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으로가 아닌 죽음으로의 선택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날 때에 그것은 자해행위로 나타난다. 이것은 삶보다는 파멸이 더 선호된 마음의 상태이다. 동시에 절망의 표현이며, 희망의 부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분노는 대상을 향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 물론 어떤 종류의 자해는 대상을 향한 분노의 표출이기도 하다. 특별히 대상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에서 자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언젠가 전태일씨는 분신자살 사건을 통해서 한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었다. 그는 정부에 대해서 분명한 메시지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극심한 분노의 감정에 파묻혀 있었다. 자신의 몸에 기름을 쏟아 붓고서 불길을 당길 때에 그는 특별한 메시지를 강하게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강하게 전달되었고, 한국 사회는 예전보다 더 노동자를 위한 사회, 그리고 보다 더 민주적인 사회가 되었다. 그의 자해행위가 긍정적인 가치를 지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비록 자신은 상처를 받지만,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다른 이들의 생명이 더욱 존중되는 것을 그는 희망했고, 그 소망은 현실화되었다. 한국사회는 그의 죽음으로 인해 민주주의를 더욱 앞당길 수 있었다. 그리고 노동자의 목소리가 전보다 더 정확하게 전달되는 사회 문화적인 풍토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의분의 자해는 대부분의 임상적인 분노의 증상과는 아주 구별된다. 임상적으로 환자들은 분노할 때에 순간의 격한 파괴 욕동이 강하게 생각에만 마음을 완전히 빼앗긴 채로 의지력이 상실된다. 분노의 감정이 그들의 정신과 영혼을 삼켜 버리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몸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분노가 그들의 주인이 되어서 자신의 몸에 대한 존중감 마저 포기한다.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들이 자주 보이는 자해 행위는 이런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들의 자해행위는 단순한 분노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생명력을 느끼기 위한 피학적 행위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분화의 차원에서 볼 때에 이들은 리비도의 생명력과 파괴라고 하는 죽음성향이 충분히 분화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공격성의 발전도 아주 원시적인 수준에 머무른 사람들이라고 전달할 수가 있다.
1. 김병훈 박사, 「분노와 과격행동의 이해」, 2004년 10월 5일 3강좌 강의안, 호서대학교
자해 행위의 의미
인용문(28): 자해 행위의 의미
생명으로가 아닌 죽음으로의 선택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날 때에 그것은 자해행위로 나타난다. 이것은 삶보다는 파멸이 더 선호된 마음의 상태이다. 동시에 절망의 표현이며, 희망의 부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분노는 대상을 향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 물론 어떤 종류의 자해는 대상을 향한 분노의 표출이기도 하다. 특별히 대상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에서 자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언젠가 전태일씨는 분신자살 사건을 통해서 한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었다. 그는 정부에 대해서 분명한 메시지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극심한 분노의 감정에 파묻혀 있었다. 자신의 몸에 기름을 쏟아 붓고서 불길을 당길 때에 그는 특별한 메시지를 강하게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강하게 전달되었고, 한국 사회는 예전보다 더 노동자를 위한 사회, 그리고 보다 더 민주적인 사회가 되었다. 그의 자해행위가 긍정적인 가치를 지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비록 자신은 상처를 받지만,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다른 이들의 생명이 더욱 존중되는 것을 그는 희망했고, 그 소망은 현실화되었다. 한국사회는 그의 죽음으로 인해 민주주의를 더욱 앞당길 수 있었다. 그리고 노동자의 목소리가 전보다 더 정확하게 전달되는 사회 문화적인 풍토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의분의 자해는 대부분의 임상적인 분노의 증상과는 아주 구별된다. 임상적으로 환자들은 분노할 때에 순간의 격한 파괴 욕동이 강하게 생각에만 마음을 완전히 빼앗긴 채로 의지력이 상실된다. 분노의 감정이 그들의 정신과 영혼을 삼켜 버리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몸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분노가 그들의 주인이 되어서 자신의 몸에 대한 존중감 마저 포기한다.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들이 자주 보이는 자해 행위는 이런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들의 자해행위는 단순한 분노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생명력을 느끼기 위한 피학적 행위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분화의 차원에서 볼 때에 이들은 리비도의 생명력과 파괴라고 하는 죽음성향이 충분히 분화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공격성의 발전도 아주 원시적인 수준에 머무른 사람들이라고 전달할 수가 있다.
1. 김병훈 박사, 「분노와 과격행동의 이해」, 2004년 10월 5일 3강좌 강의안, 호서대학교