 있어도 이마에 땀방울이 흐르는 한여름, 아버지는 매년 그렇게 뜨거운 불앞에서 고무신에 땀이 가득 찰 정도로 무더위와 맞서고 있으셨다.

 

그래도 부모님은 그나마 여름이 낫다고 말씀하곤 하셨다. 가게를 하던 곳이 시골이었던지라 문을 닫기도 전에 버스가 끊기는 것이다. 때문에 당시만 해도 차가 없었던 부모님은 한겨울이면 매일 한 시간 반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겨울바람을 뚫고 출퇴근하시곤 했다.

부모님은 그곳에서 그렇게 7년을 온전히 일하셨고, 고된 몸만큼 건강도 나빠지시고 말았다. 결국, 아버지는 당뇨, 어머니는 고혈압으로 병원을 드나드셔야 했고, 가게도 그만둬야 했다.

지난 일 년여 동안, 부모님은 병원을 다니며 휴식을 취하셨고, 덕분에 건강도 많이 회복하셨다. 그리고 지난달부터 건강도 좋아졌으니 다시 가게를 하겠다고 하신 것이다. 나는 “아들이 곧 졸업해서 취직을 할 테니 쉬시라”고 만류했지만, 한사코 “쉬엄쉬엄할 거니까 걱정하지마라”고 하시는 부모님을 이길 수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가게자리를 고르셨고, 아버지는 직원을 구하셨고, 나는 가게 상호를 지어 지금의 가게를 새로 차린 것이다.


자신의 일에 진정 ‘보람’을 느끼시는 아버지


회식날, 아버지가 나를 부르신 ‘진짜 이유’는 자신보다 아들이 삼촌들과 세대차이가 나지 않을 테니 대화도 나누며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아버지의 의도대로 옆에 앉은 삼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회식 막바지, 한 삼촌은 음식 칭찬에 뒤이어 “농담이 아니라 진로를 정하지 않았으면 아버지에게 음식을 전수받아 뒤를 잇는 것을 생각해봐”라며 “중국집은 주인이 주방장을 해야 돈을 버는데 네 나이에 아버지가 하시는 요리를 전수받으면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뒤늦게 안 것이지만 어머니의 말씀이 아버지는 내가 대학을 가지 않고 이어받기를 바라셨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아들이 공부하기에는 글렀다고 보신 건가’ 하는 생각에 아버지에게 서운했다. 하지만 이후 언젠가 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다. "난 내가 하는 일이 좋아, 그래서 대학 가서 흐지부지 할 거라면 이어받는 게 낫다는 거였지."

 

 

 아버지가 자장을 볶으시는 모습

 

 

아버지는 누구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시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 짓는 아버지의 표정이야 말로 진정 행복함이 묻어나오는 것 같다.

비록 이제 음식을 하시는 게 느려졌지만, 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더 음식을 만드실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와 어머니에겐 언제까지나 '아버지가 만드신 음식'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